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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그 시대를 측정하여 알아 낼 수는 없으나, 인간이 대륙을 구성하는 많은 피조물들의 대다수를 대표하는 그 순간부터. 대륙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정복과 파괴, 투쟁과 전쟁의 역사를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이 벗어날 수 없는-적어도 현재까지는- 굴레 속에서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 지독한 전쟁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었던 시기로 우선 정복의 제왕, 군신의 시대를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어떠한가, 군신의 시대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을 무엇이라 표현하게 될 것인가.

  군신의 시대를 뒤이어 또다시 전쟁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었던 시기? 아니면, 군신이 마침표를 찍지 못했던 전쟁의 역사에 기어이 마침표를 찍고 대륙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온 시기?

  후세가 이 시대를 뭐라 할지 알 수는 없으나, 지금의 나는 그저 이 시기를 수많은 영웅들이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또한 사라져가며, 끊임없는 이야기와 전설을 만들어 대륙의 많은 음유시인과 역사가 또는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항상 바쁘게 만들었던 시기.

  마치 거대하고 살아 숨 쉬는 광시곡처럼 느끼며 이를 남긴다.

- K -

 

 

  그 존재 아니, 그 여자아이 아니, 그 여성은 신비로운 존재였다.

 

어서 오게, 날 만나러 오는 길이 쉽지는 않았을 테지.”

 

  청아하며 명랑한 소녀의 목소리, 그러면서도 위엄이 실리고 기품이 있는 이질적인 목소리, 상반되며 어울리지 않는 것이 어우러진 목소리가 울린다.

 

흐음, 왜 그러지? 이런, 내가 잘 보이지 않는 게로구나!”

 

  딱 하며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울리자 어둠 속에 빛이 번져 나왔고 그제야 검은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거 참 미안하구나,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거든.”

 

  선명한 붉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그녀는 묘한 여성이었다.

자그마한 체구, 장난기어린 미소에 귀여운 눈웃음은 천진난만한 소녀와 같았다.

  몸에 딱 맞는-거기에 가슴 부위가 깊게 파이고 길이가 짧은- 붉은 원피스드레스를 입어 강조된 봉긋 솟은 가슴과 잘록한 허리는 성숙한 여인 같았다.

  가늘고 쭉 뻗은 다리를 꼬고 앉아 새하얀 허벅지살을 드러내고 오른손에 기다란 담뱃대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는 묘한 색기가 흘러나와 요부 같았다.

  어울릴 수 없는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고, 왼쪽의 평범한 갈색 눈동자와 상반되는 오른쪽의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가 그녀의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그래, 자네는 누구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게냐?”

 

  그녀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리며 담뱃대를 입에 가져가 담배연기를 한 모금 머금고 내뱉는다.

짙은 담배연기가 흩뿌려져 사라질 즘 들린 답에 두 눈이 동그래진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한껏 격양된 목소리를 내었다.

 

아하 그 아이! 제국의 8! 적홍의 검! 까마귀의 첫 번째 발톱! 그리고제도의 침탈자!”

 

  말을 끝내고 나서 자신의 목소리가 격양된 것을 느낀 듯 그녀는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흠흠,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군. 아무래도 나를 찾아와 나의 도움을 받고 내가 직접 지켜보았던 수많은 것들 중 그 인간(Human)아이는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아이라서 말이야.”

 

  되돌아오는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당연하지. 내가 수많은 것들이라 하지 않았나? 나에게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찾아온 손님은 인간뿐만이 아닌 게야. 아 물론 인간들이 가장 많았지! 지극히 적었지만 엘프(Elf)들이 찾아오기도 했지. 참 재밌지? 고상하고 지고한 척은 다하는 그것들이 욕망이라니 심지어 유프리시아가 아니라 나를 찾아와서 말이야!”

 

  그녀는 마지막 말을 되짚어 생각해보니 실로 우스운 듯 잠시 키득거렸다.

 

아무튼, 그 아이의 이야기를 묻다니 안목이 있어. 대신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겠구나, 난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거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기억에 잠긴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그 아이가 나를 찾아 왔을 때는, 인간의 기준으로는 꼬마라 부르는 시기. 내 기준에서는 아주 자그마하고 보잘 것 없는 그런 아이였지. 뭐 그렇기 때문에, 그래야만 나를 찾아 올 수 있는 방법도 있거든. 그런 꼬마가 찾아온 것도 처음은 아니었어.”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손가락 사이에 담뱃대를 끼운 손으로 턱을 괸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그 당시를 떠올리는 듯 했다.

 

그 아이는 처음부터 특별했지, 보통 나를 찾아오는 것들은 나에게 경외심을 보이거나 나를 찾아온 순간부터 용건이 무엇인지 뻔히 보임에도 그것을 바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횡설 수설 하거든? 그런데 그 아이는 전혀 그러지 않았지.”

 

  그 당시의 광경을 떠올리던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를 보며 전혀 놀라지도 않고 무덤덤한 표정과 눈동자로 쳐다보는데, 그 아이 첫마디가 뭐였는지 아느냐? 너무나도 당당하게 힘을 달라 요구하더구나. 마치 몇 일전 맡겨놓은 물건을 찾으러 온 것 마냥 말이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아서그 녀석이 다시 찾아온 건가 싶었을 정도였지.”

 

  담뱃대를 입에 가져가 다시 담배연기를 한 모금 머금고 내뱉으며 반응을 지켜보던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흐응? 아서의 이름이 나오니 갑자기 그 녀석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 게냐? 하지만 안 돼. 그 이야기는 지금 해줄 수 없지.”

 

  그녀는 손에 쥔 담뱃대를 똑바로 세운 뒤 천천히 좌우로 저어보이며 웃었다.

 

이미 나에게 그 아이에 대해 듣고 싶다 하였으니, 그 이야기를 우선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녀의 말투, 분위기와 별개로, 말하는 내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반응을 살펴보는 모습은 영락없이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 같았다.

 

그러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 아이의 그 모습이 그 아서와 겹쳐 보이기도 하는 것이 귀여워서 무엇 때문에 힘을 원하느냐물었더니 누나의 곁에 있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더군.”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다시 물으니 누나가 귀하고 높은 사람이 되었는데, 누나의 곁에 있기 위해선 귀한 사람의 곁에 있을 자격을 갖춰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다.’ 라고 하더구나.”

 

  그녀는 그 상황을 다시 생각하며 실소 하였다.

 

웃기지 않느냐? 앞서 말했다만,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나를 찾아왔지. 대륙의 많은 것들 중 특히 인간이 꿈이라 포장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내고야 마는 그런 성질이 두드러지니 말이야. 그렇게 찾아온 많은 인간들은 결국 두 부류야. 하나는 허영심이 근간을 이루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욕망, 또 다른 하나는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싶다는 야망이란 이름의 욕망. 그런데 그 아이는 정말 단순하게 누나의 곁에 있고 싶다는 그거 하나였단 말이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의 나는 당황이란 것을 한 것 같구나.”

 

  다시 생각을 해봐도 그때 당시의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한동안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그녀는 담배 연기를 연달아 세 번 머금고 내쉰 후에야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문득 내가 물었지. ‘내가 줄 수 있는 힘은 생각보다 큰 힘이며, 인간이 보통 가질 수 없는 큰 힘을 가지게 되면 다시는 평화로운 일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바로 노골적으로 이야기 했지. ‘자그마한 아이야. 그 자그마한 두 손에 수많은 피를 묻혀야 할 텐데 그럴 각오가 네게는 있느냐?’ 내 질문에 그 아이가 대답하기까진 정말 조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 뭐라 했는지 짐작 할 수 있겠느냐?”

 

  질문으로 말을 맺었지만, 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그녀는 기가 막힌단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바로 입을 열었다.

 

정말 즉답이었지. ‘누나의 곁에 있을 수 만 있다면 피 정도는 얼마든지 묻혀도 전혀 상관이 없다.’ 그리 말했단다! 그냥 뭘 모르는 철부지 아이의 흔한 대답 같은 것이 아니었지. 농담이 아니라, 대답하는 그 아이의 눈은 자신이 말하는 피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아는 눈이었어.”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 그 아이는 그런 아이였어. 그것이 그 아이의 본질이었고, 내가 그 아이를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는 이유지. 그리고 그 아이의 그 모습을 떠나서 나에겐 그 아이가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지. ?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 순간 그녀는 소녀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아닌,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는나의 반쪽이라고도 할 수 있지.”

 

  그녀는 왼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눈동자를 가리켰다.

 

나의 이 눈은 말이야, 본래는 오른쪽과 같이 빨간 색이었단다. 그리고 그 아이의 왼쪽 눈은 본래는 빨간색이 아니었지.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말을 마치며 시선을 허공으로 향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그녀. 그 모습 가운데 이전까지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그녀의 왼쪽 눈이 특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무튼 내가 본 그 아이의 첫 시작점은 그러했으나, 그 아이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본격적인 시작점을 어디로 봐야 할까……. 역대 최연소로 로하나스 제국의 기사가 되었을 때? 그 아이의 데뷔전인 벨라포네스 전투? 아니지, 까마귀의 첫 번째 발톱이 되었을 때? 유그리아스 방어전? 아니면…….”

 

  생각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를 나열하며 이야기하던 그녀가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안하구나. 아무래도 자네도 알겠지만, 그 아이가 보통 일을 많이 해냈어야지 말이야.”

 

  말끝을 흐린 그녀는 한동안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러간 후.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그것보다 더 적절한 시작점이 없을 것 같구나. 그 아이에겐 하나의 끝이면서도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한 전환점(Turning Point)은 아무래도 그것이겠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춘 후 느긋하게 담뱃대를 입에 가져가 다시금 담배연기를 한 모금 머금고 내뱉는다.

의도적으로 뜸을 들이던 그녀는 글자 하나에 정성을 다하듯 다소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입을 움직였다.

 

인테그리안 평원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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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5) 작가의 설정 오류로 제국의8기사 → 제국의8성 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 PORSCHE 2018.07.23 03:50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인가?
    흥미진진해지는데 끊어버리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SKEN 2018.07.24 00:31
    그런듯하면서도 에피에 들어가면 또다시 시점과 화자가 바뀌는 뒤죽박죽 다중 시점 시스템을 채용!..일지도 모르나
    아무튼 다음편은 빠른 시일내에 쓰겠습니다..히익
  • 반딧불 2018.07.23 22:32

    전체적으로 굉장히 서사적인 느낌이고
    잔잔한 물결에 파동을 일으키는 전장의 바람이 일어날듯한
    아주 좋은 분위기 연출이었음

  • SKEN 2018.07.24 00:32
    좋은 칭찬과 기존의 조언 모두 감사감사
  • 홍차매니아 2018.07.23 22:37
    몽환적인데? 아주옛날 애니메이션 묘사같다며 호평받은적 있잖아? 그때의 그 생동감을 비롯한 장점이 부곽된다
  • SKEN 2018.07.24 00:33
    댓들과 톡방의 반응들을 보니 나름 의도한 분위기가 조금은 연출된거 같아 다행..크으 호평 감사!
  • 별바 2018.08.01 21:09
    호오....
  • SKEN 2018.08.02 00:16
    뭐..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