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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 실패려나요?

도망치는 자와 미래를 보는 자는 2편으로 끝내려고 하다보니 분량이 엄청 많아진거 같습니다

3편으로 나누려니 너무 질질 끄는거 같아서 그냥 올렸습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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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e_index.jpg


3. 도망치는 자와 미래를 보는 자(2)


소녀가 무덤덤하게 에이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미래를 보는 자. 운명의 게이지(Fate Gage)를 가진 클로소라고 합니다. 저는 에이리아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서 기다렸습니다.”

미래를... 보는 자...”

자신을 클로소라고 소개한 소녀가 한치의 흔들림 없이 똘망똘망하게 에이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태도에 거짓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겐... 무슨 일로...”

일단 제 공간으로 가시죠.”

공간?”

클로소의 시선이 에이리아의 뒤편 하늘에 떠있는 자공간으로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간 에이리아가 흠칫 놀라 돌아보며 공간을 가리켰다.

저 공간?!”

에이리아의 말에 긍정하듯이 클로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을 조사하러 왔는데 공간의 주인이 나타났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에이리아가 질문을 쏟아내려는 찰나에 클로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제 것이 맞습니다. 먼저 이쪽으로

의아하게도 클로소가 가리킨 곳은 공간과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에이리아가 의문을 가졌지만 일단 말없이 클로소를 따르기로 했다. 에이리아가 클로소의 뒤를 따르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고, 문득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도 되는 것인가하고 의심을 가질 찰나에 여지없이 클로소가 고개를 돌렸다.

제 공간엔 저 밖에 없으니 안심하세요

... .. 그래...”

 에이리아는 문득 공간이 아닌데도 자신이 할말을 미리 알고 있는 것을 떠올리며 공간밖에서도 능력을 사용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말없이 가는 클로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에이리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여긴 공간도 아닌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아뇨. 당연히 쓰지 못합니다.”

그럼 내가 물어볼 말은 어떻게 안거야?”

에이리아씨가 하실 말을 미리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방금은 그냥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결과는 어쩌면 당연했다. 무미건조한 클로소의 대답에 에이리아가 무안한 듯 먼 산을 훑었고 클로소는 에이리아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으며 무심하게 산속을 나아갔다. 낙엽들을 밟아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울리며 인적이 드믄 산길 속엔 공기가 맑아 상쾌한 느낌을 훌쩍 넘겨 차디찬 느낌마져 들었다. 빛이 드리워지기 어려울 정도로 우거진 숲의 사이까지 진입한 클로소가 마침내 커다란 나무의 앞에 멈추어섰다. 그녀는 인기척이 있는지 주변을 훑어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모았다. 그러자 손 안에선 초록빛이 뿜어져 나오며 나무의 앞으로 공간생성을 했는데 특이하게도 공간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몸통이 일렁거리며 공간의 문만 생겨났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따라오는 것은 쉽지가 않죠. 특이나 요즘같이 흉흉한 시대에는 특히 말이죠.”

클로소가 스윽 에이리아를 돌아보며 에이리아가 걱정할 것들을 미리 짐작했다.

그러나 걱정마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미래를 보는 것뿐입니다. 어떠한 전투능력도 없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갈테니 따라들어오세요.”

알겠어.”

클로소가 따라오라는 눈빛으로 에이리아의 눈을 맞추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간의 문에 스윽 들어갔다. 클로소가 걱정말라곤 했지만 에이리아는 막상 자신있게 들어가지 못하고 고민했다. 무엇보다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자공간의 주인이라고 했는데, 들어가는 길은 반대 방향인데다가 처음 보는 형태의 공간의 문이었다. 더군다나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도 했다. 한참을 고민한 에이리아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굳게 다짐한 표정을 지었다.

... 설마 죽기야 하겠어?”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에이리아가 힘이 잔뜩 들어간 구둣발을 공간의 문 속으로 들이밀었다.

 

 

붉은색 문신 사내의 양손에서 타오르는 푸른색 불꽃이 매섭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기세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던 더스틴도 표정이 굳어지며 자켓의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더스틴이 갑자기 당황하더니 대뜸 주머니를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더스틴의 손아귀에서 나오는 구슬은 단 3개뿐이었다.

구슬통을 안챙겨왔다

더스틴이 현관을 나서다가 구슬통을 신발장에 올려두고 나오는 모습이 뇌리에서 스쳤다. 더스틴의 능력은 붐볼게이지(Boom ball Gage)였는데 구슬을 매체로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구슬이 필요했다. 더스틴의 부산한 행동에 엘로드가 흘깃 보더니 직감적으로 구슬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느끼곤 한숨을 내쉬었다. 루스만과 리키나는 공간능력자라서 보호까지 해줘야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스틴의 지원이 필요했지만 몇 번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든 순간 엘로드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다행히 엘로드의 능력이 잠을 재우는 것이었기에 적들이 섯불리 덤벼들지 못했지만 대치상황은 그리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엘로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선방필승인가

루스만!”

!”

엘로드가 사내들의 시선을 잠시 분산시키기 위해 루스만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그걸 눈치 챈 루스만이 엘로드의 일갈에 과장하는 몸짓으로 튀어나왔다.

하압! 공간 능력! 하압! 너흰 이미 죽어있다!”

긴장감이 도는 탓에 사내들의 시선이 손쉽게 루스만에게 쏠렸다. 상대가 한눈판 찰나에 엘로드가 재빨리 문신의 사내에게 손을 뻗었다. 머릿속에서 상대가 잠이 드는 것을 그렸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이가 문신 사내의 앞을 가로막으며 맥없이 픽 쓰러졌다.

잔재주를 부리는 군

문신의 사내가 손을 휘두르며 화염을 뿜어냈다. 다행히 상대의 동작이 컸던 탓에 엘로드 일행이 뒤로 물러나며 손쉽게 피했고, 적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찰나에 더스틴이 구슬하나를 꺼내 문신 사내의 발 앞으로 냅다 던졌다. 그러자 맹렬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아 오르며 엘로드 일행과 적들을 갈라놓았다. 그사이 루스만이 다급하게 엘로드에게 물었다.

마스터! 혹시 뭐 방법이 없어?”

그걸 니가 물어보면 어떡하냐!”

으아앙! 여기 잉여들만 둘이야!”

.. 구슬을 안챙겨왔...”

더스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행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살기를 느낀 더스틴이 몸을 움츠렸고 화가 잔뜩 난 리키나가 그에게 다가갔다.

구슬 몇 개 남았어?!”

.. 두 개..”

다른 걸로는 안 돼? 돌이나 뭐 그런 거!”

완벽히... 동그란 형태의 물건이어야 해...”

으아앙! 정말 이 멍청이!”

다들 내 뒤로!”

엘로드가 다급하게 일행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문신의 사내가 화염 속을 맹수같이 뚫고나왔다.  엘로드는 이 때다 싶어서 다시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문신의 사내가 가볍게 화염의 손을 치켜올리며 스파크가 일어났다.  엘로드의 초능력 형태의 능력을 막아내는 스파크였다. 초능력을 막아내자마자 자신의 할일을 다한 화염이 사르르 잠들었다.

초능력을 막아내는 방법을 아는 것인가..”

문신의 사내가 묵묵히 양손에 푸른 화염을 다시 일으켰다. 더스틴이 만든 화염이 마치 장막이 겉이듯이 사그라들었는데 공포스럽게도 각자 무기를 들고 전투태세를 갖춘 게이지 능력자들이 나타났다. 당장 적들이 달려들 기세에 더스틴이 시간을 벌어보고자 구슬을 내밀며 엄포를 놓았다.

오기만 해봐라. 이몸의 붐 볼게이지가 네 놈들을 전부 구운치킨으로 만들어 버릴테니까!”

구슬이 몇 개 없는 것을 숨기기 위해 더스틴이 먼저 허세를 부리기로 하고 그사이 루스만과 리키나가 허리춤에서 3단 호신봉을 꺼내 가볍게 휘두르며 착착착하는 소리와 함께 길이를 늘어트렸다.

이럴 때 정말 공간 능력자는 무능력하구만...”

시끄러

루스만의 힘빠지는 소리에 리키나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험악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올 리가 없었다. 전방위로 퍼지며 사각지대없이 압박하는 능력자들의 기세에 눌려 엘로드 일행이 조금씩 뒷걸음치면서 공터의 가장자리까지 내몰렸다. 창이나 도검 등 저마다 다른 무기를 들고 있는 적들의 모습이 마치 병장기를 든 군사들을 연상케 했고 전투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듯 문신의 사내가 튀어나가며 푸른 화염을 흩뿌리듯 뿜어냈다. 그러자 더스틴이 맞서서 화염을 향해 구슬을 내던졌고 맹렬한 폭발음이 일어나며 불기둥을 뿜어냈다. 그사이 루스만과 리키나가 창과 칼질을 해대는 상대에게 호신봉을 휘둘러댔다. 엘로드는 먼저 근처에 있는 상대들에게 손을 뻗었고 서너명이 기절하듯 우수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스만 쪽을 힐끔 보더니 동료들을 공격하는 적들을 향해 손을 뻗자 서너명이 우수수 쓰러졌는데 그사이 잠들지 않은 적들이 동료들을 열심히 깨우고 있었다. 능력으로 잠을 재우자마자 동료들을 깨우는 것을 보니 상대는 엘로드의 약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능력을 막아내기까지 하는 상대에 잠든 상대를 깨우는 적들이라니 엘로드의 능력에 대해 너무도 잘알고 있는 녀석들에게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엘로드는 우선 생각을 뒤로하고 동료들을 깨우지 못하도록 적들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갑자기 문신의 사내가 불길 속에서 튀어나오며 엘로드의 초능력을 막아냈다

[파직]

엘로드가 양손으로 연신 손을 뻗으며 문신의 사내를 잠재우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는데 매번 스파크가 일어나며 화염의 손으로 초능력을 막아냈다. 초능력을 어디로 쏘는지 정확하게 막아내는 문신의 사내의 모습에 엘로드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능력을 낭비한다면 상황이 최악이 될 것이라 생각한 엘로드가 필사적으로 양손으로 초능력을 쏘아냈고 그것을 막아내려 문신의 사내가 양손을 내민 순간 더스틴이 마지막 남은 구슬을 냅다 그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뒤늦게 눈치 챈 문신의 사내가 황급히 구슬을 막기위해 손을 내밀었고 그사이 엘로드가 비어있는 그의 옆구리를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잠이나 자라!

더스틴의 구슬이 문신의 사내에 명중하며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화염 속에서 문신의 사내로 보이는 인영이 휘청거리며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사이 루스만은 동료를 깨우고 있는 적들을 향해 달려가 호신봉으로 얼굴 냅다 후려갈겼다. 호신봉을 맞은 적이 피를 뿜어내며 고꾸라졌고 리키나도 서둘러서 잠에 취해 휘청거리는 적들을 호신봉으로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루스만과 리키나가 공격한 상대들이 여기저기에서 쓰러졌지만 적들은 휘청거리는 몸을 다시 일으켜세웠다. 아무래도 호신봉은 살상용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몇 번 후려치는 것으론 상대를 쓰러트릴 수 없었다. 루스만과 리키나가 상대하는 적들을 향해 엘로드가 손을 뻗었고 휘청거리던 적들이 다시 픽 쓰러지며 잠에 빠져버렸다. 능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엘로드마져 휘청거리며 가쁜 호흡을 달랬다.

... 대충 정리 된 건가?”

루스만이 옷을 털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능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기력이 떨어진 엘로드에게 다가가 물었다.

다친데는 없는거야 마스터?”

엘로드가 고개를 숙인채로 호흡을 가다듬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다급하게 루스만을 잡아당겨 감싸안았다. 불길 속에서 쏘아져 나온 푸른 화염이 으르렁거리며 엘로드의 등을 강타했다.

크아

엘로드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동료들이 엘로드를 붙잡아주며 상태를 살폈는데 옷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피부가 녹아내린 자국이 동료들을 섬찟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더스틴은 동료들을 보호하고자 상대를 가로 막아섰다.

네 놈의 능력으로는 나에게 피해 입힐 수 없다

...!”

더스틴이 일으켰던 화염 속에서 문신의 사내가 유유히 걸어나왔다. 엘로드와의 협공으로 쓰러트린줄 알았던 상대가 상처하나 없이 나오는 모습에 더스틴의 표정이 심각하게 상기됐다. 더스틴의 붐 볼 능력이 상대와 마찬가지로 화염계열의 능력이라서 통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더스틴에게는 더 이상 구슬이 없었다.

그래 네놈의 능력은 인정해주지... 그럼 한 10100개 던지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데?”

더스틴은 구슬은 없지만 재킷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는 제스쳐를 취하며 허세를 부렸다. 구슬을 꺼내는 척을 했는데 다행히도 더스틴의 허세가 먹혀들어간 것인지 상대가 진입해오진 않았고 붉은 문신의 사내 뒤로 몇몇이 부산하게 동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적들이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루스만은 엘로드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이대로라면 전멸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떻게든 적의 빈틈을 가로질러 공터의 입구 쪽으로 가서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바로 리키나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는데 대충 알아들은 리키나가 호신봉을 고쳐잡았다. 루스만은 힘들어하는 엘로드에게 조용히 읊조렸다.

마스터, 갈 수 있겠어?”

크윽... 이정도 쯤이야 아무렇지 않아

쎈척은

눈치를 보던 루스만이 엘로드를 부축하며 리키나와 함께 비몽사몽하고 있는 적들의 사이를 돌파했다. 그러자 문신의 사내가 눈치를 채곤 화염의 손을 휘두르려는 찰나에 더스틴이 먼저 달려들어 얼굴에 냅다 주먹을 갈겼다. 퍼억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일어나며 상대가 휘청거렸다.

선방필승이다 이 자식아!”

더스틴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가슴팍에 주먹을 연이어 꽂았다. 공격이 정통으로 들어간 것인지 문신의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고, 주변에서 적들이 정신을 차리며 무기를 소환하려는 모습에 소름이 끼친 더스틴이 재빠르게 일행들과 합류하려 달려나갔다. 그의 뒤로 정신을 차린 적들이 무기를 들고 부랴부랴 엘로드 일행을 쫓았다. 루스만이 엘로드를 부축하며 서둘러 공터 중앙을 가로질러 입구로 향했다. 등에 상처를 입은 엘로드가 고통에 신음하는 와중에도 따라오는 적들을 슬쩍 보며 손을 뻗었다. 그런데 한두명 정도만 픽 쓰러지고 네댓명이 멀쩡하게 쫓아왔는데 전부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니 엘로드의 능력이 한계가 온 것을 암시했다. 엘로드를 부축하며 가는 탓에 적들에게 따라잡힌 일행들의 등 뒤로 창과 칼이 덤벼들었다. 그러나 엘로드 일행은 저항하지 못하고 상처 입으며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저항할 힘이 없는 엘로드 일행을 보던 사내들이 상대를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인 듯 얼굴에 웃음끼가 돌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로 문신의 사내가 천천히 다가오며 양손에 푸른 불꽃을 일으켰다.

도망가 봤자, 함정에 빠진 쥐새끼일 뿐이지

문신의 사내가 쓰러져있는 엘로드 일행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장난도 여기까지다

엘로드 일행은 등과 팔 이곳저곳에 상처입은 채로 막상 일어나진 못하고 쪼그려 앉아 상대를 응시했다. 문신 사내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엘로드 일행을 잡아먹을 기세로 커져만 갔고 공격능력이 전무해진 엘로드 일행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죽어라

문신의 사내가 화염을 뿜어낼 자세를 취했다.

 

 

공간에 진입한 에이리아의 시선 앞에 기괴한 모습이 펼쳐졌다. 어두운 보라색 하늘의 여기저기에 계단들과 문들이 뒤집혀져 있거나 어지럽게 떠있었고, 정면에 언덕과 건물들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것들이 서로 엉켜있거나 섞여있어 부조화를 일으키는 풍경이 펼쳐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광경에 에이리아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긴 대체...”

적들이 침입해와도 쉽게 저를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져있죠. 정확히 말해서 이곳에 들어온다면 최소 100년 이상은 헤매게 될겁니다.”

클로소가 백색의 돌로 만든 아치형 다리를 지나며 양쪽을 갈라놓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어지럽게 펼쳐진 풍경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백색의 돌로 만든 다리가 길게 펼쳐졌다. 다리의 주변은 무섭도록 탁한 잿빛의 강이 흘렀다.  다리 위로 클로소가 유유히 활보했고 에이리아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부랴부랴 클로소의 뒤를 따랐다. 게이지 능력자가 된 이래 여러 자공간을 방문해봤지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와있는 것처럼 난잡하고 신비한 공간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에이리아가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말없이 클로소의 뒤를 한참 따르다가 멈춰서있는 클로소와 부딪치고 나서야 정면으로 시선이 들어왔다. 에이리아의 눈 앞엔 적어도 30층 건물 높이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양문이 으리으리하게 우뚝서있었는데 클로소가 팔을 활짝 펴는 제스쳐를 취하자 지진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큰 진동과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안엔 엘로드의 화원사무실을 연상케하는 아늑한 공간이 드러났다. 바닥은 폭신폭신한 잔디가 깔려있고 책상 주변에 초록색 이끼들이 자라 올라와 있었는데 생기 넘치는 초록빛들이 에이리아를 맞이했다. 책상 주변으로 높은 책장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넝쿨들이 휘감고 있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청명하게 보였다. 심지어 지저귀는 새들까지 있었기에 숲속의 한켠에 자리잡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 너무 멋지다

클로소가 책상 앞에 앉자마자 새들이 그녀의 어깨로 날아와 앉았다. 그녀는 미소를 띄운채로 새들을 몇 번 어루만지다가 책상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에이리아의 앞에 손을 내밀어 뭔가를 잡고 돌리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에이리아의 앞에 빛무리들이 생겨 뭔가를 한참 그리다가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생겨나며 그녀의 발 앞에 툭 떨어졌다. 클로소는 에이리아에게 의자에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그녀는 의자를 몇 번 살펴본 후 사뿐히 앉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이스가 물건 생성이 빠른 편이었구나...’

에이리아가 클로소의 앞에 앉아마자 클로소의 어깨에 앉아있던 새들이 어디론가로 날아가더니 지저귐이 잠들며 주변이 잠잠해졌다. 클로소가 진지한 태도로 에이리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에이리아씨 당신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이리아는 말없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클로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첫번째로 이 공간이 그 공간이 맞는 것인가 일 것입니다.”

클로소가 옆을 스윽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한쪽 벽이 투명해지며 공간의 밖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에이리아가 벽에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았는데 공간의 아래로 사람들이 작게 보일만큼 이 공간은 높이 떠 있었다. 그리고 차를 주차했던 장소를 찾다가 논밭 외곽 쪽에 검은색 차 한대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지금 들어와있는 공간은 처음 봤던 그 거대한 공간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단지 공간의 문을 연결하는 공간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공간의 문을 연결하는 공간...?”

에이리아가 엘로드의 서재에서 읽었던 내용이 불현 듯 떠올랐다. 공간의 능력 중에는 공간과 공간을 잇는 희귀한 공간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공간을 잇는 공간능력... 자공간 능력에 운명의 게이지까지... 너는 대체?”

저는 오버시아이기 때문입니다.”

오버시아?”

클로소의 대답에 에이리아가 슬그머니 의자에 다시 앉아 경청했다. 클로소는 에이리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 오버시아는 공간능력과 일반 능력을 모두 가진 능력자를 말합니다.”

그런게 가능해?”

가능하니까 여기 제가 있는 것이겠죠. 저는 몇 안되는 오버시아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오버시아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지기 힘든 디메리트를 가지고 있죠. 저 같은 경우엔 공간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있어야 하는 디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12시간이나?”

. 12시간 이상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의식이 파괴됩니다. 오버시아는 남들보다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합당할 정도로 좋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죠.”

클로소가 강제적으로 공간에 12시간을 머물러야 한다는 말에 에이리아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다면 현실의 생활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공간에 있을 때가 더 좋은게 많아서요.”

...”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둘째로 이 공간의 약점이 있는 것인가라는 것을 물어보고 싶으실 겁니다.”

에이리아가 말하기도 전에 물어볼 것을 미리 말하는 클로소의 능력에 소름이 돋았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오히려 능력을 사용하는 어떤 행동이나 제스쳐 없이 미래를 보는 능력을 쓰고 있다는 것이 에이리아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공간의 규칙 중에 약점은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죠. 저는 단지 미래를 보고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는 부분을 약점으로 했을 뿐입니다.”

건드리지 않는 부분?”

. 아주 간단하죠.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이 애널라이징이나 약점을 찾을 때, 단지 건드리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부분을 약점으로 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약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언젠가는 제 공간이 드러날지도 모르겠죠.”

클로소가 숨을 잠시 고른 뒤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셋째로 제 능력은 어디까지 볼 수 있느냐. 그리고 무엇을 볼 수 있느냐가 궁금하신 거겠죠. 이것은 제가 당신을 찾은 이유로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클로소가 잠시 말에 뜸을 들였다. 에이리아는 묵묵히 클로소의 말을 기다렸고 이내 클로소가 입을 뗐다.

앞으로 7년 후. 라그나로크가 일어날 것입니다.”

라그나로크?”

. 에이리아 당신은 세상이 세상을 버린다라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에이리아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세상을 버리다니,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인가.

언젠가 듣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세상을 버린다라는 말은 라그나로크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클로소가 눈을 내리 깔며 날카로운 눈빛을 뿜어냈다. 고요한 분위기가 그녀에게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라그나로크가 무엇인지는 당장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이것이 라그나로크구나라고 아시게 될테죠. 라그나로크는 삶의 시간을 거스른 자들이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저는 그들에게 쫓겨다니다가 라그나로크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미래는 바뀌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저는 오랜 시간 끝에 그 라그나로크를 억제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라그나로크를 억제하기 위해 저는 당신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아니, 당신과 라그나로크를 억제할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군요.”

누군가라니? 그리고 너를 추격한 사람이 누군데?”

클로소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알게 된다면 오히려 당신의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그리고...”

클로소의 눈빛이 번뜩였다.

당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들이기에. 당신은 결국 그들이 누군지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벌써부터 알려하지 마세요. 그보다 중요한건 당신은 그 라그나로크를 억제할 누군가를 찾아내야하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

.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 능력은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라그나로크가 일어나는 것까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이후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 라그나로크를 억제할 누군가가 바로 슬립 포레스트에서 시작된다는 것까지만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슬립 포레스트에서...”

그래서 당신은 그 누군가를 찾아내야하고, 지켜내야 합니다.”

그 누군가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내는데?”

그것이 에이리아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클로소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투명한 벽으로 다가갔다. 뒷짐을 진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의 주변에 쥐가 몇 마리 있군요. 그러니 모든 대화에는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에이리아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쥐가 있다니?”

클로소가 에이리아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믿기를.”

 

에이리아가 클로소의 자공간에서 나와 동료들이 있던 논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여운이 남던 에이리아가 고개를 들어 클로소와 있었던 공간의 모퉁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읊조렸다.

라그나로크와 그것을 억제할 누군가...”

클로소 역시 자신을 보고 있는 에이리아를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에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이곳을 침입하겠지요. 부디 에이리아,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문신의 사내가 화염을 뿜어낼 기세로 팔을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눈을 번뜩이며 문신의 사내가 화염을 쏟아냈고 엘로드 일행은 이제 죽었구나라는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 건가...! 여보...!’

[화르르륵]

화염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매섭게 울려퍼졌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렇지 않자 엘로드 일행이 조심스레 눈을 떴다.

쉴드 게이지. 원소타입 방어

정면에 아르휀이 우뚝 선채로 쉴드 게이지를 전개하고 있었다. 엘로드 일행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르휀!”

사랑한다 아르휀!”

꺄아! 아르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문신의 사내가 이를 악물며 다른 한손으로 다시 화염을 뿜어냈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아르휀이 거북이 등껍질 형태의 투명한 쉴드를 전개한 상태로 화염을 간단히 막아내며 오히려 적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당황한 문신의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질렀다.

저 꼬맹이를 처리해라!”

!”

병장기를 들고 있는 여러 적들이 아르휀을 둘러싸며 매섭게 덤벼들었다. 덤벼드는 적들을 보며 아르휀이 침착하게 읊조렸다.

쉴드 게이지. 물리타입 방어

아르휀의 말이 끝나자마자 쉴드가 사라졌다가 아르휀의 손앞에서 다시 생겨났고 오히려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적들이 아르휀의 쉴드에 무기를 마구 휘둘렀는데 오히려 무기가 튕겨나가며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예상치 못한 능력의 힘에 진형이 뭉개진 적들을 향해 그녀가 실드로 들이받았는데 적들이 여기저기로 튕겨져 나갔다. 여러번의 쉴드 사용으로 인해 아르휀의 실드가 사라졌는데 그녀가 다시 읊조렸다.

쉴드 게이지 재전개

재전개한 쉴드로 아르휀이 오히려 적을 압박해갔다. 나머지 적들이 아르휀의 양옆으로 덤벼들었는데 아르휀이 가볍게 쉴드를 휘두르며 적들을 밀쳐냈고, 슬금 뒷걸음질 치는 문신의 사내를 힐끔 보고는 작의 체구의 아르휀이 이때다 싶어서 기세를 잡고 매섭게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문신의 사내가 황급히 화염을 뿜어냈는데 아르휀은 이미 쉴드를 원소타입 방어로 바꾼 뒤였기에 가볍게 적의 불길을 막아냈다. 부랴부랴 다시 화염을 일으키려는 사내에게 아르휀이 재빨리 쉴드로 들이받았다.

커흑

아르휀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문신의 사내에게 달려가며 날아올랐다.

쉴드로 맞아본 적은 없으시죠?!”

점프한 아르휀이 쉴드로 상대의 안면을 경쾌하게 강타했다. 아르휀의 체중을 실은 쉴드가 문신 사내의 코뼈를 부러트리며 코와 입 주변을 피투성이로 물들였다. 아르휀이 신나게 날아오른 덕에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바닥을 굴렀다가 벌떡 일어나 무릎을 마구 비볐다.

아이고 아파라

그사이 문신 사내가 힘겹게 일어나 손에 화염을 일으키며 아르휀을 경계했다.

, 빌어먹을 꼬마가..

거기까지다.”

더스틴이 문신의 사내에게 다가서서 구슬을 내밀었다. 뒤쪽엔 붉은색 드레스에 붉은 와인을 들고 있는 검은색 웨이브 머리칼의 여자가 더스틴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그러게 구슬 좀 잘 챙기지 그랬어. 다른거는 잘챙기면서 말야

시끄러, 좀 빨리 오지 그랬냐 엘라

문신 사내의 주변에 더스틴과 아르휀이 압박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당황한 문신 사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양손에 지핀 화염을 의미없이 양쪽으로 번갈아가며 휘둘렀다. 아르휀은 쉴드를 전개한 채로 조심스레 상대에게 다가가며 상대의 공격을 저지할 준비를 갖췄고 엘로드를 돌보고 있던 루스만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냉정하게 내뱉었다.

끝내라 더스틴

루스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더스틴의 손에서 구슬이 튀어나갔다. 날아가던 구슬이 그대로 문신의 사내에게 명중했는데 이상하게도 구슬이 폭발하지 않고 땅에 툭 떨어졌다. 동시에 아르휀의 쉴드도 사라는데 공간이 갑작스럽게 해제됨을 느낀 엘로드 일행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루스만이 뒤늦게 탄성을 내질렀다.

"엥?"

아 맞다! 아까 구석으로 몰렸을 때 권한 뺐어서 공간해제 명령을 내렸었는데.”

공간 해제 명령 후 공간능력자가 철회하지 않으면 10분 후에 공간이 해제되는 것이었다. 루스만의 능력은 공간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뺐을 수 있는 것이었고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미리 공간해제의 명을 내려둔 것이었다. 엘로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등을 매만져보더니 원래대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그와중에 클리어 명령까지 내려놨네

엘로드는 루스만이 기특한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특한 녀석

헤헷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진 탓에 상황이 애매해졌다. 오히려 능력을 사용할 수있을 때엔 아르휀과 더스틴의 능력이 우위에 있었지만 아무도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탓에 수적 우위는 오히려 적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루스만이 내린 클리어 명령은 모든 상태를 공간에 들어오기 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신 사내의 상태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수적 우위를 가진 적들이 주머니에서 칼을 뽑아들었지만 문신의 사내가 가로막았다.

어차피 다시 공간을 만들면 서로 위험한건 마찬가지겠지. 서로 없던 일로 돌아가는 것을 제의하지

문신의 사내가 엘로드를 응시하며 말했다. 엘로드는 벌떡 일어나 문신 사내의 앞에 멈춰서며 생각했다. 상대는 자신들을 벼랑까지 몰았던 적들이라 쉽게 보내기에는 아쉬웠고 그렇다고 다시 싸우자니 정신적인 피로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아르휀이 최대의 전력이었지만 너무 어려서 자칫 위험해질 수 있는데다가 전투 중에도 언제든 졸 수 있었기 때문에 싸움을 피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 아마도 없던 일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우린 결국 다시 만나게 될거다

네놈들이 데려간 그 공간 능력자는 어디에 있나?”

그걸 말할 것 같나?”

다음에 만나면 말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땐 누구든

한 쪽은 죽는다

문신 사내들과 엘로드 일행이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문신의 사내들이 먼저 조심스레 공터를 빠져나갔다. 적들이 떠난 것을 보고나서야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멀리서 아르휀이 풀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프로포폴 아저씨 졸려 죽겠어용

자신을 구해준 아르휀이 귀여워 죽겠다라는 표정으로 엘로드가 다가가 아르휀을 안아올렸다.

쪼그만한게 어른들보다 잘싸워. 네 덕분에 살았다 아르휀

능력이 사기라서요! 헤헤...... 기절할거 같아요..”

그래 빨리 가서 자자

엘로드의 말에 루스만이 문득 의문을 표시했다. 누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충분히 오해할만한 말이긴 했다.

자다니?”

리키나가 옆에서 얼굴을 내밀며 이죽거렸다.

너 이상한 생각한 거 아니지?”

이상한 생각이라니?”

루스만의 반응에 엘로드에게 안긴 아르휀이 야유를 보냈다.

변태 아저씨...”

아냐 아르휀 나 변태 아냐

변태 맞는 거 같은데?”

엘로드가 머리가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루스만 넌 진짜 잘나가다가... 아휴, 피곤한데 됐다 됐어

다들 루스만의 말에 고개를 절레 저으며 공터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루스만이 자리에 멈춰서서 동료들이 빠져나가는 걸 멍하니 보다가 부랴부랴 뒤따르며 외쳤다.

! 나 진짜 변태 아니야! 이상한 생각 안했어! 아르휀? 리키나?”

 

엘로드가 아르휀을 안고 골목길을 내려가며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아르휀이 엘로드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비비며 말했다.

엘라 언니가 여기에 왔을꺼라고 하던데요

아르휀의 말에 엘로드가 앞에 가는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엘라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르휀의 말을 들은 건지 엘라가 슬쩍 돌아보며 엘로드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엘로드가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찾아낸지 짐작을 하며 슬쩍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더스틴도 덩달아 궁금해했다.

진짜 어떻게 찾은 거야?”

... 사랑하는 마음으로?”

“...”

아르휀이 잠이 쏟아지는 걸 억지로 참아내며 엘로드에게 물었다.

근데 진짜 어떻게 찾아낸걸까요?”

엘로드가 황금빛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아르휀은 이미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들은 건지 못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엘로드는 그저 아르휀이 사랑스럽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들의 뒤편으로 루스만이 울먹거리며 중얼댔다.

나 변태 아니라고... 제발 변태 아니라고 해줘! 에이리아가 못듣게 해줘!”

  • PORSCHE 2018.09.16 20:44
    아르휀 엄청 강하구나! 마지막에 귀여움까지 장착하다니 반칙이야.
    전투가 아기자기한게 합을 주고받는게 재밌구나.
    에이리아쪽은 커다란 떡밥이 풀린거 같네. 재밌게 읽었다!
  • 홍차매니아 2018.09.16 23:22
    에이리아 씬은 환상적인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서 아주 좋다. 전투씬은 음;;;; 뭔가 느낌이 안와서 몇번 다시 봐야되겠어.
    대신에 마지막 아르휀 등장씬은 얘가 이런애구나! 하는걸 단박에 느낄수 있어서 인상적이야.

    평상시 잠만보지만 할때 합니다.

    라는 느낌임
  • SKEN 2018.09.18 02:20
    좋다! 주요 스토리에 대한 떡밥으로 메인 스텐스를 환기시켜 분위기를 형성해나가는 흐름도 좋고
    두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환하는 타이밍이나 이어가는 연결이 어색하지가 않아서 좋고
    전투씬도 긴박감이 묻어나며 너무 늘어지지도 않는 것이 좋고, 잠만보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좋다!
    캐릭터들의 개성과 가벼운 개그도 몰입감과 재미를 더하는 것이 좋다!
    문장력도 확실히 점점 좋아지네요.
    클로소와 에이리아가 산을 넘어갈때의 낙엽부터 시작되는 풍경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고
    클로소의 공간 내부의 묘사도 그 신비한 광경이 잘 그려지는게 아주 굳굳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