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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09.05.26 02:28

희망, 그리고 꿈.

조회 수 128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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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그리고 희망.

몸집이 작아 과자조각 하나 드는데도 비틀비틀하는 일개미를 보았다. 자신의 크기의 30배는 들 수 있다고 알려진 곤충일 터인데, 어째서 이럴까. 궁금증을 내리누르며 막연히 그 개미를 바라보고 있을 때,  힘겨워하던 개미와 판박이지만 크기는 더 큰 다른 개미가 와서 빼앗듯 그것을 들어준다. 연륜이 느껴지는 개미가 짐을 들고 앞장서자 비틀대던 개미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마냥 느릿하게 큰 개미의 뒤를 따른다.

몸을 일으켜 허리를 폈다. 그러자 등에서 듣기 거북한 불협화음이 울려 퍼지고 이내 왠지 모를 상쾌함이 온 몸에 퍼진다. 학교가 끝난 후 두 시간 내내 모래사장에서 죽치고 앉아 얻은 결과. 계속 이곳에서 버틴다면 분명 온몸이 쑤셔 올 것은 당연할 것인데 선뜻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보통 이 나이에 가장 두려워 할 손님. 바로 성적표였다.

공부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다는 것에 걸맞게, 공부와는 거의 담을 쌓은 나의 성적표는 비참 그 자체였다. 그놈의 글쓰기에 빠져 공부를 뒷전으로 한 채 하루 종일 노트북이나 두들기고 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나 자신을 향한 한숨을 내쉬며 작게 한탄했다.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짐과 동시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마치 둥지나 작은 굴을 만들어놓은 동물들처럼.

성적표에 대한 나의 상심은 누군가에게 혼날까 두려운 것이 아닌 양심의 문제였다. 아버지는 나의 성적을 알려고 하시지 않는다. 그저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잘하라고 응원만 간간히 해주실 뿐이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천관녀의 집을 자동으로 찾아간 김유신의 말처럼 내 발은 명령을 내린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스스로 움직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갑고 눅눅하고, 덧붙여 무척이나 쓸쓸한 집에 발을 들여놓자 우울함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요 성적표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중앙을 가로질러 장롱 옆에 위치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한글 파일을 실행시켜놓고 한참동안 고민했다. 이번에는 무엇을 쓰면 좋을 까하고. 역시, 아는 것이 없으니 쓸 것도 없는 것일까. 뭘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나의 머리에 잠시 비웃음을 날렸다. 일단 아무것이라도 써보자는 생각에 내려놓았던 손을 다시 키보드 위에 올려 놓았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며 이내 문이 열렸다. 중노동에 혹사당한 나의 아버지. 헐고 헐어서 문지르기만 해도 바스라질 것 만 같은 작업용 티셔츠에, 어깨에 뽀얗게 내려앉은 흙먼지. 그리고 온 몸에서 나는 술 냄새가 오늘 아버지의 일과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주고 있는 증거였다. 물론 성적표를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평소보다 공손하게 말투를 바꾸어 아버지께 인사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제야 나를 발견했는지 신발을 벗어던지시고는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나를 끌어안았다.

"우리 아들. 글 쓰고 있는 거야?"

"네, 네에."

아버지는 조용히 노트북을 응시하셨다. 아직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 아버지의 눈에 뭔가가 보일 리 만무했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자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나는 나를 속박하는 두 팔을 억지로 밀어내며 팔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과 손에 박힌 굳은살들.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욱 늙어만 보였다. 항상 뒤에서 서있을 것이라 믿으며 편하게 살아왔던 나에게 아버지의 변한 모습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아들, 아빠가 매일 하던 말 알지? 너는 나의 뭐라고?"

"꿈이자 희망……."

"그래그래. 아빠는 말이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조건 밀어주고 싶단다."

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나오던 레퍼토리였지만 왠지 오늘 따라 모든 말이 마음속에 와 닿았다. 성적표라든지 소설이라든지 는 이미 이야기에서 논외. 나 또한 몸을 돌려 나의 유일한 가족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되자 그 분은 조용히 나를 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이 아비는, 아무리 힘들어도,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게 해주고 싶어."

말없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것뿐이니.

"아빠가 어렸을 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서, 그게 너무 슬퍼서, 적어도 우리 아들만큼은 이런 고통 받게 하지 말자. 이렇게 힘들게 하지 말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매일 살아가고 있단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나 또한 나의 의지에서 벗어난 눈에 깊고 슬픈 빛이 서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너는 이 아비의 꿈. 절대로 아들은 이 못난 사람과 똑같은 절차를 밟지 않게 하자는 나의 꿈이고. 언젠가 내 품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어 밝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하는 희망이다."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나란 것을 위해 그토록 노력한 아버지라는 일개미에게 말 한 마디 꺼낼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들지 못 하고 있자 아버지는 피식 웃더니 나를 한 번 더 안아주셨다. 술기운인지 몰라도 뜨겁고 세차게 타오르는 심장박동소리가 서로의 박자에 맞추어 가며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열심히 해. 우리 착한 아들."

술기운이 뒤늦게 돌기 시작했는지 아버지의 몸이 기우뚱하며 바닥에 널브러지고 그분의 정신은 이미 꿈나라로 떠난 상태였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일개미를 덮었다. 그러던 도중에 거친 손이 잡혔다. 공사장에서 노동하며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양 손으로 상처가 가득인 그 손을 어루만졌다.

몸을 돌려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제는 누군가가 주제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얹어 느리게 제목을 쳤다.

'아버지의 희망과 꿈' 이라고 말이다.

 

 

갑자기 삘받아서 단편을 후다닥 써버렸습니다. 한시간 작... 털석새벽 두시반에 뭘하고 있는거지...

 

  • 에프렘 2009.05.26 02:31

    읽어보니까 이게 뭐지 뭐라고 난 지껄인거지!!!

  • PORSCHE 2009.05.26 02:49

    어억... 이런 내용 싫은건 아니지만 우울하고 암울한 건 슬퍼요 (당연하자나!)

    뭔가 쉬지않고 쓰신 흔적이 단번에 보입니다. (웃음.) 흐름이 자연스러워요.

    다음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게 단편의 묘미일까요...

  • 레그나 2009.05.29 00:47

    에쫘아앙  어허어어허어흐으허어엉

    힘내 에쨔앙  난 너를 응원하고 있어(울음)

    (거참 뭔가 내용없는 코멘인것 같은 자괴감이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