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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16.02.12 00:05

아이쿨드의 뱀 1편

조회 수 9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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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은 한참 낄낄거렸다. 그가 멈춘 것은 순전히, 순식간에 찾아온 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못한 덕분에 속이 울렁거리고 쓴 물이 올라왔다. 율은 몇 번이고 쓰디쓴 위액을 뱉어야만 했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핑핑 돌아 서 있기도 힘들었다. 율은 자신을 괴롭히는 허기에 바닥에 조용히 바닥에 누웠다. 허름한 곳간은 어두컴컴하고 싸늘했다.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의 냉기는 율의 뼈마디를 쑤셔댔다.


그제야 율의 파란 눈에 헛간의 모습이 제대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꼬마의 이름을 가지기 전과 그 이후로 한참이나 낄낄거리는 동안, 율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그 사실에 너무 몰두해있었다. 극심한 허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제야 생각하기 시작했다.


헛간에는 나무의자 하나와 헛간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올무처럼 매듭지어진 동아줄 하나만 덜렁거리고 있었다.   


율은 더는 웃을 힘도 나지 않았다. 율은 자신의 뇌 속에 남겨진 꼬마녀석의 기억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직감과 추론에 따라서 지금 자신이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왜, 나무의자와 동아줄이 있는가.


율이 가지게 된 꼬마의 기억은 순진해 빠진 꼬마의 시선이었지만, 율이 자리 잡은 이후로는 전혀 달랐다. 지금 '스테파놀 타타르 율'이 처한 상황은 재산권 분할이라는 커다란 파이의 지분을 올리려는 집안사람들의 음모였다.


스테파놀 가문의 가장 큰 어르신이자, 가문의 많은 재산을 차지하고 있는 친할머니 포메리아는 유목민 혈통인 율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나빠하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대로 스테파놀 가문이 로엔의 정치에 중요 일파인 골수 민중파였다는 점. 케플러 남매의 동생인 그라굴이 호민관 자리를 차지했을 때 다른 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것때문에 독재관 슐라가 집권하자마자 할머니 포메리아와 차남인 레다우스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숙청당했다.

그 때문에 스테파놀 가문의 남자는 손이 귀해져 버렸다. 포메리아는 율이 어떤 혈통이든 스테파놀 가문의 특유의 파란 눈동자를 가진 이상, 씨앗만 열심히 퍼뜨리면 그만인 입장이었다.

살아남은 차남이자, 율의 친부인 레다우스에게 율은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잡놈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호색과 주색잡기에 인생을 쏟아붓는 레다우스는 젊었을 때부터, 연회와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사도가 되어, 온갖 쾌락을 쫓는 망나니였다. 우습게도 숙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더더욱 포멜리아가 자신을 낳은 아이 중에서 방종스런 레다우스을 유독 싫어하면서도, 군말 없이 그의 생활에 말이 없는 것은 몰살당한 스테파놀 가문을 그 나름대로 부활의 씨앗을 뿌려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척이나 소원해진 본처인 뮤네스뿐만 아니라 21명의 성노예들을 통해, 많은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레다우스는 자신의 자식에 아무런 애정이 없었다. 그가 애정을 가지는 것은 성행위의 순간적인 쾌락일 뿐이었다.


스테파놀 가문의 막대한 유산이 그의 것이 될 것이었고, 일단은 로엔의 관습법상 여자는 가주가 될 수 없었으므로, 그는 대외적으로 스테파놀 가문의 가주다. 가주라는 명패가 주는 이득을 탐욕스럽게 챙기기 바빴다.


레다우스의 황금기는 숙청때  형제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을 때부터라는, 우스갯소리가 시장바닥에 돌아다닌 것은 꽤 오래되었다. 레다우스의 아이 중에, 남자는 겨우 4명밖에 안 된다는 점이, 율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되었다.


로엔의 성문법상, 유산은 남자들만 나눠 받게 되어있었다. (여자가 가진 재물은 스스로 일궈낸 것이거나 선물을 받은 것만 인정되었다.)이제 50대인 포메리아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이었고, 포메리아와 레다우스가 죽으면, 독재관 슐라마저, 건드리지 못한 스테파놀 가문이 왕정 시대부터 쌓아올린 부가 4명의 소년에게 분배될 것이었다.


동방의 유목민 출신인 죽어버린 어미와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풍파를 막아줄 방패막이가 없는 율이, 돌연 죽는다면 유산이라는 파이는 4등분이 아니라, 3등분이 될 것이었다. 거기에 레다우스의 정력적인 생산활동이 멈출 때까지 몇 명의 소년이 태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고, 파이의 주인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이복 형제들도 은밀하게 암살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왜, 나무의자와 동아줄이 덩그러니 있는 헛간에 감금되었는가. 율이 굶어 죽든 목매달아 죽든. 율이 없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의 합작품이었다.


율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율은 너무나도 간절했다. 지금 뼈마디를 쑤셔대는 차디찬 냉기도, 온몸을 괴롭히는 지독한 허기도, 무의미하게 흘러가 버리는 지금 이 시간도, 죽어버리면 더는 율의 소유가 아녔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의 새벽이 얼마나 간절했는가. 율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매초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아 흔들어대던, 죽음이 지난 나날을 얼마나 망가뜨렸는가. 율은 천천히 나무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이렇게 죽을 수 없었다.  율은 이 방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앙상마른 8살 꼬마가, 목매달아 자살한다? 그럴려면 얼마나 긴 동아줄이 필요한가. 율은 대들보에 매달린 동아줄을 바라봤다. 제법 높은 대들보에 매달린 동아줄은 제법 길었다. 꼬마가 의자에서 뛰어내리면 목뼈가 부러지게 할 정도로 맞춰놓은 동아줄을 준비해놓은 놈들이 순간 멍청해보였다. 아무것도 못하고 헛간에 갇혀있는 꼬마가 더욱 멍청했다.


율은 꼬마에게 비릿한 비웃음어린 냉소를 한번 지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지나친 허기에 쇠약해진 몸의 힘이 없어지기 전에, 율은 의자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동아줄을 향해 뛰어올랐다.

순간적인 부유감. 가벼운 체중의 몸이 추락하기 전에, 거친 동아줄을 손으로 꽉 붙잡았다. 화끈거리는 열기와 쓰라림이 손바닥을 스치고, 순식간에 체중과 충격이 팔꿈치에 몰아닥쳤다. 율은 이를 악물었다. 율은 동아줄 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놓칠뻔하고 휘청거리면서도, 율은 포기하지 않았다. 맨발바닥인 왼발이 올무의 매듭안으로 넣어지는 순간, 율은 낄낄거렸다. 율은 빠르게 발을 다 집어넣었다. 그리고 허벅지로 동아줄을 고정시켰다. 왼팔과 오른팔로 서서히 위로 나아갔다. 그때마다 대들보에 매달린 동아줄은 휘청휘청 거렸다. 손아귀에서 힘이 얼마나 빠져나가는지 몰랐다.

한참이나 율은 동아줄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헛간 밖에 있는 노예는 안의 상황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율은 조금씩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오른손이 대들보 위로 올라갔을 때, 율은 피곤했지만 미친듯이 기뻤다. 팔은 힘이 빠져 더이상 위로 올리기도 힘들었다. 율은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며 마침대 대들보 위에 자신 의 몸을 올릴 수 있었다. 거칠어진 숨결을 내뱉으며 대들보에 엎드렸다. 헛간 바닥에 덩그러니 엎어진 나무의자가 작게 보였다. 율은 대들보를 지지대 삼아 기어나갔다. 엉성한 나무지붕의 틈새로 비쳐지는 보름달의 달빛을 보게 되었다. 헛간 밖은 어느새 짙은 밤이 찾아왔다.


율은 낄낄거리면서도, 저도 모르게 두 눈매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몰랐다.

  • 발뭉 2016.02.12 19:42
    시궁창 제대로 시작하는건가!

    다음이 필요하다! 다음!!
  • SKEN 2016.02.12 23:40

    오오! 굳! 역시 믿고 보는 필력! 분량이 아쉽지만 그래도 굳!

    근데 왜 율이 대들보 위로 올라가는데 읽는 내가 아프지(....)

  • SKEN 2016.02.12 23:42

    율은 자신을 괴롭히는 허기에 바닥에 조용히 바닥에 누웠다.

     → '바닥에'가 두번 나옴

    더더욱 포멜리아가 자신을 낳은 아이 중에서 방종스런 레다우스을 유독 싫어하면서도,

    → 포메리아 할머니가 포멜리아로 바뀜

    그나저나 이게 술먹고 쓴 취중작품이라니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