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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23:20

인형사(1)

조회 수 10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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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엔진. 부드럽게 움직이는 관절. 그리고 날뛰는 발전기. 강력한 마력. 폭발하는 피스톤. 끊임없이 솟구치는 스팀과 냉각기. 회전하는 냉각팬. 마지막으로 가동되는 CPU


그 모든 것이 사람의 손 끝에서 시작되었다.



1.

남자의 거리는 언제나 짙은 안개가 가라앉은 풍경이었다. 바다 건너에서 불어온 미세 먼지와 중금속이 뒤섞인 안개는 이제는 일상이었다. 남자는 창밖을 바라봤다. 짙은 안개속 흐트러지는 가로등 불빛. 불빛은 고흐의 명화마냥 일그러진다.

 남자의 방은 대조적이었다. 차분해지는 남색과 보랏빛이 뒤섞인 네온. 식물 생장용 LED 보랏빛이 가득한 방은 오래된 에어컨과 대형 선풍기가 돌아간다.  영양제가 꽂혀있는 싸구려 화병과 너무나 힘이 없어 보이는 관상용 식물들 . 그리고 큰 거울이 놓여있는 어둑어둑한 방.

 남자는 그 방에서 다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추레한 민소매 티를 입은 남자의 오른쪽 관자놀이는 푸른 빛이 들어오는 링이 박혔다. 남자는 무척이나 단조롭고 음울한 인상이었다. 식물 생장용 LED 남보랏빛 아래, 남자의 음울한 그림자가 내려앉아 남자를 덮는다.  

 상의를 벗어버린 남자. 큰 덩치에 군 살이 살짝 붙은 몸. 유독 시선을 끄는 곳은 왼팔이었다. 
남자의 왼쪽 팔은 성모 마리아와 기독교적 상징이 가득한 문신이 있었다. 그리고 팔은 새하얀 기계였다.  
세밀하게 작동되고, 생각대로 바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최고급형 의수. 제작사는 '아이봇' 모델명은 CX-12.  남자의 왼팔 팔꿈치에는 '아이봇'의 로그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남자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회사 로그를 가려버리기 위해 무척이나 화려한 타투를 의수에 새겨버렸다.

 가느다란 난초가 덜덜거리는 선풍기 바람에 흔들렸다.  남자는 창에 비쳐지는 뉴스를 바라본다. '네트워크'에서 수신되는 영상과 소음들. 어김없이 TV 뉴스는 미세먼지. 중금속 황사 이야기가 나오고는 했다.  

 남자는 문신이 가득한 손가락을 오른쪽 관자놀이 파란 링에 가져다 댔다. 파란 링은 청록색의 작은 원형 띠에 녹을 머금고 있었다.  남자의 귓가에서 들려오던 뉴스라는 소음과 창에 비치던 영상은 사라졌다. 남자가 시술받은 ‘9G 네트워크’와 '임플란트'는 이제는 터무니없이 비싸진 가격으로 악명높아진 차세대 기술 중 하나였다. 

 남자는 무감각하게 임플란트에 저장해놓은 무작위 음악을 재생시킨다. 그리고는 두꺼운 후드티를 집어 들어 입는다. 코와 입을 덮는 필터 달린 마스크를 쓴다. 호흡에 지장이 올 정도로 불편함이 바로 느껴진다.

 남자는 자신의 집을 벗어난다. 강한 황사에 새로 갈아 끼운 필터의 기능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라는 정보가 딱딱한 AI 음성으로 남자의 귓가에 퍼진다. 남자는 망설임 없이 밖으로 뛰어나간다. 24시간 집안에 처박힌 일상에 가만히 있다면, 남자는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뜀박질하는 순간, 남자의 심장 날뛰는 박동에 남자는 들려오는 음악 소리마저 잃어버린다. 한참이나 뛰던 남자가 가파 오른 숨을 토하면서 멈춰선다.

 황사에 가시거리가 확연하게 짧아진 대낮의 골목길. 허물어져가는 담벼락 아래 ' 그 것'은 앉아있었다.

 팔과 다리가 박살나 머리와 몸통만 버려져 있었다. 20대 여성의 날 것 그대로의 알몸. 엉기성기로 얽혀버린 옅은 금발머리...창조주인 인간을 모방한, 생동감을 잃어버린 갈색의 피부가 부분 부분 떨어진 쥐가 파먹은 듯한 외형. 예쁘장하게 조형된 얼굴과 빠져버린 왼쪽 눈알과 텅빈 안구. 안구 속에는 복잡한 회로와 전선들이 보인다. 멀쩡하게 남은 오른쪽 짙은 파란 눈동자는 전력을 잃어버려 눈동자 색이 침전물 마냥 가라앉아 있었다.
 
 안드로이드.
 
 남자는 천천히 버려진 안드로이드를 향해 걸어갔다. 그직업은 안드로이드 제작사 겸, 정비사.

 남자는 국가공인시험에 합격 한 것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유명한 공방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였다. 다만 남자는 남들에 비해서 많이 만져봤을 뿐이었다. 어느 순간 단순한 취미였던 안드로이드 제작과 정비가 직업이 되어있었다.

 남자가 버려진 안드로이드를 지나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직업병 때문일지도 몰랐다.  

 낡아버리고, 고장나고, 녹이 슬어버린 흉뮬. 


 남자는 뜀박질로 거칠어진 숨을 몰아 쉬었다. 달라붙은 이마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털고선,  남자는 버려진 흉물 앞에 쭈구려 앉았다.

 안드로이드 관련 법률에 의거, 오른 쪽 빰에는 회사 로그와 왼쪽 빰의 모델링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길바닥에 버려진 이 안드로이드는, 커스텀화 되었는지 빰의 문신이 무척이나 희미하게 새겨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자칫 무시하고 지나갈 뻔했다. 제작사는 아이봇, 모델링은 SS0123.

 남자는 저도 모르게, 모델링 넘버를 왼손으로 건들였다.

 그 순간, 침전물이 내려앉은 오른쪽 눈동자에 하얀 빛깔이 튀어오른다. 굳게 닫힌 조그만한 입술이 움직인다.

─Hellow, World

너무나도 여린  여자의 목소리가 남자에게 전송되었다.

"뭐, 안녕"

안드로이드의 인사에 남자는 습관적으로 인사했다.

모델링 SS0123은 잠시 마치 고양이 마냥 고개를 갸웃거렸다. 

─ 상호작용 프로그램 작용. AI-13조에 의거, 상호작용 요청

접속실패. 재차 요청. 접속실패. 안드로이드 확인 실시.

"난 사람이야 "

 남자는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모델링 SS0123의 멀쩡히 살아남은 눈동자에 다양한 불빛이 일순간 지나간다. 붉은 선, 파란선, 보라선. 한 눈에 보이는 네온빛이 3초가량 지났을까, 모델링 SS0123은 고개를 끄덕인다.

─안녕하십니까.

"넌 퍽이나 안녕하겠다."

남자의 냉소적인 말에, 모델링 SS0123은 덤덤하게 대꾸한다.

─손상률 34%. 팔과 다리 파츠 파괴. 감각센서 파손. 가동 에너지 부족. 절전모드 실행. A/S가 필요.

남자는 모델링 SS0123의 빰을 가볍게 툭툭쳤다.

"수리 비용 청구할 주인은 있고?"

─통화연결중.... 연결 실패. 긴급 프로토콜 실행. 

모델링 SS0123은 뚜러져라 남자를 바라본다.

─A/S요청. 

남자의 구겨진 인상은 더 일그러진다.

─NA은행. 계좌번호 3014-2121-111-445156 . 계좌주 김노아.

모델링 SS0123의 말에, 남자 노아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노아가 모델링 SS0123에게 한마디를 하려했다.

─긴급 프로토콜 실행. A/S 비용 청구. 이행시 선 지급. 10,200 E. A/S 센터로 이송시 추가 40,200E 지급.

간단한 효과음과 함께, 노아의 귓가에 AI의 음성이 들려온다. 10,200E NA은행 계좌에 입금되었습니다.

한순간 노기가 사라지길 충분한 금액이었다.

노아는 임플란트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건 계약성립이야. 꼭 지키라고"

모델링 SS0123의 멀쩡한 눈의 눈꺼풀이 두번 껌벅인다. 

"동의 하는거냐?"

─동의. 

다시 눈꺼풀이 두번 껌벅. 

노아는 후드티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찌그러진 마일드세븐 곽. 노아는 습관적으로 입에 물려다가 필터 달린 마스크에 담배 필터를 데었다. 노아는 눈을 살짝 찡그리고는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

"뭐, 그렇수도 있지"

모델링 SS0123의 시선에 노아는 궁시렁 거렸다. 노아는 임플란트를 꾹 눌렀다.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임플란트의 푸른 링이 반짝인다. 창백한 백광이 링을 따라 순식간에 돈다.


안녕하십니까. 빕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성 ai의 음성이 들려온다. 노아의 시야에 수십개의 창이 떠오른다. 노아의 눈에만 보이는 디스플레이. 노아는 가볍게 창들을 최소화 시킨다. 노아는 임플란트 ai 빕스에게 말한다.

"퀵서비스"

노아의 말이 떨어지자, 곧장 팝업 하나가 뜬다. 퀵서비스를 위해 위치정보가 필요합니다. 정보제공에 동의하십니까?  노아는 무심하게 동의했다. 팝업이 꺼지고 GPS가 뜬다. 배송 무게. 배송 거리, 배송할 물건을 묻는다. 노아는 능숙하게 처리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라는 ai 빕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금과 결제방식을 묻는 팝업이 뜬다.

노아는 늘상 해오던 신용카드 결제로 손쉽게 끝내버렸다. 


"기다려, 곧 용달올거야"

─... 

"거참"

노아는 알몸의 안드로이드를 보고는 위아래로 훓어봤다. 철저하게 남자의 시선을 끌어당기게 설정된, 철저한 계산을 통해 만든 유려한 몸. 여성 특유의 아름다운 곡선과 시선을 끌어당기는 유방의 크기와 탄성. 노아는 자신이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었다. 그리고 후드티를 모델링 SS0123에 입혔다

─의문

"시끄러. 임마, 아무리 안드로이드라고 하지만 입고 다니자, 이 무슨 민폐야"

─동의 할 수 없음. 본 기계는 안드로이드임. 현 기상상황 악화.  

"됐고. 그냥 입고 있어라"

노아는 모델링 SS0123의 머리를 의수로 툭툭 쳤다. 모델링 SS0123는 순간 어이없다는 듯 노아를 바라본 듯 했다. 최신형 안드로이드도 표정이 아직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익히 유명한 이야기였다. 여기 버려진 모델링 SS0123가 인간처럼 자연스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노아의 순간적인 착각이었다.

잠시 후, 도착합니다.

ai빕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아는 일어났다. 곧 짙은 안개 사이로 차량의 쌍라이트 빛이 일렁거리고, 엔진음이 들려온다. 달달거리는 포터. 특유의 네이비 색깔 포터가 멈춰선다. 포터 바퀴에는 진흙과 말라버린 흰색의 흙이 묻어있었다. 운전자석 창문이 내려간다.

"어이, 오랜만이야!"

"영감님 어제도 같이 술먹고는 무슨 오랜만입니까"

운전자석에 앉아있던 검은 썬글라스를 쓴 노인이 씨익 웃는다. 세월에 깊이져버린 계곡과 산맥들. 늙었지만 추하지 않았고, 넉넉한 인상. 새하얗고 가지런한 흰 이빨들이 보기 좋았다. 노인은 곱게 가꾼 새하얀 콧수염과 턱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턱수염을 곱게 땋아 내려, 분홍색 고무줄로 단정하게 묶었다. 노인은 샛노란 두건을  쓰고 있었다. 건강한 갈색피부에 단단한 근육질. 노인은 무척이나 괴짜의 기질이 보였다. 

"나같은 노인네는 하루하루가 엄청 소중한 법이라고!"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우렁찬 소리에, 노아는 그냥 대충 맞장구는 치고는 모델링 SS0123을 가리켰다.

"영감님, AS 총괄센터로 갑시다"

"거기 장거리야."

"알고 있습니다. 이거 고칠려면 거기밖에 안되요"

"그래? 뭐, 그렇다고 하면 맞는거지"

노인은 가뿐하게 운전자석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몇 번의 능숙한 터치. 포터 짐칸에서 기계음이 들린다. 그리고는 샛노란 기계팔이 꺼내져 나왔다. 기계팔은 능숙하게 모델링 SS0123을 집어다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포터 짐칸에 내려놓는다. 노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면서 검은색 굵은 고무줄로 모델링 SS0123을 단단히 묶었다. 그 통에 모델링 SS0123의 가슴이 더더욱 도드라져 보이긴 했다.  

"가자고, 어서타!" 

노인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 반딧불 2018.07.31 23:34
    시작부터 분위기가 공각기동대의 냄새를 풀풀 풍기네요.
    오히려 그덕분에 더 몰입이 된다고나 할까요?
    아주 가벼운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안드로이드간의 상호작용은
    앞으로 노아와 SS0123 간에 일어날 일들을 아주 흥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포터라니... 저 세계관에... 현기차가...ㅂㄷㅂㄷ
  • PORSCHE 2018.08.01 06:21
    이야, 매력적인 세계가!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해서 좋음 ㅎㅎㅎ
  • 홍차매니아 2018.08.01 09:04
    초장엔 근미래 배경 일본 SF 애니 같았다가 포터 등장하는 순간부터 순식간에 실사 영상을 보는 기분임.ㅋㅋㅋㅋㅋㅋ <-오늘의 포인트야. ㅋㅋㅋㅋㅋ
  • SKEN 2018.08.01 14:01
    양도 퀄리티도 전개도 내용도 모두 아주 만-족!
    기존에 올린 부분을 다시 손보며 살을 붙인 내용들도 어색하지 않게 잘붙어서 좋다! 추가된 내용도 재밌고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