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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16:43

중장기병1기, 2기

조회 수 4636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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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은 물론 말까지 철갑으로 감싸고 적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기병인 중장기병은 몇가지 요소에 따라 1기와 2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대체적으로 10세기 이전의 중장기병들이며 이들은 양손으로 잡는 창, 등자의 유무, 안장의 형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의 기원은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말 앞과 사람 다리까지 청동미늘로 가린 기병들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들이 실용적으로 쓰인 최초의 중장기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기병들의 일반적 행동방식대로 적진에 직접 충돌하기보다는 활을 쏘거나 투창을 던지는 등의 경기병적 패턴을 보여왔기 때문에 진정한 중장기병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장기병의 기원은 언제나 이란이었는데 이는 이란이 북방계 기마민족과 남방계 농경민으로 나뉘어 비옥한 오리엔트의 높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기병 전력을 가진 기마민족에 중장비를 갖출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해주었으며 또 당시 세계 문명의 중심은 단연 이란이었기 때문이었다.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다 이란 고원으로 들어와 알렉산더의 부하 장군이 세운 셀레우코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란의 새 주인이 된 파르티아 왕국은 북방계 백인 기마민족이었으며 이들은 보병보다는 기병을 주요 전력으로 내세웠으며, 그들의 실질적인 주력이 활을 쏘는 경기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경기병으로 충분히 소모된 적진을 한방에 끝장낼 수 있는 끝장내기 전력으로써 중장기병을 탄생시켰다.

(1.원조인 파르티아 중장기병. 2세기. 2.아르메니아 중장기병. 3세기)

 이들은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중장기병을 무장상태에 따라 2종류로 나뉘었는데 그림에서와 같이 말 전체에 중마갑을 입히고 기사에게는 철판이 다량 포함된 튼튼한 갑옷을 장비시킨 경우를 카타플락토스(카타플락타이라고도 부름), 말 앞부분에만 마갑을 입히고 기사에게는 체인메일 위주의 비교적 경장비를 시킨 경우를 크리바나리우스라고 하는데, 둘다 전열을 짜고 적진에 육박하여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적진을 붕괴시키는 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크리바나리우스와 카타플락타이는 로마어인데, 로마에서는 중장비를 크리바나리우스, 경장비를 카타플락토스로 바꿔 부른다. 훗날 동로마 제국에서 크리바나리우스보다 한단계 위의 장비를 갖춘 초중장기병 클리바노포로스도 등장하나, 크리바나리우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1세기경의 파르티아 중장기병, 카타플락타이)

 이들을 훗날 사람들이 연상하는, 말하자면 겨드랑이에 긴 창을 끼고, 물샐틈 없이 중장갑을 갖추어, 대열을 이루어 적진을 휩쓸어 버리는 기사의 이미지로 이해하려는 경우를 많이 보이지만 이들은 훗날의 기사들에 비해 분명히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 성능도 기사에 비해 낮았다. 이들의 특징은 발을 받치는 등자가 없고, 안장이 앉는 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주로 양손을 이용해 창을 휘두르거나 단단히 붙들고 돌격하고, 혹은 한손으로 창 중간을 잡고 찌르거나 위에서 내려찍는 식으로 전투한다. 대체적으로는 적진을 휩쓰는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적진에 육박(돌격이 아니다)하여 창으로 찌르고 휘두르며 적 병력을 살상하면서 중장갑으로 적의 반격을 상쇄해나가며 싸우는 경향을 많이 보인다.

 이것은 당시의 마구가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령 등자가 없었는데 등자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돌격의 충격에서 기수가 안 날아가게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상 전투때 몸이 기울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해준다. 가령 적 보병을 향해 검을 내려치려고 허리를 숙인다면, 등자가 있다면 어느 한쪽으로 허리를 숙여서 생기는 무게중심의 이동을 등자를 밟은 발로 버티며 충분히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지만 등자가 없다면 실수로 주르륵 미끄러져서 낙마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적 보병과의 백병전에서 기수를 보다 소극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된다. 당시의 기병이 훗날보다 더 키우기 어렵고 투사무기 위주로 작전했던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훗날 등자가 4~7세기에 걸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전투법의 변화는 안장의 변화와 겨드랑이 랜스법의 등장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장의 형태도 미흡했는데 당시의 안장은 그냥 앉기 위한 물건으로써 기수를 충격에서 날아가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장치가 없었다.
이 12~13세기 북부이탈리아 기병의 안장과 위의 카타플락타이 안장을 비교해 보자. 엉덩이를 받치며 허리까지 오는 안장이 다름을 알 수 있는데, 저 부분을 캔들이라고 한다. 캔들의 대형화 여부가 바로 중장기병의 충격 전법이 가능하게 하는 열쇠이다. 저 안장을 통해 기창 돌격시 기사가 뒤로 날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미흡해서 카타플락타이/크리바나리우스 기병들이 기병창을 고정한 충격 전법보다는 고속 육박으로 적진에 빠르게 접근하여 백병전으로 승부를 내는 전법을 취한 것이며, 양손으로 창을 잡고 베고 찌르며 치는 형식의 전투법을 취한 것은 이런 마구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적 병력과의 접촉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때문에 로마군과의 전투 시 찌르던 창이 붙들리거나 말이 칼에 찔려 쓰러지는 등 중장기병 2기와 비교해 보면 약점이 많아 아직 보병들에 대해 완전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1기 중장기병의 특징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장기병의 위력은 곳곳에서 인정받아 가깝게는 로마군부터가 카타플락타이/크리바나리우스 체제를 받아들여 중장기병을 창설함은 물론, 중국에도 전해져 남북조시대에 카타플락타이/크리바나리우스 계열 중장기병이 등장하는가 하면, 고구려의 개마무사 또한 이 카타플락타이/크리바나리우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동일 계열 기병이라 할 수 있다.


이들까지를 중장기병 1기라 할 수 있다면, 10세기를 넘어서는 시점에서 중장기병 2기의 보편화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중장기병 2기의 특징은 겨드랑이 랜스, 안장과 등자의 변화, 랜스차징으로 대표되는 충격 전술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겨드랑이 랜스(흔히 카우치드 랜스라고 부른다)의 기원은 이곳 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추측되지만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066년 노르망디와 영국의 왕위계승전쟁을 다룬 바이외의 테이피스트리에서 랜스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돌격하는 기사를 수놓은 모습이다. 이윽고 1080년대 동로마제국에서도 겨드랑이 랜스가 확인되는 등 10세기를 지나면서 급격히 확산되는 것이 바로 겨드랑이 랜스이다.

 어째서 겨드랑이인가? 그것은 겨드랑이야말로 기존의 랜스 운용과는 보다 나은 이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인데, 양손으로 창의 중간을 잡고 옆구리께에 단단히 고정한 후 돌진하는 과거의 돌격 방식은 창의 길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였고 고삐를 쥘 수 없어 돌격시 말의 컨트롤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결국 손으로 잡고 있는 것이므로 단단히 잡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겨드랑이 랜스는 이점을 모두 해결했다. 몸에 단단히 고정하여 기사의 충격력을 적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이전 시대에 비해 가능해진 것은 등자의 일반화와, 캔들이 높아진 중세식 전투용 말안장의 존재 덕분이다. 

 충격 전술이 일반화됨에 따라 기사들은 이전 시대보다 더 짧은 전면접촉시간과 더 강한 운동에너지를 가질 수 있게 되어 과거처럼 창이 붙들리거나 말이 칼에 찔려 사로잡히는 일이 훨씬 줄어들었고, 보병들은 더 감당하기 어려운 기병을 맞이하게 된다. 이 충격력에 대항하기 위해 보병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이 느려터지고 둔중한 6미터 장창으로 구성된 파이크 방진을 구성하지 않고서는 대항할 수 없었으며, 결국 총기류 보급률의 확산으로 창기병이 소멸할 때까지 중장기병 2기는 항상 그 위력이 과소 평가되는 일이 없었다. 이미 랜스기병이 거의 소멸한 17세기 중후반까지 랜스돌격을 장기로 하는 폴란드 후싸르기병대가 파이크 방진을 상대로조차 위명을 떨친 것은 그런 중장기병 2기의 위력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중장기병 2기에 해당하는 오스만투르크 시파히기병)
  • 니르바나 2010.08.25 04:24

    내용이 중심에서 상당히 벗어난 글로 보입니다.


    글에도 언급이 있다시피 기병은 지금의 아랍지역인 터키의 히타이트에서 유래한것으로 나옵니다.


    기원전23세기 유물이 나온 실정이죠, 수메르의 궁기술과 합해져 스키타이문명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궁기병위주인 스키타이도 일찍히 이란지역에서 발생해서 대초원에 널리 퍼져나가고 나중에는 인도로 가서 무굴제국까지 건설합니다.


    우리나라도 동쪽끝까지온 세력으로 기원전에 도착해서 고구려같은 경우는 몇세기안에 철기병이 활동하죠.


    글보다 10세기는 빠른것입니다.


    안장이 나오고 등자를 쓰는 시점이 유럽하고는 수백년이 차이가납니다.


    중국도 대초원과 마주하고잇어서 잦은 충돌과 교류로 일찍이 전파되는 나라죠.


    진시황 병마용도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찰갑과 기병장비를 가지고잇죠.


    중국자체가 유목민이 문명을 시작하고 그시기가 피라미드와 동시대입니다.


    그후 그 문명에서 황하문명이 나와 독자적인 문명으로 발전하면서 차이가 나게되는겁니다.


    그후로도 중국은 북방유목민과 잦은 충돌과 교류를 할수밖에 없었구요.


    글은 기병에 대한 내용인데 기병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세력은 버리고 그 주변세력을 서술해놓은 웃기는글이라는 생각만 드내요. 


    세상이 바뀌어 역사가 유럽이 기준이 되고 중국기준으로 잡혔으니 이런경향이 나오는건 이해가 되지만 엄현히 잘못된글.

  • 홍차매니아 2010.08.27 16:03

    헐? 이분 철갑구락부에 댓글도 달고 있군요;;;

  • 홍차매니아 2010.08.27 16:07

    아 젠장. 간만에 역사 관련 토론 하나 흥미 있어했는데, 블로그에 올린 댓글 보니까. 안되겠구먼?

  • 홍차매니아 2010.08.27 20:52

    나도 슬슬 반격해볼까?

     

    고구려가 중장기병을 운용한것은 4세기 즈음입니다.

     

    페르시아 지역과 그 인근 지중해 지역에서 중장기병을 운영한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고요. 심지어 헬레니즘 계열의 국가들도 로마에 집어 삼켜지기 이전에 각 국가들의 친위 기병대라고 할수 있는 헤타이로이 들도 카타프락토이 화 했습니다. 중장기병을 운용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셀레우코스 시리아 군대는 카탁프락토이를 운용했구요.

    이때문에 로마군의 전투 초반기에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시리아군의 삽질과 로마군의 능숙한 군 운용으로 로마의 승리가 결정되었지만요.

    어디까지를 서양으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고구려가 중장기병을 선비족으로 도입할 당시는 4세기 였습니다.

    그 시기라면 마구가 좀 후달릴지 몰라도 로마제국도 카타프락토이식의 중장기병을 운영하던 시기입니다.

  • 홍차매니아 2010.08.27 20:53

    춘추전국시대 아직 중국에서 말이 끄는 전차가 기동전력의 대표주자로 활동하던 시절에 말을 보호하는 마갑이 조재했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게 과연 후대의 중장기병의 마갑과 어떻게 이어지는 지는 저도 한번 그 관련 자료를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