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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잘될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술에 취해 알콜냄새가 쩔어도, 엄마는 피식 웃으며 '잘될거야'라고 기쁘게 말했다.  그게 몇 년전부터 엄마의 습관이 되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다만 중요한건 더이상 ' 꼭 잘될거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점?

 

  그래서인지 기억에 망각이라는 작용이 있는지 가끔 원망이 솟구쳐 오른다. 기억이라는 소나무를 좀먹는 망각이란 벌레들. 날이 가면 갈수록, 머리 속 기억은 구멍이 뚫려나가 파편만이 남는다. 그 파편을 돌이켜보면 후회만이 가득했다.

 

 2년 전.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엄마는 술에 취해, 보드카 뚜껑을 따며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어머, 딸내미 이제 돌아왔어?'라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는 그 모습이 얼마나 얄미웠던지.... 

 

 그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엄마는 '잘될거야. 잘될거야' 라고 중얼거리다가 보드카병을 끌어 앉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평상시에도 워낙 털털한 사람이라, 담요를 덮어주고 아무런 이유없이 집 밖으로 나갔버렸다.

 

 술냄새가, 잘될거야만 중얼거리는 술주정뱅이 엄마가 싫어서, 나는 그저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게 마지막인 것을 누가 알았을까. 시간을 뒤집을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버릴 텐데...

 잠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잡다한 소품이나 악세사리를 구경하다, 다급하게 울려퍼지는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때, 가슴이 철렁거렸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른다. 어떻게 난 알아버린 거지?  머리가 복잡한 것과 반대로 감성은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불안감과 공포, 그리고 밀려오는 후회. 미친듯한 감성의 호소에 두 다리는 이성이 생각도 하기 전에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중얼거렸다.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난다. 

 

 잘 될꺼야.

 엄마의 습관적인 말이 머리속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엄마, 가끔 당신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엄마...

 내게 잘될거라고 한번만 말해주세요.

 제발. 내게 다시 한번만, 웃으면서 말해주세요.

 

 꼭 잘될거야 라고.

 

 

 

 

 

 

 요나 멕슨은 사회적 통념으로 따지면 '잉여 인간'이었다.

 이 남자는 이렇다 할 직업이 있어 사회에 기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개조하거나 만들거나 하는 식으로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도 아니였다. 그렇다고 자신의 가슴아픈 콤플렉스를 승화시켜 예술로 만들어내는 예술가 부류도 아니였다.  그의 일상은 퀘퀘한 냄새가 찌들어 아무리 환기시켜도 사라지지 않는 그의 집안에서 TV 8대를 포개어 만든 요나 멕슨만의 세상과 통하는 방식인 바보상자탑─의 채널를 이리저리 돌려대다가, 아무 음식을 마구잡이로 집어먹고는 포만감에 잠드는게 일상인 쇼파에 달라붙어 있는 남자였다.

 

 이런 그가 어떻게 학생이라는 신분이 아닌 방식으로 입국심사가 복잡한 로엔섬으로 흘러 들어왔는지, 어떻게 로엔섬의 영주권을 얻었는지는 요나 멕슨─ 그 자기 자신만 제외하고는 알 수 없었다.

 

 곱슬거리는 갈색머리는 관리를 안해 마구잡이로 엉켜버려 더버리같아 보였고, 수염을 깍지 않아, 얼굴은 잘 쳐주면 야성적인 것이고 그냥 보면 털복숭이에, 의욕이라곤 하나도 없는 죽어버린 새파란 눈동자의 남자 ─ 요나 멕슨은 꽤나 입이 무거운 남자였다. 그가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은 그가 이 섬에서 처음으로 사귄 12년 술친구인 '솔직해, 그것도 너무 솔직해'라는 괴랄한 별명을 지닌 Dr. 김도 그의 과거사라던가 사적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비밀이 많아 보이길 원하는 신비주의자건, 아니면 단순히 사적이야기를 질색하는 것인지 모르는 요나 멕슨은 12년 전, 로엔섬이 개발되기 시작했을 때 황무지만 존재했던 로엔섬에 막대한 물자를 유통시키기 위해 세워진 지금은 기능을 잃어버린 항구지역인 엘파트 지역에서도 그나마 땅값이 비싼, 항구가 바로 보이는 볼보튼 11번가의 3번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이래봐도, 자본이 좀 있는 집주인인 사람이었다.

 

요나 멕슨은 오랜만에 집에서 나와, 자신의 건물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니콜라이 씨만 곤란하게 되었다.

 

 11번가 3번지. 항구의 둑길을 따라 세워진 벽돌집으로, 45층이 기본적으로 평균적인 엘파트 지역의 건물높이를 생각해보면 5층밖에 안되는 건물이었다. 새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요나 멕슨의 소유였고 12년 전부터 이 건물주는 요나 멕슨이었다.

 

 이 새빨간 건물은 인생이 늘어질대로 늘어진 주인처럼, 시간의 흐름에 벗어나 있었다.

 볼보튼 11번가의 건물이 대부분 현대적 건물로 바뀌기 위해 3~6번이나 세워지고 허물어짐을 당했지만 이 건물은 지금은 거의 슬럼가가 되버린 엘파트 지역이 활기찼던, 초창기 건설 붐이 일었던 12년 전의 건물이었다.

 건물도 세월이 이길 수 없었는지, 새빨간 벽돌은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많이 닳아버리고 색이 바랬지만 그래서인지 새 건물과 확연히 다른 매력이 가득했다. 단정한 녹색기와 지붕을 얹고, 담담히 확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작은 건물. 그래서인지 이 건물은 볼보트 '11번가의 빨간 아가씨'라는 별명을 건축설계사들에게 얻었고, 몇번이나 잡지에 실릴 정도였다.

 

 1층은 다른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옆으로 작은 카페인 '프쇼 모이 코헤 '가 자리잡고 있었다. 1층을 전부 카페로 개조해, 작은편은 아니였지만 프렌차이즈 카페가 대부분인 로엔섬의 특징상 큰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프쇼 모이 코헤는 작은 편이었다. 그리고 단아하고 흘러내리는 듯한, 필기체로 '프쇼 모이 코헤'라는 입간판만 제외하면 사실 프쇼 모이 코헤라는 가게의 광고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11번가의 빨간 아가씨'에 자리잡은 카페 프쇼 모이 코헤를 강렬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은 바닷바람을 타고 흐르는 향긋한 커피향과, 커다란 전면 유리창을 통해 환하게 보이는 아담한 내부와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는 니콜라이씨 노부부 때문이었다.

 

 '잉여 인간'인 요나 멕슨과 대조적으로, 니콜라이 부부는 삶을 건설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늙은 노부부는 구 소비에트 출신들로 공산정권이 무너진 1970년대에 황폐화된 고향을 떠나 기나긴 방랑의 끝에 이 로엔섬에 자리잡은 이들로,  연세가 70세가 넘었지만 신혼처럼 알콩달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단돈 1,500룬을 가지고, 이섬에 자리잡은 이 부부는 지금은 막대한 부를 일궈낸 '현대의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노부부는 아직도 자신들에게 커다란 부를 만들어준 프쇼 모이 코헤의 문을 닫을 생각은 없었다. 12년이라는 세월이 빚어낸 오래된 가게에 어울리는 오래된 주인들. 그들의 환한 웃음은 어떤 매체보다 강렬하게 손님에게 인상을 남겼고, 성실한 성격과 남의 말을 경청하는 노부부의 태도는 정에 굶주린 이들이 노부부의 아들과 딸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은 노부부를 찾아오는 피가 얽기지 않는 아이들이었고,  노부부는 그들을 자신의 아이들처럼 반겼다. 그래서 프쇼 모이 코헤는 늘 사람들이 가득했다.

 

 노부부는 자신들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멀리서 공수되오는 커피콩을 볶고, 커피를 탄다. 유일하게 남은 노부부의 취미이자 인생의 즐거움. 늙은 니콜라이씨는 갓 끓여낸 에스프레소를 커피잔에 얹어 가게 구성에 자리잡은 중년의 남자에게 향했다.

 중년의 남자, 그는 다 낡은 버버리 코트를 벗어 벽에 걸린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는 살짝 누렇게 뜬, 하얀 런닝셔츠와, 긴 천바지를 멜빵으로 고정한채 낡은 탁자에 기대었다.

 

"요나, 일어나게. 자, 에스프레소."

 

 니콜라이 씨는 웃으며 향이 좋은 에스프레소를 요나 멕슨에게  내밀었다. 

 

 하얀 반팔 셔츠위로 검정색 앞치마를 입은 니콜라이씨는 백발의 머리를 뒤로 넘긴채, 세월이 만든 인자한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요나 멕슨에게 물었다.

 

" 꽤 심기가 좋지 않아 보이네만 "

" 썩 좋지 않습니다."

 

 요나는 얼굴을 찌부리며 머리를 벅벅 긇어댔다. 머리서 비듬이 떨어졌다. 세월에 늙어버린 딱갈나무 탁자위로 비듬이 내려앉았다. 니콜라이 씨는 요나의 무례함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았다.

 늙은 니콜라이씨는 요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니콜라이씨의 따스한 연녹색의 눈동자는 인자했다. 그는 자신의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요나가 어째서 심기가 불편한지 자신이 생각하는 사건 몇개를 꺼냈다.

 

" 얼마전에 건물을 팔라고 온, 사람들 때문에 그러는가? "

" 아뇨, 그런 쓰레기는 기억에서 지웠습니다. 5,060,000룬으로 빨간 아가씨를 사고 싶다니, 이 아가씨의 부모로써 거절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아가씨를 팔 생각은 죽어도 없습니다."

 

 요나는 씨익 웃더니, 에스프레소를 휙휙 저었다.

 늙은 니콜라이씨는 이게 아닌가.. 그럼 이건가 하면서 다시 물어본다.

 

"  늘 2층을 난장판으로 만든 Dr. 김이 또 사고 쳤나보군 "

" 그 친구야 12년 내내, 그랬으니 어지간한 건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

" 이것도 아니라면, 결국 하나군 "

 

 늙은 니콜라이 씨는 껄껄 웃어댔다. 그는 날이 가면 갈수록 얇아지는 손가락을 탁자에 톡톡 치면서 말했다.

 

" 리키 때문이군! "

 

요나는 한숨을 푹쉬며, 낡은 쇼파에 몸을 푹 기대었다. 그리고 푸념을 늘여놓았다.

 

" 그 여우년의 딸이라는게 절실히 느껴집니다."

" 가엾은 아이의 엄마네,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못쓰네, 그리고 리키가 그녀를 닮았다니? 성격은 전혀 안닮은 것 같네만  "

 

니콜라이 씨의 책망에 요나는 헛기침을 해댔다. 살짝 눈썹이 꿈틀거린 늙은 니콜라이씨가 '계속 해보게'라는 말을 안했다면 요나는 계속 헛기침만 했을 것이다. 요나는 헛기침을 멈추고 다시 이야기 했다.

 

" 흠흠.. 그러니까, 딱 그 애 엄마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성격은 달라도 말입니다."

 

 

 

이야기는  딱 4계월 전으로 돌아간다.

로엔 섬이 학원섬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터라, 매년 3월은 입학으로 바쁜 시즌이었다. 4계월 전인 1월 20일부터 요나는 그의 살맛나는 인생이 종결되는지 몰랐다.

 

1월 20일, 요나는 평상시처럼 TV를 보느라 쇼파서 붙어서 생활하고 있었다. '침대의 미녀'라는 19금 영화가 재방송으로 막 시작할 때이니, 아마 3시쯤 일것이다. 요나는 보려고 벼르던 작품(!)이 막 시작하려는 사실에 나름 기뻤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2년, 극장서 방영될 때 이 작품(!)을 보려고 표까지 뽑았지만 어떤 사건에 의해 못 게 되었고, 그게 징크스가 되었는지 그는 단 한번도 이 작품(!)을 보지 못했다. 덕분에 드디어 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쇼파를 방방 뛰어다닐 정도로 기쁨에 가득했다.

 

그리고 의례 19금 작품이 그렇듯 중요한 대목까지 지루하게 흘러가는 통에 살짝 졸았지만, 중요한 대목에 다다르자 그의 죽은 눈동자는 생기가 가득했다. 그의 눈빛은 TV를 관통할 것만 같았다.

 

그래, 그가 이 시점에서 가장 후회하게 만들 시점은 지금이었다.

 

─ 띠동!

 

5층, 건물주인 요나가 혼자 독차지한 터라, 현관문은 딱 한개였고 지금 벨소리가 나는 문 역시 딱 한개였다.

요나는 애써 벨소리를 무시했다. 아마, 잘 오지도 않는 택배나 세금 내라는 고지서를 들고온 악마일 것이다. 그는 TV의 작품에 몰입되고자 신경을 꺼버리려고 했다.

 

─ 띠동! 띠동! 띠동! 띠동! 띠동!

 

주인이 없는척 하는 집의 현관을 눌러대는 심보는 뭐란 말인가! 계속 벨을 눌러대는 통에 요나는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는 계속되는 벨소리에 결국, 집 안에서 남자들이 입고있는 평상복인 팬티바람으로 날렵하게 쇼파서 일어났다. 나이 42세지만 아직 날렵한 움직임과 왕자로 세겨진 복근을 흐뭇하게 보던 요나는 여전히 시끄러운 벨소리에 현관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남자 혼자 살았던 통에 바닥은 쓰레기로 가득했다. 가다가 어제밤에 먹다만 컵라면을 차버려서, 라면국물이 그의 근육질인 종아리로 튀었지만, 요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왼손으로 쓱쓱 닦고는 손의 물기를 팬티에 쓱 문대버렸다.

 

─ 띠똥! 띠동!

 

" 아, 제길! 간다고 그만 쳐 눌러!"

 

요나는 신경질적으로 회색 페인트칠한 현관문을  열어버렸다.

 

그래, 요나 멕슨.

그 때, 벨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작품(!)에 집중했다면, 그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으리.

 

싸한 바닷바람이 정체된 요나의 집으로 확 몰려들었다. 밀려드는 열대의 햇살에 요나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하얀피부의 손으로 가리고 나서야, 햇살에 적응되었다.

 

그리고 벨소리를 미친듯이 눌러댄 이가 그제서야 보였다.

 

검정머리카락이 그 바닷바람에 찰랑거렸다. 새파란 터키석 눈동자가, 요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자기 인형처럼 새하얀, 무표정한 작은 소녀. 딱 10대인 것을 알리는 듯한, 벨런스형인 몸에 얇은 줄무늬가 쳐진 가슴팍에 큰 주머니가 달린 반팔셔츠(왼쪽 주머니는 방패모양의 마크가 박혀 있었다). 가슴을 강조하는 멜빵이 달린 검정 조끼, 그리고 흰색과 검정 체크무늬 짧은 치마.  검정 오버니삭스. 그리고 커다란 여행용 가방 2개.

 

로엔섬의 학생인듯한 소녀는 요나가 철렁거리게 만들었던, 미소를 닮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환한 웃음과 달리 작은 움직음으로 지은 웃음이었지만 분명 닮아있었다. 아니, 요나는 소녀를 보자마자 그의 인생에 큰 쓰라림을 선사한 그녀인줄 착각했다. 

 

162cm나 됬을까. 딱딱한 눈매와 곧게 뻗었지만 별로 움직임이 없는 단정한 눈썹. 새파란 터키석은 올곧게 요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귀엽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생김새. 작은 소녀는 윤기있는 검정머리는 곧게 땋아 늘여뜨리고 있었다.

 

꽤나 발랄하고 쾌활한 그녀와 다르게 차분했다. 요나는 자기가 착각했음을 속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리도 닮았다니, 요나는 머리속이 살짝 멍해졌다.

 

" 요나 멕슨? "

 

작은 목소리에 짧고 버릇없는 말투의 질문이었지만, 소녀의 말은 요나에게 정확히 들렸다. 톤이 여자 치고 살짝 낮았지만, 잔잔한 목소리. 소녀의 말에 요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아무런 말없이 자신의 검정 조끼의 주머니서 뭔가를 꺼내 요나에게 내밀었다.

요나 멕슨은 소녀가 내밀은 것을 받았다.

 

새하얀 편지봉투.

 

'뭐지?' 라는 생각이 물씬 들자, 요나는 이게 뭔지 물어보려고 입술을 때려고 했다.

 

" ..... "

" 어.... 어?"

 

소녀는 거리낌없이, 그것도 아무런 말없이 여행가방을 끙끙거리며 요나가 멀뚱히 서있든 말든간에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당황한 요나는 소녀에게 다급하게 외치며 물었다.

 

" 잠..잠깐! 니가 뭔데 내 집에 들어가는 거냐! "

" 열어봐 "

 

담담한 소녀의 말에 소녀가 뭘 말하는지 깨달은 요나는 재빨리 편지봉투를 뜯어냈다.

들어있는건 a4용지의 반절크기의 종이 한장.

요나는 편지를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편지를 읽을 수 없었다.

 

편지의 오른쪽 하단의 모퉁이의 진홍색의 키스마크를 본 순간, 요나는 누가 편지와 소녀를 보냈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편지를 보낼 사람은 요나가 아는 사람중에 딱 한명밖에 없었다.

 

" 마리아?! "

 

요나는 활짝 열린 현관문을 재빨리 닫고, 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녀는 엉망진창인 내부상태를 보고는 맘에 안들었는지, 얼굴을 살짝 찌부렸다.( 눈썹이 1cm단위로 찡그렸는데, 요나는 용캐 알아봤다.)

 

"...내 엄마야"

 

소녀는 요나의 당황스러워 내뱉은 말에, 시큰둥하게 답했다. 요나는 얼굴이 싹 굳었다. 그리고는 소녀에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물었다.

 

" 내가 누군지 아나? "

 

소녀는 잠시 고민하는듯, 말이 없다가 손바닥을 탁 치며, 이제야 알겠다듯 답했다.

 

" 엄마랑 붙었던 놈팽이? "

 

썩 좋지 않은 답변이 바로 돌아온다. 그것도, 요나가 소녀에게 들었던 말중에 제일 긴 형태로! 살짝 휘청거릴뻔 한 요나는 목구멍에서 쏟아지려는 욕설을 억지로 쑤셔넣었다.

 

" .... 제길"

 

요나는 짧은 욕설과 함께, 이런 상황을 일으킨 트러블 메이커 그녀, 마리아가 보낸 편지를 읽었다. 그의 기억속의 마리아의 필체는 짧고 간결하게 편지내용을 이루고 있었다.

 

 잘지내? 요나?

 쓸 데 없는 말은 안할게. 사실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요나 너밖에 없었어.

 

요나는 웃기지마! 라는 말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읽어내려갔다.

 

 지금 편지를 배달한 애는, 리키야. 내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요나는 다음 문구를 3번 4번 다시 읽고는 편지를 떨어버렸다. 그는 쇼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그리고 그가 잘못 읽었기를 바라며, 편지를 다시 읽었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읽었다.

 

 나와 너의 결실이야. 잘부탁해. 너만의 니뇨. 마리아가. (그리고 진홍색의 키스마크가 있다)

 

맙소사! 요나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급히 소녀에게 물었다.

 

" 이름이 뭐야?"

" 리키 로"

 

요나는 소녀의 이름을 듣자, 휘청거리며 쇼파에 드러누워버렸다.

 

 마리아 로.

그녀와 성별이 똑같은 .... 그녀의 딸.

 

요나는 크게 심호흡을 들이켜 마셨다. 그리고 리키에게 물었다.

 

" 편지 읽어봤어? "

" 아니 "

 

리키의 답변에, 요나는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잘못 어긋나간다는 사실도. 그는 짜증이 어린 외침을 리키가 보든 말든, 외치고 말았다.

 

" 뭐 때문에 나한테 온거지! "

 

요나의 말은 언성을 높였다. 집안을 휙휙 훓어본 리키는 살짝 한숨을 쉬다가, 요나가 언성을 높이자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 안좋은 일이 생기면 엄마가 당신에게 가라고 했어."

 

마리아, 망할 년.

요나는 중얼거렸다.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상처를 줘놓고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으면서. 요나는 짜증이 확 몰려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리키에게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더 치밀었다. 그리고 리키에게 자신이 돌봐야할 이유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들이켜 마시고는 리키에게 최대한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 나는 네 아ㅂ"

─아앙! 아앙!

─ 아앙!

"아냐..돌아.."

─ 아앙! 아앙!

 

그래, TV에서 여자가 즐거운 외침을 지르지만 않았다면. 현관문을 열기전에 TV를 껐다면. 요나는 자신의 의도를 마음껏 어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 변태?"

" 시끄러!"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고 있던, 요나를 향해, 리키의 터키석 눈동자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 덕분에, 요나는 어필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단지 싸늘한 눈빛에 그의 마음은 상처를 입고 쇼파에 털썩 앉아버리고 신경질적으로 TV를 꺼버렸다.

 

그들의 첫 만남은 이랬다.

 

 

그로부터 4계월 후.

리키는 요나의 집에서 얹혀 사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버렸다.

 

 

 

" 변태. 라고 말하고 싸늘하게 쳐다보는게, 똑같단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소변이 급해서 화장실 문을 활짝 열었더니, 셔츠바람으로 변기통에 앉아서 저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변태. 그 한마디를 하고 지 방으로 들어갔어요"

 

요나 멕슨은 크게 한숨을 쉬며, 에스프레소를 들이켜 마셨다.

늙은 니콜라이씨는 폭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요나는 늙은 니콜라이씨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음에도, 화를 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 그 싸늘한 눈빛이 마리아하고 똑같아요! 제길. 마리아하고 완전 똑같단 말이예요! "

 

늙은 니콜라이씨는 요나의 억울한 말투에, 결국 참고있던 폭소를 떠뜨려버렸다.  다 큰 사내가 그런거에 상처입고 울먹이다니! 그 사실에, 니콜라이 씨는 가게가 떠내려 가라는듯, 웃음을 터뜨렸다. 요나는 늙은 니콜라이씨가 웃어대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몇몇 단골이 흥미롭게 요나와 니콜라이씨를 주시하고 있었다. 

 

니콜라이 씨는, 평상시에 근엄하고 인자한 사람지만, 한번 웃음이 터지면 못말리는 사람이었다.

요나는 에스프레소 한방울까지 털어먹고는, 각설탕 봉지를 뜯고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괜히 이야기 했다는 사실과 덕분에 단골들이 요나가 겪고 있는 상황에 폭소를 짓고는 몇 일동안 놀려먹을  사실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 딸랑.

 

프쇼 모이 코헤의 나무문이 열려, 바람종이 딸랑거린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열린 문으로 넘어온다.

 

" 실례 "

 

그 말과 함께, 리키는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프쇼 모이 코헤의 내부를 샅샅히 살핀다.

그러다가 그녀의 터키석 눈동자는 그가 원하는 대상을 포착했다. 구석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요나 멕슨을 발견하고는 가게안으로 들어왔다.

 

쇼핑백과 오른쪽에 서핑보드를 든 그녀는 따듯한 김을 뿜고 있는 커피잔이 그려진 흰색의 앙증맞은 서핑보드(서핑보드엔 프쇼 모이 코헤라는 문구가 수려하게 써있었다)를 가게 입구에 구석진 자리에 놓고는,  볼보튼 11번가 3번지 앞에 조성된 둑을 넘어가면 모래해변가와 바다가 있는 덕에, 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돌아온 모양인지 풀어헤친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대충 수건으로 닦고온 모양인지 목에 아저씨들처럼 수건을 걸치고 알록달록한 하와이안 셔츠 안에, 몸에 딱 달라붇는, 그녀의 잘빠진 몸매가 잘 드러나는 흰색 비키니와  하얀 토끼가 그려진 슬리퍼를 신고서 총총걸음으로 요나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요나 옆으로 앉는다. 요나는 덕분에 안으로 밀려났다.

 

그녀는 황당하다듯, 바라보는 두 남자의 시선따윈 무시하고는 쇼핑백에서 빨간색과 흰색이 뒤섞인 우스꽝스러운 하와이안 셔츠를 꺼냈다.

 

당연하다듯, 하와이안 셔츠를 요나에게 입히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연하다듯, 서핑보드를 가지고 나가버렸다.

 

두 남자는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리키가 남기고간 쇼핑백과, 우스꽝스러운 셔츠를 멀뚱히 쳐다봤다.

요나는 고개를 탁자에 쳐박았다.

 

그 후, 프쇼 모이 코헤엔 웃음폭풍이 몰아 닥쳤다.

 

요나는 울먹이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마이페이스에, 민폐인건 똑같아. 마리아건 리키건.. 제길 "

 

 

 

 

한참 후에, 웃음 폭풍이 가라앉자 늙은 니콜라이 씨는 다시 근엄한 평상시로 돌아갔다.

니콜라이 씨는 잠시 말이 없다가, 뭔가 깨달았 듯 요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리키가 자네에게 이런 선물을 할 정도로 언제 친해졌나?"

"그게 리키가 알아버렸습니다"

 

요나는 체념했다듯 말하자, 늙은 니콜라이씨의 녹색눈동자엔 이채가 서렸다.

요나 멕슨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갔다.

 

" 제가 아빠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니콜라이 씨가, 놀란듯 살짝 턱을 벌렸다. 니콜라이 씨는 재빨리 입을 닫고선 약간의 신음을 내뱉었다. 리키의 아버지가 요나인 거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유일한 사람중 하나로, 니콜라이 씨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말한게 아닌가 싶었다. 요나는 각설탕통에서 각설탕을 하나 씹으면서 니콜라이 씨의 호기심과 곤란함에 대한 해결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 얼마 전에, 그... '발키리'라는 정체불명의 히어로가  파타로니 패밀리의 영업장을 들쑤실 때, 리키가 휘말린거 아시지요?"

 

요나의 말에, 니콜라이 씨는 자신이 큰 사고를 떠뜨린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요나에게 재촉했다.

 

" 이 늙은이가 얼마나 놀랬는지.. 그래 그 사건과 자네가 아버지인건 어떻게 알았는지, 이야기 해주게나. 이 늙은이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 들을 때까지 일을 잡을 수 없으니 말이야"

 

요나는 특유의 씨익 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니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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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맘에 안들어서 저번에 올린거 갈아 엎었습니다 +_+

 

ps. 1000원의 가치 = 100룬.

이 세계서 단일 화폐를 씁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설정게에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연관해서 짧게 말하자면 1970년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간의 전쟁이 있었던 세계고, 공산주의가 패배했습니다. 1980년대, 대통합의 이름하에, 느슨한 연방형식의 지구연합이 태어났고, 화폐 단일화 정책이 실행됬고, 부작용은 컸지만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계속 발전해, 지금은 현재보다 과학기술이 더 진보한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