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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09.06.25 16:54

08.8.27 無題 15

조회 수 16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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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공기는 차가웠다. 살을 에일 정도까지는 아니고, 선선한 공기에서 조금 더 내려간 정도의 온도랄까. 좁아서 한 발 디디기 힘든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서 도착한 옥상. 바라본 밤하늘엔 구름 조각 하나 없는 깜깜한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무한한 심연 속의 어둠 같은 밤하늘. 그리고 그 곳에 숨죽인 듯 떠있는 별 몇 개와 초승달.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무수히 빛나는 별들과 커다란 보름달이 휘황찬란하게 번쩍이고 있었다면, 이 칠흑같은 밤하늘이 조금 밝아졌을테고, 그러면 그것은 완연한 밤도 아니고 어설픈 낮도 아닌..어딘가 존재할지 말지 모를 그런 이상공간이 아닐까...그런 식의 망상적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밤하늘은 이렇게 어두워야 맞는 것이다...랄까.

마음을 풀어날려 이리저리 흔들어보다가, 문득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초승달에까지 다다랐다. 어느새 마음은 그곳으로 날아가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더니 초승달의 삐죽한 양쪽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하는 수 없지. 그냥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정적 속에 흐르는 시간은 조금씩 마음의 밑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차올라 거의 가장자리까지 찰랑거리게 되자, 이상하게도 아련하게 마음이 저려왔다. 어디서 오는걸까, 이 쓸쓸한 아련함.

그 어딘가를 찾지 못해 침울해지던 나는, 문득 여전히 초승달에 걸린 채 슬픔의 실바람에 몸부림치는 마음을 느꼈다. 초승달, 너의 것인가. 네게 걸린 마음에 이어진 가느다란 실을 통해서, 어디서 가져오는지도 모르는 슬픔을 내게 흘려보내는 것이었나...그렇다면 내게 흘려보내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그렇게 떨리는 물음은 입 속에서 메아리로 울리기만 할 뿐. 대답 또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초승달을 향하던 눈에 무언가 보였다. 초승달 아래쪽 끝자락 바로 밑에, 아주 작고 약하게 빛나는 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미약한 빛.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가려지지 않고 그곳에서 조용히 숨쉬는 별빛.

아, 그랬던건가...맥이 탁 풀리면서 먹먹해졌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공, 그 속의 너는 비련의 바다에 빠져 가라앉는 깊고 슬픈 눈매. 그렇게 어둠의 작은, 아주 작은 한 부분만을 안간힘을 다해 밝히고 있었던 것이었나. 그러면-저건 무엇인가. 저렇게 너의 눈매 끝에 작게 떨어뜨려놓은 별빛 눈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마음을 잡아놓고도 너의 슬픔을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어서, 여태 꾹 눌러 참고 또 참고 있던 눈물 한 방울을 결국엔 그렇게 흘려놓은 것인가.

공기는 조금씩 더 차가워지고 있었고, 시간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떨어지고 있었다. 언제인지도 모를때까지 그 슬픔만을 바라보게 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떨구어 초승달에 걸려있는 마음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그러자 뾰족한 양쪽에 걸려있던 마음이 후드득 뜯어지며 산산조각이 나 떨어져내렸다. 순간 울컥하고 울음이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발을 옮겼다. 바닥에 발이 푹푹 빠지는 듯한 느낌을 억지로 걷어내며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다 내려와 초승달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순간, 눈 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그 별빛을 본 순간 이미 그 빛은 눈 속 깊이 들어와 있었다. 아니, 애초에 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초승달의 슬픔이 아닌, 내게서 흘러나오는 슬픔을 무심하게 떠나보내고는, 다시 돌아오려는 것이 싫어 애써 외면하려 한 것이었다. 그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황급히 내려왔던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무너져앉아 펑펑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다시 다급히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간 옥상 위 밤하늘에는, 초승달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작고 흐릿한 별빛 만이, 여전히 조금씩 일렁거리며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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