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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

 

 참으로 어감이 좋은 명사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의미없는 명사라고 치부해야 겠지.

 하지만 말이다. 로엔, 그건 한동안 내게 많은 설레임을 주던 '학원섬'으로 어떤 돈많은 부자가 심심하다는 이유로 만들어낸 인공섬이지만 어쩌다 보니, 세계정부가 국가 프로젝트수준으로 지원을 해버려 꽤나 스케일이 어머어마하게 커지게 만들어낸 장소로 수많은 학생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류 학교들이 대부분 이곳으로 이전했으니, 성공하고 싶다면 로엔섬으로 들어가라! 라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고 이 학원섬에 '입국'하기 전까지 였지만.

 지금은 참으로... 의미 없는 명사가 아닌 터무니 없는 장소를 총칭하는 단어라고 말해줄 수 있다.

 

 

 0.

 낮게 퍼지는 커피향에 의식이 돌아오는 것같다. 깊은 잠에서 깨어, 몽롱하기 짝이 없는 머리를 커피향이 깨우는 꼴이다.  이모부가 자주 드시는 브라질산 커피콩을 볶는 냄새.

 

 향긋한 냄새에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사실에, '파블로스의 개'처럼 자동적 반응이 되었다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어제 봤던 다큐의 영향인가. 이런 쓸 곳도 없는 상상이나 하고 있으니.. 눈을 뜨자.

 

두 눈을 뜨고 처음 반기는 것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나무천장과 18c에 유행했던 로코코풍 등이었다. 전부 18c를 사랑하는 이모부 취향. 솔직히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는 방분위기. 하지만 얹혀사는 주제에 따지지 말자. 18c에 머물러 멈춰버린 방으로 창문의 유리를 뚫고 오렌지색 계통의 빛살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침대로 아침햇살이 깔려내린다. 깊은 잠에 빠진 두눈이 꽤나 빛에 민감했는지 아파왔다.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나서야, 아픔이 그나마 가라앉았다.

 

 아픔이 가라앉고 나서야 멀뚱히 방을 쳐다본다.  3평정도의 작은 방으로는 내 전용인 책상과 의자, 침대. 그리고 빽빽히 꽃아놓은 책들과 3개나 되는 낡아빠진, 컬러TV(대충 생산년도가 1990년대로,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다.)를 수납하고 계신 엔티크 책장이 다였다.

 

 아직도 켜진 TV 3대에서 오늘의 뉴스와, 아침드라마, 다큐멘터리를 각기 떠들어대고 있었다.

 

 영어, 일어, 프랑스어.... 뒤섞인 이상한 언어들을 듣고있자니, 머리에 심은 컴퓨터의 번역으로 대충은 알아먹지만 딱딱하기 짝이 없는 번역체라, 듣고 있으니 잠이 몰려온다. 

 

 리모컨으로  뉴스를 내보내고 있는 TV를 제외하고 모두 꺼버렸다.

 영어로 어제밤에 일어난 일부터 세세하게 말하는 앵커의 말은 어느순간 귓가에서 흘러보내고 있었다.

 

 " 으아, 아직도 적응이 안됬나 "

 

목이 아직도 잠겼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다. 아아.. 발성연습을 해보자.

 

아 아....
 

목이 꽤나 아파온다. 그래도 발성연습을 하니,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 몇 시지.. "
 

오래된 엔티크 탁자위 자명종의 시침은 8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등교 시간을 맞출 수 있을것 같다.

 푹신거리는 침대의 감촉이 자꾸 더 자라고 엉켜 붙는다. 아아.. 이러면 곤란하지. 어제도 지각을 하는 바람에, 선도부에게 왕창 깨졌는데 말이야.. 일어나야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척추에서 삐긋거리는 느낌이 온몸을 관통한다. 햇살이 너무 밝아. 또다시 눈이 아파온다. 게다가 두통이 일어나, 뇌를 헤집는다. 아프기 짝이 없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만성이 되어 그럭저럭 참을만했지만 아픈건 아픈 것이다. 그리고 내가 M도 아니고 아픈걸 즐길리가 없지 않는가. 아직도 이식된 생체형 컴퓨터에 두뇌가 모두 적응이 된게 아니라 그런다는 의사선생의 말이 벌써 6계월이 넘어가고 있으니, 언제까지 적응이 안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이거야 원, 온몸이 종합병원 수준이다. 게다가  찌릿한 전기가 혓바닥을 감도는 것마냥, 혓바닥에 감촉이 없었다. 어제는 왼손가락 검지더니 오늘은 혓바닥인가 보다. 

 약간의 부작용. 그래도 좀 지나면 풀리겠지. 경험상 아무리 길어도 1시간이니까.

 

" 수아, 늦겠다! "
 " 이모, 일어났어요. "
 
 이모에게 크게 답한다. 내 방이 다락방 구조로 된터라, 계단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잠에 약한 터라, 항상 '빨리 자면서 늦게 일어나는 못된 성질은 지 엄마를 닮았어' 라고 말하시는 이모는 맨날 나에 대해 걱정투성이였다. 뭐, 내게 해주시는 걱정인지라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슬슬 일어나야지. 정해진 패턴처럼  하얀색톤의 바티칼의 줄을 당기자 바티칼은 빠르게 위로 말려 올라간다.

 

 드르륵.... 짥고 경쾌한 소리를 끝으로 모습을 드러낸 직경 1m도 안되는 침대위 네모난 작은 창문의 밖으로, 거대한 강철의 건물들이 빽빽히 하늘을 향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철과 유리. 시멘트로 이뤄진 거대한 바벨탑들. 끝이 안보이는 거대한 건물들과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이 뒤섞인 공간.  멀리 비행선들이 유유히 철의 탑들 사이로 흘러내린다.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파란유리들의 파란광. 저 동쪽 멀리서 올라서는 태양광에 뒤섞인다. 늘상 보지만, 언제나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풍경.  B 지구의 변두리인 외부인 거주단지의 일상적인 풍경─. 

 

이 지역의 건물들이 낮은 편이라, 멀리 30분거리에 펼쳐진 로엔 섬의 중앙 G지역의 거대한 바벨탑들을 꽤나 자세히 웅장하게 보인다. 꽤나 경이롭기 그지 없는 배경을 공짜로 가진 셈이었다.

  작은 창을 밀어 올리자,  해변가에서 불어온 바닷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차디찬 바람.

 잠에 빠져든 온몸을 깨운다. 로엔섬의 기류는 빠르게 흐른다. 그 바람은 썩 나쁘지는 않다. 상쾌한 바닷 바람에 저녁내내 눌렸던 머리카락이 뒤집어지고 휘날린다.

 

찬 바람은 머리 두피를 쓰다듬는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길.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침대에서 벗어났다.

 

─ 새벽경,  괴인들끼리 전투가 벌어져 수사당국이 추적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뉴스..

 

뉴스는 참으로 일상적인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