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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시아-인트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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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멜리나와 아가시아(8)

 

에르는 한참동안 구역질을 했더니 맥이 빠져서 일어날 힘이 없었다. 그런데 갈대밭 건너편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아르휀의 목소리인 것 같아 조심스레 갈대밭 언덕을 돌아서 갔는데, 먼발치에 아르휀과 카오루가 서 있는 보였다. 에르는 나서진 않고 조용히 둘을 응시했다.

 

아르휀은 카오루의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서둘러서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피투성이가 된 채 검을 움켜쥐고 있는 카오루가 서있었다.

카오루 오빠!”

아르휀의 목소리에 카오루의 고개가 돌아갔다. 머리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 얼굴을 뒤엎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지만, 그녀를 보더니 대뜸 소리를 질러댔다.

멍청아! 오지마!”

카오루가 뚱뚱한 남자와 대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몸만한 돌덩이를 들고 있는데다가, 카오루의 상태를 봐서 예사로운 상대가 아님이 확실했다.

카오루의 시선이 돌아간 사이 뚱뚱한 남자는 돌덩이를 장전하듯이 팔을 당긴 다음 가볍게 날려 보냈는데, 그것을 주시하고 있던 카오루가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바닥에 떨어진 돌덩이는 강력한 충격음을 발생시키며 바닥을 움푹 패이게 만들었는데, 아르휀은 그 파괴력에 질겁한 듯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사이 뚱뚱한 남자는 바닥의 모래를 뿌리듯이 손으로 쓸어 보냈다. 튀어나간 모래들이 날아가며 찰흙처럼 뭉치더니 여러 개의 공이 되어 카오루에게 날아갔다. 거대한 돌덩이도 피하기 힘든 판에 예상한 듯이 날아오는 모래덩어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모래덩어리들에게 맞았기에 일나지 못할 것 같았던 카오루가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런데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떨고 있는 것을 보니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르휀은 부랴부랴 카오루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왜 이렇게 미련하게 싸워요!"

"저 새끼가... 10반 애들을 전부 죽인 것 같아"

"? 저 사람이요?"

카오루의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눈빛은 살아있었다. 평소에는 장난끼가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진지하게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잘왔어 아르휀. 나 혼자는 역부족이야. 방어를 부탁한다"

"!"

아르휀이 서둘러서 물리방어 타입의 쉴드를 전개했다. 어느새 뚱뚱한 남자가 바닥에서 뜯어낸 흙과 돌들이 뭉쳐지며 돌덩이로 형상되고 있었다.

"저 돼지새끼는 꼭 잡아야해. 저 위험한 녀석을 우리가 잡지 않으면 더 많은 동료들이 다치고 말꺼야"

"!"

"정면!"

남자가 어깨를 당기고 밀어내듯이 돌덩이를 쏘아 보냈다. 아르휀은 쉴드의 힘을 믿고 돌덩이를 가볍게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적들이 휘두른 무기를 오히려 튕겨내며 생각 이상의 힘을 보여주던 쉴드의 능력이었기에 아르휀은 쉴드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돌덩이가 쉴드를 때리자마자 장갑차가 밀어붙이는 듯한 힘이 전해지며 아르휀이 밀려났다. 지탱조차 하지 못하고 맥없이 밀려나는 그녀를 카오루가 받치며 버텼지만 그것조차 역부족이었다. 둘은 돌덩이의 힘에 맥없이 무너졌지만 다행히 돌덩이가 쉴드를 타고 올라가더니 둘을 뛰어넘었다. 자신의 한계를 버티지 못한 쉴드가 와장창 깨지듯이 조각나며 사라졌다. 아르휀이 갑자기 배를 붙잡고 기침을 해대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돌덩이의 힘을 다 받아내지 못하고 충격이 전해져 온데다가, 쉴드가 일정이상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깨진 충격까지 고스란히 술자에게 발생한 것이었다. 쉴드가 버티지 못하고 깨진 것을 처음 겪었고, 쉴드의 능력 덕분에 단 한번도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그녀는 죽을 것만 같았다. 고통이 너무 괴로워서 흙바닥을 뒹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르휀이 충격을 모두 받아낸 덕분에 상대적으로 멀쩡했던 카오루가 다급하게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아르휀! 괜찮아?“

아파.. 으윽... 아파...”

아르휀이 인상을 찡그린 채 아프다는 말만 반복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카오루는 괜히 아르휀을 끼어 들였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상대가 다시 돌덩이를 집어들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다간 모두 당할 것이 분명했다.

으윽... 아파...”

카오루는 결심한 듯 장검을 집어들고 대뜸 남자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돌덩이를 만들기 전에 상대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아르휀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으아아!!”

카오루가 괴성을 지르며 남자에게 달려들었지만, 남자가 어느새 돌덩이를 집어들고 카오루에게 휘둘렀다. 생각 이상으로 빠른 대처에 카오루가 반응하지 못하고 돌에 치이더니, 몸이 붕 뜨며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엎어져 있던 아르휀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데, 돌덩이에 맞은 카오루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막 왔을때도 카오루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앉았기에, 아니나 다를까 기절한듯이 미동조차 없었다.

돌덩이를 쥔 남자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카오루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태가 심각해 보였기에, 아르휀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달려 나갔다. 내장이 바늘을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카오루가 위험했다. 남자가 카오루에게 막 다가서서 돌덩이를 머리위로 올렸다. 짧은 순간에 카오루를 막을까, 남자를 밀쳐낼까 고민 하던 아르휀이 양손을 내밀며 쉴드를 전개하고 남자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남자가 뒤늦게 알아차리며 고개를 돌렸는데, 이미 아르휀의 쉴드가 남자의 얼굴을 들이 받았다.

아르휀이 온몸을 날린 덕택에 둘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내장에 충격까지 있던 아르휀이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뒹굴며 몸부림치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돼지같은 녀석도 어느새 주저앉아 바닥에 손을 대는 것을 보니, 돌덩이를 다시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르휀은 고통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쉴드가 깨졌을 때부터 이어진 내장 고통이 오히려 무감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무생각없이 남자에게 다시 쉴드를 전개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달려드는 것을 주시하고 있던 남자는 곧바로 땅바닥을 뜯어내며 들어올렸다. 하지만 돌덩이로 형성되는 과정이었기에 뭉치고 있던 흙을 으스러트리며 남자의 머리에 쉴드가 직격했다. 아르휀은 다시 바닥을 굴렀고 쉴드에 머리를 남자는 맞은 부위를 부여잡고 한동안 고통스러워했다. 남자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화가 난 표정으로 바닥을 뜯어내기 시작했는데 돌덩이를 만들어내자마자 아르휀에게 다가가 돌맹이를 들어올리며 내려쳤다.

너도 쥐포가 되라!”

아르휀이 재빨리 쉴드로 막아냈지만, 내장으로 충격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연속해서 돌덩이를 내려치는 통에 쉴드가 곧 해제되거나 부서질 것 같았다. 아르휀은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다가 남자가 내려치기 전에 서둘러 옆으로 굴렀다. 그러나 남자는 그걸 놓치지 않고 달려들며 돌덩이를 내리쳤지만 쉴드가 다시 공격을 막아냈다. 번번히 쉴드로 막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는 약이 올라서 더 빨리 돌덩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아르휀은 이번엔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달리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데다가 돌덩이를 내려칠 때마다 가슴과 배에서 발생하는 충격이 정말 죽을 맛이었다. 연속해서 돌덩이를 받아낸 쉴드가 결국 깨지고 말았고, 아르휀이 얼굴을 찡그리며 피를 토해냈다.

끄으으... 쿨럭.. 쿨럭..”

쉴드가 사라지자 남자가 여유롭게 돌덩이를 들어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너도 이젠 끝이네

에르는 선뜻 아르휀을 도와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공간의 세계에 대한 무서움을 이제야 깨달았다. 호흡은 가빠지고 손발이 떨려서 차마 아르휀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에르는 바라보기만 해야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현장을 등지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전투배경음악 

분명히 남자의 단도가 아가시아에게 박혔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허공을 가른 것처럼 그녀는 멀쩡했다. 묘한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다시 손아귀에서 단도를 생성해냈다. 그사이 아가시아가 다시 움직였다. 그녀가 쏘아져 나가듯이 남자에게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남자는 그녀를 향해서 다시 단도를 던졌다. 그러나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맴돌뿐 전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뭔가 일이 이상해지고 있다고 느낀 남자가 다시 단도를 손아귀에서 뽑아냈지만, 아가시아는 상관없다는 듯이 남자에게 달려나갔다.


agasia_physical_canceler.jpg

아가시아 · Agasia

소용, 없어

뭐야 이씨!”

남자의 손아귀에서 다시 단도가 떠났다. 아가시아를 향해 단도가 정확히 날아갔지만,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반투명해지더니 단도가 허공을 꿰뚫었고, 아가시아가 맹렬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Self Hide Gage 변화 

 

불안감이 차오른 남자가 다급하게 연속해서 단도를 던져댔다. 그러나 그녀가 번번히 반투명해지며 단도를 흘려보냈고, 일말의 흔들림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가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2차 각성

 

아가시아가 날카롭게 단검을 빼들었다. 당황한 남자는 다급하게 멜리나를 향해 단도를 내밀었다.

오지마! 오면 이, 이 년을 죽일꺼야!!”

늦었어

 

숨바꼭질 게이지 · Hide and Seek Gage

 

이미 아가시아가 남자의 앞에서 단검을 휘두를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남자는 단도를 막연히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가 반투명해지며 남자에게 달려들자 깜짝 놀라서 막는 시늉을 했는데 아가시아는 그냥 남자를 통과해버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두리번거리던 남자가 황급히 뒤로 돌아섰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등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 여기

젠장!”

남자가 다시 다급하게 뒤를 돌아 단도를 휘두를 기세를 보였지만, 옆구리에서 뜨거운 느낌을 받았다. 남자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단검이 옆구리를 꿰뚫고 있었고, 그녀에게서 푸른색의 오오라가 잔잔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 짧은 순간에... 각성을...”

아가시아는 한치의 주저없이 단검을 뽑아버렸다. 남자는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전투의 의지가 없어 보이기에 아가시아는 남자를 뒤로하고 멜리나의 상태를 살폈다.

멜리나, 괜찮... ?”

으윽...”

너무 심하게 밟힌 탓에 멜리나가 고통스러워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가시아는 일단 그녀를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멜리나, 갈 수... 있어?”

머리카락이 뜯겨서 산발이 된 데다가, 얼굴 이곳저곳에 상처가 나 몰골이 엉망인 멜리나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아가시아를 보더니 대뜸 껴안았다.

이 바보야!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으아앙!”

멜리나. 미안..”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간의 고민들을 해소하고 다시 이어주는 듯한 미소가 둘에게서 맴돌았다. 아직 몸을 가누지 못했던 멜리나는 아가시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고, 남자를 내버려 둔 채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둘은 어느새 주택가의 입구에 도착했다. 아가시아는 대뜸 멈춰서더니 뭔가 잊었다는 투로 탄성을 내질렀다.

왜 그래?”

, 깜빡, 잊은...

잊은 거?”

먼저, , , 마르셀, 만나야,

누굴 찾으러 나간 것이었지만, 멜리나 때문에 한참 잊다가 생각난 아가시아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가다말고 그녀가  뒤에서 멜리나를 껴안았다.

아이, 뭐야 왜그래 아가시아

아가시아가 말없이 멜리나를 붙들고 있었는데, 이따금씩 들썩거리다가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멜리나가 돌아보자, 갈림길 부근에서 남자가 옆구리를 부여잡고 헉헉대며 서있었다. 문득 불안감이 엄습한 멜리나가 아가시아의 등을 살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단도가 등에 박혀있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헤헤... 내 장난감들은... 내 손에 죽어줘야 장난감이지... 하아...”

, 아가시아!”

멜리나가 아가시아를 살펴보니 눈이 거멓게 핼쑥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아가시아를 막아서려 했는데, 아가시아가 그녀를 억지로 다시 잡아끌었다.

... 리나... ... 갔다... 올게...”

그 몸으로 어딜 가려고!! 안돼! 안돼!”

.. 금방... 갔다.. 올게...”

아가시아는 등에 단도가 박힌 채로 남자를 향해 돌아섰다. 피가 뚝뚝 흐르는 것을 보니 멜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아가시아는 끝까지 자신을 위해서 몸을 던졌고, 왠지 모르게 이대로 끝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발!! 인형들아 제발 도와줘!!’

멜리나는 아가시아를 위해 어떻게 해서든 인형을 소환하려 했다. 그러나 멜리나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기적은 발생하지 않았다.

우억... 웨에엑... 크윽... 으아아!! 제발! 아가시아!! 인형 젠장!! 젠장!! 젠장!!”

아가시아는 핼쑥한 표정으로 남자를 향해 담담하게 발을 옮겼다.

 

 

남자가 돌덩이를 들고 아르휀에게 내려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르휀의 얼굴에 따뜻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당황한 아르휀은 손으로 물방울을 닦았는데, 다름 아닌 피였다. 서둘러 고개를 들어보니 카오루의 장검이 어느새 남자의 옆구리를 관통하고 있었다.

... ... 팔이 안 올라가네... 제기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자는 아르휀에게 내려치던 돌덩이를 거두고 돌아서서 냅다 휘둘렀다. 거리가 닿지 않을 줄 알았던 카오루가 멀뚱히 있다가 맥없이 얻어맞고 튕겨나갔다. 남자는 옆구리에 검이 박힌 채 돌덩이를 들고 카오루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나 아르휀이 그것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안돼! 가지마! 이 돼지 아저씨!!”

야이 이거 안놔?!”

아르휀이 남자의 등에 매달려서 목을 졸랐다. 남자는 허우적대다가 아르휀의 옷을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둘 다 쓰러져서 일어날 수 있을 만한 기색이 없자, 남자는 바닥에 손을 대며 슬그머니 앉았다. 그러자 바닥의 흙과 돌들이 빨려가듯이 모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돌덩이를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바닥이 조금씩 움푹 파여갈 정도로 많은 흙과 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바닥이 움푹 꺼지고 나서야 남자는 빨아들이는 것을 멈췄고, 천천히 들어 올리며 흙먼지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치 싱크홀이 생긴 것처럼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내며 집채만한 돌덩이가 뽑아져 나왔는데, 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바위 게이지, 오버드라이브!”

남자가 힘차게 팔을 들어 올리자 집채만한 돌덩이가 하늘 위로 솟으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둘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어보이는 크기의 돌덩이를 보며 절망감에 빠졌다.

.. 엄마...”

미안하다 아르휀... 괜히 나 때문에 엮여서...”

그런데 먼발치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등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주택가의 골목길에 아가시아와 남자가 마주섰다. 달빛이 그 위를 비추고 있었는데 아가시아가 지나간 길 위에 피가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위독함을 증명하듯 아가시아의 눈 밑이 거멓게 어두워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시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여자가 느끼기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아가시아는 멜리나를 생각한다면 물러설 수 없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멜리나를 이제야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에 아가시아의 입에 오히려 미소가 걸렸다.

웃어? 아하하! 너도 이제 광기에 물드는 구나?”

... ... 나는... 너랑... 달라...”

뭐가 달라! 우리는 똑같은 족속일 뿐이야. 너나 나나 살인을 즐기게 될 거라고! 어때? 블러드 게이지가 되보는게? 블러드 게이지가 된다면 지금보다 더 강력해질 수 있다고!”

아니... 나는... 달라... 나는... 살인... 위해서... 아냐... 나는... 지키기... 위해... 강해... ...”

그래...? 그럼 어쨌든 죽이는 수 밖에...”

아가시아는 멜리나를 슬쩍 돌아 보았다. 그녀를 등지고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비켜간다면 단도가 멜리나를 향할게 뻔했기 때문에 곧장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래... 그렇게 오면 아까처럼 단도를 피할 순 없을 거야

2차 각성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무기로부터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지만, 아가시아는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잘못 쓰다간 멜리나가 맞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가시아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눈치 챈 남자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아무래도 단도를 받아 내겠다라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 여자를 죽이고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기뻐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상상에 입에 미소가 걸린 남자가 손에 단도를 만들어냈다.

아가시아의 등에도 단도가 사라지지 않고 꽂혀있었다. 보통 무기소환계 능력이라면 술사의 손을 벗어난 무기는 소환해제가 되어야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상대의 능력은 오랫동안 소멸하지 않는 듯했다. 덕분에 아가시아가 버틸 수 있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이 되지 않았다. 너무 오래 끌었다가 아가시아 자신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멜리나가 위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녀가 조용히 읊조렸다.

 

숨바꼭질 게이지 · OverDrive

 

남자가 재빨리 손을 튕겼다. 그러자 단도가 날아가며 정확히 아가시아의 가슴팍에 꽂혔다.

크하하하하!!! 동료를 위해서 죽음을 택하다니!! 이런 멍청한!! 크하하!!”

어딜... 보는... 거야?”

그런데 남자의 뒤쪽에 난데없이 아가시아가 서있었다. 남자는 황당했다. 분명히 정면에 있던 여자에게 단도를 던져 맞췄다라는 생각에 다시 돌아보니, 가슴팍에 단도가 꽂혔던 여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남자는 돌아서서 다시 단도를 쏘아 보냈다. 빠르게 날아간 단도는 정확히 아가시아의 미간에 파고 들었다. 이번에는 잡은줄 알고 얼굴에 미소가 걸릴 찰나에 다시 반대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아니야

남자가 당황해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런데 거기에도 여자가 멀쩡하게 서있었다.

, 뭐야!! 대체 뭐야! 분신술이라도 되냐?”

꼭꼭, 숨어...

남자는 다시 아가시아에게 단도를 던졌다. 여지없이 명치를 꿰뚫었지만 전혀 고통스러워 하는 기색이 없어보였다.

뭐야 대체!! 이 개같은 년이!!”

남자가 재빨리 멜리나에게 단도를 겨냥했지만, 명치에 단도가 꽂혀있던 아가시아가 대뜸 단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놀란 남자가 재빨리 그녀에게 단도를 휘둘렀지만 허공을 가르며 그녀가 사라졌다. 남자는 당황해서 주변을 살펴보다가 등 뒤로부터 인기척이 느껴지자 마자 얼른 돌아서서 단도를 휘둘렀다. 그런데 여지없이 허공만 가르며 아가시아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머리, 카락... 보일라...”

다시 등뒤에서 아가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재빨리 돌아섰는데, 그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가시아와 똑같은 모습의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를 포위하고 있었고, 아가시아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목소리와 입모양으로 말을 했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지?”

남자의 온몸에 불안감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억지로라도 떨쳐내기 위해 단도를 마구잡이로 던져댔지만, 단도는 그저 아가시아들을 통과할 뿐이었다. 아가시아들이 남자의 주변으로 모여들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빨리

숨어

안 숨으면

잡힌다

마치 한편의 공포영화를 보는 것처럼 남자가 식은땀을 흘려가며 쉴새없이 단도를 던져댔다. 그러나 그 단도에 맞는 아가시아는 단 한명도 없었다. 아가시아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빈틈없이 남자를 둘러쌌다.

그렇게

던져도

나는

안맞아

왜냐면

아가시아들이 말을 멈추었고, 뒤에서 단 한명의 아가시아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숨었거든

남자의 등 뒤로 차가운 금속이 몸을 꿰뚫는 것이 느껴졌다.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오물오물 해댔지만, 아가시아는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자의 앞에 있던 아가시아가 손을 뻗어 배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단도를 던질 때 마냥 통과하던 것이 허상이 아닌지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크윽... 이 개...”

남자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오른쪽에 있던 아가시아가 몸을 내밀어 남자의 옆구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크윽... ... ...”

몸에 칼이 찔리면서 남자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남자에게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왼쪽에 있던 아가시아가 옆구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남자의 조끼와 온몸이 피에 물들며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애원했다.

크아!! , 제발! 살려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제발!!”

단검을 찔러 넣었던 아가시아들이 갑자기 물러나더니 사라졌다. 남자의 뒤쪽에서 아가시아가 조심스레 나타났다.

그렇게... 자신의... 목숨은... 소중... 한데...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는... 거야?”

닥쳐! 이씨

최후의 순간까지 아가시아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살려달라고 용서를 비는 척하다가 그녀에게 단도를 여러개 던져댔다. 단지 아가시아 본체를 찾으려 했던 잔꾀였지만, 그 수는 통하지 않았다. 진짜 아가시아인줄 알았던 그녀는 허상이었고, 남자의 등 뒤에서 그녀가 허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이 부근... 인가... 신경...”

남자의 허리에 단검이 찔리자마자 뭔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체에 감각이 없어지며 맥없이 무릎을 꿇었는데 아무리 일어나려고 해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 다리!! 내 다리!! 젠장!! 이 썩을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가시아가 그의 턱을 잡아올려 주저없이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목에 파고든 단검의 사이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남자는 생기를 잃어가는 눈빛으로 힘없이 팔을 떨궜다. 아가시아가 늘어진 남자를 조심스레 놓자, 몸이 무너지더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남자가 죽자마자 아가시아의 등에 꽂힌 단도들이 주인을 잃고 사라졌는데, 그곳을 막을것이 없었던 상처로 피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도 맥없이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멜리나는 서둘러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 PORSCHE 2018.10.10 01:29
    아가시아가 각성했군요. 각성하니 정말 섬뜩한 능력입니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며 각성했는데, 다들 이렇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각성을 하거나 무기력하게 죽거나 하겠네요. 게이지의 세계는 참 냉혹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줍지만 그 내면에 감추어진 암살자의 면모가 드러난 듯 해서 멋지네요. 그 능력을 발휘 할때 섬뜩한 느낌이 속도감과 더해져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르휀이 위기일때 누가 나타났는데 과연! 두근두근하며 기대해봅니다.
    전투가 매우 박진감넘치고 재밌네요. 한층 더 발전한 필력에 감탄하며 재밌게 읽었습니다.
  • SKEN 2018.10.13 01:22
    숨막히는 전개와 전투 묘사! 기가 막히는 한편이었습니다.
    내용적으로 아가시아의 각성과 위험을 제거하는 그 흐름과 전개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네요.
    전체적으로 이번 에피가 진행되는 내내 장면 묘사로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다각도에서
    잡아주는 구성이 참 좋습니다. 지나치지도 적지도 않고 딱 적당하다고 생각되네요.
    아가시아가 각성하는 과정에서는 그간의 이야기들이 밑바탕이 되어 딱 터트려지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또 각성했다해서 아가시아가 마냥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닌 심한 중상을 입는 것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아르휀 쪽의 일을 남겨두고 정체모를 누군가가 나타나는 상태로 남겨두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이후의 내용을 계속 궁금하게 만드네요. 다음편이 기대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