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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미스 란스터.”

 

유스티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은 첫마디 인사말이었다.

그녀가 학생회 임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내부 상황을 파악한 것은 인사를 들은 그 다음이었다.

학생회 임원실에는 총 세 명의 여학생들이 있었는데 한 명은 길다란 임원실 회의 탁자 끝에 앉아 있었고 그 양옆으로 나머지 두명의 소녀들이 앉아 있었다.

문을 닫고 들어온 유스티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은 여학생, 아마도 학생회장으로 짐작되는, 소녀를 주시했다.

그녀는 물결지고 풍성한 검은색 머릿결을 지니며 작고 새하얀 얼굴을 한 고풍스러운 동양계 미인이었다.

이지적으로 빛나는 그녀의 검은색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본 유스티나는 입술을 쌜쭉 내밀었다.

그러더니 자리를 권하는 말도 없었는데 임원실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손님 접대용 소파에 털썩 앉았다.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는 그러한 무례한 행동에 회장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발끈한다.

 

“무례하다!”

“괜찮아요. 미스 라오.”

 

동양계의 여학생은 점잖은 말투로 성을 낸 여학생을 진정시켰다.

그 한마디에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뺨을 후려갈길 기세였던 그 여학생은 비록 씩씩 대긴 했지만 순순히 자리에 앉아 유스티나를 노려보았다.

자세히 보니 뿔테 안경에 단발머리를 한 동년배에 비해 약간 동안의 얼굴을 지닌 소녀였다.

이 아이도 괴롭히면 재미있겠군.

 

"유스티나 란스터 맞으시죠?"

"그렇긴 하다만요?"

"저자가!"

 

이번에도 단발머리의 동양계 여학생이 화를 내었다.

하지만 학생회장의 손짓에 화를 거두고 몸도 거두었다.

회장은 씁쓸한 웃음을 짓고는 유스티나에게 말을 계속 건냈다.

 

"역시 보고서 대로군요. 왜 인지는 몰라도 당신은 학생회에 적개심을 가지고 있군요."

"그것 뿐만이 아니야."

"맞아요. 우리 셀레시우스 학생회 뿐만이 아니죠. 로엔 학원 전체 총학생회라 할수 있는 학생자치위원회에 당신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죠."

"흥!"

"왜 그런지 알 수 있을까요? 저는 막 이 학교 학생회 회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아직 학생회 상황은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선 당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싶군요."

"……."

"말씀해주실수 있을런지요?"

 

유스티나는 그 질문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응답했다.

그렇게 입을 닫고 눈도 닫으며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앞쪽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한쪽 눈을 조금 떠보니 그녀의 앞쪽 소파에 학생회장이 허리를 곱게 세운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유스티나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유스티나는 시선과 고개를 돌렸다.

이에 학생회장은 웃음을 지었다.

 

"뭐 좀 마실 것을 내올까요?"

"…글쎄올시다?"

"차 좋아하시죠?"

"좋아한다면 좋아한다는 거고 뭐,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걸로 할까요? 다즐링? 실론? 아쌈?"

 

그러자 학생회장의 얼굴을 눈동자만 돌려 힐끔 쳐다본 유스티나는 말하였다.

 

"다즐링. 설탕 세 수푼."

"좋아요. 전 그럼 에스프레소로 하죠."

 

에스프레소를 먹게 다는 말에 유스티나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아직 20대도 안된 나이에 에스프레소를 먹는 다는 것은 정말로 희귀하고 이례적인 사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녀 주변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인물은 본인을 제외하고는 홍수진 단 한 명뿐이었다.

처음으로 유스티나는 회장의 얼굴하고 똑바로 마주했다.

 

"에스프레소를 마신다고?"

"예."

"그 맛을 알아?"

"알고 말고요."

"……."

 

그리고 제대로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잠시 후 차가 나오고 그에 걸맞은 다과도 나왔다.

찻잔은 새하얀 바탕에 은으로 세공되어 있는데 제법 그 모양세가 멋스러웠다.

다즐링 홍차는 약간 연한색의 검붉은 빛을 띄고 있었는데 향이 강한 것이 고급인 모양이었다.

차의 빛깔과 향을 감상하던 유스티나는 이윽고 한모금 마셨다.

 

"좋군요."

"그래요? 와, 다행이다."

 

그녀의 품평에 학생회장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야기는 차를 마시며 진행되었다.

 

"실은 난 당신들이 그냥 싫을 뿐이야."

"네? 왜요?"

"이런. 질문의 요지가 이상하군. 막연하게 싫다는 것뿐인데…. 좋아 조금은 자세하게 이야기 해볼까? 아무래도 당신과의 대화는 재미있을거 같거든?"

"감사합니다."

"아니, 고마워 할것까진 없고. 이야기 하자면 난 당신들이 학생들을 대표하며 학생들의 복지와 학업 생활을 위한다며 어딘가의 귀족처럼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싫어. 그리고 겉으론 깨끗한 척 하지만 뒤에선 온갖 더러운 짓 못된 짓을 일삼지. 알아. 알고 있다고. 당신들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나같이 특이한 힘을 지닌, 소위 선택받았다고 하는 존재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는 것도 알고 말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신들의 과오를 합리화 하는 그 모습. 나는 싫어."

"그런가요?"

"만약 신이 있고 저승이 있어서 천국과 지옥의 갈래에서 심판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그들은 그때와 같이 똑같은 말로 자신들을 변호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신은 그들이 벌였던 온갖 추잡한 행위를 용서할 수 있을까?"

"……."

"회장나으리.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흐음. 글쎄요?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으니 저로썬 빨리 답할 수는 없네요. 일단은…."

"됬어요. 별로 대답을 원하고 한 질문은 아니니까 말이에요."

 

활짝핀 얼굴로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비하하는 자조적이라 할수 있는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는 유스티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학생회장님. 난 아직 당신을 잘 몰라요. 하지만 어째서 인지 좋은 사람인거 같군요. 말도 통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거 같구요."

"그래요?"

"에스프레소의 맛을 아시잖아요."

"호오?"

"으흠! 이어서 말하자면. 제가 학생회장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학생회장 당신이 무엇을 하든 간에 회장님의 영혼은 회장님의 것입니다. 뭘 하든 그 대상이 상급 학생회 회장이든 학생들을 노리는 추악한 악당이든 간에 말입니다. 신 앞에선 변명은 무의미 합니다. 누가 시켜서 했다.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말은 안통 합니다."

 

그녀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할 말을 마친 그녀는 소파에 앉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차를 음미했다.

찻잔을 내려놓았을 때 홍차는 잔의 반 정도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 까지가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알겠어요. 미스 란스터. 명심해두겠습니다. 좋은 말이군요?"

"그럼 서두가 너무 길긴 했지만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요?"

"그러죠. 미스 위튼?"

 

학생회장의 지시에 갈색 단발의 백인 소녀가 파일을 들고 왔다.

자신에 앞에 파일이 놓이고 유스티나는 그것을 펼쳐들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학생회장은 말을 이어갔다.

 

"최근 방학 기간 동안 고향으로 가지 않고 학원 도시에 남은 학생들 가운데 다수의 여학생이 실종된 사례가 들어왔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10대 중후반의 고등부 소속 여학생으로 실종 여학생들의 평균 체격은 키는 약 164.5cm, 체중은 약 52kg 으로 균형잡힌 몸매를 지닌 각자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여학생들이었습니다."

"독특한 매력? 단적으로 말했을 때 못 생겼다는 거예요?"

"외모가 단정하고 곧바르지 못함을 돌려말했음을 표현하는 개성적인 외모를 뜻하는 그런게 아니라 말 그대로…."

"미안. 농담 좀 해본 거예요."

"후후. 좋습니다. 그럼 이것을…."

 

학생회장이 손짓을 하자 라오 라고 불린 아무리 봐도 중국계로 보이는 여학생이 리모트 콘트롤러를 잡고 무언가를 조작했다.

고주파 음과 함께 리모콘의 신호를 받은 프레젠테이션 스크린이 학생회 임원실의 한쪽 벽 대부분을 차지하고 내려왔다.

스크린이 완전히 내려오자 천장에 달린 빔 프로젝터가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었다.

영상에는 실종된 여학생 중 한명의 프로파일이 기재되었다.

보브컷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머리핀으로 앞머리를 정리한 단정한 용모의 소녀였다.

청명한 눈알에 약간 젖살이 올라와 있는 얼굴이었는데 표정이 밝고 자신감에 차 있어 보이는 게 활달해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 인거 같았다.

 

"예를 들어 지금 스크린에 보이는 이 소녀의 이름은 최서림으로 국적은 한국입니다. 키는 164cm에 체중은 52.1kg. 성격은 밝고 명랑하며 때문에 가치관이 다른 여타 타지역 출신 학생들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취미는 테니스와 수영. 특기는 요리. 좋아하는건... 아 이런 자질구레한건 넘어가죠. 이 학생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이 최서림이라는 여학우는 특유의 활발한 성격과 빼어난 용모, 좋은 몸매를 지니고 있었죠. 길게 돌려서 말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겠지요?"

"말 그대로 개성이 강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매력적인 여학생이로군요."

"예, 그렇지요. 헌데 이 여학생은 개학하기 약 일주일 전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프로파일에 올라와 있는 것이지요. "

"계속하세요."

"휴우. 하여간 이어서 하자면. 그때 당시 학생자치의원회를 비롯하여 전체 학생회는 업무 인계 작업 때문에 굉장히 바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학생의 안위를 지켜야 하고 학구와 관련된 지역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풍기단속반도 여기에서 별로 다르지 않았죠. 그럼 미스 란스터."

"유스티나."

"그럼 유스티나. 개학하기 얼마 전에 이메일로 계약 연장에 관한 사항을 통보받았죠? 거기에 답장도 하시고."

"예에 그랬죠."

"유스티나 같은 어벤져 소속 계약직 풍기단속반은 몰랐겠지만 그때 당시 상황은 학생의 안위를 조금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런."

"잠시만."

 

탁자에 놓인 병에서 물을 한잔 따라 마시며 회장은 목을 가다듬었다.

 

"실례했습니다. 그런 로엔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즈음하여 여학생 실종 사건은 집중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때문에 증거는 희박하고 목격자도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생회 업무상황이 정상 괘도로 올라온 지금 우리는 그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결정적인 증거가 어제 오후 즈음해서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회장이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빔 프로젝터는 스크린에 화면을 바꾸고는 모종의 영상을 비추었다.

영상은 감시 영상인지 화면상의 인물들의 얼굴은 뚜렷이 비춰지지 않고 있었다.

영상에는 어느 대로를 배경으로 잡아 두고 있었는 화면속에는 두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화면이 불분명하여 확실치는 않지만 한명은 단발에 옷을 멋대로 개조해서 입은 좀 노는 듯한 여학생인거 같았다.

다른 한명은 은발의 백인 소녀로 그녀가 입은 조금도 개조가 가해지지 않은 깨끗하고 멀쩡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

두 소녀는 저녁 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불현듯 은발의 소녀가 사지에 힘이 풀려버렸다.

곁에 있던 양아치 행색의 소녀가 은발의 소녀를 부축했다.

양아치 행색의 소녀는 은발의 소녀를 길가의 가드레일에 기대어 놓았다.

그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밴 한 대가 화면에 등장했다.

밴에선 두 명의 남자가 내려왔는데 양아치 행색의 소녀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하더니 그녀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손에 쥔 무언가를 세어보이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돈인 모양이었다.

이윽고 남자들은 가드레일에 기대고 있는 백인 소녀를 차 안으로 실었다.

그 뒤를 따라 양아치 소녀도 차에 탔다.

남자중 한명이 그 소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는데 그 소녀는 어색해 하거나 거부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리고 거리에서 차는 사라지는 것으로 영상은 끝났다.

 

--------

 

"유스티나 양의 임무는 여기에 대해 추가적으로 조사하는 것입니다. 해당 정보를 수집해서 저희에게 보고해 주는 겁니다."

 

학생회장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는

 

“XX번 지구 즉, 다시말해 소위 하렘가라고 부르는 그곳으로 가세요. 그리고 그곳에서 상기의 사항에 대해 조사해주세요. 이상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빔 프로젝트도 꺼졌고 스크린은 등장했을때처럼 고주파 음을 흘리며 천장위로 말아 올라갔다.

유스티나는 임무 내역을 듣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또 뭐라고 해야할까. 할말이 없네요."

"네?"

"그러니까."

 

헛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유스티나는

 

“어째서 오는 회장마다 나에게 터프한 것만 요구하냐 이겁니다."

 

여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학생회장은 다시 소파에 앉고는 양 손을 깍지 끼고 그곳 위에 턱을 올려놓은 다음 유스티나의 두 눈을 주시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조용히 나지막하게 깐 목소리로 말이다.

 

“유스티나양. 당신은 학생자치위원회와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약은 이 학교의 학생회가 대행하도록 되어있습니다.”

"하아-."

"그 대행자로서 계약에 명시된 대로 우리 학생회 측은 당신에게 학생자치를 위하여 위험 지구로 파견할 권한을 지닙니다."

"안타깝고 유감스럽군."

"예,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는…."

 

말을 하다가 학생회장은 깜짝 놀랐다.

정면의 유스티나가 정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지 의아해 하다가 그 이유를 깨닭은 회장은 속으로 탄식을 머금었다.

 

"죄송합니다. 아까 유스티나가 했던 말을…."

"아니. 뭐, 괜찮습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유스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학생회장 헌데 이름이?"

"이진."

"흐음 짐작은 했지만 한국인 인가보죠? 그럼 이진. 혹시라도 일이 있으면 저에게 전화를 하시던가 이메일을 보내세요."

"예에. 그러죠."

 

그리고는 유스티나는 학생회 임원실에서 사라졌다.

  • 별바 2010.05.20 10:34

    이렇게 얽히는 군요.. 흠.. 군입대 몇일 안남았는데 폭참이라니.. 좋은 기세입니다!! 으옷옷 한편 더! 한편 더!

  • KaRa 2010.05.23 20:56

    홍매님의 티타임지식이 엿보이는 편이군요.

    폭풍전야같은 느낌이네요.

  • 홍차매니아 2010.05.24 01:23

    이글을 쓰고 있을 시간이 새벽 두세시쯤 되었으니 집중력이 막 흐트려져서 어떻게 해서든 끝내고 싶어하는 뭐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 마음 가짐 하에서 쓴 글이니 그날 썻던 글중 가장 졸렬한[?] 부분이라고 해야할까나;;

    아 그런데

    폭풍전야 같은 느낌입니까?

    이건 새로운 감상인데요?

    기분이 좋아지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