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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09.07.12 14:33

무제#03

조회 수 2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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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검었고 바람은 거칠었다. 늦은 밤의 공기는 옷 사이사이를 비집고 지나가고, 슬쩍 주머니에 넣었던 손은 그대로 오그라들었다. 가방은 꽤나 무거워 그것을 메고 있는 왼쪽 어깨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

바람이 더 사납게 달려들자 입을 열어도 소리가 되돌아 말려들어갔다. 몇 마디 더 해보려다 이내 포기해버렸다. 하기야 나 스스로에게조차 들리지 않는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때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음표들은 머리속과 닫혀진 입 안에서만 맴돌게 될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조금 아득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있는 소리도 아닌 것이, 갑갑한 목구멍을 자극하고 있었다. 소리는 몸 안에서 나가야만 살아있는 것이라고. 나는 물었다. 바람소리에 묻히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있다. 다른 무언가의 귀에 흘러들어가도 두렵지 않겠느냐. 두렵지 않다. 이 공간을 떠나 영원히 다른 세계로 날려가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하지 않겠다.

 

ㅡ나의 끝은 너의 끝과 같을 것이다.

 

내 입은 다시 열렸고 목은 힘들게 멜로디를 끌어내었다. 어느새 집은 가까워져 있었다. 사소한 욕망에 굴복한 것이라고?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아마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마음 속에 갇혀 발버둥칠 멜로디들이, 내가 더 이상 이 공간에 남아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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