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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09.07.29 12:23

08.9.10 無題 16

조회 수 17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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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은 무거웠다. 낮은 흙계단을 하나하나씩 천천히 밟아 오르는데도 힘에 부쳤다. 다리를 움직이는 속도를 더 늦췄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우뚝 멈춰서 버리고는 눈을 찌푸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아직 계단은 까마득했다.

지겹기도 하다-정말. 그렇게 짜증도 아니고 체념도 아닌 말을 중얼거리고는 숨을 골랐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이상하게도 방금 전보다는 힘이 덜 들었다. 무심결에 발로 디딘 계단을 바라보니, 계단은 완전한 갈색 빛을 띄고 있었다. 이걸 여태껏 올라오면서도 느끼지 못했다니. 그러고보니 발 아래 계단에서는 희미하게 낙엽 향기가 배어나왔다. 향기를 들이마신 그 순간, 이제까지 딛고 올라온 계단에서 서늘한 바람이 떠밀리듯 거슬러 올라왔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낙엽 향기와 뒤섞여서 온 몸을 휘감았다.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서서히 눈을 떴다.

놀랍게도 어느새 발 아래 놓인 땅은 계단이 아닌 넓은 평원이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낙엽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문득 손에서 축축한 느낌이 흘러들어왔다. 어느새 두 손에는 가득 물들어 넘쳐, 손가락마다 물방울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을 그릇처럼 모으자 물이 찰랑거리며 고였다. 갈색 빛이 감돌면서도 손바닥이 다 비쳐보이는-손의 떨림으로 생기는 물결과 차가운 감촉으로만, 있다는 걸 알아차릴 정도로-투명한 물이. 모은 손을 위로 들어올려 물을 양쪽으로 흩뿌리자 갈색 빛이 눈 앞을 꽉 메우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작고 또 작게 나누어져 바람을 타고 눈으로 스며드는 그 물방울들을, 틀림없이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이렇게 계속해서 채워들어오는 갈색 물방울들은 결국 눈가를 흘러넘쳐 아래로 타고 흐르게 되겠지...비록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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