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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트 더 늘어날것 같아요;;;

멜리나와 아가시아 편은 4파트로 나눕니다

피드백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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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e_index.jpg


6. 멜리나와 아가시아(3)

 

아가시아가 멜리나를 불러 세우자 그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가 흔들흔들 대는 것을 보니 영락없이 만취상태였다. 아가시아는 멜리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불러 세웠지만 그녀는 아가시아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던 아가시아가 멜리나를 안아들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가시아는 도움이 필요했기에 얼른 핸드폰을 켜서 연락처를 열었다.

· 나연이

· 멜리나

· 아빠

· 에르

· 엄마

아가시아의 핸드폰엔 허전하게 단 5개의 연락처만 떠올랐다. 어디에 전화를 걸어야 할지몰라 갈팡질팡하다가 나연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수화음 없이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와 함께···’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시아는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걸려했지만 문득 손가락이 멈추었다. 아빠도 아가시아가 멜리나와 어울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유일한 친구임을 알고 있지만, 변해버린 그녀를 아빠는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다음에 눈이 간 것은 에르였는데, 고민했던 아가시아가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되지 않아 에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가시아 누나?”

아가시아는 말하려다 말고 멜리나를 슬쩍 쳐다보다가 중얼거리듯이 읊조렸다.

“....도와... ...”

? 도와줘요? 무슨 일 있어요? 어디에요? 거기

여기... 저번에... 다리...”

? 어디요?”

... ... ... 에르.. 안아...”

순간 수화기 너머로 일순간 침묵이 맴돌았다.

, 알겠어요...”

아가시아는 에르가 끊으려 하자 다급하게 붙잡았다.

에르, 멜리나. 같이 있어

멜리나가 있다는 말에 에르가 잠시 머뭇거렸다. 얼마 후 무슨 얘기인지 알아챈 듯한 말투로 가겠다고 대답한 뒤 끊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시아는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멜리나를 살폈다. 그녀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기에 어깨를 잡았는데 주정을 부리며 빽빽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점점 술기운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진정 시키려 아가시아가 다시 그녀에게 손을 뻗자 난데없이 손바닥이 날아오며 번쩍거렸다.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세게 맞은 아가시아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벌떡 일어나 가버리고 싶었지만, 뺨을 맞은 탓일까 정신이 번쩍 든 아가시아의 귀로 멜리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선뜻 돌아설 수 없었다.

... ! 이제와... ! 기다리게만 하고... ! 나쁜 새끼... 힘들었잖아... ! 힘들어... 죽을 끅! 죽을거 같아... 나쁜 새끼야... 연락도 안하고... ! ... 너무 힘들어... !”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이 남자친구 인줄알고 하는 소리였지만 아가시아에겐 오히려 가슴이 미어져왔다.

에르의 말이 맞아... 나는 멜리나를 기다려줘야 했어... 그런데 그러지 못했어... 어쩌면, 어쩌면 나는 나만 생각했는지 몰라. 남에게 기대기만 할 줄 알고. 나는... 멜리나에게 귀를 기울여 본적이 없었어. 남에게 관심 가져 본 적이 없었어. 어쩌면 나는...’

야이 나쁜 끅! 새끼야... 너 때문에... ! 내가 끅! 얼마나... 많은 걸 버렸는데 이 나쁜 새끼야...”

고개 숙인 채 끝없이 주절거리는 그녀를 아가시아는 처음 보았다. 항상 미소를 띤 채 남에게 상냥했기만 했던 그녀였지만, 힘든 것을 느끼는 사람이고, 예전의 자신처럼 힘들어 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얼마 후 메니페커가 운전한 차량이 아가시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차에서 메니페커가 내리며 에르도 따라내렸고, 메니페커는 아가시아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으려다가 난간을 붙잡고 있는 멜리나를 보곤 질문없이 끄덕이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멜리나가 술기운에 마구 난리치며 메니퍼커를 할퀴기도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뒷좌석을 열어 그녀를 던져넣었다. 메니페커가 곧장 운전석으로 이동하자 아가시아는 멜리나와 같이 뒷좌석에 탔는데, 에르는 하는 거없이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조수석에 탑승하며 길드로 향했다.

 

슬립 포레스트의 분위기가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멜리나를 데려오고 있다는 소식에 길드원들이 모두 로비에 모여들어 그녀를 기다렸다. 인파 속에서 롤랑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며 두리번 거리다가 소식을 듣고는 대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러자 얼마 후 입구로부터 사람들이 들어왔다. 멜리나를 거뜬하게 안아들고 있는 메니페커가 먼저 들어오고 그 뒤로 아가시아와 에르가 따라 들어왔다. 멜리나를 향해 길드원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지만 메니페커는 무심하게 인파 속을 통과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다가간 엘리베이터가 7층에 올라가 있는 것이 보이자, 메니페커는 곧바로 반대편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러다 안아 든 멜리나를 바라보았는데 머리와 옷이 지저분해서 갈아입히거나 씻겨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메니페커는 인파속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다가 아르휀에게 시선이 향했다. 메니페커는 곧바로 아르휀을 불러세웠는데, 처음엔 잘 못알아 들은 것처럼 갸웃거렸다. 그러다 메니페커와 시선이 마주친 아르휀이 뚱한 표정을 지었는데, 메니페커가 손짓을 하자 아르휀도 따라서 7층으로 향했다.

그사이 아가시아도 메니페커의 뒤를 따르려했지만 인파에 길이 차단됐다. 오랜만에 등장한 멜리나였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궁금했던 길드원들이 차마 메니페커를 불러세우지 못하고 대신 만만한 아가시아를 멈춰 세웠다. 하지만 멜리나에게 걱정이 든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한곳을 향해 멈춰있었고, 길드원들의 말이 그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우성거리는 게 어지러웠던 아가시아가 멀뚱멀뚱히 서있기만하고 선뜻 아무대답도 하지 못했다. 에이리아는 난처해 보이는 아가시아가 눈에 띄자 그제야 사람들을 진정시킨 다음 아가시아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녀의 빨갛게 부어올라 있는 볼에 에이리아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얼굴이...”

당황한 에이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손이 아가시아의 뺨으로 향했다. 에이리아의 손이 그녀의 뺨에 닿은 순간, 아가시아가 멜리나와 다리에 있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애널라이징 능력으로 상황 파악을 마친 에이리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멜리나는 너 인줄 모르고 때렸을 거야, 분명히 그랬을 꺼야... 괜찮지...?”

그런데 에이리아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가시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 저었다.

언니, , 안아파. , 멜리나, 힘든거, 몰랐어. , 이제, 알았어. 나만, 힘든거, 아니야. , 이제, 멜리나, 토닥

멜리나에게 뺨을 맞아 기운이 없을 것을 걱정한 에이리아가 그제야 밝아졌다.

강해졌구나 아가시아...”

. 이제, 어린이, 아니야. , 말만, ... 못해... 근데, . 어린이, 아니야

아가시아의 말이 기특했던 에이리아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래.. 아가시아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에이리아는 돌아서서 사람들을 빤히 보았는데, 사람들이 조용히 에이리아를 보고 있다가 아가시아를 번갈아 보고는 바닷길이 열리듯이 길을 열어주었다.

, 가봐. 이제 네가 친구를 지켜줄 때야

아가시아는 에이리아에게 여태껏 보지 못했던 미소로 대신 답하며 인파 사이를 걸었다. 아가시아는 메니페커가 탔던 엘리베이터에 다가가 곧바로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롤랑이 아가시아를 부르더니 그에게 시선이 향했다. 롤랑은 아가시아의 앞으로 다가서서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는데, 얼굴이 빨개지더니 간지럽지도 않은 관자놀이를 긁어댔다.

저기... .. 아가시아...”

아가시아가 의아한 듯이 롤랑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아가시아의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나서야 입을 뗐다.

... 별건 아닌데...”

롤랑은 뒤로 숨겨두었던 작은 단검 한 자루를 아가시아에게 내밀었다. 난데없이 단검을 받은 아가시아가 뚱한 표정으로 롤랑을 바라보았다.

일전에... 미안해서... .. 후라이팬으로 뭐라고 했잖아... , 그래서... 이거.. 내가 영국에 있을 때.. 귀족한테 받은 건데... ... ... ! 너 준다!! 아니, 잘 들고 있다가 무기로 쓰라고! ... 후라이팬 같은 거 들고 있지 말고!! 그럼 가, 간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롤랑이 말을 끝내자마자 쏜살같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가시아는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단검에 눈이 향했다. 단검은 십자가 모양으로 일체형처럼 금속 검집에 꽂혀있었는데, 부케에 쓰이는 작약꽃 문양이 단검을 두르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에이리아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이야, 지금의 아가시아 너를 뜻하는 거 같네. 귀엽기도 해라

에이리아의 시선 끝으로 아가시아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아가시아는 곧바로 7층으로 올라섰다. 보통 숙소로 쓰이는 층이기도 하고, 메니페커가 7층에서 멈춰서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가시아는 복도를 갸웃거리다가 빛이 새어나는 곳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문틈에 다가서자 방의 거실이 보였는데 멜리나가 화장실로 급하게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가시아가 문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찰나에 바이스가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잠깐 기다려. 벙어리 소녀

바이스가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오자 기에 눌리듯이 아가시아도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복도까지 밀려나서야 바이스가 팔짱을 끼며 문 앞을 버티고 섰다.

니가 쟤를 데려왔겠지만, 쟤도 더러운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을 거야. 그렇겠지?”

아가시아가 멍하니 바이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뒤로 들리는 소란에 시선이 향했다. 멜리나가 화장실에서 나왔다가 입을 틀어막더니 다시 화장실로 향했는데 그 뒤로 아르휀이 부랴부랴 따라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후에 이물질을 게워내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너도 저런 더러운 모습을 보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거야

바이스는 조용히 문을 닫은 뒤 벽에 기대어 섰다. 아가시아는 그저 문 앞에서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바이스는 오랜시간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대뜸 딱하고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자 문이 철컥하며 스르륵 열렸다.

대충 정리된 듯하네

아가시아가 조심스레 방안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런데 아가시아는 더 들어가지 않고 멀뚱히 현관 앞에서 섰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침실이 있어. 들어가라고 레즈비언양

레즈비언이라는 말에 기분이 이상했던 아가시아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가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 침실로 향했다. 복도에서 몸을 기대고 있던 바이스가 마치 아가시아를 본 것처럼 중얼거렸다.

어쭈, 이게 컸다고 이제 쳐다보네

 

아가시아는 바이스가 말한 대로 거실을 지나 안쪽의 침실으로 향했다. 문에 다가선 아가시아는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는데, 갑자기 딱하고 손가락을 튀기는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아가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문안으로 향했다. 그녀가 향한 시선의 끝엔 폭신해 보이는 침대 위에 눈을 감고 있는 멜리나가 보였다. 멜리나를 보살피던 아르휀이 아가시아를 보곤 자리를 피해주듯이 방에서 빠져나갔다. 아가시아는 슬그머니 멜리나의 곁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았다. 다리에서 봤을 때 보다 말끔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어느새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아가시아는 미소를 띄운 채 한참동안 그녀의 곁을 지켰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무엇이 길인지 무엇이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판단이 되지 않았다. 멜리나는 어지러워 필사적으로 잡고 서있을 만한 것을 찾았다. 그러나 손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고, 결국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풍경이 어둡게 변하더니 멀리서 매일 만났던 남자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멜리나는 어지러웠지만 필사적으로 땅을 딛고 일어나 휘청거리는 다리로 남자친구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남자친구에게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힘이 들었던 멜리나는 무릎을 잡고 고개를 떨궜다. 어지러워서 토가 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아내며 다시 발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옆에 처음 보는 여자가 서있었다. 멜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춰섰다. 멜리나의 시선이 향하자 남자친구는 미소를 보이며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와 팔짱을 꼈다. 불안한 심정이 휘감는 것을 참기 어려웠던 멜리나가 온 힘을 다해 달려 나갔다. 그런데 달리면 달릴수록 둘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멀어지기 시작했다. 멜리나는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멀어지는 남자친구를 보며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는데, 발목이 꺽이더니 볼썽사납게 바닥을 뒹굴었다. 무릎에서 피가 줄줄 나는 걸보며 짜증이 미친 멜리나는 구두를 벗어서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그녀는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눈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심정이 든 멜리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자신 혼자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서운 생각이든 그녀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웅크리며 펑펑 울어댔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눈물이 멎어올 때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멜리나니? 나는 말야...”

눈앞에 어떤 갈색코트를 입고 있던 사람이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고, 옆으로 머리를 묶고 있는 여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나는 · · · .. 앞으로 너의 일들을 도와주...”

여자가 말을 하다말고 흩날리듯이 사라졌는데, 연이어서 친했던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멜리나는 그들을 재빨리 붙잡고 싶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멜리나는 급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마구 소리쳤지만 듣지 못하는 듯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멜리나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멜리나는 그제야 사람들을 밝게 맞이했지만, 그녀가 다가가자 갑자기 사람들이 등을 돌리며 멀어졌다. 그녀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오라며 온 힘을 다해 마구 불러댔지만, 어느새 자신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멜리나는 서러움에 복받쳐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요함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멜리나는 쪼그려 앉아 훌쩍거렸다. 갑자기 멀리서 가로등이 툭 켜지는 소리에 멜리나의 시선이 향했는데, 어떤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멀뚱히 서있었다. 멜리나는 그녀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뒤늦게 누구인지 생각해 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멜리나는 이번 만큼은 잡겠다며, 만나겠다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힘겹게 일어났다.

... 아가... 아가시아...!”

멜리나가 그녀를 필사적으로 불렀지만 아무대답이 없었다. 멜리나는 다리를 절뚝대며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지친 나머지 고개를 떨어트리고 말았는데 사라졌을까 두려워 다시 고개를 일으켰다. 그녀가 그대로 있는 것이 보이자 멜리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 도착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아가시아가 대뜸 고개를 들더니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녀를 붙잡기 위해 멜리나는 이를 악물었지만 아가시아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갔다. 멜리나는 사라져 가는 그녀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여태 하지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아가시아!! 내가...! 내가..! 내가 미안해!!”

 

멜리나의 눈꺼풀이 조금씩 올라갔다. 그런데 다리 난간을 붙잡고 있을 때 아가시아가 있던 것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불길한 꿈까지 떠오른 멜리나가 미친 듯이 몸을 벌떡 일으켰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생전 처음 보는 침실이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아 밤낮이 구분되지 않았지만 아가시아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바닥으로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없던 탓인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멜리나가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온몸에 뻐근함이 찾아왔지만 지금이라도 되돌리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았던 그녀가 젖먹던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숙취로 인해 어지러움이 찾아왔지만 애써 메스꺼움을 참아냈다. 그녀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벽을 짚어가며 문밖을 나섰다. 거실에 다다르자 고급스러운 장식들이 눈에 띄었는데, 문득 어디서 보았던 느낌이 들었지만, 잡다한 생각을 애써 떨쳐버렸다. 힘겹게 벽을 짚어가며 현관에 다다른 멜리나는 주저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데 멜리나의 눈앞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복도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복도.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돌아오고 싶었던 장소였다. 멜리나는 그런 복도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멀뚱히 서있었다.

 


아침부터 엘로드가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책상에 볼펜을 두드리고 있었다. 책상 앞에 가지런히 놓인 종이엔 휘날리는 필체로 ‘Melina’라고 적혀있었는데 휘황찬란하던 종이의 빛깔은 온데간데없이 색이 바래져있었다. 엘로드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미간을 찡그리며 턱을 괬다. 그런 엘로드의 앞에 멜리나가 앉아있었다. 평소 명랑하고 밝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척한 얼굴로 죄인처럼 멍하니 책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로드는 멜리나를 보며 뭐라고 하려다 그만 두는 것을 반복했다. 문득 그는 에이리아와의 대화가 기억났다.

 

에이리아가 굳은 얼굴로 엘로드의 앞에 섰다. 엘로드는 화가 난 듯이 책상을 내리쳤다.

이게 장난으로 보여!! 게이지가 장난으로 보이냐고. 멜리나가 있던 근처에 블러드 게이지 출몰만 몇 번씩 발생했어!! 그런데도 연락도 안되고, 길드에도 오지 않고! 이건 제명감이야!”

씩씩대는 엘로드의 앞에서 에이리아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 나이대의 아이들이 한 번씩 겪을만한 방황같은 겁니다. 그녀가 돌아올 곳을 남겨두지 않는다면, 그녀는 정말 모든 것을 잃고 말겁니다.”

엘로드가 에이리아의 얼굴을 쓱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 그녀는 언젠간 돌아올 겁니다. 무슨 계기가 있던 간에 그녀는 전보다 더 성장할꺼구요.”

엘로드가 화를 삭히기 어려운지 연거푸 한숨을 내쉬다가 진정이 되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

“1년 안에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제명시킬 수밖에 없어. 게이지의 성장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동료들의 짐 밖에는 되지 않아. 아가시아에게도 그렇고..”

에이리아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녀는 1년 안에 옵니다

엘로드는 에이리아를 스윽 바라보다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네 직위를 건다거나 하는 소리는 하지마, 들어줄 생각도 없으니까

엘로드의 농담에 에이리아가 실소를 터트리며 그제야 굳어있던 표정이 밝아졌다.

 

... 1년이 지난 참이니... 이걸로 건수하나 잡았군...’

엘로드가 여전히 볼펜을 툭툭 두드리다가 어느덧 멈추었다. 생각이 바뀐 표정으로 이름이 적힌 종이를 멜리나가 볼 수 있도록 돌렸다.

슬립 포레스트 길드에 온 것을 환영하네 젊은이여. 앞으로 게이지의 삶은 힘들 것이라네. 그러니 능력에 매진해주게

멜리나의 수척한 얼굴에 힘없이 미소가 떠올랐다.

 

 

에르가 있던 반으로 멜리나가 다시 찾아왔다. 1년 만에 만난 멜리나를 만나 반가운 친구들이 그녀를 둘러싸며 여기저기에서 안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수척하고 차분해진 모습의 그녀였기에 전처럼 부둥켜안거나 하진 못했다. 그녀도 그럴 힘이 없는 듯 쓴 웃음만 지어 보였다. 그렇게 친구들과 이야기 하던 중에 멀리서 아가시아가 아는 체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멜리나는 어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한번을 돌아보지 않는 그녀에게 미안한 듯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문득 멜리나는 아가시아에게 말을 거는게 무서워졌다. 아가시아가 냉정하게 돌아설까봐 무서웠다.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소리를 할까봐 두려워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꿈에서 아가시아가 돌아서듯 자신을 돌아설까봐 결국 주저하고 말았다

그렇게 시끄러운 와중에 바이스가 등장했다. 아이들이 재빨리 제자리로 향했고, 멜리나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앉는 자신의 자리를 보며 감격에 빠졌다. 여태껏 이곳을 잊고 있었다는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아가시아는 멜리나가 왔다는 말에 얼른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힘들 때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기에 자신을 원망할까봐 두려웠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게 굴어버리면 전처럼 자신이 남들보다 뒷전이 되는 것이 두려워 마음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바이스가 교탁 앞에 서서 아가시아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아가시아가 딴생각 중인 것 같았던 바이스는 들고 있던 책을 살짝 훑어보았다. 책이 말끔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뜬금없이 아가시아의 머리위에 살포시 올려두었다.

, 인형팔이녀가 돌아왔으니, 본격적으로 해보실까

바이스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아이들이 긴장한 태도로 침을 꿀꺽 삼켰다. 바이스는 평소와 같이 아이들의 사이를 산만하게 배회하며 교육을 진행해나갔다.

, 공간에 대해 얘기해보실까. 공간은 모든 능력자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자공간, 파공간 같은 특수한 능력은 오직 공간능력자만 만들 수 있지

바이스가 교실의 뒤쪽을 향해 가다말고 방향을 대뜸 교탁 쪽으로 틀었다.

공간능력자 중에서도 크게 두 분류로 나눈다. 자공간 능력자와 파공간 능력자

바이스가 교탁 앞으로 가다가 학생들을 바라보며 획 돌아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단순히 산만한 행위 그 자체였다.

바로 내가. · · 간 능력자

바이스는 학생들에게 자랑하듯이 손가락을 자신의 가슴에 두드리는 제스쳐를 취했다. 사실 학생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바이스는 신경쓰지 않고 책을 올려두었던 아가시아의 옆에 섰다.

파공간은 들어봤을지 모르겠지만, 일반 공간과는 다르게 건물 내부의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시킨다. 그 말은 즉슨, 일반 공간은 만들어도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시키진 않지

바이스는 아가시아의 머리에 올려둔 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살포시 짓눌렀다.

이 책이 공간이면 이 안에 포함된 사람들은 전부 포함되지

바이스는 책을 밀어 아가시아의 정수리 부분에 밀착시켰다.

이렇게 반 이상이 나가면 포함에서 제외된다. 그건 일반공간도 마찬가지

바이스가 이번엔 책을 세워서 아가시아의 정수리로 옮겼다.

공간을 생성할 때 공간의 경계가 반을 넘냐 안넘냐에 달렸고, 창문 밖으로 몸이 걸쳐있으면 그게 반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포함이 결정된다. 옥상에 있으면 벽에 둘러쳐진 것이 아니니까 공간의 일부가 된다고 보면 되고

바이스가 책을 들고 뒷짐을 지며 교실을 다시 배회했다.

그런데 파공간은 그딴거 없어. 그냥 쳐지면 무조건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이야, 거 아주 엿 같은 공간이지

바이스가 갑자기 황당하다는 듯이 양손을 펼쳐 올렸다.

자빠져 자다가! 밥쳐먹고 있다가! 야동 보다가! 술을 쳐 먹다가! 공간 쳐지면 포함되는 거 아냐. 그거 아주 엿같은 거네?”

바이스가 멈춰선 채 기분이 나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 벗고 쉬는데 그러면 진짜 엿 같을 거 같은데

바이스의 말에 아이들이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보곤 오히려 그녀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 내가 내 집에서 벗고 쉬겠다는데. 뭐가 나빠? 너네도 물풍선이랑 덜렁이 있잖아

아니 쌤, 그게 핀트가 아니지 않...”

카오루가 중얼거리는 것을 잘라먹고 바이스가 열불을 토하기 시작했다.

내가 벗고 쉬겠다는데 왜 니네들이 부끄러워하냐고! 가뜩이나 파공간 능력자들이 아주 재수가 없는데

바론이 손을 슬며시 들었는데,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불편한 기색은 없어보였다.

, 근데 파공간 능력 차이가 건물 안으로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거 빼고 다른 것이 없지 않습니까?”

바이스가 바론의 말에 신난다는 듯이 손가락을 탁 튀겼다.

오 바로 그거야, 뱀 같은 바론군

?”

비록 능력이 뱀 소환이긴 하지만 뱀 같다는 말에 묘하게 기분이 나빴던 바론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지만 바이스는 가볍게 무시하고 설명을 계속했다.

파공간 안에 자공간이 있으면...”

바이스가 대뜸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정도로 강하게 앙다물곤 아이들을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공간이 먹혀

바이스의 말에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다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카오루가 대뜸 손을 들었다.

! 자공간은 권한이 있다면서요. 어차피 권한 있는 사람들만 들어오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카오루의 질문에 바이스가 눈을 땡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응 권한도 다 해제돼

!?”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커지자 바이스가 교탁 앞에서 책을 여러번 내리쳤다.

, , 자 시끄럽다. 파공간 안에 자공간이 있으면 먹혀버린 다음, 모든 권한이 해제되기 때문에, 어디서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한다. 그래서 내가 아주 파공간 새끼들을 엿같이 생각해요 아주

바이스의 험악한 욕짓거리에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너무 과했나라고 생각한 그녀가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먹혀도 걱정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뜬금없는 바이스의 대사에 아이들이 당황해했다. 저걸 개그라고 한거냐는 눈빛들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아니,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 내가 공간에서 물건을 만드는 능력은 남아있다는 거야. 걱정마라고, 내 공간에 들어오는 녀석은, 그 아주 그냥 처형이야 처형. 알겠어?”

바이스의 변덕에 진이 빠진 아이들이 맥없이 대답했고 바이스는 이어서 각자 공간을 만드는 연습을 실시했다. 맨 앞줄에 아가시아부터 맨 뒷줄의 바론까지 공간을 만드는 연습을 했는데, 유난히 에르가 바이스의 눈에 띄었다. 다른 아이들은 쉽게 공간을 만들어 냈지만, 에르는 공간 생성의 빛이 일어나다가 멈추는 것을 반복했다. 답답했던 바이스가 에르를 타박하며 공간생성을 시켰지만, 번번히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니, 너는 대체 잘하는 게 뭐냐?”

죄송합니다...”

아니, 애 옷도 뜯어먹어, 공간도 못 만들어. 너 대체 뭐니?”

바이스의 말에 아르휀이 뜨금하는 표정을 지으며 당황스러워 했지만 다행히 신경쓰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그사이 바이스는 말이 안된다는 표정으로 에르에게 공간생성을 연이어서 시켰다. 아무리해도 차도가 없자 답답했던 바이스가 대뜸 에르의 양손을 잡아 억지로 공간 생성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에르의 손 안에서 초록빛이 일어나다가 멈추는 것이 여전히 반복했다. 답답했던 바이스는 양손을 모아 공간의 빛을 일으킨 뒤 금새 주먹만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시범을 보였다.

아니! 능력자라면 이렇게 쉬운건데 넌 왜 이걸 못하니?”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어우 답답해!”

바이스가 바닥을 쾅쾅 울려대며 교탁 앞으로 다가섰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교탁을 빠르게 두드리며 갸웃거렸다.

공간을 못 만드는 게... 있을 수가 있나...? 하여간 이해가 안가는 꼬맹이네 저거

가뜩이나 맥콜라스의 비난을 받던 에르의 어깨가 더욱 아래로 쳐졌다. 바이스가 잔소리를 더 하려다 말고 멈춰서 입맛을 다시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되는 일이 없네 요새

바이스의 중얼거림에 뜨끔하던 에르가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것마저 답답했던 바이스가 결국 버럭하며 짜증을 냈다.

너 말고 임마. 너 때문이 아니라 임마! 어휴...”

짜증이 풀리지 않는 바이스가 책을 들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라고 짧게 읊조린 뒤 곧바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아이들이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을 토로하듯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멜리나는 자리에 앉아 멀뚱히 아가시아를 지켜보았다. 그녀가 일어나서 다가오기를 기다렸지만 아가시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짐을 챙겨서 일어섰다. 그런데 아가시아는 자신을 지나쳐 뒷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피하듯 앞문을 열고 나갔다. 평소대로라면 항상 같이 뒷문으로 나갔던 아가시아였다. 처참한 심정이 든 멜리나가 입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고개를 떨궜다. 꿈이 마치 현실로 다가 오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더 울고 싶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아 꾹 참으려했지만, 책상 위로 이미 물방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멜리나는 우는 것을 숨기고 싶어서 부랴부랴 책상을 닦아내며 짐을 챙겼다. 그사이 에르도 덩달아 기가 죽어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었는데, 그의 곁으로 아르휀이 다가왔다.

, 따라와

아르휀의 따라오란 말이 청천벽력으로 들리는 에르가 지레 겁먹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이 황당했던 아르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때리기야 하겠니? 걱정 말고 따라와

아르휀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교실을  나섰다. 아르휀이 나가는 것을 본 에르도 부랴부랴 그녀를 따라 교실을 나섰다. 그런데 복도의 중앙에서 바이스가 돌아서 있었는데 고개만 돌린채 시선이 에르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에 주눅이 든 에르가 조심스레 아르휀을 따라 바이스의 앞을 지나쳤지만 시선이 여전히 교실 쪽으로 멈추어 있는 것을 보니 그녀의 시선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님이 느껴졌다. 에르는 바이스를 뒤로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요새 뭐라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끄응...”

그사이 아가시아는 주저없이 로비로 향했다. 멜리나의 생각이 든 그녀가 제자리에서 멈춰섰는데, 뒤를 돌아보면 멜리나가 있을까 싶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르휀과 에르만 내려오는 것이 보여 안심하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시아는 아직 멜리나에게 할 말을 정리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아가시아는 멜리나와 마주치기 전에 서둘러 길드를 나섰다. 그런데 뒤따라서 멜리나가 2층의 계단 앞으로 헉헉대며 튀어나왔다. 어딘가에 아가시아가 있을까 싶어 부랴부랴 로비로 내려가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1년 동안 운동을 하지않아 체력이 떨어진 건지, 멜리나는 숨이 차오르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텅빈 로비에 혼자 주저앉아 있다보니 외로움이라는 감각이 멜리나를 휘감았다. 꿈에서처럼 아가시아가 떠나는 것같아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버렸어...”

 

 

세련된 사무실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선글라스에 붉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가 책상위에 다리를 꼬아올리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만히 응시만 했다. 대답도 안했는데, 얼마 후에 슬며시 문이 열렸다. 짧은 올림머리에 조끼와 청바지를 입고 있는 남자가 나타났고, 그의 얼굴엔 장난끼가 가득해보였다.

아이, 리더. 역시 있었네

리더라고 불린 붉은 모자의 사내는 아무말없이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런데 리더가 대답을 하던 안하던 조끼의 사내가 주절 거렸다.

일전에... 아이, 그 있잖아 일전에... 슬립포레스트근처. , 뭐 별건 아니라.. , 그녀석 조올라 멍청하게 당했다며? 키킥

조끼의 사내는 리더가 듣고 있는지 모르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웃어대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내가 좀 놀다 오려고

마음대로 해라

붉은 모자의 리더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오오 리더도 승낙 한거다?”

붉은 모자의 리더가 의자를 창가로 돌려 앉았다.

엘로드 그자식 잡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야 킥킥킥

그 이후로 잘나오지 않는다. 아쎈 그 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조끼의 사내가 책상 앞으로 다가가며 아이같이 신난 표정으로 주절거렸다.

혹시 모르잖아! 엘로드라도 나오면! 아쎈이 못한거 내가 다 잡아 죽이면! 나 엄청 쌔지겠지?”

알아서 해라. 죽이든 말든, 죽든 말든

좋았어, 여튼 놀러간다?”

조끼의 사내가 문으로 돌아서다 말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거기 들어간 새끼들의 정보는 받아도 되는거지?”

붉은 모자의 리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들키지만 않으면

좋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조끼의 사내가 나갔고, 리더라고 불린 사내가 있는 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 PORSCHE 2018.09.30 00:29
    멜리나와 아가시아가 예전처럼 베프가 되길 바라게 되네요. 저러다가 서로 오해가 커져서 돌아서게 될 까봐 걱정됩니다. ㅎㅎㅎ
    둘의 감정선이 매우 잘 드러나서 몰입하게 되네요. 매번 혼만 나는 에르가 애처롭긴 하지만 이전에 사건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조금 애처롭네요. 어서 빨리 능력발전이 있으면 합니다.
    적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했네요.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 같아 기대됩니다.
    이번 편은 인물들의 감정 변화가 잘 나타나서 흥미롭네요. 예민한 감정들이 나중에 트러블 일어나게 되지 않을지 주의깊게 봐야할 것 같습니다. 재밌게 읽었으니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 반딧불 2018.09.30 10:23

    감정선에 몰빵한게 잘드러나는것같아 기분이 좋네요 ㅋㅋ
    에르는 아직 어리니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

    장문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 SKEN 2018.10.02 01:11
    감정선 표현이 너무너무 좋은 이번 편의 내용이었습니다.
    아가시아의 심리, 멜리나의 심리. 메인 이야기를 쥐고 있는 두 인물의 심리상태가 표현이 잘되서 좋습니다.
    특히나 멜리나의 심리를 좀더 심층적으로 묘사하는 부분, 인물의 심층심리를 꿈으로 표현하는 구성이 매우 좋네요.
    그리고 예전부터 느낀거지만 장면과 장소가 전환되는게 아주 두드러지고 이로 인해
    시원시원한 전개감이 더 잘느껴지는듯 합니다.
    중후반부 멜리나와 아가시아의 심리 묘사에서 서로를 생각하는건 공통적이지만
    서로에 대한 방향성이 엇갈리는 구성과 내용은 마치 로맨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간의 오해 같은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부분이 반복되고 과도하면 질리게 만들지만 분위기로 보아 다음화에는 결판이 날것 같으니,
    딱 필요한만큼 적절하다고 생각되네요.
    메인 스토리가 멜리나와 아가시아 이면서도 소설 전체 핵심 스토리에 관련된 내용들을 밑으로 하나둘씩 깔아놓는
    것도 꼼꼼하게까지 느껴는군요. 마지막에 나온 빌런은 멜리나와 아가시아의 관계를 매듭지어주는데 계기를 만들어주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군요. 다음편을 기대합니다.
  • 반딧불 2018.10.02 01:34
    극찬 아끼지 않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ㅋㅋㅋ 댓글 짱짱 완전 좋습니당
    이번화에 대한 주요 포인트가 잘 나타난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