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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20:23

조개껍데기(10,11)

조회 수 25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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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아이를 낳은 때루는 삼일 내내 울기만 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때루를 다그치고는 억지로 아이의 입에 때루의 젖을 물리셨다. 때루는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잠도 안자고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딱 한번 아이를 쳐다본 적이 있었는데 아이를 보는 때루의 눈은 엄마의 모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버리려고 방치해둔 쓰레기묶음을 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11

 

개들을 따라갔던 산길을 다시 올라보고 싶어 천천히 걸어나갔다. 겨울은 가을을 격렬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바람은 점점 거세졌고, 파도는 먼 바다로부터 출렁거리며 넘어와 잔잔한 파도를 남기었다가 백사장에 한모금 한모금씩 물을 먹이듯 적시었다. 높고 파란 하늘은 바람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멀리서 건너보았다.

절벽으로 이어질 것 같은 길을 걷는 동안 나는 그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 젖동냥을 하러 온 남자. 남자는 나와 비슷한 눈을 하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였다. 고통, 피로, 아픔 같은 것들은 길을 걷다 발로 차게 되는 돌멩이나 깡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발로 찬다고 해서 그것은 돌멩이나 깡통으로 남게 되고 누군가에게 또 치이게 된다. 이 세상에서 즐비하게 목숨을 연명해가며 또 누군가에게 치이고 변형하지만 고통, 피로, 아픔 같은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본래의 근본이 바뀌는 법은 없었다. 사람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추종자로 사람들이 느끼기에 좋은 감정, 사실과 뒤섞여 공존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신 또한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을 다시 뒤적거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 신은 창조 이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산길은 어디에선가부터 끊겼다. '눈과 귀에 연갈색 점박이를 하고 있는 개가 나를 쳐다본 곳 어디쯤 이었는데'라고 생각하며 떠올린 방향으로 길을 옮기다 내가 방향을 바꾼 것은 하얀 조개껍질 때문이었다. 한쪽 귀가 닳아서 볼품없어진 조개껍데기었다. 그 방향을 따라 올라갈수록 조개껍데기가 중간 중간 눈에 보였는데 작은것 큰것 할것 없이 백사장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 이 언덕에 일부러 조개껍데기를 버리지는 않았을 것인데 마치 오래된 화석을 보듯하며 길을 올랐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아래로는 먼저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낙엽이 습기에 젖어 썩어가고 있었다. 늦에 떨어진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냄새와 썩어가는 낙엽의 냄새가 섞여 났는데 불쾌한 냄새가 아닌 다락방의 냄새가 났다. 따뜻한 다락의 냄새가.

길이 끝나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졌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있었고 그 끝에는 절벽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땅이 푹 꺼져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절벽 가까이로가 밑을 내려다 보면 절벽은 견고하게 절벽의 형태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바다의 방대함을 한껏 누린 뒤 돌아가려했을 때 내 눈에 어떤 더미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조개껍데기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모두 크고 모양이 예뻤다. 그것들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잡아 만져 보았는데 조개껍데기 안쪽은 맨질 맨질 했고 겉은 까실 까실 했다. 하나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많은 조개들을 절벽위로 가져다 놓은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해하며 올라왔던 길을 내려갔다. 설모 한 마리가 내 머리위에서 나무 위를 옮겨 다니며 찍찍거렸다. 주머니속에서 조개껍데기가 만져졌다.

돌아가는 산길의 입구 즈음에서 개들과 마주쳤는데 흰색과 갈색의 털들이 정돈된 마블링처럼 잘 어우러진 개의 입에 초록빛이 감도는 홍합이 물려있었다. 잠시 개의 눈을 보고 있다 치미는 이유모를 슬픔에 개를 안고 울었다. 개는 움직이지도 않고 입에서 홍합껍데기도 놓지 않은채 내가 다 울때까지 가만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