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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는건가요 사제님!"

젊은 청년이 눈 앞에 서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소리쳤다.
그 두 사람의 사이에는 침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옆에서 소리를 쳐도 미동조차 않는 소녀가 누워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1가족용 오두막의 가장 큰 방 안에서, 세 사람은 청년의 고함을 마지막으로 침묵만을 고수했다.
따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심하게 타들어가는 벽난로의 뗄감만이 어서 움직이라는 듯 독촉하듯이 소리를 냈다.

"저주라는 건..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없네. 상대방의 실력을 모른다면 함부로 튕겨내려다 도리어 목숨을 빼앗기도 하지."

사제라 불린 중년의 남성이 성유물로 보이는 켈틱 십자가를 소녀에게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소녀의 전신에서 검은 오오라가 피어오르더니 성유물을 거부하듯이 밀어냈다.
그 과정에서 요란하게 스파크가 튀지만 소녀가 일어날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성유물이 가까이 다가온 쪽의 피부가 뜨거운 열을 버티지 못하고 그슬리려 하자 청년이 황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사제를 밀쳤다.

"오, 티나... 어째서."

청년은 소녀와 소꿉친구였다.
어릴적부터 함께 노는것이 당연했던 사이였고 주변에서 얼마든지 놀려도 꿋꿋하게 어울려왔다.
그래서 연인이 되고 싶다거나 그런 것 없이 끈끈한 우정만으로 어지간한 댓가는 상대를 위해 치뤄줄 수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날아온 저주를 대신 맞고 쓰러졌듯이.

"하지만.."

사제가 말을 흐리며 뭔가 말하려다 말자 청년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말씀하십시오 사제님."
"..."
"제가 뭔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말 해 주십시오!"
"단 하나... 그녀가 움직일 수 있는 방도가 있다네."

침울하게 중얼거린 사제가 슬그머니 켈틱 십자가를 감추었다.
신으로부터 자신의 행위를 감추고 싶다는 듯이, 품 속 깊은곳에 꼼꼼하게.


[중편] 검사는 영웅을 꿈꾸지 않는다. 1화.


"티나, 너무 신나하는거 아니야?"
"엘. 한 일주일 정도 누워있다가 드디어 움직여보라고. 얼마나 신나는지."
"알았다고. 네가 저주를 대신 맞아준 것 때문에 일어났으니 뭐든 어울려줄게 티나."
"그 말 똑똑히 들었어 엘. 각오해."

마치 마법처럼 소녀는 다시 일어나서 일상을 영위해나갔다.
저주를 퍼부운 술사를 아직 잡지도 못했지만 소녀는 활기찼다.
그런 소녀를 엘은 조금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옆에서 소녀를 함께 봐주던 사제는 머쓱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고맙습니다 사제님."
"뭘, 고맙다고 할 일은 아니야."

사제가 떠나고 나자 티나라 불리는 소녀가 다시 돌아왔다.

"사제님 가셨어?"
"응. 나도 이만 가볼게 슬슬 밭도 갈아야 할 시간이야."
"엘의 밭에서 나는 밀이 가장 품질이 좋으니까. 기대할게."
"오! 맏겨두라구!"

티나의 밝은 웃음을 본 엘은 안심하고 자리를 비웠다.
이제 된거야.
사제님의 기도로 모든 것이 해결 된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태는 전혀 해결 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뒤로 미뤄놨을 뿐.
일주일이 지난 뒤 미뤄둔 경작물의 수거를 마치고 티나의 집으로 타작이 끝난 밀을 한보따리 싸서 들고왔을 때.
그녀는 침대에 반쯤 걸쳐진체 쓰러져 있었다.

"티나!"

밀 보따리를 놓치는 것도 모르고 손에 들고있던 것을 놓아버리고 달려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티나를 흔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이전에 사제가 성유물을 가져다 댔을 때 처럼 검은 오오라가 일어나 엘의 앞을 막아섰다.
뜨거운 열기가 마치 옆집 대장간의 모루에 얼굴을 가져다 댄 것 처럼 확 올라왔다.

"앗 뜨거!"

깜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이상하게 뜨거운 열에도 가구가 타오른다거나 하지 않았다.
오로지 살아있는 것에만 그 열기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이상한 오오라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엘은 다시 한 번 사제를 찾아가야 했다.

성당 문을 부숴버릴 것 처럼 열어젖힌 엘의 앞에는 이 일을 예견했다는 듯이 침울한 표정을 지은 사제가 서 있었다.

"가세."

사제는 자세히 묻지도 않고 엘이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이번에도 역시 티나가 하루만에 정상으로 돌아와서 분주하게 빨래를 하는 아침이 찾아왔지만 엘의 표정은 마냥 밝지 못했다.

"사제님.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요?"
"역시 술자를 잡아야겠지."

사제의 당연하다는 듯한 덤덤한 말에 엘은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어찌 행동해야할지 엘 역시 알고있었기 때문에 사제의 말에 열이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자신 스스로의 모자란 머리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저 궁중에서 온갖 정무를 도맡아 처리한다는 대신정도의 머리를 갖고 있었다면 술자의 위치를 계산으로 따라잡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머리가 없음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미련없이 그런 말도안되는 법은 포기했다.

그저, 아버지가 징집당해서 병졸로 나가다가 어디서 줏어온 이름없는 철검을 허리에 차고 역시 병졸로 차출당할때 입던 갑옷을 차려입었다.
영지를 나타내는 표식은 전쟁때만 쓴다고 배웠기 때문에 딱히 차지 않았다.
산적으로 오인받기 딱 좋은 엉성한 전사의 차림세로 엘은 티나에게 향했다.

"티나, 한동안 이곳을 떠나야겠어."

엘의 말에 티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은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엘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티나가 엘의 손을 잡았다.
엘은 그 손을 떨치지 못하고 멈춰서야만 했다.

"최근 내 몸상태가 이상한 것과 관련이 있지?"

티나의 추궁에 엘은 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해왔기 때문에 어설픈 거짓말은 그녀와 지냈던 세월로 간파당하리라.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없어도 엘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

엘의 늦은 답변에 티나는 한숨을 푹 쉬더니 가까이에 놓아둔 가방을 매었다.
약초를 캐러 갈 때면 자주 매던 가방이었기에 엘은 약초라도 캐러 가려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티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엉뚱한 말이었다.

"내 저주야. 나도 함께 가자."
"티나, 너는.."

엘이 만류하려 하자 티나는 엘의 말을 끊고 답했다.

"알아, 언제 쓰러질 지 모른다는 거. 하지만 내가 같이 가지 않으면 네가 밥도 제대로 못 먹을 거란 것도 알고있어."
"..."

티나의 걱정에 아니라고 바로 말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견딜 수 없던 엘은 문득 티나의 치료에 필수불가결인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어렵게 그녀의 참가를 수락한 다음 사제를 찾아갔다.

"사제님. 티나의 저주를 풀고 싶습니다. 함께 가 주세요."

사제는 조용히 신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문을 읊조리고는 지팡이를 꺼내왔다.
그리고 교회 문을 굳게 잠그고 말없이 두 사람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이로써 저주때문에 이름모를 작은 마을에서 한무리의 여행자가 조심스레 여행을 떠났다.
비록 작은 고블린이 한두마리만 나타나도 고난을 겪게 되는 약소한 여행자이지만 저주를 퍼부은 술자를 잡을 때 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SKEN 2016.02.14 22:04

    [SYSTEM]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 SKEN 2016.02.15 16:19

    엘은 영웅을 꿈꾸지 않고 티나의 저주를 풀기만을 원할뿐인데

    그 과정에서 열렙해서 용사가 되버리는 그런 일대기의 시작인가.

    (하지만 엘이 용사가 되기 전에 섭종 될 거 같은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