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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07.11.27 23:26

메조 포르테 2화

조회 수 126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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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선생님이 오신다고 합니다.“


“그래?”


나는 창가에서 느릿하게 일어나 클라이멘이 내미는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옷도 무거워 진 것 같았기에 옷을 내려다 보았다.


“이게뭐야.”


온갖 종류의 보석이 사과나무의 사과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보니 옷이 나보다 더 큰 듯한 느낌을 주었다.


“불편해”


내가 빠르게 옷을 벗어 다시 그녀에게 던져주자 그녀는 한참동안 옷장을 뒤지더니 가까스로 활동복을 찾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마지막 단추를 끼웠을때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에 흰머리가 많아 원래 나이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웃고있기에 매일 동화책을 읽어주는 옆집 할아버지의 분위기를 낸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좋아한다. 내가 왕족이라는 것을 그리 연연하지 않고 내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기에.


“시아 왕자님, 몸은 괜찮습니까?”


“물론이에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몸이 또 아프다는 것을 선생님이 알게 된다면 몇주동안 또다시 공부를 할 수가 없기에 거짓말을 꼭 해야했다.


“그럼 오늘은 이것을 연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내앞에 있는 보면대 위에 악보 한 장을 올려놓으며 쾌할 하게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물론 잘하지는 못한다. 몸이 아파서 연습을 못할때가 허다하니까.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내가 연주하지 않더라도 선생님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기쁨을 준다.


아이오니온. 에피르왕국에서 이름만 대면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바이올리스트다. 사실 어째서 이런 대단한 사람이 나 같은 애를 가르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뭐 어떤가. 즐거우면 그만인것을.


“음... 이곡은 ‘하늘의 항해’ 라는 곡인데요..... 이런말하기는 뭐 하지만 제가 작곡한 것입니다.”


“와아! 선생님이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더욱더 열심히 연습해주셔야 합니다.”


“그럼요.”


나는 얼른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듯이 바이올린을 들었다. 오랜만에 들어서 인지 자세가 잘잡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선생님이 다가와 자세를 잡아 주었다.


“그리 자세는 중요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석으로 가는것이 좋겠죠?”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님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오른손에 쥔 활을 현에 얹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어내렸다. 청아한 음이 방안에 울려퍼졌다. 현을 눌러 음을 바꾸는 왼손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왼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음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빠른곡이다. 


이말이 내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나는 알다시피 몸이 좋지 않았기에 무리가 가지않는 느린곡만을 연주하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이곡을 연주하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행복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가슴속에 남아있는 응어리들이 부서져 내리는듯한 쾌감이 온몸을 자극하는 듯했다.


affabile입니다.”


그게 뭐였지? 저번에 들었던 것 같기는 한데...


“풉!”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연주를 중단하고 말았다. affabile가 무슨 뜻인지 생각해 버렸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연주하면 ‘애교스럽게’ 하는 건가요?”


내가 애교스럽게 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말하자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천연덕 스럽게 대답했다.


“일단 얼굴이라도 애교스러운 표정을 지으세요.”


“네....?”


나는 잘못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선생님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악보를 짚으며 말했다.


“이부분부터 애교스럽게 하는 겁니다. 흠.... 연주로는 안되면 얼굴로라도 애교스러운 표정을 지으세요. 그 정도는 허락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어떻게 연주해야 애교스러운 거냐구요!”


내가 다그치자 선생님은 나의 바이올린을 건네받고는 악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나와 달랐다. 나는 지극히 소심하게 곡을 연주했던 반면에 선생님의 손에 쥐어진 활을 쉴새없이 빠르고 강하게 바이올린을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낮았던 음이 고음으로 올라갔고 곡의 한마디가 끝날때마다 현의 음을 담당하는 왼손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음의 변화도 빠르고 미미하게 변화되었다.


“이게 vibrato라는 것입니다. 뭐, 애교스럽지는 않지만 들어줄만하지 않습니까?”


내가 말없이 바이올린만 바라보고 있자 선생님은 나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주었다. 나는 격양된 표정으로 바이올린에 왼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선생님처럼 연주하기위해 노력했다. 중간중간에 비브라토(vibrato)를 사용하려고 노력했지만 왼손을 진동시킴과 동시에 오른손도 자연적으로 흔들게 되어 아주 이상한 모습이 연출 되었다.


“아주 가관입니다. 큭.”


아주 조금이였지만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 들렸고 나는 그렇지 않아도 잘 되지 않아 속생했던 판에 마음이 상해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선생님은 언제 웃었냐는 듯이 진지한 모습으로 악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두 노력하고 있다구요.”


“알고 있습니다.”


이미 선생님의 말에는 웃음기가 담겨져 있었다. 나는 빨개진 얼굴로 다시 연주에 집중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난 후 선생님은 내일모레 다시 보자며 나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흔들어보였고 그가 방에서 나감과 동시에 침대위로 누워버렸다. 온몸에서 비오는듯이 땀이 흘러서 노곤했고 세시간동안 앉아있지도 못해서 그런지 다리도 아팠다.


“그래도.... 즐거웠어.”


나는 웃음을 지으며 중얼 거렸다.


그리고 기대했다. 언제쯤 내 바이올린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지금은 선생님의 바이올린을 같이 사용하고는 있지만 선생님이 실력이 많이 늘어난다면 좋은 바이올린을 구해다 주신다고 약속 까지 했기에 나의 기대는 더욱 컸다.


“내일은 많이 안 아팠으면 좋겠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려면 적어도 서있을만한 힘은 가지고 있어야 함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 아플때면 서있기는 커녕 앉아있는것도 힘들 정도이기에 그런 날에는 바이올린을 잡는 것은 포기해야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바이올린을 들고있는 시늉을 하며 왼손을 살며시 떨어보였다. 지금은 그런대로 되는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 바이올린을 들었을때에는 그렇게 엉망이 되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방법은 배웠으니 익히기만 한다면 더욱더 듣기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테니까.


“내일은 아버지께 가볼까? 연주도 들려드릴겸?”


선생님께 바이올린을 빌려달라고 부탁을 드려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때 몰려드는 노곤함에 눈이 자꾸 감겼다. 나는 벽에 붙어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5시밖에 안됬는데...”


하지만 도저히 내려오는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