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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9 02:53

Blizzard Guard(18)ep3. 경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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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가 끝나고 출발했던 길로 돌아온 우리 분대는 처음 했던 그대로 무장검사를 실시했다.
"부대 차렷."
"포박로프, 제식화살 20발, 제식궁 이상 무."
얀 중사의 칼날같은 한 마디와 함께 신속하게 무장검사를 마친 우리는 소초로 돌아와 무장을 해제하고 점심식사를 했다.
"날씨 많이 쌀쌀하더라. 든든하게들 먹어라."
칼라 병사장이 식탁에 앉은 분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앞에 놓인 식판에서 나는 따스하고 향긋한 냄새에 벌써부터 입에서 침이 고였다.
"막내도 첫 근무 잘 섰어. 자식, 제법이던데?"
"아, 아닙니다."
"뭐, 이제 시작이니깐. 처음 한주는 힘들테니까 몸관리 잘해."
"알겠습니다."
내 등을 살짝 두드려주던 칼라 병사장의 시선이 베일 일등병을 향했다.
"너도 고생이 많은데, 너무 연연하지는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두 고참의 대화를 듣던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주어가 없는 대화. 도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당면한 문제는 경계초소 숙지사항이었다. 베일 일등병은 정말 단 한번만 설명하고 끝냈고, 다시 가르쳐 줄 의사가 없어보였다. 일주일동안 계속 근무를 같이 서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모르는 상태로 내일을 맞이하면 결국 또 오늘의 지옥을 맛봐야만 했다.
결국 다른 고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었는데, 일단 베일 일등병 위의 고참들은 배제했다. 근무를 서면서 느꼈던 묘한 위화감 때문인 것도 있었고, 계급 높은 고참들은 아무래도 거리감이 느껴져서이기도 했다.
그렇게되니 딱 세명으로 좁혀졌다. 안젤리카 일등병, 세레나 이등병, 라만 이등병이었다. 이 셋중 한명한테 물어봐야 했는데, 생활관 안에서 먼저 물어보기엔 꽤나 눈치가 보였다.
"이런, 또 눈이 내리네요."
"새삼스럽게 뭘 그래, 이제 근무 외에는 눈만 쓴다고 생각해야지."
"그래. 다들 푹 쉬고 오후에 눈 쓸 준비나 해라."
칼라 병사장의 말에 나는 조금 다급해졌다. 겨울철 경계 이외에 일과는 없다고 한다. '제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얼마나 많이 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여유롭게 고민할 시간이 없어졌다.
"바람쐴겸, 눈이나 한번 보러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때였다. 말을 마친 안젤리카 일등병이 생활관 밖을 나섰다.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와 똑같은 이유를 댈 수는 없었다.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잠시 후, 나는 다른 이유를 대었다.
"분대장님, 화장실좀 다녀오겠습니다."
허락을 받고 나간 나는 소초밖을 나섰다. 하늘을 바라본 채 손을 가볍게 뻗어 눈을 만지고 있는 안젤리카 일등병의 모습이 보였다. 미소 짓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뭐하노?"
"네?"
느닷없는 한 마디에 어리둥절한 내가 반문했다. 어느새 안젤리카 일등병이 가볍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내한테 할말 있어서 온거 아니가, 아르펜?"
"저, 그게...악."
주저하다가 안젤리카 일등병에게 시원하게 등짝을 한대 맞았다.
"니, 내랑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얘기해라고 했나, 안했나?!"
"하셨습니다..."
안젤리카 일등병의 호통에 머리를 긁적인 나는 베일 일등병과 있었던 이야기와 현재상황을 이야기했다. 어여쁜 은발에 눈이 쌓이는 지도 모르고 팔짱을 낀 채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안젤리카 일등병이 손을 뻗어 눈을 탈탈 털어낸 뒤, 입을 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근데 아르펜, 누나야가 한가지만 얘기해주께."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안젤리카 일등병은 나보다 연상이었다. 두살 위의.
"나는 니가 알고 싶은 거, 못 가르쳐준다." 
"...네?"
순간적으로 잘못들었나 싶어 어벙한 표정을 지은 나였다.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고민하는듯 검지를 입술에 붙인 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던 안젤리카 일등병이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해가 될진 모르겠지만, 불문율같은 거다. 신병에 대한 불문율 말이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 머스마 자슥이 어디 울쌍이 되가지고..."
안젤리카 일등병이 팔로 내 어깨를 휘감으며 몸을 부딪혀왔다. 두꺼운 설상복으로 인해 미세하게 느껴지는 가슴에 순간 얼굴이 가열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귓가에 속삭이듯 전하는 그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니 고참 걔 있잖아. 말 더듬는 고참. 걔만 찾아라. 그럼 다 해결된다. 어렵게 생각할 게 뭐있노."
"아..."
물론 있다. 아주 심하게 더듬어서 알아들으려면 정신을 집중해야 되는 고참이.
"나는 다 알려줬데이. 힘내고."
내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고선, 이내 소초 안으로 들어가는 안젤리카 일등병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여간 특이한 분이었다. 마치 이걸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나왔나?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내 정신 좀 봐."
그 생각은 잠시, 생활관 안에 들어온 나는 단서를 알려준 안젤리카 일등병의 말에 따라 라만 이등병을 찾았다.
"라만 이등병님. 잠시 상의할 게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는 듯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앉아 있던 라만 이등병이 살짝 놀란 어조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응? 아아, 막내구나. 무, 무슨 일이야아?"
"단 둘이 할 얘기라..."
나는 슬쩍 다른 고참들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무슨 일인지 어느정도 눈치챈듯 고개를 끄덕인 라만 이등병이 말했다.
"기다려봐, 분대장님께 보고드릴테니깐."
"듣고 있어. 10분뒤에 제설작업 나가야 되니깐 일과시간 끝나고 가야할 것 같다."
지켜보고 있던 칼라 병사장이 시계로 시선을 옮긴 채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시계의 분침은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전엔 한시가 되어서 나갔었는데, 아마도 눈이 유난히 많이 내려서 서두르려나 보다.
"둘이 가서 다른 볼일 보고 있는 애들 다 데리고 생활관으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칼라 병사장의 명령을 받든 우리는 본래와는 다른 이유로 생활관 밖을 나서야만 했다.
잠시 후, 다시 제설을 위한 여정을 떠났다. 제설과정은 처음 행동패턴 그대로였다. 두 상등병이 넉가래로 바닥을 밀었고, 이등병들이 눈삽을 밀며 일등병들이 싸리비를 쓸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행동의 반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나 초조했다. 듣기론 눈이 오는 상황에 따라서 밤새도록 쓸어야 되기도 한다고 들었으니깐.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보며 마음 속으로 제발 멈추라고 소리도 쳐보았다. 
정말 쓰레기다. 안젤리카 일등병의 말마따나.
"휴우. 이제 좀 그치는구만."
그런 내 바램이 빛을 보았을까, 해가 서서히 저물 무렵 끊임없이 내리던 눈이 점차 옅어졌다. 복귀하자는 칼라 병사장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열맞춰 소초를 향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나는 곧장 라만 이등병과 함께 칼라 병사장의 허락을 받은 뒤 소초 밖에 마련된 벤치를 향했다.
"앉으시죠."
손으로 의자에 쌓인 눈을 털어낸 내가 손을 뻗었다. 라만 이등병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안그래도 되는데...  고, 고맙다. 막내야아."
"에이, 당연한 거 아닙니까."
"헤헤. 보, 보답이라고 하긴 뭣하구우, 우리 이거나 먹으면서 얘기하자아."
그 말과 함께 품안을 뒤적이던 라만 이등병이 무언가를 꺼내었다. 밀봉된 작고 둥그런 봉투 두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게 뭡니까...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내 두 눈이 점점 커져만 갔다. 라만 이등병의 손에 뜯겨져 하얀 봉투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동그란 그것은 새까만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이성을 잃었다.
"아니 이것은 초코와플이 아닙니까?!"
"너 오기 전에... 화, 황금마차에서 고참들이 사주신 거야아."
나는 혀안에서 분비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라만 이등병이 건네주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웃기게도 여기에 온 본래의 목적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사격1등을 하여 유일하게 먹은 특식이었다. 마법과 간식의 나라, 펜타그래프에서 페니아의 황금마차를 통해 유일하게 유통되는 간식들 중 유일하게 먹어본 게 바로 저 초코와플이었기 때문에 그 맛을 잘 알고 있었다.
"너어, 먹어봤구나? 대단하네에..."
"감사히 먹겠습니다...!"
내심 다른 고참과 함께 황금마차가 언제 오는지 오매갈망 기다리던 나였기에, 받자마자 봉투를 뜯어 한입 베어물었다.
"아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혀안에서 초코렛의 달콤함과 부드러운 와플의 식감이 한데 어우러져 한 차례의 춤사위를 자아냈다. 그와 동시에 라만 이등병에게 은연중에 품고 있었던 약간의 언짢은 감정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샤, 샨티 일등병님한테서... 지켜낸다고 조옴 히, 힘들었어어..."
라만 이등병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법도 했다. 먹을 것과 간식에 대한 샨티 일등병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했으니깐.
"오늘, 베, 베일 일등병님한테... 많이 시달렸지이?"
"...네."
라만 이등병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본인도 나와 같은 신병시절을 겪었을 테니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으리라.
"음... 어,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에... 우선 겨, 경계병의 주임무부터어... 설명해줄게에."
"알겠습니다." 
시원하게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는 라만 이등병의 말을 나는 진지한 어조로 경청하기 시작했다. 예의 그 답답한 말투는 좀 고칠 수 없을까하고 속으로 잠시 한탄도 했지만, 그나마 처음보다는 익숙해진 탓에 해석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라만 이등병과 함께 쌀쌀한 저녁의 추위를 견디며 한시간 가량 경계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정도면 다 외운 것 같습니다."
"처, 천재가 아니며언, 다 못 배워어. 그래도오... 오늘보단 괜찮을 거야아."
"아무튼 여러가지로 감사하고, 추운데 고생하셨습니다. 라만 이등병님."
"아니야아... 내가 더 고맙지이..."
라만 이등병의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가 잘 가질 않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한기가 내린 외투를 부둥켜 안은 채 우린 생활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들어왔...잠깐."
들어오는 우리를 맞이하던 샨티 일등병의 표정이 변해갔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코를 킁킁거리던 그녀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아니 이 냄새는...? 너네, 잠깐만 이~ 해봐."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나와 이만 이등병은 이내 입술을 열었다. 들킬까싶어 서로를 보며 입술에 묻은 초코는 닦아냈지만 치아에 묻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라만 너였구나!"
가리키는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탄식하는 샨티 일등병이었다. 분노, 후회, 슬픔, 오열로 이어지는 표정변화는 참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한데 펼쳐놓은 듯 진귀한 광경이었다.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침상에 드러눕더니 어린아이처럼 팔다리를 흔들어대었다.
"어째서 몰랐냐구우! 냄새가 났는 데에에!"
"아이고야. 초코와플이 그렇게 먹고싶어쪄요, 우리 샨티 일등병니임~"
난리를 치는 샨티 일등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는 안젤리카 일등병이었다. 그 광경을 잠자코 구경하던 나와 라만 이등병은 머리를 긁적인 채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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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초코파이로 하려다.... 초코파이를 쓰든 쵸코파이를 쓰든 저작권 침해인거같아

쵸코와플로 정했습니다(초코와플도 있긴 하네요 ㅋㅋ)

화장실에서 직고들과 사로에 쭈그리고 앉아 비빔면 먹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 반딧불 2018.11.03 20:02

    베일 일등병이 주인공을 갈구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건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 위해서 인가요, 아니면 불문율이라는 것도 맞고참이 알려줘야 하고, 라만 이등병이 부족하기때문에 같이 성장해야하는 건가요, 아니면 맞고참만 알려줘야하는건가요... 이거 완전 내리갈굼... 앗 아아..
    이번엔 부족함 없이 잘 읽었던것 같습니다

    황금마차! 와플! 막판에 너무 정겹네요 px는 없는 건가요?:-)

  • 불꽃휴먼 2018.11.06 11:31
    서로 능력이 다른 직계 선후임간에 유대관계를 심어주려는 분대의 전통 비슷한 거라 생각하심 될 듯하네요.
    항상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GOP에 px따윈 없습니다.
  • SKEN 2019.04.15 18:44
    감상평이 많이 늦었네요.
    고참은 고참이다. 라는 말이 딱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어리숙하고 아무리 능력이 부족해보여도
    군대에서 고참은 고참이고 후임이 그보다 뛰어나다해서 고참을 넘어서는 안되죠.
    딱 그 부분이 생각나는 맞고참에 대한 위계질서를
    몸에 심어주고 유대관계와 존경심을 가지게 하는
    일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얼핏보면 사소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나
    라만에게만 묻고 배울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분대원들과 그 불문율을 지켜야하는 이유가 잘묻어나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