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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valiers Rhapsody  ~ 기사의 노래 ~
                                『 제 1 악장 【 Raven # Prologue

 

오호~ 정신이 들었어 꼬마?”

 

 칠흑 같은 어둠, 짙은 어둠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다니 대단한걸? 이렇게 참을성이 좋은 인간 꼬마는 드물지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어둠 너머에서 들려온다.

 

당분간은 그쪽 눈을 뜨는 연습부터 해야 할거야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왼쪽 눈꺼풀에 힘을 주었지만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른쪽 눈꺼풀에 힘을 주어본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

손을 움직여 왼쪽 눈으로 가져간다.

물컹거리는 느낌과 함께 손 끝에 걸쭉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이윽고 걸쭉한 액체가 왼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전해진다.

이어서 코를 타고 들어오는 짙은 피비린내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실패한 건 아니니까 당황하지마

 

 당황하진 않았다.

다만 이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 쌓여 조금 답답할 뿐,

어차피 뜨고 있어봐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오른 눈을 지그시 감는다.

 

너처럼 흥미가 생기는 인간은 꽤 오랜만이야 내 생각이지만 그 녀석이후로는 네가 두 번째인 것 같아!”

 

 아무런 반응도 대꾸도 하지 않음에도 여자의 밝은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온다.

 

저기~ 듣고 있어? 아무튼 내 흥미를 끌다니 덕분에 넌 인간이 가지긴 과분한 힘을 얻은 걸지도~?”

 

 키득키득,

장난기 가득한 여자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넌 모르겠지만, 사실 네 안에 흐르는 피의 힘도 보통은 아니야, 재능이라고 할까

꼬마 너한테는 이미 그것이 넘쳐 어느 정도냐 하면 지금 굳이 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도 인간들 중에서 보통 이상은 할 정도?”

 

 뭐가 그렇게 신나는 건지 한껏 들떠있는 여자의 목소리

 

그런 주제에 운도 좋단 말이지, 나의 흥미를 끌어서 내가 널 돕게 만들었어 물론 무료했던 내 단순한 변덕이지만~

그것도 너에게 있어선 운이란 말이지? 거기에 시기도 알맞게 타고났어 다른 때였으면 너의 재능은 별로 쓸모 없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서녀석의 실종 이후 혼란에 빠져버린 지금은 너 같은 꼬마가 필요하겠지.

 

 눈을 감고 있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갑작스런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확실한 건! 꼬마 넌 나한테 큰 빚을 졌어! 양심이 있다면 이 빚은 나중에 제대로 갚아주길 바라~!”

 

 뇌리에 맴도는 여자의 마지막 목소리와 함께 피로감이 온 몸을 덮쳤다.




 쿠르릉.. !.. 쏴아아아

번쩍이는 섬광과 귀를 뒤흔드는 천둥 소리에 카일은 눈을 뜬다.

천둥소리에 이어 세찬 빗소리가 그의 귀를 간지럽히고 차가운 빗방울이 그의 몸을 적신다.

카일은 자신의 몸을 적시는 빗방울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눈 앞에 펼쳐진 평원을 바라본다.

제국 서부 방위선의 한쪽에 위치한 인테그리안 평원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비옥한 토지를 자랑하던 이 평원의 말끔한 모습은 현재는 온데간데없다.

사방팔방에 방치된 채 썩고 있는 다양한 시체들, 부러진 갑옷과 무기의 잔해,

풀 위에 늘러 붙은 검붉은 핏자국,

거기에 더해 막 쏟아지기 시작한 빗방울은 붉은 피들과 섞여 대지를 적시고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를 지르는 수 많은 병사들의 발이 평원을 짓밟고 있었다.

그렇게 더럽혀진 평원을 깨끗하게 씻어내려는 듯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은

격렬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뜨거운 몸을 식히며 미약한 김을 내뿜었고

거세진 바람은 피비린내를 평원 뒤편에 있는 카일에게까지 데려와 그의 후각을 자극시켰다.

 

카일 단장.”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이제는 살육의 현장이 되어버린 평원을 바라보고 있는 카일의 등 뒤로

한 사내가 다가와 그를 불렀다.

 

“뭔가, 키라하스?”

방금, 중앙에서 루덴츠 경이 오셨습니다. 단장님을 만나러 오셨답니다.”

루덴츠가?”

 

 카일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키라하스를 향해 몸을 돌렸고

그의 시야에 멀찍이서 다가오는 백색 제복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로브조차 걸치지 않은 그 사내의 온 몸은 비에 젖어있었고

갈색 머리칼은 헝클어진 채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카일, 키라하스! 두 사람 다 오랜만이로군.”

 

 카일과 키라하스에게 다가온 사내는 헝클어진 자신의 갈색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사내는 짧은 인사와 함께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는 간신히 웃고만 있을 뿐 생기가 없었다.

간단한 목례와 함께 인사에 답한 키라하스는 사내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행색에 적잖이 당황했고

그것은 카일도 마찬가지였다.

 

루덴츠, 무슨 일이지? 그 모습은 뭔가?”

 

 카일은 의아한 표정으로 루덴츠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젖어서 엉망이 되어버린 갈색 머리칼, 백색 제복은 흠뻑 젖은 걸로도 모자라, 흙탕물이 곳곳에 튀어있었고

심지어 무릎 아래는 그가 입은 것이 백색 제복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흙탕물에 물들어 있었다.

카일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행색을 살펴본 루덴츠는 스스로 생각해도 본인의 모습이 엉망인 듯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이제 보니 완전 엉망진창이군, 아무튼 좋지 못한 소식이 있네 카일.”

“..좋지 못한 소식?”

 

 루덴츠의 말에 카일은 눈썹을 찌푸렸다.

제국 중앙사령부 소속인 루덴츠가 서부방위선이라는 최전방에 올 일은 거의 없다.

그의 역할은 중앙사령부에서 각 군으로 명령을 내리는 입장이지 전하러 오는 입장이 아니었다.

거기에 행색을 봤을 때 그는 이 궂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전력질주로 몰 정도로 서둘렀다.

카일이 짐작했을 때 루덴츠가 이렇게 서둘러서 자신을 만나러 올 정도의 일은 거의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루덴츠를 쳐다보는 카일.

그리고 그런 그의 시선을 받으며 루덴츠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네.”

 

 카일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완전히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1년전 그가 서부방위선으로 출병할 때도 이미 황제는 병세가 깊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군신’, ‘정복왕이라 불리던 것도 이제는 과거일 뿐, 황제의 몸은 늙고 병들었다.

다만, 최근 들어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었기에 황제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쿠르릉..

잠깐의 침묵 사이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렇군.”

몇 일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셨었네, 어떻게 손을 써보지도 못했고, 소식을 전할 틈도 없었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카일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그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루덴츠는 말을 이어갔다.

 

이 소식은 곧 전 지역에 알려질 거야, 황궁에서는 이미 소식을 띄웠네 서부 방위선 전체에도 곧 알려지겠지

다만, 내가 이렇게 서둘러서 자네에게 먼저 온 것은..”

폐하께서 내게 전하실 말씀이 있었겠지.”

“…그래, 폐하께서 병세가 악화되기 직전 나에게 부탁하셨었네 자네에게 비공식적으로 직접 전하라 하시더군 그리고..”

 

 루덴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카일의 옆에 서있는 키라하스를 쳐다봤다.

황제의 죽음이란 소식에 적잖이 놀란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그는 두 사람의 대화에 침묵을 지키며 묵묵히 서있었다.

 

폐하께서는 자네한테 전하라고 하셨지만, 키라하스도 같이 들어도 상관은 없겠지?”

상관없어, 어차피 남기신 말씀은 우리 레이븐에게 하는 말씀과도 같을테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카일의 대답

그의 대답에 루덴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가 남긴 말을 전했다.

 

폐하께서는 까마귀들을 나의 새장 속에 가둔 적은 없고 말씀 하시더군.”

“..그런가 마지막까지 배려해주시는군.”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하늘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카일

침착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을 보며 루덴츠는 물었다.

 

떠날 생각인가?”

그럴 생각이네.”

 

 쿠르릉

또다시 잠깐의 침묵 사이로 파고드는 천둥소리

카일은 자신의 말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덴츠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이 폐하와 나의 약속이지, 애초에 제로너스 제국에는 충성을 맹세한 적이 없어 공식적으로 기사 서약조차 하지 않았지.

내가 충성을 맹세한 건 제국이 아니라 군신이라 불렸던 레오크 카 제로너스라는 단 한 명의 남자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확고한 표정.

그런 카일의 표정을 본 루덴츠는 체념하듯 고개를 저었다.

 

서부방위선 구축에 있어서 큰 전력이 빠져나가겠군..”

걱정할 것 없어, 폐하의 마지막 배려에 대한 답례는 해드리고 갈 거니까.”

“…답례라고?”

 

 카일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 루덴츠.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키라하스의 오른쪽 귀에서 미세한 빛이 깜빡였고

그 순간, 키라하스는 자신의 오른쪽 귀에 걸린 장신구를 만지며 무언가를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 ----------------- ------ ------ -----“

 

 깜빡이는 빛과 함께 희미한 소리가 흘러 나온다.

리핀 토르에서 만든 극소형 마법 통신기 '이어링'을 통해 무언가를 듣고 있던 키라하스는 이어링의 빛이 꺼지자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카일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장님, 중앙에 있는 제 3군과, 엘루시아로부터 동시 보고입니다. '파란 눈'이 나타났습니다.”

“…마침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는군, 보름에 걸친 숨바꼭질도 오늘이 마지막인가.”

 

 키라하스의 보고를 듣고 시선을 평원으로 돌리는 카일.

격렬한 전투가 거듭되던 전장의 중원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다소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전장 전체를 바라보고 있던 카일이었지만

그 변화는 그에게도 선명하게 보였다.

루스토니아의 거신병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을 압도하는 평균 4미터의 높이와 거구, 바위로 만들어 갑옷이 없어도 단단한 몸

인간 병사를 가볍게 던져버리고 갑옷 통째로 찌그러트리며,

눈과 같은 마력석을 빛내며 적을 압도하는 루스토니아의 수호신들이

중앙에 위치한 제국의 병사들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커맨더 골렘 파란 눈, 서부방위선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나타났군.”

 

 카일과 같이 평원을 바라보던 루덴츠가 중얼거린다.

일반 골렘들보다 1미터 정도 더 큰 높이와 체구,

그 크기에 맞춘 거대한 갑옷과 투구, 파란색의 거대한 망토

그리고 거대한 투구 속에서 빛을 내뿜고 있는 파란색의 마력석

인간의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한 마력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파란 빛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한 기분을 들게 한다.

파란 눈이 전선에 나타난 후 급격하게 무너지는 진형을 보며

카일은 키라하스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가 내민 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키라하스는

자신의 귀에 건 이어링과 손가락에 끼고 있던 '메신저링'을 빼서 건네었다.

건네 받은 이어링을 능숙하게 자신의 귀에 끼운 카일은 메신저링을 쥔 손을 입 가까이 가져갔다.

 

여기는 레이븐의 카일 키르와일러 단장, 제국 전시 특례법 조항에 의거 현 시간 부로 모든 지휘는

중앙사령부 제 2 독립기사단 레이븐이 맡는다중앙 제 3군과 4군은 즉시 후방으로 후퇴해라.”

“-----! -----.”

루츠, 이자크 더 이상 양익에서 밸런스를 맞출 필요 없다. 적의 중앙은 충분히 얇아졌다. 좌우 양익을 무너트리고 퇴로를 막아라.”

“-----? ---------?!.”

아니, 퇴로만 막아라. 엘루시아 중앙으로 가는 길을 열어라, 그리고 블러드 케이프들은 내 곁으로 집결해라.”

“--------?”

 

 메신저 링과 이어링의 빛이 깜빡이며

카일의 명령이 일사천리로 평원에 있는 제국군에게 하달된다.

더 이상 이어링을 통해 들을 내용은 없다는 듯 이어링을 뺀 그는 메신저링으로

그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

 

그래, 파란 눈의 목은 내가 직접 배겠다.”

 

 그리고 이어링과 메신저링을 다시 키라하스에게 건네는 카일

 

파란 눈의 목을 가져오겠다. 중앙 지휘는 키라하스 자네가 맡아라.”

 

 카일이 하는 모습을 가만히 뒤에서 지켜보던 루덴츠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답례로 서부방위선의 골칫거리인 파란 눈의 목을 직접 가져오겠다는 건가? 자네답군.”

제국에 대한 마지막 선물로는 부족하진 않겠지.”

“..그렇군 마지막인가?”

 

 카일의 말에서 마지막이라는 한 단어가 마음에 걸린 루덴츠는 그 단어를 곱씹으며 무의식적으로

카일에게 되묻는다. 카일 역시 그 단어가 순간 마음에 걸렸는지 말없이 루덴츠를 바라본다.

잠깐의 침묵, 찰나의 시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는 두 사람

이윽고 카일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침묵을 깬다.

 

마지막일지는 모르겠군, 누군가 나를 또 움직이게 할 사람이 있다면 다시 움직이겠지.”

 

 에류시아력 171

인테그리안 평원 전투

약 보름에 걸친 전투 속에 루스토니아의 파란 눈을 베어버리고

제로너스 제국 중앙사령부 제 2 독립기사단 레이븐은 그대로 사라졌다.


 C h e v a l i e r s  R h a p s o d y  ~ 기사의 노래 ~ 』       

                         『  1 악장 【 R a v e n  # Prologue 』 

by SKEN


★ 쓰는 것만으로 지쳐버렸기 때문에 검토 한다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냥 초본으로 올립니다. 

아 몰라 잘래 1편은 언제 쓰지..

  • PORSCHE 2015.08.22 19:31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오랜만에 쓴다고 엄살피우셔 놓고 이리 잘쓰시다뇨!

  • SKEN 2015.08.22 23:14

    ㅠㅠ엄살이 아니라 정말 힘들어요..흑흑 그래도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굽신 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