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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09.05.22 00:10

목소리(백일장연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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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단순히 같이 지내기만 하는 또래가 아닌 진짜 친구가. 진정으로 노래를 사랑했고 그것 때문에 더욱 친밀했던 아이. 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빈둥거리던 나약한 육체를 이끌고 문을 열었다. 지금 시각은 오후 두시. 이때쯤 집에 올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동급생 중에 유일하게 친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

"오늘도 와버렸어."

모자를 깊숙이 써 얼굴 위쪽이 보이지 않는 친우의 모습. 그리고 세밀하게 떨리는 목소리. 오늘도인가. 오늘도 이 사람은 우리 집으로 도망쳐 올수밖에 없었던 건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팔을 잡고는 당겼다. 몇 초라도 빨리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었으니까.

집안은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손길에 의해 먼지 한점 없이 깨끗했고 옥의 티라고 할 부분은 방금 내가 나선 방 하나 뿐. 그것을 본 친우는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나보다 앞장서서 그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 앉았다. 익숙한 광경이기에 나도 그를 만류 하지 않았다.

"야, 또 맞은 거냐?"

나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이야기 했으나 그는 소리 내어 웃은 뒤 대답하지 않았다. 익숙한 것이다. 맞고 고통 받는 데에 적응되어 이정도일에는 웃을 수 있는 그. 가슴을 채우는 것은 연민의 감정.

그는 모자를 벗어 자신의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의 두 눈에 담겨진 그의 얼굴에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너무 화가 나도 말이 나오지 않는 법. 분노에 일그러져 비틀린 입에서는 침음만 흘러나왔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크기가 달라 보일 정도로 왼 얼굴이 크게 부어있었다. 이렇게 되려면 굉장히 강한 힘으로 여러 번 후려쳐야 가능할 것일 텐데 말이다. 언뜻 보니 인중에도 핏자국. 도대체 얼마나 맞은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머리가 터지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하는 건가?

"또 집에서 노래 부른 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 친구는 항상 집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분명 그의 노래는 평범하나 이렇게까지 맞을 정도는 아닌데 어째서 이런 짓을...

"노래 불러도 돼?"

내 마음도 모르고 그는 간결하게 물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이러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나도 슬퍼 보이고 애처로운 것을. 나는 그저 허락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반주를 준비하는 사이에 나는 바이올린을 조율했다. 평범한 그의 목소리와는 달리 나는 이쪽에 꽤나 조예가 깊은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재능에 미소를 지은 적은 없었다.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이런 것은 사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불이 들어온 컴퓨터의 스피커에서 느리고 애절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는 그것이 익숙한지 노래의 박자에 맞춰 호흡하며 허공을 주시했다. 반주가 끝나고 본격적인 노래가 시작되어 음악의 속도가 빨라지자 그의 목소리가 노래라는 축복받은 소리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 노래인가. 친구를 잘 만 난 덕에 몇 안 되는 노래를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터였다. 나는 그의 몸짓과 울림에 맞춰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활을 긋고 빠른 템포를 뒤따라 운지 하는 왼 손가락이 바빠진다. 음과 음사이의 높낮이가 점점 멀어지자 이내 활이 네 개의 현을 미끄러지듯 연달아 짓밟는다.

연주를 하면서도 노래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은 상현. 본연의 뜻은 알 수 없으나, 나의 바이올린의 현에 올라타 노래하는 자신과 딱 맞는 이름이라며 마음에 들어 했다. 나도 마음에 든다. 그의 노래가. 그리고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이.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상현을 눈을 감았다. 수많은 가닥으로 이루어진 음의 가닥들이 하나의 음역을 이루어 빛을 낼 때 그는 느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악기가 되어 노래와 일체가 되고 그와 동시에 온몸을 휘감는 황홀경. 그것이 그의 노래였고 음악이었다.

어둡기 짝이 없고 말도 별로 없는 그였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달랐다. 노래라는 가상공간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뿜어내고 음악이라는 날개를 펼쳐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녔다. 확실히 노래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노래가 끝난 후 음의 조합이 잦아들 때 그는 주저앉았다. 실이 모두 풀려 버린 꼭두각시처럼.

"어이, 괜찮아?"

자신의 호흡을 못 이겨 노래가 끝난 후에 주저앉아 버리는 상현의 모습은 언제나 봤던 광경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다가가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지금은 노래를 불렀으니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려 있겠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달랐다. 상현은, 노래를 너무나도 사랑하던 천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미 떨어뜨리어진 그의 머리가 바라보고 있는 바닥은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의해 젖은 지 오래. 방금까지도 무한한 음악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그는 잔인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었다. 노래를 흘려보내던 성대는 주인의 바람을 헤아려 속마음을 배출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철렁하게 하는 문장을.

"죽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