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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0.03.01 03:01

조회 수 2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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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지 1년이 지난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주변에서 글을 배울 곳을 찾기는 너무나 힘들었고, 남은 것은 인터넷의 카페 등을 뒤적거리며 처음부터 하나까지 소설을 스스로 배워야했다. 게다가 순수 문학에 대한 곳은 더더욱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 나의 글은 자연히 장르문학의 길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묘사와 기교가 부족하다는 카페 회원들의 비평에 의해 낯간지러울 정도로 과도한 묘사를 넣는 불상사도 생기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의 소설은 저급한 판타지 소설카페에서 우위를 점했다. 내 소설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지사. 어려운 용어와 안 써도 되는 무리한 묘사 등을 넣어 독자들을 지치게 하면 내 소설 수준이 높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보다 뛰어난 소설을 보면 나도 그 정도는 쉽게 쓸 수 있다며 무시하는 것이 일상. 그리고 글은 성장하지 않았다.

그러던 날 한 작품을 보았다.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 ‘얼음나무 숲’을. 청각으로 느끼는 예술을 글로 표현하여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부드럽고 과도하지 않은 표현으로 이 작품은 음악을 글로 표현해 보였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감동은 여태껏 내가 써왔던 소설을 부끄럽게 했고 그 이후에 생긴 것은 희망.

비록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 없어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의 표본을 찾았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글을 쓰면서 재미를 주입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이제까지 써왔던 장르소설처럼 억지로 개그요소를 집어넣는 것이 아닌, 독자의 입가에 은은하게 미소가 은은하게 피어나게 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그것은 나에게 순수한 일반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 되었다.

물론 힘든 일은 계속 되었다. 순수 문학 쪽으로는 미숙하여 진지하지만 재미를 주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 글로 무언가를 표현하기 바빠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일이 속출하여 조회 수조차 늘어나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던 중 얼음나무 숲의 작가였던 분의 다음 소설이 출판됨과 동시에 나의 시각은 바뀌었다. ‘모래선혈’이라는 기이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단순한 독자들 보다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더욱 더 감동을 주는 내용을 지녔다. 주인공을 작가로 내세움으로서 마치 작가와 작가가 서로의 애환을 공감하고 대화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이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내 글에 재미는 있지만 깊이가 없다고 말해. 그놈의 깊이란 뭔데? 그래, 한번 해 보자고.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집어넣고 진지하게 그놈을 담으려고 하면 독자들은 재미없다면서 이내 외면해 버리지. 언제는 그렇게 원한다고 말해 놓고서! 나는 또 흐지부지 반품되는 책들을 보면서 원래의 나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해. 하지만 그러고 나면 또 비평가들은 혹평을 하고 독자들은 읽으면서도 비웃지! 도대체 뭐가 옳은 길이야? 나는 알 수가 없어!"

분명 이 문장을 쓴 것은 이 소설의 작가도 이런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조차 이것에 고통 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을 뛰어넘은 작가가 써낸 작품이 얼음나무 숲과 모래선혈처럼 훌륭하다는 것에 나는 다시 희망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은 멀었지만, 깊이와 재미가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더 없이 노력하며 나는 소설을 써내고 있다. 얼음나무 숲과 모래선혈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작가와 독자가 작품을 공감대를 형성하고 희로애락을 같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써낼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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