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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0.02.02 23:02

10. 02. 02. 無題

조회 수 2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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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살짝 억지로 떠 보니, 둥근 물체가 잡힌다 싶더니 순간 눈앞이 하얗게 됐다. 아니, 그냥 감고 있자. 굳이 저놈과 무리하게 눈싸움하다 눈동자가 맛이 가게 할 필요까진 없지 않나.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꾸물럭거리니, 이번엔 창문 무늬를 뜯어내서는 냅다 집어던진다. 철퍼덕. 뜯긴 무늬는 문신처럼 얼굴을 뒤덮어 버렸다. 내가 조선시대 범죄자냐? 할 수 없이 눈을 떴다. 1mm. 그제야 오른쪽으로 돌아 누워있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분명 어젯밤 잠드는 순간엔 똑바로 누워 있었는데. 덕분에 오른쪽 어깨 아래로는 눈이 가지 않는 이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죽은 고깃덩이가 되어 있었다. 다시 몸을 바로 하면서 그 사이를 못 참고 등으로 끼어든 이불을 걷어낸다. 찌릿찌릿, 건전지에 혀를 갖다 댄 느낌이 밤새 눌려있던 어깨를 뚫고 지나간다. 순식간에 다섯 손가락 끝이 찌잉하고 저려온다. 적혈구들이 전속력으로 달렸으리라. 실핏줄 구석구석까지 붉은 물들이 차돌아 나간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부스스 몸을 일으켜 앉았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주무르면서 창밖을 보니, 여전히 녀석은 내 얼굴의 무늬를 치우지도 않고 맹맹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아니, 얼굴뿐이면 다행이게, 아예 온 몸에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이것 안 치우냐. 하지만 녀석이 아니었으면 오른팔을 눌러죽일 뻔 했으니, 참작해서 용서해줄까. 그렇다고 용서 안 하면 어쩌겠나. 선글라스 끼고 눈싸움이라도 할 텐가. 이것저것 해봐야 매양 손해 보는 건 나뿐이니, 그냥 포기해버린다. 그래, 오늘도 네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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