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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신은?


  이제는 그가 완벽하게 나의 마음을 읽고 있음을 깨달았던 터라 편안히 그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나의 변화가 반가웠는지 주인은 내 몸을 한 번 더 닦아주었다.


  “나는 별로……할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연주해봐.


  “나, 나는 잘 못해. 너처럼 훌륭한 바이올린은 그에 적합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는 나는 조금이나마 ‘재미’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설사 주인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 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연주해봐.


  계속되는 내 재촉에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활을 들어 올리는 주인을 보며 내 마음은 기대에 부풀고 계속되는 그의 한숨에 나는 그에겐 보이지 않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혹시라도 내가 망가질세라 조심스레 자신의 어깨위에 올리고는 가장 가냘픈 현에 활을 댔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그 연주를 들어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연주‘당할 때’ 마치 사람들의 노래를 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활이 현을 이리저리 유린할 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배와 목, 그 깊숙한 곳에서 휘감아져 나오는 것처럼 음악이 텅 빈 몸체에서 떠돌다가 바깥으로 퍼져나가곤 했다. 다만 그것이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이올린 자체뿐이었고, 음악이라는 것에 몸을 빼앗겨 사리분별을 할 수 없는 몽롱한 기분이란 무엇과 바꾸지 못할 행복함. 다만 조금 아까운 점이 있다면 주인이 스스로의 연주에 입맛을 다시며 금방 연주를 그만 두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행복함을 뺏긴 것이 불쾌하다기 보다는 맥이 빠져서 의아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더 연주를 하지 않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잔인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유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하지만 나는 그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길 원했다. 어찌 악기를 창조해내는 실력은 자부하면서 연주 실력에는…….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악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만드는 것뿐 아니라 연주도 잘 해야 한다고. 그래야 네가 만든 것은 비로소 악기가 된다고. 하지만…… 난 둘 다 잘할 자신이 없었어. 연주라면 연주. 창조라면 창조. 둘 중에 하나만 아주 뛰어나다면 다른 하나는 조금 실력이 떨어져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어깨에서 나를 빼내 탁자위에 올려놓고 먼지가 가득 쌓인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인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흐를 것처럼 물방울들이 가득 모여 있었고 그것을 지탱하는 눈꺼풀은 파르르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그 물방울을 흘려보낼 것 같았다. 내 예상대로 그것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볼을 타고 내려와 바닥을 적셨다. 원래 갈색 이었던 나무 바닥은 먼지에 의해 옅은 회색인 상태였으나 이제는 그의 맑은 눈물이 바닥을 정화하듯 본래 색을 찾아주고 있었다.


  “이렇게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낸들 무엇이 소용 있는가. 연주에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몸체의 완벽함과 현의 조화들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정작 가장 훌륭해야 할 연주를 내가 끌어내지 못하는데.”


  내 앞에서 그렇게 울지 마. 충분히 당신은 나를 이해해주고 있어. 다른 누구보다도 내 본질에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 그것이 바로 나를 창조한 주인. 당신이야.


  “아니,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나는 너의 부모와 같은 존재. 부모가 자식의 말을 알아듣는 다는 것이 뭐가 대단하단 말이지? 이렇게나…….”


  그는 내 몸을 들어 품에 안았다. 따뜻함. 아니 따뜻하긴 하지만 슬픔을 동반한. 눈물로서 몸을 데우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씁쓸함과 동정심을 느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작품을……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가 이해할 수 없다니. 진정한 아름다움을 끌어낼 수 없다니!”


  주인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게다가 점점 자신에게 욕을 해가며 스스로가 고통 받고 있는 사태를 보아하니 금방 끝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노력하면 끌어낼 수 있을 거야. 아직 당신이 말하는 아름다움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은 안하느니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주인은 ‘내가 못나서 바이올린 자신조차 자신의 훌륭함을 깨닫지 못하다니!’ 하며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오열하기 시작하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