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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17:20

GAGE Character Story : 에이리아(4)

조회 수 1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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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분량조절 실패네요..

피드백은 항상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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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GE -Character Story-

      에이리아(4)


 우리를 부르셨군요?”

 제인이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다렸습니다.”

 남자 둘은 서로 속닥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제인을 안내했다. 그들은 차를 탄 채 브루클린에서 10분정도 이동했고, 미국에서는 흔히 보이는 붉은집 사이의 골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제인은 으슥한 골목을 보곤 들어가기 꺼려하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겪은 일에 비하면 어둡고 캄캄한 골목따위를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골목을 지나 건물들에 가로막힌 공터가 나왔고, 제인은 공터를 물끄러미 보다가 남자들에게 물었다.

 여기가 맞나요?”

 한 남자가 한 곳을 손짓하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저쪽으로 가보시죠.”

 제인은 남자가 가르킨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갔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정면에 무언가 꿀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제인이 남자들을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이것 말인가요?”

 남자는 조심스레 끄덕이며 그곳으로 들어가 보라고 손짓했다. 문득 겁이 난 제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큰맘을 먹은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꿀렁거리는 허공으로 손을 내밀며 한걸음씩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손이 그곳에 닿자마자 마치 반대편에 다른 공간이라도 있듯이 손이 안쪽으로 들어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용기를 내어 공간 안쪽으로 세차게 몸을 들이 밀었다. 그리고 일순간 새하얀 통로가 보였다가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온탓에 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어느새 빛이 꺼졌다고 생각이 든 순간 제인은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전 골목과는 완전히 다른 거대한 카지노가 펼쳐졌다. 공간 안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카지노를 즐기고 있었고, 다양한 LED와 네온사인들이 제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화려한 광경에 제인은 입을 쩌억 벌렸다. 이어서 뒤 따라 들어온 남자 둘이 곧바로 제인의 팔을 잡고는 카지노의 안쪽으로 향했다. 어디론가 향하는 와중에도 제인은 이곳저곳에 시선을 빼앗겼고, 카지노 광장을 지나 반층 계단을 올라 간 뒤 금색으로 치장된 화려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남자는 엘리메이터에 올라타자마자 제일 끝 층인 15층을 누르며 제인의 팔을 놓았다. 자유로워진 그녀는 엘리베이터의 유리에 얼른 다가가 카지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넋놓고 바라보던 그녀가 슬쩍 물었다.

 이 세계에서는... 이런 것이 가능한건가요?”

 , 이 세계는 한계가 없죠.”

 담담한 남자의 대답에 제인이 한참이나 유리 밖을 보다가 어느새 15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척봐도 보스의 사무실로 보이는 넓은 공간이 제인을 맞이했다. 온통 금으로 된 장식품들이 양쪽 벽에 일렬로 나란히 서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바닥은 화려한 양탄자로 깔려있어 발을 딛을 때마다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천장엔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 페브릭이 돔 형태로 치장되어 있었고, 그런 풍경에 제인은 다시 시선이 빼앗길 뻔했지만, 정면에 보스로 보이는 남자가 시가를 입에 문채 제인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녀는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보스는 벌떡 일어서서 제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굉장한 미모의 여성분이 오셨군. 반갑소. 나는 브루클린 지역을 맡고 있는 길드 마스터 웨일하바드라고 하오.”

 , 저는 제인입니다...”

 웨일하바드는 탁자를 가운데 두고 의자가 마주보고 있는 자리로 안내했고, 제인은 의자에 앉자마자 부드러운 감촉에 탄성을 내지를 뻔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리고 정면에 앉은 웨일하바드를 보며 손님이 왔는데도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는 그가 굉장히 무례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웨일하바드가 먼저 제인에게 물었다.

 제인이라는 이름은 예명인가?”

 ?”

 제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에 웨일하바드가 심드렁하게 탁자에 올려진 신문을 들어 펼쳐보다가 다시 신문을 탁자로 내려놓곤 입에서 시가를 떼며 물었다.

 이번 맨해튼 사건에서 각성자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당신인가?”

 웨일하바드의 말에 제인이 순간 로비에서 두 남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공간이 생성됨을 느껴서 혹시나 와보았습니다. 그런데 공간도 작고. 병원인데다가, 이번 사건에서 각성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확인 차 와본 것입니다. 그럼 이만...”

 .. 아마도 제가 맞을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웨일하바드가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했다.

 이거이거, 무례했다면 용서하시오, 나는 공간 안에서 담배를 피고 있어야 능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해주시길 바라오.”

 제인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고, 웨일하바드가 재차 다시 물었다.

 그런데, 무슨 게이지시오?”

 ?”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제인을 보곤 웨일하바드가 손가락을 탁 튀기며 말했다.

 자바예르프, 이 분의 게이지 확인해봐

 

 사무실 안쪽의 캐비넷에서 부산하게 뭔가를 하고 있던 검은 양복의 남자가 웨일하바드의 명령에 돌아서더니 제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앞으로 푸른색의 동그란 반투명 마커가 나타나며 중앙에 알 수 없는 여러 문양들이 한참이나 뜨다가 손을 거두었고, 동시에 마커도 사라졌다.

 네츄럴 게이지. 애널라이저 능력에 특화된 사람입니다.”

 웨일하바드가 그 남자의 말에 화색을 띄었다.

 오호호, 애널라이저를 찾기가 굉장히 힘든데, 이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웨일하바드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서로 무언가 얘길하며 기뻐하는 듯했다. 그 분위기 사이로 제인이 웨일하바드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여길 찾아왔습니다.”

 웨일하바드가 다시 시가를 입에 물며 궁금해했다.

 그것이 무엇이시오?”

 이쪽 세계에서... 한국과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부탁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제인의 말에 웨일하바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국? 그럼 당신은 한국인이란 말인가?”

 , 원래는 한국인이었죠. 하지만 단순히 그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지?”

 제인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 입을 뗐다.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웨일하바드가 뭔가 말을 하려다 잠시 주저하곤 여유롭게 옆의 의자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당신은 우릴 믿지 못하는 거로군.”

 제인이 생각을 간파당한 듯 순간 동작이 멈추었는데, 신경쓰지 않고 웨일하바드가 이어서 말했다.

 보시다시피, 우리길드는 재력이 상당하오. 우리 밑으로 들어온다면 부족하지 않게 대우해주겠소. 당신이 찾는 것 역시 도와주지. 어떻소?”

 제인이 숨을 들이마시며 조심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를 구해줬던 은인이 있기도 하고, 그를 만나야하기 때문입니다.”

 웨일하바드가 잠시 제인을 바라보다가 다리를 꼬며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거이거 정말 아쉽구만...”

 그리곤 한참을 생각하더니 굳은 제인의 표정을 바라보며 더 설득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하곤 손가락을 탁 튀기며 누군가를 불렀다.

 나드라칸. 한국 협회에 연락해라.”

 .”

 무슨 내용인지는 알겠지?”

 

 정장을 입은 나드라칸이라는 곧바로 대답하고 방을 나갔다. 그리고 웨일하바드가 허리를 숙인 채 고개를 떨궜고 무거운 어조로 얘기했다.

 한국은 게이지의 세계에서 굉장히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소. 이 넓은 미국보다 더. 그리고 전 세계에서 최강의 게이지가 모인 곳이... 바로 한국이오.”

 웨일하바드가 고개를 들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제인을 바라보았다.

 부디 그곳에 가면 조심하시오. 모든 사건들이 그곳과 연관되어 있으니.”

 제인은 웨일하바드의 말에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고, 그는 의미심장한 말로 제인에게 말했다.

 최근의 일도 그쪽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오. 그리고 곧바로 나가면 나드라칸이 안내해 줄것이오. 잘가시오. 부디 몸조심 하시길.”

 

 제인은 웨일하바드 일행이 안내해준 대로 일주일 후에 한국으로 출국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곧장 들려서 퇴사통보를 했다. 제인의 퇴사통보에 깜짝 놀란 국장이 제인과 면담을 시도해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그녀의 완강한 태도에 국장은 어쩔수없이 퇴사신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제인은 즉시 자신의 사무실 자리에 돌아가 박스에 짐을 담기 시작했고, 옆자리의 친구가 파티션에 팔을 올리며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진짜 가는 거야...?”

 .”

 친구의 말에도 제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짐을 챙기는데 열중했다. 친구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울먹거렸고, 그걸 느낀 제인이 짐을 대뜸 놓고는 벌떡 일어서더니 파티션을 사이에 끼고 친구를 안아 서로 엉엉 울었다. 그리곤 짐을 낑낑대며 들곤 회사 밖 계단으로 내려가는 곳까지 친구도 따라나와 택시를 잡아주었고, 택시에 올라탄 제인에게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보자!”

 ! 다음에 또 보자!”

 그리고 택시가 출발하며 저만치 멀어지는 제인을 보며 친구는 아쉬운듯 시선에서 택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제인은 곧바로 옷을 훌렁 벗고 샤워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씻고나온 뒤 화장대 앞에 앉아 물기 있는 머리를 드라이기로 머리를 한참을 말린 후 머리의 상처에 연고를 바른 뒤 잠옷을 걸쳐 입곤 바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엄마의 베게를 꼬옥 안은 채 그녀는 잠을 청했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집에서 쉬며 한국으로 출국하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만 캐리어에 챙겨넣곤, 마치 엄마의 흔적을 지우지 않으려는 듯 엄마가 쓴 물건이나 빨랫물들을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은 상하게 되니 제인은 아까워하며 어쩔 수 없이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을 모조리 버리고 그릇들만 닦아서 찬장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엄마가 자주 앉아있던 털썩 의자에 앉아 쉬며, 언젠간 다시 쓸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릇들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집을 떠나는 날, 모든 창문과 문들을 단속하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을 떠나기 전에 한번 돌아서고는 아쉬운 듯 잠시 집을 바라보다가 다가오는 택시에 올라타며, 창밖으로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을 향해 시선을 놓치지 못했다.

 

 뉴욕에서 아침에 출발해 13시간이 걸려 서울에 도착한 인천공항의 로비에 단정한 검은색 정장 바지와 검은색 반팔 셔츠를 입고 머리칼을 칼로 자른 듯이 깔끔한 단발을 한 여성이 ‘Welcome Jane’이라는 푯말을 들고 서 있있다. 제인은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제인을 직감적으로 알아본 듯 유창한 영어로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Welcome. Jane. I came from the association..”

 협회에서 나왔다는 그녀의 말에 제인은 미소 지으며 가볍게 한국말로 대답했다.

 , 안녕하세요.”

 그녀가 살짝 당황하는 듯 하더니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미국에서 연락이 와서, 외국사람인줄 알았더니. 한국사람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협회의 비서를 맡고 있는 밴젤입니다.”

 ,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설아입니다.”

 설아의 악수에 밴젤이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곤 공항의 밖까지 안내했다. 그리고 밴젤이 다가간 곳엔 검은색의 묵직한 크라이슬러 차량이 설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밴젤이 차의 문을 열어주며 설아에게 타라는 듯 매너있는 태도로 안내했다. 그리고 둘이 뒷좌석에 타자마자 차량이 어디론가 향했다.

 설아는 차에 탄 채 오랜만에 보는 한국의 풍경에 기분이 좋은 듯 창가 밖으로 야경에 정신이 팔렸다. 그런데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대로변을 지나 건물사이의 어두운 골목으로 진입했고, 어두운 분위기에 긴장한 설아가 슬쩍 운전사를 쳐다보았는데 검은색 선글라스에 밴젤과 마찬가지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운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 밴젤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고속이동 공간으로 들어가니, 손잡이나 안전벨트를 꽉 매주세요.”

 밴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설아는 그저 시키는 대로 안전벨트를 맸고, 그 사이 차량이 코너를 도는가 싶더니 갑자기 차량 앞으로 초록빛 사각통로가 뻗어나가듯 공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간속에서 차량은 한계를 모르고 질주하기 시작했는데, 차가 빨리 달리는 것인지, 공간이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빠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심지어 반투명한 공간의 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조차 인영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고, 이에 긴장한 설아가 손잡이에 매달린 채 평소와는 다르게 풍경을 보기 어려워했다. 그런데 밴젤은 느긋한 자세로 무표정하게 있었는데, 꽤나 익숙해보였다. 그리고 멀미할 것만 같았던 설아가 식은땀을 흘리며 밴젤에게 물었다.

 혹시 언제쯤 도착하나요?”

 밴젤은 시선을 고정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설아에게 되물었다.

 많이 힘드신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구요...”

 고속이동 공간은 처음 타보시죠?”

 ...”

 그러자 밴젤이 대뜸 자동차의 정면유리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광화문 도착입니다.”

 그리곤 차량이 점차 속도가 줄었고, 얼마 후 공간 속으로부터 빠져나오며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설아는 지친기색을 보이다가 차량이 땅을 밟자마자 안심 한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차량이 멈추자마자 밴젤이 곧장 내려서 반대편의 차문을 열어주었는데, 설아가 기진맥진한 얼굴로 차에서 내리며 한숨을 크게 내쉰 뒤 곧바로 담담한 태도를 갖추며 밴젤과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인천공항부터... 광화문까지... 10분 밖에 걸리지 않은 건가요?”

 , 정확히 말하면 5분 정도 겠군요.”

 밴젤은 담담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는 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게이지의 세상에 오신 순간부터 이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 ...”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내려왔고, 밴젤은 매너있게 설아가 먼저 타라고 제스쳐를 취했다. 그녀의 매너에 설아는 미소를 띄우며 가볍게 목례하고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뒤따라서 탄 밴젤이 최상층 24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얼마 오르다가 유리창 밖으로 광화문의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이 어두워졌지만, 활기차게 다니는 사람들과 건물들이 뿜어내고 있는 찬란한 금빛들은 마치 대지에 수놓아져있는 별들과 같았다. 그런 야경에 설아는 시선이 빼앗긴 채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고, 얼마 되지 않아 엘리베이터는 24층에서 멈춰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벤젤이 엘리베이터를 벽을 끼고 안쪽 로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설아도 따라 나섰다. 코너를 돌자마자 깔끔해보이는 흰색 대리석들로 인테리어된 로비가 설아를 반기고 있었고 정면에는 연회장에서나 나올법한 두터운 흰색 직사각형문이 양문으로 우뚝 서있었다. 그리고 벤젤이 문 앞으로 다가서더니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문을 열었고, 그 안에 또 다른 하얀 복도가 설아를 맞이했다. 그런데 복도의 중앙에 키가 족히 185cm 되는 호리호리한 금발의 남자가 흰색 정장을 입은 채 뒤돌아 서있었고 벤젤이 문을 여는 소리에 조심스레 뒤를 돌며 안경을 스윽 올린 뒤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벤젤을 바라보며 자세를 고쳤다. 금발의 남자는 인텔리전스하면서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손님은 데려오셨느냐 벤젤.”

 . 로크슈님.”

 설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로크슈라는 남자의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이설아라고 합니다.”

 한국인이었군.”

 .”

 마스터님들은 계신다.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

 .”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반말을 하는 금발의 남자가 영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로크슈는 설아를 흘깃 보고는 돌아서서 은색 패브릭으로 된 문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또 다른 복도가 나타났는데, 좌측에는 네이비색의 정장, 우측에는 붉은색의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나란히 앉아 마주보며 앉아있었는데, 30명은 넘게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치 경호원 같은 분위기를 풍기듯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진지한 표정으로 복도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설아가 긴장한 듯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고, 그 사이 로크슈는 거침없이 복도 끝의 문을 향해 다가갔다. 벤젤은 주저하고 있는 설아의 뒤에 조심스레 다가서며 말했다.

 설아씨 긴장하지 마시고 로크슈님의 안내에 따라 가시면 됩니다.”

 ...”

 설아가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는 듯 숨을 크게 들이키고는 불상같이 앉아있는 경호원들의 사이를 지나 로크슈의 뒤로 따라 섰다. 그리고 설아가 자신의 뒤에 서는 것을 느낀 로크슈가 문을 힘껏 밀어냈다. 그리고 문 앞으로 펼쳐진 광경에 설아는 동그란 눈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3층 높이는 족히 되 보이는 천장과 온통 은색의 대리석들로 치장이 복도가 있었고, 마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흰색기둥과 벽면이 장식 눈을 사로잡았다. 설아는 25층 꼭대기에 이런 곳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는데, 그사이 로크슈는 놀라 머뭇거리는 그녀를 슬쩍 쳐다보고는 짜증섞인 투로 말했다.

 마스터님들이 기다리신다. 멍하니 있지 말고 들어가라.”

 ! .”

 금발의 남자가 다그치는 소리에 설아는 부랴부랴 그곳으로 들어갔고, 금발의 남자는 문 앞에 멈춰선 채로 오랫동안 설아를 지켜보다가 이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설아는 양쪽으로 흰색의 기둥이 펼쳐진 사이를 거닐었고, 그녀의 맑은 구두소리가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신전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복도를 꽤나 오랫동안 걷다가 멀리 정면에 문이 보였는데,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거대한 대리석문이 서있는 게 보였다. 대리석 문의 중앙에는 ‘G’라는 커다란 글자 주위로 여러 상형문자들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였고,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한명씩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살짝 열려있었다. 설아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을 가슴에 품은 채 문의 틈 사이를 지나갔고, 다시 한번 놀라운 풍경이 설아를 맞이했다. 전보다 더 높은 천장과 공간의 양쪽의 벽면 중안엔 대리석 문이 우뚝 서있었고, 대리석 바닥인데도 불구하고 왼쪽 구석에 자연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커다란 바위 폭포수가 있었고, 오른쪽 구석에는 하얀 돌 언덕 위로 파라솔과 음식들이 있었다. 그리고 설아의 양쪽으로 커다란 나무와 연못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그리고 정면에는 사람의 인영이 보이는 커다란 가림막이 세워져 있었는데, 4명의 인영이 마치 설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폭포수가 내리는 소리와 연못이 졸졸졸 거리는 소리 사이로 어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참한 처자가 왔구만...”

 어떤 사람인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치 자신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에 설아는 적잖이 놀랐다. 아무래도 가림막의 반대편에서는 자신이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서있지 말고 의자에 앉게나.”

 노인의 말에 설아가 주위를 둘어보다 보니, 가림막의 앞에 흰색 등받이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사뿐사뿐히 걸으며 의자에 살포시 앉았다. 설아가 의자에 앉자마자 다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이라? 꽤나 먼 곳에서 찾아와 주었구먼

 걸걸한 목소리에 다들 비슷하게 들려서 누가누군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특히나 가림막 떄문에 더 구분하기 힘들었던 설아가 인영만 이리저리 쳐다보았고,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낭자를 보니, 내 젊었을 때가 떠오르는 구먼.”

 옛끼! 이 사람아, 젊은 사람을 두고 그게 무슨 망발인가.”

 뭐가 나쁜가! 저 처자를 보니 죽었던 힘도 살아날 것 같구먼!”

 갑자기 설아를 두고 노인들이 장난스럽게 티격태격 하더니 이내 갑자기 조용해졌고,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돼지. 이곳에 온 이유는 뭔가?”

 설아는 노인의 질문에 담담히 말했다.

 , 저는 이설아라고 합니다. 제가 온 이유는 엘로드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 왔습니다.”

 엘로드?”

 아아.. 그 잠의 게이지인가 하는 사내인가.”

 슬립 포레스트인가 그렇다네.”

 설아의 말 한마디에 노인들의 수다가 다시 들려왔지만, 곧 조용해지며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를 찾으려는 이유가 뭔가?”

 , 저는 미국의 맨해튼에서 일어난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이쪽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위험할 때 지켜주던 사람이 엘로드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호오... 게이지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자가 공간에 몸담고 있을 때, 공간의 영향으로 게이지를 일깨우는 법. 어쩌면 자네는, 게이지를 다루는 능력자가 되기 위해 그렇게 된지도 모르지.”

 설아가 문득 엄마에 대한 생각과 모자를 쓴 남자에 대해 떠올리며 반문하고 싶었지만, 참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 자와 함께 있을 생각인가?”

 , 일단은 그렇...”

 순간 설아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툭하며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내렸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가림막에 시선이 향했다.

 그렇다면, 처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겠지. 밴젤 비서에게 일러둘테니 안내를 받게나.”

 설아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노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드립니다.”

 설아는 4명의 인영을 뒤로한 채 들어왔던 문을 향해 나섰고, 노인들이 다시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 듯 했지만, 아무소리도 들려오지는 않았다. 이윽고 설아가 대리석 문틈 사이를 지나자마자 정면으로 밴젤이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있었다.

 가시죠.”

 , .. , 제가 마스터님들께 부탁드린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

 자 이쪽으로,”

 설아가 마스터라고 불리는 노인들과 대화를 하고 곧바로 나온 뒤였는데, 밴젤은 이미 사항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설아는 어떻게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는지 감을 잡기조차 어렵기만 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특별한 기억력을 가진 자신은 단숨에 최고의 변호사 자리에 올랐고, 더 높은 지위를 꿈꾸며 자신감 있게 살아왔지만, 최근 두 주간 경험한 것들은 하염없이 자신을 작아지게 만드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그 사이 밴젤은 흰 기둥의 사이로 빠져나가며 벽을 향해 다가갔고, 설아는 부랴부랴 밴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밴젤이 벽을 더듬더니 네모난 홈을 꾸욱 누르자 자동문이 열리듯 작은 벽이 열렸다. 그리고 설아는 말없이 문 안쪽으로 진입하는 밴젤의 뒤를 따랐다. 흰색의 좁은 통로를 지다가다가 코너를 돌아서 두 갈래로 나뉘는 통로가 나왔고, 밴젤이 오른쪽으로 코너를 도는 모습에 부랴부랴 따라가다며 왼쪽 통로를 슬쩍보니 흰색 문이 통로를 막고 있는 것을 보곤 다시 밴젤을 뒤따라갔다. 좁은 통로를 한참이나 가다가 평소 흔히 보던 아이보리 민무늬 철문이 보였고, 문 밖엔 처음보는 작은 로비와 두 개의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그리고 곧장 밴젤은 한쪽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 뒤따라온 설아가 밴젤과 나란히 엘리베이터의 앞에 섰다. 밴젤의 걸음이 빨랐던 탓에 설아는 숨을 살짝 헐떡였다.

 설아씨께서 찾는 엘로드라는 분은 슬립 포레스트 길드의 마스터입니다.”

 슬립 포레스트요?”

 , 엘로드님께서 직접 지으신 길드명이죠.”

 설아는 대답하지 않고 밴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엘로드님께서 가지신 게이지는 슬립 게이지입니다. 흔히 잠의 왕이라고 불리시는 분입니다. 평소 나무나 숲을 좋아하셔서 잠자는 숲속의 왕자라는 것을 지칭해서 만든 길드명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 잠자는 숲속의 왕자요...”

 , 그리고 슬립 포레스트는 성북구에 있습니다.”

 황당한 필명에 설아가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었고,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듯 설아가 번뜩이며 물었다.

 혹시 아까 그 차로 가나요?”

 밴젤이 설아를 스윽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안전벨트 꽉매세요.”

  • PORSCHE 2018.08.12 20:49
    아하 슬립포레스트! 이런 외전도 세계관과 주인공들의 과거를 알 수 있어서 재밌구나. 공간묘사에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보임!
  • 반딧불 2018.08.16 15:21
    스테이지는 항상 중요한 법이죠
    항상 댓글 감사드립니다
  • SKEN 2018.08.16 02:24
    전체적으로 스토리 라인도 탄탄하게 잘짜여져 있는거 같고, 공간과 배경 묘사에 심혈을 기울인게 느껴지고 세밀함! 다만 주로 공간/배경묘사를 할때 내용이 많아져서 문단이 길어지다 보니, 문장의 맺고 끊음과 연결을 꼼꼼히 살펴봐야 할듯 문장 구성이 너무 길어져서 읽는 이에 따라 자칫 늘어지게 여겨질 수도 있다고 봄! 편을 거듭하면서 보여지는 게이지의 세계와 특징들은 확실히 너무 좋은 소재라는게 느껴짐! 굳!
  • 반딧불 2018.08.16 14:51
    소중한 댓글 감사하며,
    피드백까지 완벽하네요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힘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