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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용 스토리는 아닙니다

어떤 전개든 이유가 있습니다!

피드백은 항상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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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e_index.jpg


6. 멜리나와 아가시아(1)

 

어둠이 깊게 깔린 밤. 별을 수놓은 듯한 빛이 도심의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도심의 한복판에 거대하고 반투명한 초록빛의 공간이 이질적으로 우뚝 서있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 공간에 닿는 사람들은 그냥 통과할 뿐이었지만 능력자들의 눈에 공간의 안에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순간 빛이 일어나기도 하고 무기가 서로 충돌하며 일으키는 쇳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려왔다. 근처 건물의 옥상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르가 능력을 사용하게 된 3년 후인 이제 20살 갓 대학생이 된 다니카, 지크가 앞에 서서 공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뒤로 16살이 된 에르와 처음 보는 몇몇의 게이지 능력자들이 줄을 서있었다.

검은 트렌치코트에 마른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가 아이들의 앞을 배회하며 에르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것은 실제 상황이다. 실제로 블러드 게이지 능력자들이 다수 있고. 그것을 제압하려 너희 선배들이 투입되어 있는 상태다. 전장의 위치와 적의 능력을 파악해서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쓸지 빠르게 판단한 뒤 협동력을 통해 빠르게 적을 제압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피해자들을 구할 수 있다

남자는 에르를 매섭게 내리깔아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특히 효율없이 매체가 필요한 능력자들은 더 집중하길 바란다

꿀꺽...”

남자는 아무래도 게이지를 막 배우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람인 듯했다. 앞으로 전장으로 나설 아이들을 위해 현장의 분위기를 관찰을 하러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현장을 교육하는 사람의 태도는 묘하게 에르를 못 마땅해했다. 누가 봐도 에르를 타박하는 것이 분명했기에 에르는 기죽은 듯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가가 밀집한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의 추격에 몸을 피하던 검은색 포니테일의 여성 능력자가 그림자가 드리워진 낡은 상가 안으로 몸을 숨겼다. 여자는 상가 복도의 안쪽으로 들어가 코너 쪽에 몸을 숨긴 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특성의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건물의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얼마 후 남자의 발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지며 상가에 진입을 알렸다. 내부가 어두웠기 때문에 남자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귀를 쫑긋 세우며 복도 깊숙히 진입했다. 남자의 발걸음 소리만이 적막하게 들렸는데 그 소리는 점차 여자에게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자는 잔뜩 긴장한 채 손바닥을 넓게 펼치자 손바닥보다 다소 큰 물풍선이 생겨났다. 상대의 위치를 먼저 알고 있기 때문에 사각지대에서 먼저 공격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여자는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냉큼 튀어나갔는데 예상외로 적은 가까이 와있었다. 화들짝 놀란 여자가 물풍선을 재빨리 던지려 했고, 남자는 칼을 쥔 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남자의 옆에서 갈색 머리칼을 땋은 여자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남자의 다리를 냅다 걸었다. 균형을 잃은 남자가 바닥으로 꼬꾸라졌고 포니테일의 여자가 그의 얼굴에 물풍선을 냅다 던졌다. 물풍선이 남자의 얼굴에 닿자마자 산화하듯 폭발했다. 남자는 고통스러운 몸짓으로 얼굴을 붙잡은 채 뒹굴었는데 그사이 갈색머리를 땋은 여자가 후라이팬으로 서슴없이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추욱 늘어졌지만 숨소리는 들리는 것을 보니 기절한 모양이었다. 포니테일의 여자는 한숨 놓는 표정으로 주저앉아 갈색 머리머리를 땋은 여자에게 물었다.

아가시아, 작전 괜찮았어

갈색 머리칼을 땋아서 가슴 앞으로 늘어트린 아가시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는데 어두웠기 때문에 마르셀에겐 보이진 않았다.

마르셀... ... 사살, 반드시...”

말은 그래도 어떻게 죽여! 사람인데! 이것도 살인이란 말야!”

그런데, 쌤이... 블러드 게.. 안 죽이면, 피해자, 속출

그렇게 말하지 말고 너가 죽여봐 그럼!”

마르셀이 허리춤에 있던 과도를 신경질적으로 아가시아의 발 앞에 집어던졌다. 적을 사살하라는 지시에 들고 있던 무기인 것 같았다. 마르셀은 다소 흥분한 듯 보였지만 아가시아는 차분하게 단검을 주워서 쓰러진 남자를 응시했다. 그런데 아가시아도 배운대로 해보려 했지만 선뜻 행동할순 없었다.

것봐, 이게 그렇게 쉬운 거 같아?”

으으....”

아가시아가 오줌이 마려운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과도를 쥔 채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상가의 입구 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 거기 있니?!”

어떤 남자의 외침에 시선이 돌아간 둘은 상가가 울리도록 크게 대답했다. 그 외침에 남자가 펜싱검보다는 살짝 두께가 있는 플뢰레를 든 채 부랴부랴 둘에게 달려와 물었다.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어?”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네라고 대답했지만 주변이 어두웠던 덕분에 움직임만 살짝 느껴졌다.

멜리나는? 오늘도 안 왔어?”

아가시아가 조용히 끄덕였지만 남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마르셀에게 물었다.

적은? 사살했어?”

롤랑선배, 도저히 못하겠어요...”

롤랑이라고 한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게 적이라고 판단하자마자 주저없이 등에 플레뢰를 찔러 넣었다. 쓰러져있던 남자는 고통스럽게 신음을 흘리다가 축 늘어졌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며 두 여자는 겁먹은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롤랑은 두 여자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플레뢰를 뽑아냈다.

이 녀석들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너희들이 이 녀석들을 제대로 처리해두지 않으면, 이 녀석들은 동료들에게 위협을 가할거야. 잊지마! 죽이지 않으면 피해자만 늘어나! 살의에 가득 찬 녀석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야! 익숙해져야 할 거야!”

롤랑은 돌아서서 나가려다 아가시아가 들고 있는 후라이팬이 신경 쓰였는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딴 거 들고 다니지 말라고! 블러드 게이지가 장난처럼 보이냐! 차라리 칼을 들고 다녀! 젠장!”

롤랑이 말을 마치자마자 상가를 나서며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누군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줄 알아?”

그의 뒤를 보며 둘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보니 롤랑이 찌르고 간 시체로부터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둘은 소름이 끼친 나머지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움직이기도 전에 밖으로부터 롤랑의 외침이 들려왔다.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꺼야! 다른 동료들 지원해야지! 빨리 안 움직여?”

!”

...”

롤랑의 다그침에 둘이 부랴부랴 상가 밖으로 이동했다. 아가시아는 거리로 나와 멍하니 멈춰서서 조용히 읊조렸다.

멜리나...”

마르셀이 롤랑의 뒤를 쫓다가 아가시아가 따라오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가시아가 여전히 상가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기에 마르셀이 그녀를 향해 외쳤다.

! 뭐해! 빨리와!”

아가시아는 그저 조용히 끄덕일 뿐이었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바가지 머리의 소년의 얼굴엔 장난끼가 가득했지만, 상대를 보는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상대가 일본도를 들고 달려드는 것을 보며 장난끼 어린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의 손에 들려진 150cm의 곧은 장검을 마치 장난감 다루는 것처럼 덤벼드는 상대를 향해 위협하듯이 휘둘렀다. 눈가에 붉은끼가 맴도는 상대에게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소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휘둘렀던 반동으로 검을 허리 안쪽으로 돌린 뒤 빠르게 횡으로 휘둘렀다. 거리가 다소 있었음에도 검신이 길었던 덕분에 상대의 복부를 그었지만 깊숙이 상처를 주진 못했다. 상처를 입어 화가 난 상대가 일본도를 맹렬하게 내리그었는데, 소년은 장검을 들어 가볍게 막은 뒤 양손으로 고쳐 잡아 밀어내며 적의 일본도를 튕겨냈다. 상대에게서 빈틈이 생기자마자 소년은 빠르게 상대를 향해 사선으로 휘둘렀는데, 검이 어깨에 박히며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상대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피해는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본도를 들어 찔렀다. 그러나 소년은 어깨에 박힌 검을 빼내듯이 내리그으며 찔러 들어오는 일본도를 쉽게 튕겨냈다. 그 반동으로 생긴 힘을 이용해 주저없이 적의 목을 수평으로 베었다. 그러자 상대의 목에서 피가 분수같이 뿜어져 나오며 맥없이 쓰러졌다.

휘유

소년은 한숨을 내쉬듯이 휘파람을 불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도심의 사거리에서 전투를 마친 소년을 향해 롤랑이 다가오며 칭찬했다.

역시 그 아버지의 아들인가. 늘 봐왔지만 대단하네 카오루

헤헷, 이게 다 아버지의 덕이죠

카오루가 환한 웃음으로 롤랑을 맞았다. 피가 낭자한 카오루의 주변은 처참했지만 그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곤 롤랑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너는 이제 정식 게이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하핫, 과찬이세요

그런데, 다른 팀은 어디 있지?”

카오루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에 2팀이 있지 않을까 한데요

그래 알았어

롤랑은 카오루가 알려준 방향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카오루도 지원을 가고 싶었지만 먼저 온몸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외쳤다.

저도 곧 따라갈게요!”

카오루가 피가 잔뜩 문은 장검을 슬쩍 보곤 허공으로 던졌는데, 장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카오루는 몸을 닦았던 손수건을 보곤 냄새를 슬쩍 맡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피비린내는 언제 맡아도 익숙해지지가 않네. 클리어하면 돌아오겠지... 끝나고 빨리 애니보러 가고 싶다

카오루가 궁시렁 대고 있을 때 곁으로 마르셀과 아가시아가 다가왔다. 시체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데다가 카오루의 몸과 얼굴 이곳저곳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곤 마르셀이 얼굴을 찡그렸다.

... 토할 거 같애...”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물풍선 좀 던져봐

카오루의 말에 마르셀이 곧바로 손바닥에서 물풍선을 만들어낸 뒤 그의 얼굴에 냅다 던졌다.

너 폭발시키면 죽...”

카오루가 말을 다 하기 전에 물풍선이 그의 얼굴에서 터지며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카오루는 하필 던져도 얼굴에 던지냐라는 표정으로 마르셀을 응시했는데, 그 모습이 웃겼던 그녀가 깔깔대며 물풍선을 하나 더 만들어냈다.

아하하! 완전 웃기네

그러니까 이번에 제대로 던...”

카오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풍선이 다시 카오루의 얼굴에서 터졌다. 심지어 물이 입안에 들어갔는지 물을 주루룩 내뱉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 이런 시체 있는 데서 웃고 있다니... 나도 미쳐가나 보다

익숙해져야지...”

카오루가 얼굴과 옷에 물을 털어내며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는데, 마르셀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익숙해지라니. 너도 선배들이랑 똑같구나?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익숙해지겠어

아가시아가 또다시 흥분하는 마르셀을 보더니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마르셀이 아가시아를 돌아보았는데, 조용히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사이 카오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클리어하면 없어져. 이 사람들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조차 몰라. 우리가 이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나나 너희가 저 꼴이 되고 말 거야

카오루가 손을 위로 들자 허공에서 장검이 빠져나오며 손에 가볍게 안착했다. 적을 상대할 때 묻었던 피들은 온데간데없이 말끔했다.

난 그 꼴 못 봐. 저들을 죽일지언정, 나는 동료들을 지키는 것을 선택할거야

카오루는 그 말을 끝으로 롤랑이 갔던 방향으로 달려갔다. 마르셀은 카오루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응시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잔인함에 물드는 거니... 아니면 사람이길 포기하는 거니...”

아가시아가 풀이 죽은 마르셀의 등을 토닥였다.

카오루, 강해... 우리... 약해

마르셀이 아가시아와 눈을 맞추었다. 마르셀은 아가시아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말없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자리를 이동했다.

 

롤랑은 광장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카오루의 말대로 2팀 인원이 33으로 교전하고 있었는데,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롤랑의 근처에 있는 소년이 적의 충격으로 땅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사내는 상대가 주저앉은 틈에 칼을 내려치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롤랑이 재빨리 달려들어 플레뢰를 내밀며 가로막았다. 화들짝 놀란 사내는 거리를 두며 물러났고 롤랑은 소년을 보호하듯이 가로막았다.

멍청하긴! 위험하면 도망을 치던가 해야지!”

롤랑은 소년을 다그치곤 곧바로 적을 향해 플레뢰를 내밀며 자세를 갖췄다. 롤랑은 사내가 소년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즉시 플레뢰를 날카롭게 찔러 들어갔다. 사내는 찔러 들어오는 얇은 플뢰레를 막는 방법을 몰라 그저 뒤로 물러나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플레뢰가 여러번 쇄도하는 것을 피하다가 칼로 내리쳤다. 롤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플레뢰를 쏙 당겼다가 사내의 가슴에 플레뢰를 찔러 넣었다.

커흑

플뢰레를 가슴에 정통으로 찔린 사내가 고통에 찬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롤랑은 사내를 놓치지 않고 따라붙으며 플레뢰를 가슴에 옥죄였다. 고통에 가득 찬 사내가 이성을 잃고 칼을 휘둘렀지만 당황하면 허점이 많은 법이었다. 롤랑은 상체를 뒤로 빼며 가볍게 피한 뒤 번개같이 그의 오른팔에 플레뢰를 다시 찔러 넣었다.

크하악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어깨에 검을 찔린 덕분에 칼을 손에서 떨어트리자마자 주인을 잃은 무기가 증발했다. 사내는 손아귀에서 무기를 다시 소환하여 대응하려 했지만 그보다 빠른 플레뢰는 이미 그의 목을 관통하고 있었다.

커걱...! 커걱...!”

사내는 목에서 차오르는 피를 역류하듯이 뿜어내다가 이윽고 축 늘어졌다. 롤랑이 플레뢰를 빼내자 사내는 잠든 듯이 무너지더니 목과 입에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척봐도 몸집이 상당한 사내가 아군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족히 2.5m는 되보이는 사내가 몸의 크기에 걸맞는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검신이 두텁고 검날받이가 없는 검이 족히 2m는 돼보였다. 사내는 육중하게 검을 휘두르며 아군들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롤랑이 보기에도 섬뜩해보였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아군이 당할 수도 있기에 롤랑은 주저하지 않고 사내의 측면으로 달려들었다. 그걸 눈치 챈 사내가 롤랑이 덤벼들지 못하도록 대충 검을 휘둘러 댔다. 그런데 생각 외로 사내의 검이 길었던 탓에 롤랑의 플레뢰가 육중한 검과 부딪치며 맑은 쇳소리를 냈다. 사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롤랑의 손아귀에서 플레뢰가 떨어져나가며 힘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플레뢰가 날아가면서 롤랑의 손가락이 꺾인 탓에 그는 고통스러운 듯 손아귀를 붙잡았다. 그러나 사내는 롤랑이 쉴 틈을 주지 않고 검을 냅다 휘둘러댔다. 덕분에 롤랑이 쉬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며 적의 공세를 피하기 급급했다. 롤랑은 간신히 뒤로 물러나며 멀리 있는 떨어져있는 플레뢰를 힐끔 보았다. 롤랑의 시선이 닿은 무기는 곧바로 증발하며 사라졌고 그의 손아귀에서 다시 쥐어졌다. 그러나 손가락이 욱신거리는 통에 손아귀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선배로써 후배들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롤랑은 어거지로 플레뢰를 쥔 뒤 적의 공세에 대응했다. 그런데 막상 롤랑도 쉽사리 무기를 맞댈 수 없었다. 잘못 맞대다간 방금과 같이 플레뢰를 떨어트릴 것 같은 데다가 손아귀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훼법은 있었다. 적이 육중한 탓에 움직임이 둔했기 때문이다. 롤랑은 슬금 공격하려는 척을 했는데, 사내가 멍청하게 맞서듯이 매번 무기를 휘둘러댔다. 사내가 날카롭게 휘두르는 게 아니라 대충 휘두르는 것을 파악한 롤랑은 사내의 측면으로 돌아가며 큰 동작을 유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롤랑이 측면으로 사라지자마자 사내가 돌아서더니 검을 크게 휘둘러 댔고, 동작이 컸던 덕분에 사내의 어깨에 빈틈이 생겨났다. 롤랑은 이때다 싶어서 서슴없이 플레뢰를 찔러 넣었다.

아뿔싸!”

롤랑은 손에 힘을 제대로 넣지 못하고 맥없이 플레뢰를 놓치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러오는 사내를 보며 섬찟한 느낌이 든 롤랑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보도블럭이 튀어나와있는 것을 보지 못한 롤랑이 휘청거리며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동시에 사내가 휘둘러오는 검에 롤랑의 손이 직격했고 팔 전체가 춤추듯 튕겨져 나갔다.

크윽... 이런 제길...”

손에 닿은 충격에 롤랑이 손을 붙잡으며 바닥을 굴렀다. 롤랑은 대충 주저앉아 감싸 쥐고 있던 손을 조심스레 펴보았다. 손에 피가 가득했는데, 손가락이 꺽인 차원과 아니라 반이 뜯겨져 날아가 피를 뿜어내고 있었기에 고통보다는 플레뢰를 더 이상 쥘 수 없게 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정신이 번쩍든 롤랑에게 뜯겨져 나간 손의 고통이 조금씩 조여들기 시작했다. 먼저 몸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한 롤랑은 슬금 몸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공격능력을 상실한 롤랑을 보며 사내는 코웃음을 치더니 도망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롤랑은 손을 부여잡고 있다가 달려드는 검을 보곤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가뜩이나 손의 상처가 심각한데 보도블럭 위를 구르자니 몸까지 쑤셔왔다. 다른 한쪽에서 응전 중인 사람도 처리해야하는데 아무것도 못하게 된 그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다.

제기랄... 이럴 때...’

롤랑이 덤벼드는 상대를 보며 도망칠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찰나에 카오루가 튀어나오며 사내를 가로막았다. 절박한 롤랑에겐 카오루가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선배! 여긴 제가 막을테니 일단 피해있으세요!”

,그래 어쩔 수가 없다. 지금은

후배에게 현장을 맡기는 롤랑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썬 방법이 없었다. 사내를 막아선 카오루를 뒤로 하고 롤랑은 먼저 자리를 피했다. 공격능력이 없다면 자신이 있어도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 내가 상대해주마

카오루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사내를 응시했다. 체급차이는 상당했지만 검술에는 자신있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카오루가 우스운듯 코웃음 치더니 곧바로 그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카오루는 자신만만하게 사내의 검을 맞댔다. 그런데 챙하는 소리와 함께 생각이상으로 육중한 검은 카오루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사내의 검이 전해주는 충격에 카오루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자신의 검도 길고 큰 편에 속했기 때문에 적의 검에 대항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사내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 빌어먹을 블러드 게이지 녀석들...”

카오루는 일단 뒤로 물러나며 빈틈을 노리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 이러니 롤랑 선배의 펜싱이 안먹힌건가

카오루가 양손으로 검을 잡고 사선으로 들어 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사내도 덩달아 검을 휘둘러올 자세를 취했는데, 반대로 카오루가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자 사내가 카오루를 향해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고 카오루는 칼을 맞대는 척하다가 검을 흘려보냈다. 사내가 검을 끌어올리며 휘두를 것을 예상하고 측면으로 빠지는 척을 하다가 뒤로 물러났다. 사내는 다시 검을 끌어오며 카오루에게 수평으로 휘둘렀는데, 큰 동작을 유도한 것이 롤랑이 하려던 방법과 비슷했다. 카오루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검을 사선으로 베려 했지만 롤랑이 한번 했었던 수였기에 사내는 쉽게 당하지 않았다. 사내는 재빠르게 카오루를 어깨로 들이받았고 예상치 못한 몸통박치기에 카오루가 튕겨나며 휘청거렸다. 그사이 카오루의 측면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살기가 전해져왔다. 그는 장검을 재빨리 아래로 내려잡으며 사내의 검을 막아냈는데, 그 충격이 어마어마한 나머지 챙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 튕겨져 나가며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거구의 사내의 힘을 막아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크으... 아직 수련이 덜 됐네...”

카오루는 장검을 지팡이 삼아 딛고 일어나 쑤시는 몸을 뒤로 하고 장검을 고쳐 잡았다.

빨리 가서 애니봐야 하는데

사내가 다가오며 육중한 검을 어깨에 걸쳤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인해 다리가 풀려있는 상태인데다가 몸이 저려 와서 도망친다고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특히나 카오루는 의기양양한 사내의 미소가 왠지 재수가 없었다. 한 합으로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카오루는 장검을 발도하듯이 고쳐 잡았다.

! 죽음을 결정한 건가?”

아니, 이 한 방으로 네놈을 끝장 낼꺼거든. ~이이이이기!!! 거든

블러드 게이지의 좋은 영양분으로 써주지

카오루가 긴장한 듯이 검을 움켜쥐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었지만 닦을 여유조차 없었다. 잘못 공격한 순간 자신의 목이 달아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내가 점차 다가오는 모습에 카오루가 상대의 공격을 상상했다. 어떤 발이 먼저 나올 것인가, 시선은 어디에 두는 것인가, 어깨는 어디가 먼저 움직이는지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빠르게 판단해서 상대를 끝장내야 했기 때문이다. 서로 지근거리에 다가오자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에 사내의 얼굴에 물풍선이 날아왔다.

크앗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물풍선이 산화하듯이 폭발했고 그 열기에 사내가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내는 재빨리 손등으로 눈을 비벼댄 뒤에 정면을 응시했다.

같잖은 짓을

마르셀의 물풍선이 폭발했지만 덩치가 큰 만큼 사내에겐 크게 데미지가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내가 눈을 뜨자마자 마르셀이 앞에서 메롱을 해대며 약을 올렸다.

멍청한 블러드 게이지 아저씨! 여기 봐라 여기! 내가 던졌지롱!”

멍청한 년이!”

피해!”

사내가 주저없이 마르셀에게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마르셀은 사내와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지만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보도블럭이 박살났는데, 사내의 힘을 체감한 아이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틈을 타서 카오루도 사내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졌다. 사내는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둘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이길 실력도 없는 주제에 앞에서 알짱대는 모습이라니!! 푸하하 너희게이지들은 다 쫄보인가보군

사내를 앞에 둔 카오루는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대뜸 마르셀이 빙그레 웃었다.

멍청하면 약도 없을걸?”

크큭 뭐? 죽을 때가 되니 정신이 나갔...”

[푸욱]

사내의 등에 칼이 찔리는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큰 상처는 아니었는지 쓰러지진 않았지만 고통을 숨길 수는 없었다.

크윽! 누구냐!”

분노에 찬 사내가 후방으로 검을 휘둘러댔는데, 아무도 없었다. 당황한 사내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뭐하냐? 멍청아?”

마르셀의 도발에 사내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화가 난 사내는 곧바로 마르셀에게 향했는데, 그녀는 무서운 기색없이 씨익 웃고 있었다. 사내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옆구리에 칼이 박히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사내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했지만 영문을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했다. 그러자 사내의 뒤에서 누군가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발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는데,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 뭐야!”

뭐하냐니깐? 멍청씨?”

크으... 기다려라...”

사내가 풀리려는 다리 힘을 억지로 끌며 한발자국 나아갔다. 그러나 두발을 채 가지 못하고 다른 옆구리에 칼이 박혀 들어왔다. 영문을 알 수 없이 공격당한 사내가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검을 마구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뭐야! 어디 있어! 이 개같은 것 빨리 나와라!”

검을 마구 휘둘러대다가 지쳐버린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아무도 없는데 옆구리와 등에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네 놈들이냐? 무슨 게이지냐? 빌어먹을 것들! 빨리 죽여버려야...”

[푸욱]

사내에게 다시 등 뒤에서 서늘한 쇠의 감촉이 느껴졌다. 칼에 찔리자마자 뭔가 툭 끊기는 느낌이 들었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며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사내의 하체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이런 개새끼들아!!!”

사내의 앞으로 그제서야 아가시아가 나타나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피 묻은 과도를 붙잡고 있었다. 아가시아는 울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안, 해요... 미안, 해요...”

이 개 버러지 같은 년이!!!”

사내의 눈으로부터 붉은 안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사내가 검을 집어 들고 아가시아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여전히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크아아아!! 이 버러지 같은 년이 감히!!!”

사내가 기어코 아가시아에게 검을 휘둘렀지만 닿지 않았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카오루가 장검의 날을 옆구리로 넘기며 움켜쥔 채 재빠르게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사내의 팔을 도움닫기 삼아 뛰어올라 어깨를 밟고 올라서며 등 뒤로 넘어갔다. 카오루는 사내의 등을 미끄럼틀 삼아 미끄러지며 장검으로 등을 내리 그었다. 고통에 찬 사내가 고개를 쳐올렸다. 어느새 달려든 롤랑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손에 쥔 플뢰레로 서슴없이 사내의 목을 꿰뚫었다.

왼손은 처음이지만!”

컥컥하는 소리와 함께 목에 피가 고여 거품을 일으키다가 사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롤랑이 플레뢰를 뽑아내자마자 사내가 기절하듯 추욱 늘어졌다. 다른 곳의 상황을 지켜보니 남은 블러드 게이지 능력자도 다른 동료들이 달려들어 처리한 상황이었다. 마음이 놓인 롤랑이 주저앉아 천으로 감싼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 아파 죽겠다... 이런 실수라니..”

상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카오루가 롤랑을 위로하듯이 말을 건냈다. 그러나 인상을 구기고 있는 롤랑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이 날을 계기로 내 실력을 다시 다듬어야 할 것 같다 크으...”

저도 당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두 남자는 같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처에 있던 아가시아도 그제서야 긴장이 좀 풀렸는지 조심스레 피 묻은 과도를 내려놓았다. 과도를 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손에 새빨갛게 자국이 남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르셀이 떨고있는 아가시아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너가 그래도 나보단 낫다

아가시아가 마르셀을 슬쩍 보곤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걸 보던 롤랑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곤 부끄러운듯이 말을 꺼냈다.

, 고맙다 아가시아. 마르셀.”

평소에 냉정했던 롤랑의 말에 두 여자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롤랑은 쑥스러웠는지 왼손으로 가렵지도 않은 관자놀이를 긁어대며 진땀을 흘렸다.

, 너희들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났을 지도 모르겠다. 당장 익숙해지지 않아도... ... ,훌륭한 게이저가 될 수 있을 거야

볼이 빨개진 롤랑이 두 여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먼산 보듯이 고개를 돌렸다. 롤랑의 칭찬에 기분이 나아진 마르셀과 아가시아도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멜리나는 대학교 간 뒤로부터 안나오는게 많아졌네?”

아가시아가 마르셀을 슬쩍 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멜리나 이야기를 하자마자 축처지는 아가시아를 보며 아차싶은 마르셀이 그녀의 목을 끌어당겼다.

괜찮아! 바쁜 거겠지 뭐, 능력자인데 어디 가겠어? 애초에 너랑 최강의 커플 아니었냐?”

아가시아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눈을 깜빡이다가 기분이 좋은 듯 마르셀을 보며 헤 웃었다. 말수가 별로 없는 아가시아의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다시 기분이 나아진 듯 보여서 마르셀도 마음이 편해졌다.

너도 참

그제서야 동료들 곁으로 엘라가 다가왔다. 항상 붉은색 드레스와 붉은색 구두를 신고 있어 유독이 눈에 띄는 엘라에 이목이 집중됐다. 고운 자태로 늘 그렇듯이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있었다.

근데 누나, 항상 궁금했지만 와인은 왜 들고 다니는 거에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카오루가 물었는데, 엘라가 보란듯이 와인을 한모금 가볍게 마신 뒤에 여유롭게 대답했다.

내가 와인을 좋아하잖니

그냥 술 중독자 아닌가요?”

마르셀이 엘라를 놀리듯 얘기했다. 그러자 엘라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하늘에 뻗었다.

그래, 내 능력들이 하나같이 술 중독인지라

엘라가 손을 뻗자마자 와인잔에서 와인이 솟구치며 하늘로 치솟았다. 와인잔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돼서야 엘라가 읊조렸다.

공간역전. 클리어. 엔드

 

엘라가 와서 상황은 종료되었고 모두들 길드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전투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미리 와있던 사람들이 고생했다며 반겨주었다. 아가시아는 도착하자마자 누군가를 찾아다녔는데, 원하는 사람을 찾지 못한 듯 처량하게 로비의 의자에 털썩 앉아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롤랑은 병실에 앉아 의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공간 클리어 덕분에 손이 돌아오긴 했지만 다쳤던 감각은 잊을 수 없는지 정신과적인 상담을 나누었다. 이번 전투는 실습적인 측면이 많았지만 예상외로 강한 적수가 있던 바람에 많은 피드백이 필요한 듯 보였다. 다음 실습팀이 나설 때도 문제가 되는 부분을 보안해야했다. 어느새 카오루 앞에 다가선 에르가 그의 영웅담을 듣고 있었다.

내가 몇 명을 처치했는줄 아냐? ! 누가 봤으면 바람의 검심! 켄신 그 자체였다 내가!”

, 그래서 그 끝판대빵 녀석은 누가 잡았어요?”

~아로... 내가! 아니라 아가시아가...”

카오루의 말에 밝은 표정으로 에르의 시선이 아가시아를 향했는데,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양손을 젓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아가시아 누나 대단한데요?”

에르의 뒤로 검은 트렌치코트에 안경을 쓴 마른 남자가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읊조렸다.

누가 대단하냐고 생각할 시간에 네 능력이나 다듬어놔라. 매체가 필요한 무기소환능력이라니. 쓸떼없이

남자의 타박에 에르가 움찔 거렸고, 남자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코트를 휘날리며 에르를 지나쳐갔다. 주눅든 기색이 역력한 에르가 불쌍한지, 카오루는 조심스레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맥콜라스쌤이 원래 좀 무뚝뚝하시잖아? 네가 이해해. 마음은 따뜻한 분이야

익숙해서 괜찮아요...”

갑자기 길드의 입구로부터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멜리나가 들어와서 모두들과 인사중이었다.

하핫! 미안해 여러분! 내가 말야, .. 그러니까 대학교를 가니 레포트도 있고? ... ... ,골반! 요새 골반이 좀 아파서.. 헤헷

멜리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다. 다들 왜 이제야 왔냐며 칭얼댔고 멜리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여기저기에 인사를 했다. 마르셀이 멜리나에게 다가왔는데, 정말로 골반이 아픈지 멜리나는 오금이 저린 자세로 불편해보였다. 이따금씩 다리를 모으다가 펴는 것을 반복했다.

? 정말 아픈가보네?”

,그래! 요새 많이 아파, 그러니까 미~

멜리나의 애교에 친구들이 미소를 보였고 한층 밝아진 분위기에 떠들썩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문득 오늘 전투에서 있었던 아가시아의 활약상이 생각난 마르셀이 신이 난 표정으로 멜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 그런데 멜리나! 그거 알아? 오늘 아가시아가...”

, 맞다 맞다! 나 지~인짜 미안한데에! 지금 가봐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럼 내일 보자아~”

아니, 멜리나!”

멜리나는 마르셀의 말을 다 들을 새도 없이 바쁜 기색을 보이며 길드에서 나갔다. 마르셀은 조금 황당했지만 얼마나 바쁘면 그러겠거니하며 넘기려다가 문득 시선이 아가시아에게 향했다. 아가시아는 멜리나가 자신을 찾아와주길 바랬지만, 쳐다보는 기색도 없이 나가는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나 멜리나가 나간 자리를 응시하다가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아가시아의 의중을 눈치 챈 마르셀이 아가시아에게 얼른 다가가 다독였다.

아가시아, 멜리나 정말 바쁜가봐, 그러니 저렇게 정신없이 나갔지. 요새 골반도 아프데

마르셀의 말을 듣던 아가시아가 그녀를 한번 보곤 억지로 미소를 보였는데, 누가 봐도 쓴웃음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든 마르셀의 표정도 영 좋지 않았고 에르는 아가시아의 옆에 앉아 단지 그녀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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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t : 다니카, 지크, 멜리나, 아가시아, 마르셀, 카오루는 나이가 같습니다

  • SKEN 2018.09.26 23:07
    3년의 세월이 흘렀군요. 마냥 전투에 능숙한 등장인물들의 모습보다는,
    대다수 등장인물들의 학교 모습이 독자들에게 남아있기에 저런 실전에서의 멈칫거림과 고민, 망설임 등이
    너무 잘 묻어나서 현실성있고 인물들 심리에 더 몰입하게 되어 좋습니다.
    전투씬도 섬세하고 세부적으로 잘 묘사해서 인물들의 동작이나 움직임, 전투 과정 등이 잘떠올라서
    묘사가 많은 것이 심하게 거슬리거나 하는 점은 거의 없어 좋습니다.
    정체 모를 공격에 당하기 시작할때부터 아가시아의 셀프 하이드 게이지가 떠올랐는데 역시나
    능력이 많이 발전 했네요.
    쥐새끼가 누구인지 궁금해할 독자들의 신경을 살짝 긁고 지나가는 맥콜라스.. 착쁜놈일지 쥐새끼일지는
    좀더 눈여겨 봐야겠네요.
    성인이 되어 폭풍..아니 질풍노도의 생활에 게이지 일을 게을리하며 다른 것들에 부쩍 관심이 많아져
    아가시아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지는 멜리나와 그로 인해 의기소침해지는 아가시아.
    학교 편에서 부쩍 붙어댕기며 껌딱지 처럼 있던 그녀들의 이후 관계 변화가 어찌될지
    에피소드 제목과 더불어 이후 내용이 기대됩니다~!
  • 반딧불 2018.09.26 23:11
    폭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항상 스켄님의 댓글에 활력이 넘칩니다
    늘 고맙습니다
  • PORSCHE 2018.09.26 23:59
    시간이 훌쩍 지났군요. 마주한 전투들이 이전에 봤던 마냥 활기찬 학생들의 분위기와 다르군요.
    그 때문에 남을 헤치기 꺼려하는 모습이나 도움이 되지 않는 자에게 더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늘 생각하지만 게이지 능력은 기상천외한게 많군요. 상상력이 부럽습니다.
  • 반딧불 2018.09.27 00:42

    항상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곤충! 인간에게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