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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23:59

Blizzard Guard(6) ep1. 훈련[1]

조회 수 5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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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우웅.

뇌안을 깊숙히 파고들 정도로 큰 뿔피리소리. 눈이 저절로 떠졌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가, 한참 눈을 깜빡이던 나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상체를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직고참 라만이 벌써 침상을 다 개고 바닥에 나와 환복커튼을 치고 있었다.
기가막힌 속도였다.
휘리리릭.
"베에일 일등병님, 기상...시이간입니다."
"그래."
빛의 속도로 옆에 누워 깰듯말듯한 베일 일등병을 깨우고 있었다.
"안젤리카 일등병님, 기상시간입니다."
"맞나..."
커튼이 쳐져 보이지 않는 여고참 침상쪽에서도 세레나 이등병이 어느새 일어나 깨우고 있나보다. 눈 깜빡한 사이에 일어난 이 진풍경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문득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깐, 내가 여기 막내잖아?
다급하게 침상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군화를 신기 시작했다. 어느새 베일 일등병이 일어나 살짝 옆을 곁눈질하며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침상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 사이 라만 이등병은 제일 끝에서 이불을 통째로 뒤집어쓰고 있는 칼라 병사장의 바로앞에 가서 조심스러운 어조로 기상을 알리고 나서야 제자리로 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베일 일등병이 하의를 갈아입을 때 즈음에, 옆에서 자고 있던 이름 모를 고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제는 칼라 병사장을 비롯해 다른 일이등병 고참들의 이름과 서열을 외우기 바빠 상등병쪽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유일하게 모르고 있는 남자 고참의 관물함을 훑어보았다.
'라이오 상등병. 입대일은 04년 4월. 직급은 방패수.'
분대에서 가장 체격과 덩치가 컸던 그는 어제도 단 한 마디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표정조차 포커페이스였다.
저 고참의 뒤를 이어 방패수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절대 밉보이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아, 졸려라."
베일 일등병이 준비를 다 마치고 라이오 상등병이 옷을 다 갈아입을 때 즈음, 일어난 칼라 병사장이 눈을 비비며 환복준비를 시작했다. 다른 고참들과 달리 침구류를 대충 구석에 박아넣고 여유롭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준비끝났습니다."
프레카 상등병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칼라 병사장의 시선이 문쪽을 향했다.
"걷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내가 커튼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라만 이등병이 잽싸게 다가와서 커튼을 쥔 채 빠르게 걷어나갔다. 살짝 당혹스러웠다.
'아니 왜 굳이...'
의아해할 시간도 없었다. 칼라 병사장이 문을 나서자 어제처럼 계급 순으로 줄줄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였다. 나는 다급하게 라만 이등병의 뒤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소초 앞의 마당. 어느새 40여명의 소대원들이 어느새 열을 맞춘 채 도열해 있었다. 활과 갖가지 무기로 무장한 인원들도 일부 있었는데, 아마 근무에서 이제 막 복귀한 이들인가보다.
제일 앞에 홀로 나와 있는 한명이 소초장과 마주본 채 손을 올렸다.
"단결."
"단결."
"1소초 아침점호 인원보고. 총원 55명, 점호 44명, 취사2명, 근무 8명, 휴가 1명 이상 점호준비 끝."
아침점호는 훈련소에서 겪었던 것보다 단순했는데, 아마 소대단위로 모여 있어 간소화시킨 것 같았다. 소초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도 근무한다고 고생이 많다. 야간근무 선 애들은 어서 가서 잘 준비하고, 오후주간하는 1분대랑 대기분대인 2분대는 오전에 훈련이 있으니 아침먹고 08:00시까지 완전무장상태로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해산."
소초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완전무장을 한 채 일렬종대로 서있던 근무 분대부터 소초로 들어갔고, 옆줄의 분대가 그 뒤를 따랐다. 약속된 움직임이라 그런지 아주 자연스러웠다. 느슨해 보이면서도 철저해 보이는 군기에 나는 행여나 실수라도 할까봐 긴장한 채 분대원들의 뒤만 졸졸 따랐다.
"저희 요새 너무 훈련 위주로 가는거 아닙니까?"
식사가 마친 뒤의 생활관 안. 안젤리카 일등병이 여전히 졸린 눈을 비비며 옆의 고참에게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이제 겨울시작이니까. GP에서 눈 쌓이기 시작하면 훈련할 기회가 없는 거 잘 알잖아."
나는 안젤리카 일등병에게 대답하는 여고참에게 시선이 갔다.
메이아 상등병. 부월수라는 직급을 가져서일까? 샨티 일등병과는 대조적으로 무척 우락부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프레카 상등병보단 약간 작은듯 했지만 워낙 덩치가 큰 탓에 외관상으론 오히려 더 커보였다. 거기다 중성적인 목소리마저 갖고 있어 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렇긴 하네요. 벌써 겨울이라니."
"하늘에서 쓰레기가 떨어지는 계절이지."
침상에 걸어앉아 턱을 괸 채 창문 밖을 바라보던 칼라 병사장이 나지막히 말했다. 듣고 있던 안젤리카 일등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이등병때는 빌어먹을 눈만 치웠던 기억만 나는군요."
"그러고보니 안젤리카는 1월 군번이었지. 그럴 만도 하겠다."
"곧 활과 검 대신 싸리비와 눈삽만 들고 다니는 때가 오겠구나."
그들의 한탄을 듣고 있던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래, 말해 막내야."
"그... 제설작전을 하게 되면 어디서 어디까지 치워야 합니까?"
"질문 잘했다."
안젤리카 일등병이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사투리가 살짝 묻어나오는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크게 소초 주변이랑 경계근무지, 후방보급로를 주로 쓸어야 되지. 경계근무지 같은 경우 경계근무자들이 경계로만 맡아서 시간 날때마다 쓰는 편이야. 소초 주변이랑 후방보급로가 인제, 대기분대랑 여유나는 나머지 인원들이 제설을 하는거지. 보급로를 쓸어야 부식마차가 올라올 수 있으니까 말이지."
그러면서 손가락을 입으로 살짝 깨물며 웃으며 말했다.
"뭘 먹어야 우리가 안살아남겠나 그쟈?"
"맞습니다."
목소리가 고와서 그런지(?) 이해가 쏙쏙 잘 되었다. 습관적으로 나오는 사투리를 살짝 억제하려는 듯한 말투는 정감 있고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참, GP 경계근무 어떻게 서는지는 아직 모르재?"
눈빛이 마치 '제발 모른다고 말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훈련소에서 어느정도 배웠지만, 그녀의 눈빛을 따르기로 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설명해주께."
안젤리카 일등병은 가르쳐주는 거에 재미가 들렸는지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우선 한개 소초에서 지정된 경계라인은 4개의 분대가 한개 분대씩 번갈아 가면서 교대근무를 선다. 근무시간의 경계는 오전주간, 오후주간, 전반야, 후반야 이렇게 4개군이며, 일주일을 순환하면서 근무한다고 한다. 일출시간과 일몰시간을 기준으로 나뉘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각 근무군의 근무시간이 주기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이렇게 한개분대가 4가지 근무를 일주일씩 선 뒤에는 대기분대로 넘어가 정상적인 일과시간을 일주일 보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근무방식은 다음주에 근무 들어가면 몸으로 체득하는 게 빠를거라. 우선은 내가 설명한 거만 기억하면 된다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심코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안젤리카 일등병이 다가와 손을 내 이마에 대며 다시 세워주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병 상호간에는 고개 숙이는 거 아니다. 계급을 떠나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되거든."
"아, 알겠습니다."
얼떨떨한 어조로 말했다. 
서로를 존중해야 된다. 정말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 우리 안젤리카가 일등병 되더니 말솜씨가 늘었네?"
듣고 있던 칼라 병사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젤리카 일등병이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살짝 내렸다.
"아, 아입니다. 이 정도는 당연합니다..."
"너 라만한테는 이렇게 안친절했잖아. 막내한테 관심있지?"
베일 일등병이 다소 짓궃은 어조로 말했다. 안젤리카 일등병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그런거 아닙니다."
뉘앙스가 조금 묘했다. 어조가 살짝 정색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서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들어보니 둘은 직고참이라던데 어떤 관계인지 조금 궁금해졌다.
"시간 다 됬다. 슬슬 준비하고 나가자."
칼라 병사장의 말이 떨어진 건 그때였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분대원들은 모두 관물함에 있던 장비를 꺼내어 착용하기 시작했다.
무장은 단순했다. 단검과 수통을 달 수 있는 허리띠와 아르고니아 제식 활이 경계병 직급의 기본무장이었다. 5번 척후병인 샨티 일등병부터는 조금 달랐는데, 활도 크기가 조금 작은 단궁이었고 허리띠 없이 단검을 팔에 차고 있었다. 라이오 상등병은 지름이 1m에 달하는 라운드 실드와 쇼트소드로 무장했고 메이아 상등병은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양손도끼만 쥐었다.
프레카 상등병은 기본무장에 쇼트소드를 허리띠에 매달고 있었다. 칼라 병사장은 작은 쇠뇌(Cross bow)에 롱소드를 차고 있었는데 그의 체격과 맞물려 마치 제국의 기사처럼 압도적인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 SKEN 2018.09.03 14:37
    이번편에선 부대의 대략적인 임무와 형태 일과 등이 자연스럽게 소개되는군요! 이번에도 좋은 소설 잘읽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겪게될 소초에서의 생활이 기대됩니다!
  • 반딧불 2018.09.16 19:2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침에 일어나는 분위기게 되게 와닿네요
    총만 안들었다 뿐이지 현대 육군 생활을 그대로 표현하는 뭐랄까
    군생활을 새록새록 생각나게 하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네요

    악폐습 진짜 ㅋㅋㅋ너무 리얼해서 웃음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