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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두둑-!

“으아악!”


허둥대던 사이 빗발치는 화살세례가 오스발 군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강력한 아부스 포로 일반적인 화승총보다 원거리에서 타격을 가하는 걸로 유명한 이 병사들은 엘프들의 기습공격을 맞이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궁시에 거치대를 설치해서 탄환을 쏘아내는 이 무기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 쏟아지는 이 공격은 엘프들이 즐겨쓰는 ‘화살의 비’ 전법.

서로 다른 시점에 활을 쏘아날리지만 쏘는 각도와 힘을 달리해 화살이 표적을 맞출 때는 동시에 맞추는 궁술이다.

아주 오래전 문명이 붕괴한 암흑기에 온갖 야만족과 마물들에게 ‘화살의 비’는 악명을 떨쳤다.

그 명성대로 순식간에 반 이상이 활에 맞아 쓰러졌다.

피해를 견디다 못해 물러설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후퇴하라!”


별다른 전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예병이란 명성답게 무질서한 패주는 없었다.

활에 맞은 부위를 감싸쥘 지언정 장비는 버리는 법이 없었다.

절뚝거리며 후방으로 물러날지언정 질서정연히 전장터를 이탈했다.

이윽고 아부스 포병들이 있던 자리에 장창병들의 방진1)이 자리잡았다.

화승총병을 앞세워 전진하던 장창병들은 총병들을 방진 안쪽으로로 물리는 한편 방패수들을 앞세웠다.

방패수들이 든 원형방패는 적절한 크기에 가볍고 튼튼했으며 방어력이 아주 뛰어났다.

게다가 빼꼭히 장창을 세운 보병대열은 창대 자체가 화살을 막아줘서 의외로 방어력이 높았다.

튼튼한 방패와 화살을 막아주는 장창의 숲, 사슬과 튼튼한 철판을 이어 만든 든든한 갑옷, 그 위아래를 덮은 비단과 가죽옷은 화살 정도로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두어번 ‘화살의 비’ 전법으로 화살을 쏘아내 봤지만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엘프궁수들은 별다른 미련없이 철수했다.


“후퇴! 제1선 뒤편에서 지원사격한다!”


궁수대 지휘관인 모드리카는 휘하 엘프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정령의 힘을 빌려 활을 쏘아낼까 생각했다.

정령의 힘을 담아 쏘아내는 엘프들의 화살은 경량 화포애 팔적할만큼 강력했다.

그러나 자신들 바로 등뒤 까지 다가온 신성연맹의 병사들을 확인하고는 그 생각을 접었다.

어느덧 신성연맹군과 오스발제국군의 사이의 거리는 약 300미터.

힘껏 달려나가면 다을 거리이다.

두 군세는 제각기 화승총 사수를 앞세웠다.

이제 두 군세 사이의 거리는 200미터!


“머스킷티어(Muskteer)-. 거총!”


신성연맹군의 화승총 사수들은 지팡이 같은 일각대(一脚臺)를 땅에 꽂은 다음 말발굽 같은 모양의 받침대 위로 큼지막한 머스킷을 거치했다.

어떤 사수는 머스킷에 물린 화승이 불은 꺼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조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개머리판에 몸을 붙인 다음 시야에 들어온 마호멧 교도들을 겨누었다.


“쏴라!”

퍼퍼펑-.


폭음이 터지고 자욱한 연기가 일어나 시야를 가린다.

곧 뒤이어 반대편 마호멧 교도들의 총도 폭음을 터트렸다.


퍼퍼펑-.


소리만 요란했지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들은 거의 없었다.

있어도 어쩌다 한명정도.

200미터 정도는 분명 화승총의 사격거리이긴 했다.

쏘면 그 총탄에 맞아 사람이 죽을수도 있었지만 명중률은 매우 형평없었다.

보다 크고 무거운 헤비 머스킷을 쓰는 신성연맹군이 그나마 명중률이 조금 더 높은 정도 였지만 그 차이는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다.

차라리 밤하늘에 뜬 달을 맞추는게 더 쉬울정도이리라.

화승총으로 누군가 쏴죽이려면 좀 더 접근해야 한다.

누군가 냉소적으로 평하듯이 상대방 흰자위가 보일정도로 가까이 말이다.

사격을 마친 사수는 대열뒷편으로 돌아가 재장전했다.

뒤이어 그 다음열에 있던 머스킷 사수가 앞으로 나아가 일각대를 거치하고 총을 조준한다.

앞선 동료가 사격한 곳에서 좀더 앞으로 나아간 곳이었다.


“쏴라!”

퍼퍼펑-.

퍼퍼펑-.


양 군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쪽에서 쏘면 반드시 반대편에서 마치 대답하듯 응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양측에서 총격으로 인한 사상자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두 총병대는 서로 사격을 주거니 받거니 사격전을 벌이며 서로에게 다가가 거리를 좁혀들어갔다.

양측의 장창수들은 두 화승총병들의 사격전에 이끌리듯 나아갔다.

어느덧 거리는 100미터 정도로 좁혀 들어왔다.

이제부터 총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상자수는 열을 바꾸어 사격할때마다 조금씩 늘어갔다.

바람이 불지 않아 쾌쾌한 화약 연기가 전장터를 안개처럼 가득매워 제대로 조준하기 힘들었지만 화망을 구성하고 서로서로에게 총알을 퍼붇어대니 화승총병들은 픽픽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뒤따라 진군하던 몇 운 없는 장창병 몇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일도 발생했다.

갑옷으로 보호받는 부위에 총탄이 맞으면 튕겨나가곤 했다.

그러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얼굴에 맞으면 실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남은 거리는 50m 안팍!

이정도 거리에선 쏘면 누구든 맞는다.


“조준-. 쏴라!”

퍼퍼퍼펑-!

“다음 열부터 사격 후 대열 안으로!”


지휘관 명령에 따라 머스킷 사수들은 1개 대열씩 사격을 마치자마자 장창병들 사이 너머로 몸을 피했다.

적군인 오스발 제국의 화승총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사격 후 자기네 장창병들 사이로 몸을 날려 1열씩 사라졌다.

얼마지나지도 않아 마지막 사수들이 서로 총탄을 주고 받았다.

이제는 장창병대 장창병들의 싸움이었다.


“거창-!”

“거창!!”

“거창하라!”


각 연대 휘하 중대장, 백인대장 들이 목청껏 명령을 내린다.

그 뒤를 따라 부사관들과 고참병들이 복창하며 지시를 전달한다.

명령에 따라 장창수들은 창끝을 앞으로 겨누었다.

선두 최대 다섯열까지 얼굴 높이에서 조준하듯이 창날을 앞으로 내뻗는다.

가지런히 내뻗은 창날의 벽은 조금도 틈이 보이지 않았다.

정면으로 도전하는 누구든 고슴도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마호멧 교도들도 선두 5열이 창날을 앞으로 내뻗었다.

신성연맹과 다른점이 있다면 오스발 군인들은 앞의 2열까지는 얼굴 높이에서 창날을 뻗었는데, 뒤에 3열부터 5열까지는 허리높이에서 창을 들었다.

그 상태에서 서로를 향해 한발자국씩 압박하듯 전진한다.

한걸음, 한걸음,

이윽고 창끝과 창끝이 교차한다.

서로의 얼굴과 얼굴이 보일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투구에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양측의 병사들은 서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다시 한걸음.

한걸음

넘실거리는 창대의 숲과 숲이, 해일과 해일이 격돌한다.


“이야야아아아!”


누군가 목이 끊어져라 함성을 지른다.

그게 신호가 된모양인 듯 다른 병사들도 저마다 전투의 함성소리를 지른다.


“비바 히스타시아!” “저 이교도 새끼들 모조리 죽여라!” “조져버려!”


적군인 마호멧 교도들도 마찬가지로,


“오! 알라여!” “인샬라!” “알라 후 아크바르!” “이 빌어먹을 이블리스 독사의 새끼들아!”


신앙과 함성, 욕설의 고함이 교차한다.

묵직히 전진하던 두 군세의 진군은 이윽고 거친 충돌로 이어졌다.


“밀어붙여!”


장창과 장창이 서로를 밀고 민다.

양측이 질좋은 갑옷을 입고 있어 좀처럼 살상자가 나오지 않는다.

팔, 다리, 몸통, 머리 모두 철갑으로 둘러쌓여 창대에 의지하여 밀어 붙이는데, 이 이상은 근성의 영역이었다.

어처다 목덜미에 창날이 꽂혀 쓰러지는 병사가 나오긴 했다.


“컥! 쿠에에엑-!.”


상처부위를 부여잡은 그 오스발 병사는 실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지더니 혀를 내밀고 피거품을 연신 토해냈다.

그밖에 겨드랑이 사이로 창날이 들어왔다 나오며 살이 썰리는자, 우연히 갑옷의 틈바구니로 창날이 타고 들어가 몸에 걸친 방어구가 무색하게 찔려 죽는 병사도 나왔다.

이렇게 죽는 병사는 10번 중에 1번이 체 되지 않았다.

5m 넘는 긴 장창으로 원하는 부위를 겨누어 찌르는건 매우 어려운일이다.

거기다 온갖 창대가 엉키고 설켜 마음대로 운신 못 할 때는 더더욱.

이렇게 서로의 창대가 얽혀 힘으로만 우열을 가리는 상황이 왔을 때 신성연맹군 히스타시아의 방진 쪽에서 일단의 병차들이 창대 밑으로 굴러나와 오스발군 쪽으로 달려갔다.

작은 덩치에 덩치에 비하면 다부진 몸통을 갖고 수염이 풍성한 그들은 장창병들 못지 않게 단단한 갑옷을 입고 방패와 검이나 도끼를 들고 오스발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대항하여 오스발군쪽에서도 방패와 칼을 든 병사들이 몸을 숙이며 창대 밑으로 기어 나와 저 덩치작은 이교도들의 병사, 드워프들에 맞섰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죽어라! 이 망할 난쟁이놈들!”


창대 아래 좁은 공간. 장창병들의 싸움과 사뭇 다른 또다른 싸움이 이렇게 펼쳐진다.

창대 밑은 매우 좁아서 몸을 있는 대로 낮춰야 운신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편하다고 몸을 일으키면 어디선가 창날이 날아와 목덜미를 쑤신다.

모든 장창병의 방진이 이렇게 싸우는게 아니다.

거의 같은 방진을 갖춰 창날을 앞으로 내민 리만티아 란츠크네흐트 연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싸웠다.

상대편 오스발 장창병들과 서로 격돌하기 직전 양 측면을 호위하던 양손검병들이 일제히 날려나가 마호멧 교도들의 측면을 노리며 돌격했다.


“피와 영혼을 다하여-!”


란츠크네흐트 연대와 맞서는 오스발 제국군도 똑같이 대응했다.

그쪽도 마찬가지로 측면에서 대기하던 돌격병들이 광신을 불사르며 거칠게 돌격을 가해왔다.

할버드와 검과 방패로 무장한 돌격병들이 리만티아의 도펠졸트너에 맞섰다.


“인샬라-!”


두 장창 밀집방진 양 옆엔 혼전을 벌이는 사내들로 가득했다.

곧바로 장창병과 장창병들간의 힘싸움이 이어졌다.


“이야아아아!” “크아아아아악!”


그렇게 병사와 병사들간의 충돌이 일어난다.

제 1선의 모든 병사들이 교전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알레한드로는 망원경에서 눈을 땠다.

한숨을 내쉰 그는 손짓으로 자신의 참모진들을 볼러들였다.


“제1 히스타시아 테르시오는 지금 어디에 있지? 리만트리히(리만티아)군을 도우러 우익으로 가지 않았나?”


우익을 맡은 리만티아군으로부터 급보를 받아 지원군을 보낸지 시간이 제법 흐른 뒤다.

배신자들의 기병대를 앞세워 이교도들의 광신적인 돌격으로 대열이 붕괴되어 난전이 일어났다는게 약 30분전.

최후의 최후까지 아낄생각이었던 제1 히스타시아 테르시오를 지원으로 보낸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급속행군으로 구보를 뛰여 뛰쳐나간것도 꽤 시간이 흘렀으니 지금쯤 리만티아군에 힘을 보태어 적군을 밀어붙이고 있었을 터이다.


“방금 돌입 전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란츠크네흐트 할슈타인 연대는 전열을 회복했습니다. 도펠졸트너 지휘관 살바토르 대위의 공입니다.”

“흥! 리만트의 야만적인 돼지들 주제에 검 좀 쓰는군.”


히스타시아는 산악지형이 발달한 국가라 예전부터 보병으로 유명했다.

자연히 검술도 발달해 수많은 소드마스터와 그랜드마스터들을 배출했다.

서쪽 대양 건너 아넬리아 식민지 개척전쟁에서 콘키스타도르로 종사한 소드마스터들이 단신으로 수백명의 원주민 전사를 베어넘긴건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 이다.

그만큼 공작은 다른 나라의 검객이나 소드마스터들을 얕잡아볼 정도로 조국과 조국의 검술에 오만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야만스러운 리만트 인들은 검술을 펼치면 우왁스럽게 달려들어 곧바로 레슬링으로 넘어가곤 하는데, 자긍심 넘치는 히스타시아 인들은 돼지처럼 바닥을 구른다며 경멸해 했다.


“그대로 밀어붙여 우익에서 적을 몰아낸다. 그 다음 놈들의 중앙군을 측면에서...”

“보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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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진 方陣 보병들이 사각형으로 밀집해서 모인 대형. 열병기 이전 시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요 보병 진법이다.

  • PORSCHE 2018.09.12 20:13
    병사들의 격돌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하다! 간결한 설명에 상황이 더욱 잘 떠올라서 박진감 있고 재밌었다!
  • 홍차매니아 2018.09.12 21:32
    땡큐 포르쉐. 카톡에서 아까 말한거 이번에 내 글을 소리내어 정독하며 탈고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어째건 내가 목표한 글은 순조롭게 써지는거 같아서 정말 기쁘네 ㅎㅎㅎ
  • 반딧불 2018.09.16 19:03
    병력의 배치와 200m 근방에서 서로 탄을 안맞고 응전만 해대는 것들이 굉장히 치밀한 고증을 토대로 전투장면을 구상했다라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고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훌륭합니다
  • 홍차매니아 2018.09.17 17:19
    관심갖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됨 ㅋㅋㅋㅋ
    근데 저것도 현실 테르시오의 전투법 전체를 고증한건 또 아니라서. 여튼 감사합네다
  • SKEN 2018.09.18 02:14
    히야.. 알수 없는 용어와 전문 용어가 드문드문 섞인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읽고 연상하는데는 문제가 없는 듯하다.
    전투의 세부적인 진행 방식과 형태 묘사 흐름 묘사가 일품이네,
    약간 궤를 달리하는 시대지만 킹덤 오브 헤븐, 페트리어트-숲속의 여우-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연상되며 소설을 상상하는데 보탬이 되는 그런 기분을 받았음.
    *P.s 예를 들어 "콘키스타도르"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 생소할 수 있는 용어는 전문적인 전쟁사 지식이나 그 방면에 조예가 깊지 않은 독자들을 배려하여 꼼꼼히 주석이나 괄호를 통해 그 간략한 개념을 보충해주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