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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00:50

Blizzard Guard(9)ep1. 훈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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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베일."
"윽, 이, 일등병 베일."
"니 어깨 위에 달린 건 머리냐, 뭐냐?"
"..."
"이 새끼가 어디서 왕고참인 척 난리를 쳐? 군대가 우습냐?"
"아, 아닙니다."
"처신 똑바로 해라. 여긴 니 위에 고참들도 많다." 
"...죄송합니다."
 난 숨죽인 채 그 한바탕의 소란을 지켜보았다. 다른 고참들도 조용히 그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베일 일등병을 재지시킨 칼라 병사장은 이내 소초장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못볼걸 보셨습니다."
"아냐 아냐. 그런데 라만은 단발사격 연습좀 더 시켜야겠다. 그런데 가져온 화살은 한정되 있는데 어떻게 할래?"
손사레를 친 소초장은 칼라 병사장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아마도 라만 이등병에게 할당된 화살만 쏘게 할지, 아니면 다른 분대원에게 할당된 여분의 화살을 양보해야할지에 대한 질문인 것 같았다. 칼라 병사장은 주저없이 후자를 택했다.
"처음의 3발 연발사격을 1회로 바꾸고, 샨티와 저를 제외한 나머지 분대원의 15발을 라만에게 돌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칼라 병사장이 나를 비롯한 분대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들 괜찮지?"
"네, 괜찮습니다, 분대장님."
"죄, 죄송합니다... 부, 분대장니임..."
안절부절 못하던 라만 이등병이었다. 피식 웃은 칼라 병사장은 라만 이등병의 등을 탕탕 치면서 목덜미를 주물러주었다.
"신경쓰지 마라 라만. 재능이란게 니가 안가지고 싶어서 안가진 게 아니잖아? 그리고 너 이제 두번째 사격이지. 화살 쏘는 거에만 집중해 자식아."
"...가, 감사합니다아..."
라만 이등병은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듯했다.
"수거한 화살은 모아놔라. 본부에 보내서 재생시켜야 하니깐 말이야."
아무튼 이렇게 잠깐의 실랑이가 끝나고, 소초장의 지시에 따라 과녁의 화살을 뽑아 모아놓은 우리는 연발사격을 준비했다. 사로에 마련해놓은 화살대에서 바로 꺼내썼던 단발사격때과는 달리 이번엔 전통을 멘 채로 세발을 연거푸 쏴야만 했다.
"쏘자마자 바로 꺼내야 된다. 자, 사격개시."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어든 나는 잽싸게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다시 등에 손을 뻗어 한발을 쥐어 쟀고, 쐈다.
핑핑핑.
1회였기 때문에, 연발사격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확인하려고 과녁을 향하려던 나는, 소초장의 제지에 다시 멈추어선 채 옆을 보았다. 라만 이등병이 단발사격을 계속 하고 있었다.
"샨티는 지금부터 쏴라."
"네."
다른 고참들이 사격이 끝나자마자 과녁을 50m 앞으로 걸음을 옮긴 샨티 일등병이 단궁을 든 채 활시위를 겨누었다.
"한발 쏘고 왼쪽으로 두걸음가서 무릎쏴. 오른쪽으로 네걸음 가서 서서쏴."
나는 두눈을 휘둥그레 뜬 채 샨티 일등병의 사격을 지켜보았다. 처음에 재빨리 한발을 쏜 샨티 일등병은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면서 옆으로 굴렀다. 아니 굴렀다기보단 아예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 착지하면서 한쪽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얼마나 가벼운지 마치 깃털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핑. 다다다다.
재빨리 단궁을 쏜 샨티 일등병은 자리를 박차고 네발짝 뛰면서 재장전을 했다. 그리고 다시 궁시!
이 모든 동작이 불과 5초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화살은 과녁 8점 안에 다 들어가 있었으니,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짝짝짝.
"와, 대단하십니다."
"역시 민첩성 하나는 소초 제일이네."
"엣헴. 이 정도야 식은죽먹기지."
고개를 치켜든 샨티 일등병이 검지로 인중을 비비며 너스레를 떨었다. 박수를 치던 안젤리카도 한 마디 거들었다.
"아따 부럽네요. 그 가벼움...!"
"안젤리카 넌 조용히 해."
그 말 자체는 진심인 것 같았음에도, 묘하게 언성이 높아지는 샨티 일등병이었다. 지켜보던 프레카 상등병이 '풉'거리며 입을 살짝 가렸다.
"사격 끝났습니다."
그러던 사이, 활을 놓은 라만 이등병이 손을 들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소초장이 손을 앞으로 치켜세웠다.
"사로 앞으로 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과녁을 향해 천천히 뛰어갔다. 나를 친동생처럼 여기던 알타바르의 도움으로 입대전에 단발사격은 꽤나 많이 했었지만, 이렇게 연발로 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에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어졌다. 처음 쏜 한발만 8점이고, 5점과 6점에 각각 한발씩 박혀 있었다. 뭐, 처음이라 어쩔 수 없나보다. 다음부터 잘해야겠다.
각 분대원들의 채점을 하던 소초장이 나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라만 이등병을 향했다. 과녁에 무수히 꽂혀 있는 화살을 바라보던 소초장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역시 많이 쏴야 느는군. 아까전보단 잘한거 같다."
"가, 감사아..합니다."
"자, 이제 사격 끝났으니 잠깐 쉬도록 하자. 10분간 휴식!"
"일발필살, 10분간 휴식!"
 분대원들과 함께 휴식구호를 외치며 마련되어 있는 나무판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오전훈련 때부터 알게 된 구호였는데, 과연 활을 이용한 궁시가 주를 이루는 부대이다보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호도 당연하다는 듯 금방 적응되겠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련을 하고 있던 두 상등병들도 소리를 듣고선 천천히 이리로 다가왔다. 꽤나 격렬하게 대련했는지 둘 사람 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그 모습에 베일 일등병이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와, 정말 열심히시군요."
사격연습을 한 우리도 팔로 활시위의 장력을 버텨내야 했기에 땀이 난 상태였지만, 병장기로 대련한 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제 이렇게 훈련할 기회도 잘 없는데, 기회 될 때 열심히 해야지."
"라이오 말이 맞아."
운을 뗀 이는 칼라 병사장이었다.
"누차 말했지만, 한겨울이 오면 그 다음 봄이 올 때까지 훈련할 기회도 없을 거야.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블린이나 트롤이 올지 알 수가 없어."
칼라 병사장의 어조는 진지해져 있었다. 처음 볼 때에도 느꼈지만 평상시에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타입인 것 같았으나, 진지할 때엔 한 없이 진지했다.
"겪어본 녀석들은 알겠지만 고블린은 약하다. 우리보다 체격도 작고 힘도 약하지. 하지만 그만큼 비열하고 야비해.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다가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야. 귀에만 안들어왔을 뿐이지 경계 서다가 전투 벌어져서 고블린 칼에도 죽는 놈 비일비재하다."
"그... 병사장 교육에서 들으신 거 말씀이신가요?"
옆에서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던 프레카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칼라 병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찔린 거 자체는 치명상이 아니지. 그런데 칼날 자체가 더러워 열병에 걸리는데, 응급조치가 늦어지면 그대로 죽는다더라. 독침에 맞아 해독 못해서 죽는 놈도 있다고 들었어."
"그래도 우린 다행이네요. 5월에 올라오고 지금까지 부상자 하나 없으니까..."
나는 묵묵히 두 고참들의 대화를 들었다. 대화내용으로 보아 아직까지 몬스터에게 살해당한 소초원은 없는 것 같았다. 칼라 병사들은 분대원들 둘러보면서 주목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잘 들어. 만약에 고블린을 발견하면 화살 한발로 일격에 죽여야 된다. 말 그대로 일발 필살이야. 근접전은 최악의 수단이라고 생각해. 트롤은 보는 즉시 신호살만 쏘고 피신하고."
통상의 절차를 생략하는 발언이었지만, 듣고 있던 소초장이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던 칼라 병사장이 이내 라이오 상등병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라이오. 그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네 역할이 제일 중요해. 네 고참들과 후임들이 다치냐 안다치냐는 니 방패에 다 달려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분대장님."
"지금까지도 넌 정말 잘해왔어. 네 보직 후임자가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열심히 해주라."
"알겠습니다."
드넓은 라이오 상등병의 등을 탕탕 쳐주는 칼라 병사장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방패병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참. 후임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듣고 있던 소초장이 갑자기 생각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소초장을 향했다.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아니나다를까, 소초장의 손가락이 나를 향했다.
"특기가 방패술이라고 적혀있더라고."
"아?"
"정말입니까?"
"막내야?"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나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시선집중에 나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정이 있어, 입대 전 방패술도 배웠습니다. 자신 있어 하는 분야구요."
"아, 이거 괜히 말했나?"
손가락으로 미간을 긁는 소초장이 괜히 얄미웠다. 아르고니아의 평민이면 대개 생계때문에라도 사냥을 했기 때문에 궁술을 잘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방패술은 별개의 얘기다. 영지병이 아니면 따로 방패술을 배울 일은 없다. 그리고 아르고니아의 영지병은 고아병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규군생활을 끝내고 나서 시험을 거쳐 '채용'된다. 소초장은 답이 뻔히 보이는 힌트를 던져버린 것이다.
"뭐, 마을 지인중에 방패병 출신이 있으면 방패술도 배울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봐."
나를 구원해 준 것은 바로 칼라 병사장이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영부영하다가 곧이곧대로 말할 뻔했다. 하긴 그러고보니 소초장은 내 정체를 빤히 다 알고 있는데, 그걸 말하지 않은 걸 감지덕지 해야 할 일이라고 해야할 일이었다.
"우리 막내 표정을 보니 아직 경황도 없고 부담스러워서 직접적으로 얘기 안한 것 같은데... 그래도 어쩌겠냐, 벌써 입밖에 나온 특기를..."
어느새 장난스러운 어조로 변한 칼라 병사장의 표정은 동네 개구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이내 라이오 상등병에게 턱짓했다.
"실력 한번 보자."
"받아 막내야."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에게 방패를 내미는 라이오 상등병이었다. 잠시 얼어있던 나는 이내 손을 내밀어 방패를 받았다.
"아르고니아 제식 라운드 실드 받겠습니다..."
하지만 머리는 몰라도 몸은 기억한다고 했던가? 겉에 아르고니아 정규군 문장이 새겨진 방패를 가까이에서 보자마자 가슴이 점점 뛰었다. 파란 바탕에 세개의 산, 그 중앙으로 하늘을 향해 화살을 팽팽히 당긴 활...!
그리고 넘겨받는 순간 그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다. 현란하면서도 강력한 검술을 가진 알타바르의 수많은 일격을 다 받아내고, 차단시켰던 그 때의 기억이. 
  • 반딧불 2018.09.16 19:46
    저도 처음에 사격잘 못했을때 고참들한테 혼났을때가 생각나네요
    사격의 중요성에 대해 긴장하라는 분위기가 정말 잘표현된거 같습니다
    그리고 샨티 일등병 화살 쏘는거 왠지 ㅋㅋㅋ 훈련소때 저희 육사 대대장이 혼자서 그렇게 구르면서 사격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그때 그렇게 쏴도 만발이었는데 ㅋㅋ 그게 어렵풋이 기억났네요
    한동안 개구리 군복을 입고있는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는데
    이번편에 활을 쓰는 모습이 잘 표현되면서
    이제좀 판타지 세계관으로 적응한거 같습니다
    한동안 개구리 전투복에 총들고 서있는 모습이 자꾸 연상되서 혼났네요 ㅋㅋ
    역시 마의 필력이십니다
    명료하고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표현선과 명확하게 전달하고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문장력
    역시 감명받습니다
  • 불꽃휴먼 2018.09.16 22:59
    샨티의 이동사격은 전진무의탁 사격을 참조하면서 썼네요. 활로 엎드려쏴는 할 수 없으니(...)
    비슷한 느낌은 났지 않나 싶네요 ㅋ
    저도 한줄때 빵발 쏜 적도 있어서 쓰다가 기억 많이 나더군요 ㅋㅋㅋ
    무튼 매번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SKEN 2018.09.18 01:56
    크으 이번에도 잘읽었습니다!
    드디어 주인공의 방패술이 발휘되는 순간이군요. 상황 연출도 너무 좋고 전개 흐름이 너무 깔끔한거 같아 부럽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음편이 기대되게 만드시는군요! 어서 보고 싶습니다.
    블리자드 가드의 최고 매력은 읽는 이가 아는 군대의 생활상에 판타지라는 스킨이 씌워져
    이해도 수월하고 독자의 경험에 비추어 받아들여지는 포인트도 다양한 것이 큰 매력인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지는 경험의 군대와 다른 달달함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흐뭇함과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구요.
    개인적으로 칼라 병사장이 참으로 이상적인 분대 지휘자의 모습인것 같아요.
    적절한 카리스마와 위압감에 사람을 품는 포용력과 부드러움도 엿보이는 것과 지휘자로서 가진 능력이 보일때마다
    제가 군 생활할때 저런 이상적인 분대장 한명 밑에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드네요ㅎㅎ
  • 불꽃휴먼 2018.09.24 06:00
    칼라 병사장 캐릭터의 모티브는 제 이등병 시절 분대장님이죠. 최대한 그분을 묘사해 보려고 신경썼는데 성공했나보네요^^ 잊지 못할 사람 중 하나입니다. '니맘대로 해도 되는데 왜 이리 후임들 신경쓰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좋은 분이셨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