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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0.03.21 10:32

pm3/night.

조회 수 33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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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정리 중. 꽤나 나름 신경 써서 해야 할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에베레스트급 산만함이 어디 가나. 좀 쓰다가 드러눕고, 다시 쓰다가 노래 따라 목청 돋우고, 배고파서 잡생각...아이스크림 좀 꺼내올까. 냉동실에서 졸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깨웠더니, 놀래서 경직됐는지 바짝 얼어 있었다. 이 자식, 숟가락이 박히질 않는다. 자루 부분을 받치고 밀었는데...아악. 손바닥 뚫리는 줄 알았다. 몹쓸 놈의 아이스크림. 요리용 식칼로 썰어버릴까 보다...그러다가 플라스틱 통까지 썰어버릴라 겁나서 적당히 스테인레스 티스푼으로 타협. 그릇에 퍼담아가지고 흥얼흥얼하면서 노트들이 장렬하게 널부러진 탁자로 귀환. 그런데. 웬 그늘?

어둑어둑한 베란다.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고 밖을 내다봤다. 전깃줄이 날아가고 싶어 윙윙거린다. 근데 아마 지금 하늘을 날아가면 모래 파편에 살갗 다 뜯길걸. 그러다가 돌풍이 그치면 땅바닥에 철퍼덕하고 추락하겠지. 그 때가 되면 아 전봇대에 매달려 줄넘기 당할 때가 좋았구나 하고 느낄거다. 무슨 말이야 이건.

전봇대 꼭대기에 섞여있는 모래 알갱이는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되면 어떨까. 평생 만나기 힘들 존재들이니 - 전봇대 머리가 거꾸로 박히지만 않는다면 - 얼마나 반가울까. ...아니면, 이미 모래가 아니라서 별 감회들이 없을까. 콘크리트로 강제 개명 당한거냐.

-그러면 나도 같은 사람인데, 아무 느낌 없는 걸까, 너는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었다. 떠낼 때는 힘들어도 먹을 때는 좀 단단한 게 낫지, 흐물흐물해져서 미지근한 아이스크림은 딱 질색이다. 아, 그래도 조금만 참아봐.

-어둡잖아, 아직

 

그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알갱이 안으로 들어오면

어떨까, 아플까

온몸에 상처를 내면서 굴러다닐테고

너무 작아서 잡기도 꺼내기도 어렵다

그러다 자칫 그 근처를 긁어버린다면

아마 모든 게 다 새어 나가 버리겠지

두려워서

코도 막고 입도 다물었다

귀도 덮었고 눈도 감았다

맡을 수도 없고 말해줄 수도 없지만

들어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앞에 있으면

계속 이렇게 있어야 하잖아, 나는

 

니가 열어줄 때까지

 

아이스크림을 좀 많이 펐나, 그릇을 비우고 나니 뒷머리에 통증이 왔다. 기를 쓰고 양쪽 귀 앞을 눌러봐도 잘 가라앉지 않는다. 아직 바깥은 어둡다. 지끈거리는 두통은 여전하다. 아마도 들어온 모양이다. 들어와 버린 이상, 이제 어쩔 수 없다. 그냥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가까스로 신경 끊고 다시 펜을 달렸다. 잉크가 살짝씩 번진다. 때 아닌 어둠을 머금은 노트는 눅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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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Ra 2010.03.21 16:04

    전 흐물흐물한 아이스크림도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