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조회 수 7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iIEy6co.jpg


Blizard Guard 1부 2막
94. ep19. 예티의 땅.


율라 중사가 말한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사이 뇽은 우리 소초의 마스코트가 되어 있었다.

"자 달려, 뇽아!"
"우키키! 간다."

가슴을 팡팡 치던 뇽이 쏜살같이 뛰어 소처럼 엎드린 내 허리 위에 올라탔다. 그리곤 앞에 서있는 안젤리카와 가위바위보 대결을 펼쳤다.

"가위바위..."
"보!!"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녀석은 무척이나 똑똑해서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서는 어느정도의 대화도 가능해졌고 이처럼 간단한 놀이도 가능해졌다.

"아..."
"뇽이 졌네."
"킁. 재미 없다. 안할란다."

너무 똑똑해서 문제였다. 금세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처한 걸 깨달은 뇽이 툴툴거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푸하하하...아야야."

벤치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프레카 병사장이 자지러지게 웃어대다 이내 고통을 호소했다.

"좀 괜찮으십니까?"
"그래. 상처가 조금 덜 아물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군요."
"베일도 어느정도 상태가 호전됬대나봐. 아마 일주일 후면 완치해서 복귀한다고 하더라."
"잘됬네요. 안그래도 걱정 많이 했는데."

희소식에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블린들과의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실려갔던 베일 상등병의 근황이 안그래도 궁금하던 찰나였다.

"아르펜 일등병님, 계십니까?"

그때 누군가가 나를 찾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발렌이었다. 그는 내 앞에 서서 절도 있게 경례를 한번 하고선, 용건을 이야기했다.

"율라중사님과 그 외의 두 분이 소초를 찾아오셨습니다. 소초장님이 소초장실로 얼른 오라고 하십니다."
"그래. 얼른 가야지."

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발렌을 따라 소초장실을 향했다.
소초장은 계급상으론 율라중사보다 우위에 있다. 그녀가 데려온 일행이 평범한 이들이었다면 급히 오라고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등병 아르펜, 소초장실에 용무가 있어 왔습니다."

이례 하는 보고와 함께 소초장실에 들어온 내가 주변을 훓었다. 소초장과 율라중사, 그리고 처음 보는 두 인물이 이채를 띄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키가 190에 이르며 체구 또한 강철처럼 탄탄한 남자였다. 누가 봐도 전사라 할만한 인물이었다. 짧게 자른 흑발에 더불어 짙은 눈썹만큼이나 매서운 눈빛을 가졌는데, 쏘아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죽일 것만 같았다.
또 다른 한명은 블루블랙의 긴 머리칼이 인상적인 미녀였다. 특유의 꼬깔모자와 짙은 청색의 로브로 보아 마법사임이 분명해 보였는데, 이지적이면서 냉랭해 보이는 모습이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 듯했다.
둘 다 평범한 인물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아르펜. 인사드려라. 내 동지들이다."

율라중사의 말에 고개를 주억인 내가 그들에게 경례를 붙였다.

"단결. 일등병 아르펜입니다. 1소초 2분대에서 0번 척살병을 맡고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많이 들었다. 반갑다. 난 체스터 폰 카트로스다."
"!"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온 뜻밖의 거물의 이름에, 악수를 나누던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릴 적부터 나와 형인 알타바르는 언더프로즌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라왔고, 전국 곳곳을 종횡하는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
그 무용담에서 제일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눈 앞의 남자, 체스터 폰 카트로스였다. 카트로스 가의 서자로 태어나 뛰어난 무예를 타고났던 그는 불과 20의 나이에 언더프로즌 요원으로 입단했고 23의 나이에 오러 유저가 되어, 아르고니아 국내외의 수많은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현재는 왕실친위대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현존하는 전설이었다. 
공식적으로 '아르고니아 제일검'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알타바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글쎄요, 말로만 듣던 분을 실제로 뵈니 너무 놀랐을 따름입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슬쩍 율라중사를 바라보았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섭외력입니까!?
체스터 경에 대한 놀람도 잠시, 또 다른 미녀 마법사가 자신을 소개했다

"레피아 펠른로즈다. 언더프로즌 1번대의 부대장을 맡고 있지."
"...헐."

또 다른 인물 또한 체스터 경에 전혀 뒤지지 않는 명성의 인물이었다.
사실 나와 접촉했던, 크로서스가 이끄는 2번대의 경우 실력은 분명 뛰어났지만 비공식적인 전투에서만 활약해 명성에 대해선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1번대의 경우는 달랐다. 그들은 왕이 가진 최고의 전사들이자 최상의 패로 아르고니아 내외의 각종 분쟁과 갈등을 해결해 온 정예 중의 정예로 그 명성이 드높았다.
그 1번대에서 부대장을 맡고 있는 레피아를 모를리가 없었다.
일전에 만났던 대마법사 샤린 타라크만이 나이 칠순을 넘어 유일하게 직속제자로 받아들인 한명이 바로 그녀였다.

"이거 너무 현실감이 없어 뭐라 할 말이 없군요. 하하."

내가 할 말을 소초장이 대신 하고 있었다. 그 또한 그들의 명성을 모를 리가 없었기에,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일개 소초의 소초장인 자신이, 수틀리면 아르고니아 정계를 흔들 수 있는 이들과 함께 끼여 있을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이봐, 소초장. 이 척박한 곳에서 차 같은건 안 내어와도 되니까 하루 정도 짐 풀어놓을 자리나 좀 부탁함세. 그리고 그 작은 예티 좀 데려오고."

체스터 경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는 결코 거부하면 안될 것 같은 절대적인 힘이 실려 있었다. 소초장은 "여부가 있겠습니까, 편히 이야기 나누시길" 이라는 말과 함께 공손히 문을 닫으며 소초장실을 나갔다.
율라중사는 문이 닫히고 나서야, 걸음을 옮겨 문을 등지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겠군."
"이봐 일등병. 우리한테 뭐 궁금한 거 없어?"

체스터 경의 질문이 나를 향했다. 일종의 유도심문인가 싶어, 율라중사의 눈치를 보았다. 고개를 젓는 그녀. 
나는 심호흡을 하며 긴장감 반, 호기심 반의 표정을 지은 채 그들에게 간단한 것만 질문했다.

"두 분도 이지스 교 신도들이십니까?"

내 질문에 체스터 경과 레피아 경은 서로를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곤 동시에 품에서 목걸이를 꺼내었다.
그것은 일전에 라이오 상등병이 처음 보여주었던, 시스의 문양을 가진 목걸이와 일치했다.

"그게 아니라면 일개 중대의 중사와, 왕실친위대 부대장, 언더프로즌 부대장 그 사이의 공통분모가 있을리 없겠지?"
"일개 중사라. 그건 네가 자처하고 있는 거잖냐, 율라?"

율라중사의 너스레에 레피아 경이 딴죽을 걸었다. 그녀는 굳이 반박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년째지. 철책선 바깥세계에 있다는 카이안 콴타의 유적을 찾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 말이야."
"그래서 네게서 연통이 오자마자 둘이 부리나케 달려왔고 말이야."
"이 녀석 덕분에 모든 준비물이 다 갖추어 졌으니깐 말이야."

나는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지으며 세 남녀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하기 점점 힘들어졌다.
율라중사는 왜 2년전부터 유적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그 유적과 뇽이 무슨 관련이 있는걸까?

"훗, 그런데 이 일등병은 아직 이해 못한 표정인걸?"

나를 힐끗 바라보던 레피아 경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체스터 경이 율라중사를 향해 눈짓을 주었다. 
아마도, 말해도 되냐는 싸인같았다. 율라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펜은 내가 보증하지. 믿을 수 있어."
"네 심장이 담보인건 알고 있지?"
"알다마다."

체스터 경의 살벌한 말에 오금이 저리는 와중에서도, 나를 향한 율라중사의 거리낌 없는 신뢰에 가슴이 울컥였다. 
나는 조금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카이안 콴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아르고니아의 최강자들 앞이라 묻고 싶은 것을 아끼고 있을 따름이다.
아까 율라중사가 내게 고개를 저은 것은 그런 의미였다.
주제 넘는 질문을 하게 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몇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체스터 경이 입을 열었다.

"그래. 실력은 인증했고, 율라가 심장을 담보로 걸었으니 아르펜 너도 우리의 동지로 인정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