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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4월 16일 06시 30분 남동쪽 XX구역 뉴 에버딘 가]

 

 

어둠과 고요에 잠긴 방안을 밝히는 것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미약한 태양빛 뿐이었다.

적도 지방에 위치한 로엔은 아침만 해도 맹렬한 햇빛 덕택에 이렇게 커튼을 쳐두고 있어야 눈부신 가운데 햇볕을 맞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여간 이 방의 주인인 긴 흑발의 동양인 소녀는 아침해가 떳든간에 그 햇볕이 어떻든 간에 달콤한 잠을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이대로 둔다면 그녀는 아침 8시가 넘도록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와서 그녀는 단 한번도 우연이라고 해도 단 한번도 스스로 의지로 인해 아침에 기상한적이 없었다.

일요일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그녀를 깨우는 것은 같은 집에서 사는 금발의 동년배 소녀다.

 

 

쿵-.

 

 

거칠게 방문이 열어젖히며 동거인인 금발의 소녀가 모습을 들어냈다.

타이트한 탱크탑에 숏팬츠의 운동복 차림세의 그녀는 그녀의 일상 생활 가장 첫 번째 과업인 아침운동을 막 끝마친 참이었다.

다부진 어깨에 탱크탑이 뒤덮은 봉긋이 솟은 가슴과 복근의 선이 살이있는 그녀의 몸매는 날씬하면서도 힘이 있어서 생명력이 넘실대고 있었다.

더불어 몸에 흥건한 땀과 함께 말이지.

방안에 들어선 유스티나는 다짜고짜 몸을 날렸다.

곤히 자고 있던 수진은 언제나 그랬듯이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이했다.

 

 

“꺄악!”

 

 

하며 비명 속에서 꿈나라에서 강제로 끄집어 나와 현실로 내동댕이 쳐지는 홍수진.

깜짝 놀라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이불속에서 허우적대는 그 모습은 다섯가지 덕에 대해 정진하는 수행자 -그러니까 오덕후- 의 마음속에서 심히 무언가 뭉클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전문용어로 모에-

다섯 가지 덕을 정진하는 수행자의 그러한 심리를 이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유스티나는 그 소리에 마음속에서 좀더 음험한 마음이 일어났다.

 

“으흠. 목소리 좋고! 어디 가슴은 어떨는지?”

“…아, 아가씨?”

 

비명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진은 벌써 자신의 뒤를 그녀가 모시는 금발의 아가씨에게 잡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일어나?”

“일어났어요! 일어났어요! 일어났다구요!”

“으흐흐흐흐!”

 

이불과 뒤엉켜 유스티나의 음흉한 그래플링 스파링이 한차례 지나친후 정신을 추스린 수진 앞에 유스티나는 양허리에 손을 얻은 거만한 자세로 얼굴엔 장난끼를 가득 담아서 내려 보았다.

 

“좌우간 좋은 아침?”

“전혀요.”

“빨리 내려와. 너 자고 있는 사이에 내가 아침 다 차렸다구.”

“…하아아.”

 

엉망이 된 잠옷 차림의 수진을 뒤로한채 금발의 소녀는 방에서 나왔다.

욕실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가기 직전 자신의 방에 들른 그녀는 자신의 속옷을 찾아 들고는 밑으로 내려갔다.

 

[20XX년 4월 16일 07시 45분 남쪽 문과동 고등부 제5구역 셀레시우스 학교]

 

아침에 등교시간의 교실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급우들, 책상, 걸상, 칠판, 수업용 기자재 등등.

그 외 이것 저것 평소와 그다지 다른 점은 없었다.

유스티나와 수진은 눈에 익은 친구들의 인사를 받으며 교실에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잡은 후 다른 친구들이 나누던 잡담에 참가한다.

간밤에 본 드라마나 어떤 누군가가 좋아하는 사람과 겪었던 해프닝이나 다른 친구의 이야기 등등

여느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리고 세계 어디든 있을 법한 아침의 교실 풍경이 그녀의 주변에서 펼쳐진다.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유스티나는 소변을 보기 위해 교실 문을 향한다.

다른 애들에게는 적당히 사정을 말해두고 예의상 양해를 구하는 말을 건낸뒤 자리에서 일어나 문너머로 향한다.

그리고 문을 넘어서 몇발자국 채 걷기도 전에 그녀는 왠 남성과 마주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헤어스타일이었지만 안경을 끼고 날카로운 눈매에 튀어나온 광대뼈의 얼굴이 무뚝뚝해 보이며 금욕적으로 보이는 동양인 남성이었다.

그녀의 담임이었다.

 

“안녕하세요. 쿠즈키 선생님.”

 

그녀는 얼굴 한가득 미소를 담아 인사를 건냈다.

흔치 않은 미모의 아름다운 소녀가 웃음을 실어 인사를 한다.

일반적이라면 남성이라면 아무리 목석같이 무뚝뚝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을 얼굴밖으로 내보일법하다.

하지만 소녀의 선생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다른 학생을 대할 때와 별로 다를 거 없는 표정으로 응대한다.

 

“좋은 아침이다. 유스티나.”

 

그 인사를 끝으로 쿠즈키는 그녀를 지나쳐 가려 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뒤를 이어서 간밤에 잘 잤냐고 한번쯤은 물을 법도 한데 구즈키가 그러는 모습을 그녀는 기억에 없다.

마치 영어 교제속에서 나오는 기초 인사 회화 예시 같다고 느낀 유스티나는 어깨를 으쓱 거린 후 볼일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옴겼다.

 

“가든 파티 초대는 고맙다.”

 

한쪽 발을 땔려는 찰나에 들려온 소리다.

유스티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몸을 뒤로 돌려 쿠즈키를 보며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네?”

“덕분에 그날은 기분 좋았다. 메데이아가 아주 만족해했어.”

 

쿠즈키는 돌아보지도 않고 이야기를 입에서 풀어내었다.

그러는 사이 그의 발걸음은 그녀와 그의 사이를 더욱더 떨어트려 놓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초대해주길 바란다.”


유스티나는 씨익 웃더니 힘차게 대답한다.

 

“네!”

 

[20XX년 4월 16일 13시 12분 남쪽 문과동 고등부 제5구역 셀레시우스 학교]

 

구내 식당에서 대충 식사를 마치고 유스티나는 농구장에 나와 농구공을 튀기며 눈 앞에 자신을 가로막은 남학생을 노려본다.

길다란 팔다리를 가진 그 남학생은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주시하며 대응해 움직인다.

틈만 보인다면 몸을 날리고 손을 뻗어 금방이라도 공을 낚아챌 기세다.

그런 남학생을 상대하는 한편 눈 한쪽에는 금방이라도 다을 거리에 있는 농구 골대에 가 있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할수 있지만 그것은 그녀의 목표다.

그렇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막고 있는 눈 앞의 상대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훤칠한 키의 이 남학생은 오랫동안 농구라도 해온 듯이 훤칠한 키에 팔다리가 길어서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그녀의 움직임을 충분히 봉쇄하고도 남는다.

운동 신경은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그녀 이지만 이렇게 커다른 체격 차이에선 어쩔 수 없다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겠지.

몇 번인가 더 공을 튀기던 그녀는 갑작스럽게 위협을 하듯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듯한 모션으로 상대인 남학생에게 위협한다.

여기에 놀란 모습을 보인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그녀를 방해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남학생이 놀란 그 잠시를 놓치지 않으며 빙그르 몸을 돌린 그녀는 남학생의 몸의 궤도에서 벗어나 골문을 향해서 코트를 질주했다.

순식간의 그의 눈 앞에서 그녀는 인상적인 각선미를 남기며 한참이나 떨어져 간다.

이어서 두 명의 남학생이 막아섰다.

가까이에 있는 한명은 민첩하게 왼쪽 옆으로 몸을 날려 젖혔다.

마지막 남은 한명이 달려들며 막아서자 그 한명의 다리 사이로 공을 집어 던진다.

 

퉁-.

 

마지막 남은 남학생이 어 하는 사이 공은 다리 사이로 지나가 반대편에서 튀어올랐다.

유스티나는 그 남학생을 지나쳐 간다음 강하게 마지막 발을 굴렀다.

달려오는 속력에 더해 힘차게 도약하려는 유스티나.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맞추어 공이 튀어오른다.

공을 잡은 유스티나는 도약 높이가 최고조에 올랐을 때 슛을 날리기에 가장 적절한 위치에 도달했다.

한손에 공을 실은 그녀는 선반위에 물건을 올려 놓는 듯이 살며시 공을 골대를 향해 날린다. 레이 업 이었다.

그렇게 손에서 공이 떠나고 난 다음 순간 농구공이 골대를 지나쳐 바스켓을 스쳐지나가는 착-. 소리가 들려온다.

환호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와아! 유스티나. 멋져!” “너 하계 운동회 때 대표로 나가야 겠다.” “끝내준다!”

 

같은 팀을 맺은 남학생들이 기뻐했다.

주먹을 불끈 말아쥐어 하늘로 쭉 뻗어 올려 지르는 승리의 세레머니를 보인 후 그녀는 가까이 오는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칭찬을 듣는다.

하지만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다른 선수와 교체를 선언하고는 농구 코트 밖으로 나온다.

같이 뛰었던 남학생들이 아쉬운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충분히 뛰었고 충분히 승점을 올려둔 뒤이다.

코트 밖에는 풀밭에서 소수의 남학생과 더불어 몇몇의 여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유스티나의 친구들이었다.

그녀들 역시 유스티나를 박수와 환호성으로 반겨들었다.

 

“수고했어. 유스티나. 정말 잘 하던걸?”

 

칭찬과 함께 민시아가 음료수를 건냈다.

별거 아니라는 듯 유스티나는 고개를 내 저었다.

 

“별거 아니야. 요령 알고 연습 하다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다들 너처럼 운동을 좋아하거나 잘하는건 아니라구.”

 

피식 웃으며 유스티나는 풀밭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무릅을 약간 굽혀서 앉았는데 짧은 치마를 입은 상태에서 그렇게 앉으면 자연스럽게 속옷이 들어나게 된다.

그녀는 그런 것에 별로 상관하지 않고 호쾌하게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며 숨을 골랐다.

수진이 그녀를 대신에 코트에 나가 남학생들과 어울렸다.

조용히 그녀는 수진이 농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유스티나는 정말 대단한거 같애.”

 

멍하니 앉아서 농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문득 그녀의 친구 중 한명이 말을 걸어왔다.

180넘는 장신의 소녀인 셰렌 플라오르 였다.

눈빛을 빛내며 말을 걸어오는 이 키 큰 친구를 향해 유스티나는 몇 번인가 눈을 껌뻑이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왜?”

“웬만한 운동부원보다 운동을 잘하는데 공부도 못하는 건 아니잖아.”

 

유스티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가?”

“그런데 유스티나. 운동을 잘하는 건 좋은데 조금은 좀 더 여성적인 부분에 신경 쓰는 건 어때?”

“응? 왜?”

 

그러자 셰렌은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유스티나는 다른 애들보다 화끈하고 터프하잖아. 남자애 답다고 해야 할까? 너무 그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완전히 톰보이(Tomboy 말괄량이)야.”

“에액? 무슨 소리야?”

 

약간 과장된 동작으로 기겁을 하며 유스티나가 혀를 내둘렀다.

어깨를 으쓱 거리며 질색을 표하는 가운데 민시아가 그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악의 없는 선한 미소를 지은체 유스티나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가끔은 무슨 변태 아저씨 같기도 하고?”

“아저씨라니 꽃다운 처녀에게 무슨 소리야? 그거 트라우마 된다?”

“이런 유스티나. 평소 행실을 생각하면 그런 소리 안나올 탠데?”

 

유스티나는 입술을 삐쭉 내밀뿐이었다.

살짝 웃은 민시아는 조금 더 확실히 유스티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유스티나. 애들이 널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글쎄다? 모르겠는데?”

“모르는척 하지마. 너 정도 되는 애가 그런 걸 모를리 없을 탠데? 하긴. ‘미소녀의 탈을 쓴 완전 변태 아저씨.’ 라는 별명은 나라도 모른 척 하겠다. 줄여서 ‘완변아’.”

“아, 날씨 참 좋다. 어? 거기! 수진아 달려! 달려! 속공이다!”

 

일부러 무시한척 하며 유스티나는 코트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수진을 향해 외쳤다.

속공이고 자시고 간에 지금 그녀가 속한 팀이 수세에 몰려 상대방 슈터에 맞서고 있었다.

억제로 목소리를 높이며 모션을 크게하는 그 모습은 부자연스러웠고 어색해 보였다.

덕택에 수진은 깜짝 놀라 유스티나 쪽을 돌아보며 한눈판 사이 공을 가진 상대에게 돌파당했다.

순식간에 수진이 속한 팀은 진영이 뚫리며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골을 먹힌 팀원들이 탄식이 이어졌다.

유스티나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민시아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이마에 핏줄을 솟아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싫어싫어! 싫단 말이야! ‘완변아’ 라던가 ‘침묵 한정 미소녀’ 따위의 별명. 모른단 말이야!”

“‘론니 아일랜드(엔디 샘버그 등의 개그맨이 주축이 된 미국 가요 그룹. 노래 가사를 보면 우주를 느낄 수 있다.) 네 번째 맴버’도 있어. 그 외 이것저것. 잘 알면서 왜 모른 척 해?”

“쳇.”

 

고개를 돌린 다음 유스티나는 무어라고 궁시렁 대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신경쓰지 않으며 민시아는 말을 이었다.

 

“운동 잘하는 거. 좋아. 적극적인 성격. 좋아. 그 성격 덕분에 많은 애들이 널 따르고 좋아하니까.”

“헤에. 칭찬이야?”

“하지만 너무 강렬한 개성이 문제라구.”

“개성? 내 개성이 어때서?”

“친구로써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연애 상대로는 솔직히 많이 부담스러워. 아무리 남녀 평등시대라고 하지만 남자애들은 좀 더 전통적인 여성상을 선호한다구.”

 

 

입술을 비쭉 내밀며 유스티나가 대답했다.

 

“에이. 그거 편견이야.”

“편견이고 간에 이건 현실이라구. 귀엽고 상냥하고 과격하지 않고 고은 마음씨에 친절한. 뭐 그런 여자애가 인기좋단말이지. 제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남자들의 선호도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아. 유스티나. 연애 안할 거야?”

“해 봐야지. 여자애 몸을 주물럭거리는건 나에게 큰 기쁨이긴 하지만. 난 레즈비언이 아니거든?”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농구 코트에서 뛰고 있는 남학생들을 가리키며 보무당당하게도

 

“당장 저기 있는 저 녀석들을 보면 내 마음속에서 미묘한 음심이 일어난단말이야. 너희들 못지 않게!”

 

외쳤다.

그 모습은 흡사 열성적인 웅변가와도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농구코트에서 뛰고 있던 한 남학생들도 이를 들었는지 유스티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아닌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남녀학생들 대부분이 깜짝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몇몇은 자신의 귀를 의심한체 몇몇은 뇌리에 무언가 얻어맞은듯한 표정으로.

그중에서 수진의 표정은 압권이었다.

마치 혀깨문듯한 표정이 되어서는 눈을 부릅뜬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웬만해선 평정심을 잃지하는 민시아조차 이때만큼은 무슨 백치라도 된양 입을 벌리고 멍한 눈빛으로 유스티나를 보았다.

그야말로 ‘데꿀멍’이라는 은어의 표본을 이었다.

하지만 가장먼저 의식을 찾은것도 민시아였다.

겨우겨우 평상시 얼굴을 되찾고는 유스티나에게 입을 연다.

 

“세상에! 유스티나. 방금 굉장한 말 한 거 알아?”

“아-가-씨이-!!!”

 

 

두 번째로 정신차린 것은 수진이었다.

가로막은 학생들을 밀어젖히고 나아가 유스티나에게 무서운 기세로 달려든다.

그런 그녀에게 유스티나는 어린애가 장난치고난후 짓는 웃음처럼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질러버렸어. 헤헤.”

“그렇게 태평하게 말할꺼예요? 아, 진짜! 아가씨의 평판이 어찌되는줄 아시는거예요? 대책없게 왜이러세욧!”

“아앙. 화내지마. 응? 화 안낼꺼지? 응응?”

 

뒤이어 다른 학생들이 제정신을 차린다.

 

“얘들아! 들었냐? 유스티나가 말이야….” “휘익! 오늘밤 같이 자자!” “알라바마의 흑뱀을 보여주여줄까?” “뭐야. 재 미쳤냐?” “냅둬. 원래 저랬어.” “하여간 왜 저래?” “낸들 알아?”

 

대체적으로 남학생들은 환호하며 온갖 성희롱에 가득찬 찬사를 보냈으며 여학생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유스티나에 대해 대놓고 흉봤다.

이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은 그러나 뒤늦게 자신이 실언을 해서 뒤늦게 수습하려다던가 하는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당당해지고 뻔뻔해져서 주변을 둘러보며 가운뎃 손가락을 세워보이는 뻑큐 사인을 보이며 소리친다.

 

“꿈 깨라! 내가 그런다고 같이 침대에서 뒹굴어 주는 줄 알아? 그런 말 했다고 저렴하게 놀아주지 않는다고. 그리고 거기 여자애들! 니들끼리만 있을 때 온갖 음탕한 이야기하는거 다 알고 있거든? 그리고 너! 너말이야! 그래 거기 있는 너! 작년 파자마 파티 때 무슨 이야기 했더라? 사랑스러운 그이와 함께 침대 그래플링 한판 하다가 달까지 갔다며? 아니 화성이던가?”

“오옷!” “와! 너무한다!” “그래 한번쯤 주면 어디 덧나?” “근데 누가 달까지 갔단거야?”

 

이번에도 명백히 성희롱에 가까운 반응들이 쏟아진다.

반면 여학생들은 기막혀 하더니 고개를 돌리곤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중에서 유스티나에게 지목당한 소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양손으로 가리며 친구들과 함께 급히 운동장에서 사라졌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은 수진은 다른 의미로 잔뜩 붉힌 얼굴로 유스티나를 보았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렬한지 검은색 기운이 사방으로 폭사하며 위협을 하는 듯 했다.

 

“이제 그만 좀 하세욧! 대체 얼마나 더 흉측한 칭호를 얻어야 만족하실꺼예욧! 그러니까 민시아가 그런 말을 하는 거라구요! 진짜 연애할 생각 없으신 거예요? 그건 좋아요. 하지만 계속 이러신다면 아가씨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평판은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로 뚫고 들어갈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인간으로써 기본적인…!”

“괜찮아. 난 반쯤 영국인이어서 그러려니 넘어갈 거야.”

 

화내는 수진에 대하여 유스티나는 넉살좋게 웃으며 대한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기니 수진도 더 이상 뭐라고 할 기운도 없다.

영국인은 기행을 일삼는다고 한다.

픽션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정도 라고 한다.

과격한 축구팬인 훌리건이나 디스커버리의 대표적인 야생 생존 프로그램인 안간 vs 야생에서 베어 그릴스가 구사하는 온갖 희한한 생존기술하며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중에 티타임은 반드시 챙기는 영국인 장교 등등.

말은 쉽지 직접 해볼려고 하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특이한 짓거리를 아무렇지 해내기도 한다.

죽일둥 살둥 도끼눈을 뜨며 계속 노려보는 수진에게 아무래도 마음이 찔리는지 유스티나의 기세가 조금 죽었다.

 

“에이. 알았어. 다음부터 조심하면 될 꺼 아니야?”

“그러면서 다음에도 또 그 소릴 할 꺼 잖아욧!”

“수진아. 그만하면 유스티나도 알아들었을거야.”

 

이마에 식은땀을 잔뜩 흘린 민시아가 손짓을 하며 수진을 가로막았다.

이 이상 수진은 뭐라고 더 하지 못하고 씩씩 숨을 내쉬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하여간 아까도 말했듯이 너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개성이 강해.”

“아아. 좀 봐줘라. 응?”

 

민시아가 한숨을 쉰다.

수진과 달리 화를 잘 안내는 그녀는 그래도 여전히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상대방이 몇 번씩 자신을 짜증내게 한다면 웬만큼 착하다는 사람들도 폭발할 것이다.

다행히도 민시아의 도량은 웬만한 정도를 넘어서 성인 군자 수준이다.

 

“이건 봐주는게 아니야. 나한태 사정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까 잘 들어 유스티나. 특이한 언변이나 행동은 자제하고. 좀 더 상냥하고 고운 마음씨와 부드러운 면모를 지녀봐.”

“귀족집 아가씨처럼 내숭떨라는 이야기야? 싫어.”

“넌 진짜로 귀족 혈통이잖니. 그리고 내숭이라기 보다는 기본적인 몸가짐을 갖추는게 어떨까 해.”

 

영국인과 한국인의 혼혈인 그녀는 모계로 치나 부계로 치나 하나같이 유서깊은 귀족 그리고 양반 혈통이다.

모계인 란스터 가는 백작가이고 부계 쪽 가문 또한 원나라때 넘어와 한반도에 정착한 것이 기원으로 가문 대대로 꾸준히 군인이나 관료를 배출해온 그런 집안이다.

 

“요즘들어 혈통따지는건 유행 지났어. 그리고 이제와서 친구들 앞에서 태도를 다시 갖추라는 말은 흐흠. 안들은걸로 하지.”

“하아. 그게 아니라 내말은….”

 

점심 시간 종료 종소리가 울려퍼지며 민시아의 말을 중간에 잘라먹는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제각기 가야할 교실로 발걸음을 옴겼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민시아는 더 이상 마음속에 담고 있던 말을 잊어버렸다.

재차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뒤따라 다른 학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교실로 향하려 한다.

 

“아아, 끝나버렸네.”

 

아쉽다는 듯이 말을 내뱉은 유스티나 또한 수업을 위해 발걸음을 옴긴다.

그런 그녀를 민시아가 불러세웠다.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강조할게. 연애할 생각이라면 조금 이라도 더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몸가짐을 지녀야해.”

“흐흥. 생각해볼게.”

 

뒷머리를 양손으로 깍지껴 받친 상태에서 유유자적한 몸짓으로 교실로 향하는 유스티나.

그 뒤를 수진이 뒤따랐다.

운동장을 벗어나 복도에 들어섰을 무렵 그녀는 뒷목을 잡은 양손의 깍지를 풀고는 평범하게 걸었다.

복도에는 각자의 교실로 향하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팔짱을 낀 남녀 학생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겠지만 여학생쪽이 팔짱낀 남학생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리자 남학생은 배시시 웃으며 뒷목을 긁는다.

사이가 좋아보였다.

 

‘여성스러움이라.’

 

남녀 학생의 커플은 이미 자신의 앞을 지나쳐갔지만 왠지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가 좀 과격한 걸까?’

 

교실로 향하는 와중에 잠시 생각에 잠기던 와중에 어느덧 다음 수업이 있을 교실 문앞까지 와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야 답이 나올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한 그녀는 곧 있을 수업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