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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8:55

Soul Mate

조회 수 2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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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창 틈으로 조금 들어올 때 쯤이면, 어김없이 진동음이 들렸다. 문자 메시지. 그녀의 번호가 찍혀있으리라는 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 그곳에 있을테니까.'

..그곳이라 함은 분명, 학교 정문의 횡단 보도. 비에 흠뻑 젖어 가라앉아 가라앉는 나를 구해준 사람이 그녀였다. 하지만 서로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지금, 누가 누구를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인가.

계속해서 떨어대는 휴대전화를 가방 속에 집어던져버렸다. 그건 무심결에 튀어나온 두려움일까, 무관심이었을까. 대충 옷을 꺼내 걸치고는 집을 나섰다.

힘없는 육체는 아무 생각없이 길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끊임없는 생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졌다. 그 위에 내가 서 있었고, 반대쪽 면에 그녀가 서 있었다.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어렴풋이 의심하고 있었다. 어딘가 가슴의 구석 한 켠에, 나도 모르는 감정이 숨어있다는 것을.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혹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뚜껑을 닫아 자물쇠로 채워 기억의 아무곳에 던져놓았었다. 그것을 그녀가 판도라가 되어서 조금씩-그 틈새를 벌려놓고 있었다.

충분히 천천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추억의 그곳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가가고 싶은 의지에 대한 반작용의 발로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간단하게, 단순한 거부감일지도 몰랐다. 어느쪽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방향을 돌려버린 걸음은 어느 건물 아래로 날 이끌었다. 벽에 무너지듯 기대버린 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사실..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가둔 것은 그런 감정뿐만이 아니라는걸. 판도라의 상자는 나 스스로를 숨겨두기 위한 깊은 동굴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문을 걸어잠근 채 그 동굴의 조금 깨어진, 아니 일부러 깨어놓았을지 모를 틈새로, 그리움의 연기가 천천히 흘러 나가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자존심이라는 덫에 걸려 모든 것을 거짓의 구렁텅이에 몰아붙여 윽박질렀던 나. 그건 작은 용기가 없어 포기해버렸던, 아직 살아서 울려대는 심장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그녀가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약하지만 강한 손길로.

...툭.

무언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시야에 펼쳐진 풍경은 어두웠다. 눈 앞은 어느새 구름의 결정체로 뒤덮여 있었다.

순간.

'..나, 그곳에 있을테니까.'

그녀의 메시지가 온몸을 타내려갔다. 기대고 있던 벽에서 튕겨나가듯 그대로 달렸다. 제발, 아직 거기 있어야 해. 그래야 나는..

나는, 용서를 빌 수 있을테니까. 이제까지 가둬놓았던, 또 외면했던 타는 듯한 그리움에게. 그리고..너에게도.

한참을 달려 도착했다. 그 때 이미 회색 하늘은 실컷 울고 있었다.

세차게 쏟아져나오는 입김은 빛의 줄기들에 섞여 아스팔트 위로 끌려내려갔다. 느껴질 듯 말 듯한,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그 무언가 또한.

그렇게 달려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에 서서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있었다...그녀가.

가득한 먹구름과 빗줄기 사이로, 자그마한 그녀가 있었다. 금새 손에 닿을 듯 혹은 아득하게. 그런 나의 시선을 알아챈 듯이, 그녀가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흐름속에 몸을 맡기고 서 있던 나는, 곧 가느다란 진동을 느꼈다. 가방을 뒤적이려 했으나 바로 그만두었다. 휴대전화의 떨림이 아닌, 내 살아있는 심장의 두근거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내게 전해져 온 떨림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란 말야.

그렇게 나와 그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아니...이미 그녀와 난 이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하지만 조용히 빛나는 영혼의 다리 위를 건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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