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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까마귀 사단이라니."
"어떡하냐 너? 거기 엄청 빡쎄다던데."
옆에 앉아 있던 동기들이 측은한 표정을 지은 채 안타깝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나르카 아델."
"네!"
"1군 백곰 사단."
"아싸!"
"세리오 블랑."
"네."
"1군 흑사자 사단."
"오우야!"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코흘리개 햇병아리들이 이제야 어엿한 왕국의 이등병들이 되었군. 제군들의 건투를 빈다."
아르고니아군 제복을 말끔하게 입은 채 진행된 퇴소식이 끝나고, 각자의 사단으로 가야 할 마차들이 슬슬 도착했다. 정든 동기들과 헤어질 시간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몸 건강히 잘 지내라."
"너야말로 잘지내 임마. 난 니가 제일 걱정된다."
"고참들이 갈군다고 울면서 탈영이나 하지 마 자식아."
장난 어린 대화를 주고 받으며, 우리는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다행히 훈련소에서 까마귀 사단 본부까지는 반나절 남짓한 거리였기 때문에, 승차감 나쁜 수송용 마차에서 일찍 내릴 수 있었다.
사단 본부는 가파른 산 위에 지은 산성이었다. 높이 쏟아오른 산의 지세를 잘 이용해 만든 산성은 투박하면서도 견고해 보였다. 올라오는 유일한 길목조차 마차가 겨우 올라갈 수 있는 경사였으니 이런 곳은 열배의 병력으로도 함락시키기 힘들 것이다.
"반갑다 신병들. 나는 너희들의 부대인솔을 맡은 인솔장교 카이란 중위다. 부대의 교육도 맡고 있으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다."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인상에 훤칠한 키의 남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각 잡힌 군모에 박혀 있는 두개의 해골마크는 그의 키와 맞물려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게끔 해주었다.
군기가 바짝 든 채 경례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꼈다.
"인솔장교님을 뵙습니다, 단결!"
"그래, 단결."
경례를 받은 카이란 중위는 우리를 빈 생활관으로 데려갔다.
"오늘은 날도 다 샜고 너희도 피곤할 테니 그만 푹 쉬고, 내일 사단장님께 신고식을 올리고 자대로 가자꾸나."
"알겠습니다."
너무 긴장을 해서였을까, 그 말마따나 정말 피곤했다. 우린 짐을 푼 채 바로 생활관에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우린 사단장님에게 전출신고를 하고 다시 여정을 떠났다. 다음 행선지는 대대본부라고 한다. 바로 가면 어디 덧나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속마음을 읽었는지 카이란 중위가 말했다.
"군이 원래 이런 데야. 융통성 없어보이긴 하지만 절차라는 걸 거스를 수가 없지."
"휴, 그렇군요..."
대대본부는 그래도 반나절이 되기 전에 도착했다. 규모가 컸던 사단본부와는 달리 대대본부는 많이 작은 편이었다. 하긴 5천명과 5백명의 집결지인데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여기서부터는 아마 다른 장교랑 반으로 나뉘어져서 각 소초에 투입될 거야. 대대가 맡은 경계구간이 워낙 넓어서 말이야."
똑같이 짧은 신고식을 나눈 뒤 나를 비롯한 12명의 신병들만 카이란의 마차를 타고 각 소초를 향했다. 
훈련소에서 배운바로, 보통 철책선에서 후방보급로까지 경계활동을 벌이는 최전방지대를 총칭해 GP(Guard post)라 부르며, GP 바로 뒤의 상대적인 후방에서 훈련을 벌이며 전투 발발시 최전방에의 전투 및 보수지원을 하는 부대를 페바(FEBA - Forward Edge of Battle Area)라고 부른다. 산맥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사단은 보통 5개 대대를 1조씩 2개조로 2년을 번갈아가며 근무지를 교대한다고 한다.
GP와 페바의 차이점이라면 바로 경계인력차이와 단체생활규모라고 한다. 대대단위로 부대가 모여 있는 페바부대와는 달리 GP는 5개 대대 2500여명의 병력이 넓은 경계구획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소대단위로 띄엄띄엄 떨어져 생활을 하는데, 그 소대원들이 주둔하는 막사를 보통 소초라고 한다.
철책선 바로 뒤에 있는 망루를 초소라고 부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헷갈리는 신병이 많다고 한다.
내가 배정된 소초는 1소초였는데, 5소초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제일 마지막에 도착한다고 한다.
"히야, 대단하네."
사단에서 대대까지 가는 동안에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대대에서 소초를 향하는 후방보급로를 들어서니 우리가 근무해야 할 곳의 윤곽이 제대로 드러났다.
미친듯이 깎아지른 산의 능선을 따라 잿빛의 철책선이 끝도 없이 이어져 올라가고 있었다. 모두가 눈이 화등잔만해진 채 멍하니 그곳만을 바라보았다.
"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그리 걱정은 안해도 될 거야. 그리고 최전방부대는 군수품보급 최우선순위라 입대 전보다 먹을 걱정은 없을껄."
저게 위로인지 놀리는건지 참 헷갈린다. 물론 뒷말은 확실히 위로가 맞는 것 같다. 동기들 얘기를 들어보니 배고파서 일찍 입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깐 말이다.
마차가 이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곤 하나, 워낙 산세가 험한 탓에 속도는 느린 편이었다. 소초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서 마차를 멈춰세우고 카이란 중위가 병사를 소초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5소초부터 시작해 2소초까지 인솔하는 과정이 거의 6시간이 걸릴 정도였으니, 마지막 피인솔자인 나로선 긴장이 풀려 지루하기까지 했다.
"이제 너희 둘만 남았구나."
"기다리기 지루하군요. 빨리 소초에 가고 싶은데."
같은 소초에 가게 될 동기, 리오 마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훈련소 생활 때 친하진 않았지만 안면은 있던 녀석이었다. 꽤나 똘똘한 성격이었던걸로 기억난다.
"2소초에서 1소초까지는 거리가 가까운 편이니 금방 도착할 거야."
카이란 중위의 말대로였다. 단 둘이 남은 채 리오와 이런저러 얘기를 나누는 사이 마차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부터 올라가면 된단다."
나와 리오는 카이란 중위의 뒤를 따라 산의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9월이었음에도 벌써부터 눈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아르고니아는 지역마다 계절차이가 조금 나는 편인데, 내가 있던 라이칼 영지에선 보통 10월부터 눈이 왔다.
"너흰 제일 좋을 때 입대한거야. 한겨울엔 폭설이 내려서 마차가 지나가지도 못하거든."
"그럼 겨울에 GP에 자대배치 받는 신병들은 어떻게 갑니까?"
"걸어서 가지, 대대본부에서."
"..."
나와 리오는 뜨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서로를 마주보았다. 인솔자 없이는 길도 모를테니 마지막에 도착하는 놈은 기절부터 할 것이다. 
"정지."
그러던 중, 오르막 위의 수풀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딱하면서도 위압적인 느낌이었다. 카이란 중위가 멈춰섰다.
"방패."
"불꽃."
"올라오시지요."
카이란 중위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자, 우리도 따라 올라갔다. 수풀 속에서 검과 활로 무장한 병사 하나가 활시위를 거두며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넌 여전히 '마을사람1'같은 목소리구나."
피식 웃은 병사는 이내 시선을 우리쪽으로 돌렸다.
"신병인가봅니다."
묘하게 기뻐하면서도 음흉해보이는 표정. 넋 놓고 있던 우린 그제서야 눈 앞의 병사가 소초에서 만나는 첫 고참임을 인지했다.
"단결! 이등병 아르펜!"
"단결! 이등병 리오!"
"아아, 괜찮아 아직 그런거 안해도 돼."
이름 모를 고참병사는 손사레를 쳤다. 그리곤 웃으며 말했다.
"관등성명이야 올라가면 골백번도 더 할텐데 뭐."
"..."
태연하게 웃는 모습이 더 소름끼쳤다.
잠깐의 헤프닝이 끝난 후 4명의 인영은 다시 걸음을 옮겨 금세 소초에 도착했다. 한개의 해골마크를 가진 남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카이란 중위보다 훤칠해 보이진 않았지만, 다부진 체격에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단결."
"단결."
비슷한 계급의 간부라 그랬을까. 둘은 담담하게 경례를 주고받았다. 인사치레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우리에게 다가왔다. 군기가 바짝 든 채 오른손을 들었다. 
"단결!"
"단결. 반갑구나 신병들아. 내가 이 1소초의 소초장 카리안 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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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과정을 쓰려고 하니 잘 안써지네요
그리고 GP와 페바는 진짜 쓰이는 용어긴 한데(영문뜻도 똑같음) 실제 최전방과는 달라요. 교대주기도 저거랑 다르구요(3개 대대가 한 대대씩 1년순환)
각색인거 인지하고 보시면 될듯  

#대한민국 최전방부대 배치도
북한
----휴전선----
GP(Guard post)
GOP(General Outpost)
F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

PS. GOP모티브 소설인데 정작 용어에 GOP가 없다는 건 함정...
  • PORSCHE 2018.08.22 19:09
    휴먼님 글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대화지문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이었는데 덕분에 도움이 되었네요!
    주변 풍경이 그려지면서도 간결한 문체라 읽기도 편하고 재밌습니다!
    눈이 올때 소초로 배치 받은 신병들은 정말 힘들겠네요 ㅎㅎㅎ
  • 반딧불 2018.08.22 21:58
    진짜 군대 냄새가 나는 소설이네요 ㅋㅋ
    역시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간단한 일생인데도 되게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문장력은 역시 수준급이시네요
  • SKEN 2018.08.23 02:15
    이번편도 재밌고 알차게 배우며 잘읽었습니다!
  • 홍차매니아 2018.08.24 10:30
    판타지 스킨 씌운 군대 소설 같은데 자연스럽네요.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