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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4 08:20

Blizzard Guard(20)ep4. 실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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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의 연이은 근무가 끝난 뒤의 휴식은 쵸코와플을 입에 한가득 먹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달콤했다.
아, 그러고보니 실제로 쵸코와플을 먹을 기회가 왔다.
"아아, 참 얼마만에 보는 황금마차냐..."
눈 앞에서 번쩍이는 금색의 마차를 마주한 샨티 일등병이 닭똥같은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사실 그 눈물보다는 입가에서 흐르는 침이 한참 더 많았지만.
"아따, 입에 그 침이나 좀 닦지요. 넘사스럽구로."
한심하다는 말투였지만 스카프로 샨티 일등병의 입가를 일일이 닦아주는 안젤리카일등병이었다.
여기는 소초 바로 아래의 보급로. 세마리 말이 이끄는 금빛의 마차 앞으로 이십여명의 인원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마차의 짐칸 안에서는 인부가 두명 있었는데, 연신 은전과 물건들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 분대는 상등병들을 제외한 일이등병들이 황금마차에서 물품을 사기 위해 내려와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황금마차 보니 즐겁네 참."
갑작스레 활기가 넘치는 보급로를 둘러보던 칼라 병사장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다른 분대의 고참들이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칼라 병사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간부들과 1분대장인 라키아병사장을 제외하고는 소초의 최고 어른이었으니깐.
"카, 칼라 병사장님, 괜찮으시다면 먼저 구입하시죠."
계속 눈치를 보던 상등병 고참 하나가 다가와 황금마차쪽으로 양손을 향하며 말했다. 칼라 병사장이 손사레를 쳤다.
"아냐 아냐. 난 그냥 할 거 없어서 황금마차 보러 온 거야.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해."
"아닙니다. 제가 어찌..."
"내 성격 알잖아 자식아. 신경 쓰지 말고 사고 싶은거 사도 돼."
"네. 그럼..."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는 상등병 고참이었다. 처음에는 그 상황을 이해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분대고참들의 대화를 듣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안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알아. 그런데 그렇다고 너네만 보내기엔 미안하잖냐. 상등병 애들은 고강도 운동을 하는 중이니 같이 가자고 할 수도 없고."
"어차피 저희 오후에 근무 들어가는데 걍 푹 쉬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분대장님도 근무잡히셨는데."
"좀이 쑤셔서 말이야. 아르펜 녀석한테 뭐가 어떤건지 가르쳐나 줄테니 너네는 사는 거에만 집중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내 어깨에 팔을 얹어오는 칼라 병사장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에 어깨가 커져만 가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은 나를 막내라 부르지 않는다.'
오전주간의 마지막 날, 베일이 내게 막내를 뗐다고 말한 그 이후부터 분대의 모든 고참들이 내'이름'을 불러주었다. 무심코 막내라고 부른 세레나 이등병이 혼난 걸 떠올려보면 나는 언급도 안되었던 그 어떤 불문율의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이다.
단지 호칭 하나 바뀌었을 뿐이다. 그랬을 뿐인데 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쁜 감정은 무엇일까?
군대에 오면 사람이 단순해진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조그만 배려 하나에도 감사했고 작은 인정 하나에도 뛸 듯이 기뻤다. 
그나저나, 시간은 흘러 우리분대의 차례가 왔다.
"어서오십쇼."
"이번에도 쓸만한 물건들이 많군요, 어디보자..."
베일 일등병이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진지한 표정으로 상품들을 둘러보았다. 주력상품인 가공식품을 비롯해 서적과 기타 편의용품들이 차곡차곡 진열되어 있었다.
"이렇게 주시죠. 두개 따로 계산해주시구요."
"플라스크는 멀쩡한 상태로 반납하시면 반액 되돌려 받는거 아시죠?"
"물론이죠. 너네 잠깐 와봐."
왼손에 받은 포대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은 베일 일등병이 바로 뒤에 있던 라만과 세레나, 두 이등병들에게 손을 까닥였다. 도착한 둘이 가죽으로 된 꾸러미를 펼치자 베일 일등병이 판매상에게서 사각형의 유리병을 부드러운 양피지로 감싸며 안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유리병 안의 내용물은 대부분 노란색이었는데, 이따금 흰색이 든 것도 들어갔다.
"저건... 무엇입니까?"
"방패수와 부월수에게만 주어지는 특별식이지."
간단하게 대답한 칼라 병사장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노란건 벌크업 포션이라고, 근육성장에 가속을 붙이는 포션이지. 흰거는 스태미너 포션. 복용자의 체력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거라던데, 지속시간은 30분 정도밖에 안된대."
"역시...펜타그래프쪽 물건이겠군요?"
"대부분은."
칼라 병사장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만 듣던 신비의 마도왕국, 펜타그래프의 수입품들은 우리 삶에 실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세계의 최남단에 있다고 했는데, 저희와 극과 극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쪽의 물건을 접한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페니아의 상인들은 발이 넓기로 유명하니깐 말이야. 만약 대동양(大東洋 : East Ocean)만 잘 뚫려 있었으면 가격이 이렇게 비싸진 않았을 테지. 너 저거 다 얼만줄은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에서 놀랄만한 액수가 튀어나왔다.
"20골드다."
"뭐라구요?!"
20골드면 평민가족 4인가구의 일년치 생활비다. 더군다나 아르고니아는 징집제. 조금씩 오르고 있다곤 해도 일개병사들은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으며 지낸다.
그나마 최전방을 지키는 우리 블리저드 가드는 생명수당의 명목으로 타부대보다 조금 더 받고 있는 편이긴 하나 쥐꼬리인건 매한가지였다.
"나부터 시작해서 라이오까지, 페바에 지낼 때부터 모은 돈 다 털어서 산거야."
"...그 정도로 저 포션이 중요합니까?"
"그래, 중요해."
그 말을 끝으로 칼라 병사장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주위로 시선을 살짝 둘러보는 모습이, 주변인들을 의식해서인 듯했다. 슬며시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고개를 뻗어 고참들의 거래를 구경했다. 
다음은 안젤리카 일등병 차례였다. 무슨일에서인지 쭈뼛거리며 마차안을 홀끔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혹시 그 뭐시냐... 그거 있어요...?"
"그기 뭔데요, 우리 남부 아가씨~?"
"아이씨, 쫌 말투 따라하지 말고요."
응글맞게 장난치는 판매상에게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 안젤리카 일등병이 좌우를 곁눈질하더니, 귀에 대고 속닥였다. 듣고 있던 판매상의 표정이 점점 음흉(?)해지더니, 잠시나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는 먼산으로 시선을 옮겼다. 
"호오, 그거 말씀이시군요. 흠흠. 기다려보시죠."
진열장을 뒤지던 판매상이 정리를 마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눈치있게 꾸러미에 넣은 채 가져와 내용물을 보여줬는데, 표정이 순간 환해지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참 감정 읽기 쉬운 후임이로소이다."
바로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샨티 일등병의 감상평이었다.
"아따 진짜 샨티 일등병님!"
"누가 뭐랬니? 히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안젤리카 일등병은 꾸러미 안에 간식 몇개를 더 집어넣은 후에야 거래를 끝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오랜만이네, 우리 꼬마먹보님."
"쵸코 와플 12개에 푸딩 8개, 그리고..."
판매상이 장난을 치든 말든 주문부터 하는 샨티 일등병이었다. 예상대로 죄다 먹을 것뿐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판매상은 그녀가 부르는 식품을 팔짱을 낀 채 듣기만 하다, 주문이 끝나자마자 말했다. 
"총 62실버 되겠습니다."
"아저씨 잠깐만 있어 봐."
주머니를 풀어서 열심히 돈을 세아리던 샨티 일등병. 그러나 금세 풀이 죽어 어깨가 움츠러든 채 속삭이듯 말했다.
"27실버밖에 없으니깐 알아서 담아줘."
"물론입죠."
판매상은 기다렸다는 듯 자루에 빠르게 간식을 집어넣고선 끝을 잡아 내밀며 말했다.  
"아까 부른 거에 반. 우리 꼬마먹보 아가씨는 먹고 잘 크라고 특별히 더 넣어줬어."
"와아,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키 좀 크고 입대하지 그랬어?"
"...저 올해 21살이거든요?"
기뻐 춤추다말고 불만이라는 듯 혀를 날름 내미는 샨티 일등병이었다.
그렇게 우리 분대원들의 황금마차 쇼핑은, 이등병들의 소소한 구매가 끝난 뒤에야 마치게 되었다. 빈털털이였던 나는 칼라 병사장이 사다준 쵸코와플 두개를 간신히 손에 쥘 수 있었다.
"하하하. 너네 진짜 사고싶은거도 가지각색이구나."
소초로 올라가는 길에 칼라 병사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무심코 각자 한보따리씩 지고 올라가고 있는 고참들을 둘러보았다. 책과 약간의 간식만 산 라만 이등병, '푸딩'만 산 세레나 이등병, 종류별 가공식품을 다 산 샨티 일등병 등등...
"안젤리카는 뭘 샀길래 저리 빨리 뛰어올라갔대?"
"글쎄요, 아까 표정을 보니 야한 소설이라도 잔뜩 샀나 보죠."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 두 일등병이었다. 그걸 지켜보던 칼라 병사장이 나지막히 말했다.
"그런가? 그런데 너네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이지만, 후임 사생활까지 간섭하진 마라. 본인에겐 이 힘든 생활의 유일한 낙일 테니깐."
"네 분대장님."
"그리고 아르펜 너도 내일 나랑 근무 설 거니깐 준비 단단히 잘 하고."
"네. 잘 부탁드립니다."
대답은 가볍게 했어도, 순간 긴장감이 열 오르듯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칼라 병사장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며 과연 내일 어떤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생각에 한동안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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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꼈는지 모르겠는데, 08년 기준으로 gop에서 받았던 생명수당이 그 당시의 담배값 한갑정도였던 것  ...

 쓰다보니 갑자기 기억이 나네요 ㄷㄷ

  • 반딧불 2018.11.03 20:43

    포션이 나왔어욬ㅋㅋㅋㅋㅋ 그럼 판타지 답게 마법도 나오겠군요!
    조금씩 조금씩 베일을 벗는 느낌이 아직 기대할것들은 많습니다 기대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같아 너무 좋습니다
    막내에서 이름으로! 작고 사소하지만 이런부분을 이렇게나 잘살리시다니
    꽁꽁 숨겨두다가 뒤늦게 이건 이래서 이렇게 한겁니다! 라고 하는 건 역시 소설만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합니다

  • 불꽃휴먼 2018.11.06 11:43
    넵 ㅎㅎ 조금씩 끄집어내는 게 소설만의 참매력이죠...
    막내에서 이름으로는 딱히 제 경험담은 아니고 모 시인의 시가 생각나서 글에 옮겨봤는데 반응이 좋아 다행이네요.
    다만 군대에서 나 개인이 소소한 부분에서라도 인정받는다는 것에 대한 희열감은 저도 한줄때 많이 느꼈었죠^^
    항상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SKEN 2019.04.15 19:03
    사소한 거에 감정이 요동치는 것.
    군대에 있을때만큼 많이 느끼기가 쉽지 않죠ㅎㅎ
    아르펜의 심정이 너무 잘 이입이 되네요.
    황금마차에서 구입하는 장면만으로도
    드러나는 캐릭터의 개성들이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