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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08.05.18 21:49

행복리필카페 #1개점준비(1)

조회 수 9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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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점준비




 양옆에 들어선 호화로운 가게 사이에 우울해 보이는 회색빛 작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회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간판이 걸려 있다는 것이랄까. 분홍색 간판 안에는 흑연으로 ‘행복 리필 카페’ 라고 적혀있다. 너무나 다른 건물과 간판의 대비에 대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꺼리게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멀찍이 떨어져 걸어가기도 한다. 미처 청소를 하지 못했는지 간판 바로 위에는 거미줄이 빽빽이 쳐져 있고 한때 제비가 자리를 잡았던지 새까맣게 변한 제비집이 지붕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저기… 아무래도 자리를 잘 못 잡은 것 같은데.”


멍하니 회색빛 가게를 바라보고 있던 한 소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짧지만 윤기가 흐르는 은발을 하고,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비스러워 보이는 초록빛 눈을 가졌다. 입은 화난 듯이 꾹 다물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어 보는 사람을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자아나게 했다. 옷은 헐렁한 타입을 좋아하는지 사제들이나 입은 폭이 넓고 길이가 긴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왼손은 굳은 듯 가만히 있었지만 반대로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짤랑거리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그 소녀는 분명 직접 쓴 것이 분명한 간판을 올려다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깨끗하고 좋은 목재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옆집 가게와 회색 가게를 연거푸 번갈아보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분명 우리만 있으면 문제가 있겠지만, 친구 한 명을 불렀거든.”


소녀 옆에서 소녀와는 판이하게 다른 자랑스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가게를 바라보던 소년이 신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짙은 남색 빛 머리카락에 반쯤 감긴 눈을 하고는 한껏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잘생겼다 기보다, 귀엽다는 쪽에 가까웠다. 너무나 안 어울리게도 무도회에나 나갈 때 입은 연미복을 쫙 빼입고 있었는데 오른손에는 작은 바이올린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체구가 워낙 작은지라 작은 바이올린이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커보였다.


“친구?”
“아, 왔네.”


 소년은 가게를 바라보던 눈을 허공으로 돌렸다. 소녀도 소년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귓가를 때리는 날카로운 휘파람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통 부는 휘파람과는 너무나 크고 거슬리는 소리라 소녀는 가게 때문에 일그러트린 얼굴을 더욱더 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이 소리가 익숙했던지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휘파람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갈 때 그들 앞에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머리에는 나무 잎사귀가 몇 개 붙어있고 무릎 밑까지 내려온 트렌치코트가 단추가 모두 풀린 채로 너울거렸다.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나 빨간 앞머리가 눈을 가리고 있어 이 사람이 지금 화가 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즐거운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여어 렘, 오랜만이다? 졸업이후로 연락 좀 하지 그랬어.”


그 소년은 바이올린을 든 소년에게 반갑다는 듯이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히죽 웃어보였다. 그러자 렘은 가만히 손을 들어 가게를 가리켰다. 당연히 소년의 눈길은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였고 이내 경악과 좌절이 얼굴에 서리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크고 호화로우면서 깔끔한 가게에서 월급도 후하게 주고 고급스러운 일을 한다고 그래서 찾아온 건데, 이건 무슨 내가 돈을 줘야할 지경이잖아.”


“무슨, 옛날 기숙사에 비하면 엄청 호화로운 곳이고 월급은 네가 잘하면 적당히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줄 거야. 그리고 고급스러운 일은… 흠, 글쎄, 이건 아닌가, 어쨌든 넌 웨이터 역을 맡아야 해.”


 렘과 소년이 아웅다웅하는 동안 옆에서 아직도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소녀가 힘이 빠진다는 듯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 한숨이 너무나 깊어 듣는 사람에게 하여금 소녀에게 저절로 동정심을 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는 듯이 힘차게 일어서서 렘과 소년 사이로 걸어가 둘의 말다툼을 막았다.


“일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서로 인사나 시켜주지 않겠어? 적어도 이제는 같이 일할 동업자인데 이름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잖아.”


어쨌든 일을 하겠다는 말에 렘의 얼굴이 환하게 바뀐 반면 ‘이렇게 된 이상 할 수밖에 없는 건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도 있었거니와 집에 돌아가 봤자 아무런 할 일 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자, 그럼 소개 할게, 이쪽은 세자르. 귀족은 아니니까 성은 없고, 아니마토는… 분명 있는데 어디 있는지는 나한테도 가르쳐주질 않네. 굉장히 궁금한데 말이야. 아니마토의 능력은 아까도 봤지? 휘파람이 들리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익야. 보다시피 앞머리로 항상 눈을 가리고 있는데 나름 신비주의라나?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럼 세자르, 이쪽은 류페르잔느. 역시 성은 없고 아니마토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찻숟가락. 능력은 차를 맛있게 타는 능력이지. 분명 그렇게 쓸모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렘은 둘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로 향하여 있는 것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었다. 분명 잘될 것이라는 마음이 한껏 담겨있는 미소였다. 그랬기에 세자르와 류페르잔느는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류페르잔느가 차를 타고 세자르가 빠르게 손님께 차를 갖다드리고, 나는 연주로서 가게안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거지.”


그는 손에 들려 있던 바이올린케이스를 들어 살짝 흔들어보였다.   



  • SKEN 2008.05.18 21:56
    호오 발상과 설정이 참으로 참신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네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차를 맛있게 타는 능력..뭔가 강렬하군요..ㄷㄷㄷ
  • 별바 2008.05.18 22:25
    호오. 역시 잘나왔어. 후후 기대하마!!
    완결 짓는거다!!!

    역시 폭렙의 에프렘인가!!
  • 일병반딧불 2008.05.24 20:15
    읽어보고 싶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