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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죽 갑옷 방어력 무시하면 안된다.
존나 안베어진다.

2. 서양 검술에는 찌르기만 하는 펜싱만 있을뿐만 아니라 합리적으로 효율적인 검술도 여럿 존재한다. 또한 펜싱에도 베기를 할수 있는 샤브르(맞나?) 종목이 있다.

3. 전신 판금 갑옷은 대게 30~40kg정도하지만 착용시 그렇게 무겁다라는 감이 안온다. 어떤 사람은 이걸 입고 춤도 추고 온갖 재주를 넘는다. 또한 저런 엄청난 중량의 갑옷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도 존재했다. 중국의 명광개(이 명칭이 맞나?)가 그 예이다.

4. 접쇠는 일본 특유의 도검용 금속 가공 재련술이 아니다. 북유럽 스칸다나비아 반도에서 패턴 웰디드 라는 유사한 도검용 금속 가공기술이 존재하며 노르만 소드에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다. 이러한 도검용 금속 가공기술은 세계 곳곳에 널리 존재하고 있으며 주로 철의 질이 않좋거나 금속가공기술이 떨어지는 곳에서 주로 쓰는 방법이다.

5. 일본도에 쓰이는 또다른 고유의 금속 가공 기술이리는 성질이 다른 몇가지의 금속을 겹친다는 사상은 역시 북유럽 노르만 소드에서도 나타나며 아시아 곳곳에서도 이러한 기술을 확인할수 있다.

6. 검의 탈을 쓴 둔기라는 서양식 중검으로도 못벨건 없다.

7. 판금 갑옷을 조질때는 검보다는 워헤머 같은 둔기류 그 중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것이 제격이다. 검으로 후려치면 대게는 흠집만 날뿐이다.

8. 다른 이야기지만 조선군은 적어도 중후반 까지는 엄청나게 중장갑옷화 되있는 군대였다.
사극에서 보던 검은 파자마는 후반에나 존재했다.

9. 총이라고 할만한것이 최초로 등장하고 나서 판금 갑옷이 사라지기 까지 200년이란 세월이 요구되었다.

10. 전술적으로 봤을때 총이 대체한 것은 창이며, 활을 대체한 것은 각종 화포병기이다.

11. 근대 이전 서양 전쟁사에서 양측 동원 병력수가 수만은은 커녕 1만을 넘었던 적은 극히 희박했다.(그래도 뒤적 거리다 스케일 있는 것도 꽤 된다.)

12. 조선군은 단병접전에서 왜구에게 밀란다고 하지만 실제 기록을 뒤적거리다 보면 단병접전에서 왜구를 때려 잡은 사례가 그렇지 않은 사례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심심해~
  • Griffin 2008.06.01 00:08
    그리고 사극에서 자주나오던 삼지창도 조선후기에야 들어왔었지
  • 발뭉 2008.09.23 04:52
    마지막이 최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