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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입니다. 처음써보는. 길어지면 10편 짧아지면 5편정도 될겁니다. 완결은 내야죠.

글쓰는 리듬을 자꾸 놓치다 보니 놨던 글을 다시 쓰기가 너무 힘드네요. 우우.... 슬프게도 프롤로그 작가에 돌입했습니다.

 

  






  내가 탄생했던 날. 나의 주인은 자신의 작품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나를 들고는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게 어질러지고 게다가 좁기까지 한 최악의 방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주인은 나를 거울에 비춰주며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나를 창조해냈다는 것에 깊은 자부심을 느끼는 듯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드디어 널 만들어냈어. 이제, 이제 나도 나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던 따스한 눈길을 거둔 채 살펴볼 것도 없는 방안을 훑어보았다. 누군가 듣는다면 큰일이라도 날 것 만 같은 그의 순진한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왠지 좋은 주인을 만난 것 같았다.


  “그녀와도 결혼할 수 있을 거야. 그녀의 아버지도 이것을 보면 나를 인정 할 테니…….”
  활짝 웃어 보이며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나의 주인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분명 가슴이 설레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미래이리라.


  “그럼 이제 이름을 지어줘야지.”


  그와 함께 작은 미소를 짓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 같은 무생물에 이름을 붙여주다니. 물론 내게는 ‘바이올린’이라는 이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음을 내는 악기를 뜻하는 명사에 불과했다. 이름을 가진 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 나는 그것이 너무나 놀랍고 또한 행복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주인은 느끼지 못할 테지만 내가 살펴본 바로서는 주인의 얼굴과 눈에는 장난기는 없었고 어떠한 이름이 좋을까하는 진중함만이 남아있었다.


  “그래, 이게 좋겠군.”


  주인은 허공에 책이라도 펴놓은 듯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하며 고민하다가 마침내 괜찮은 이름을 찾아냈는지 방안이 울릴 정도로 크게 박수를 쳤다. 물론 그와 가까이 있어 현이 진동할 정도인 나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쉐리 어때? 응? 좋잖아?”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생물인 내가 대답을 할리도 만무하지만 스스로도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느끼는지 ‘장난이야’ 하고 침울하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이름을 줄기차게 읊었으나 하나같이 불리는 사람을 침울하게 만들기 충분한 이름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은 자신이 제시한 이름들이 얼마나 이상한지 깨닫지 못할 만큼 무신경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결국은 쓸 만한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이름 짓기는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조금 고조되었던 내 기분은 다시 차분하게 돌아갔다. 어차피 이름 따위 없어도 바이올린의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래. 나는 바이올린이다. 나의 본분을 잊지 말자.


  “걱정 마. 너의 이름은 그녀가 지어 줄 테니까.”


  주인은 정말 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몸체보다, 내 현보다 더 깊숙이 숨어있는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이는 아마 나를 만들어 낸 이 사람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한 번 더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을 되새겼다. 그러자 주인의 입매가 방향을 달리하며 이내 밝은 미소를 다시 지었다.


  “그녀는 나의 약혼녀야. 아니,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친한 사이. 뭐 일단은 그녀의 아버지가 허락을 해주셔야 하겠지만.”


  꼬리, 대가리도 없이 나오는 그의 말에 나는 애써 이해해보려 노력했으나 도무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나의 공황상태를 이해했는지 주인은 쓴 웃음을 짓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서는 귀족과 평민의 결혼이란 너무나 힘들어. 아니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 가지 겠지. 하지만 그녀는 나를 사랑해. 그리고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우리는 결혼하기로 했어.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평민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지. 법적으로 사랑하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겠노라 하는 증명이자 맹세를 한다면 그녀와의 결혼도 가능해. 그 맹세를 하기 위해선 아이오니온 에로스(영원한 사랑). 즉 상대에게 자신의 사랑이 거짓이 아니라는 물건이 있어야해. 이 과정에서 그 물건을 받겠다는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면 그 물건을 그녀에게 건네주고 이름을 지어주는 거야. 그러니 너도. 나같이 이름 짓는 센스가 없는 사람보다 그녀에게 가면 훨씬 좋은 이름을 받을 수 있을 거야. 하하, 아니지 어차피 결혼할 사이인데 내거, 네 거 할 필요가 없으려나?”


  침울해졌다. 이렇게나 중요한 물건이었나, 나란 존재는. 주인이 그토록 믿고 있는 존재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데. 나는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바이올린에 불과하며, 겉보기에도  전혀 값어치 있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주인은 나를 믿을 수 있는가. 소리치고 싶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도록 힘껏. 나에게 헛된 기대를 품지 말고 다른 선물을 찾아보라고.


  나를 선물로 내놓는다면 필시 결혼은 물 건너가고 비웃음만 받게 될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주인은 이해했는지 궁금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는 화도 내지 않고 그렇다고 웃지도 않았다. 그저 무표정을 지은 채 작업하던 탁자위에 놓인 손수건을 적셔 내 몸체를 닦아나가기 시작했다. 내 몸체는 그리 크지 않았기에 금방 손수건은 나에게서 멀어져갔고 거울에 비친 나의 몸체는 별빛처럼 반짝였다. 내 몸을 손질하던 주인은 그제 서야 입을 열었다.


  “너는 정말로 훌륭한 바이올린이야. 너는 아직 네 진가를 모를 뿐이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란 이상한 상상은 버려. 게다가…… "


  주인이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내 현을 하나하나 튕겼다. 아름답고도 맑은 소리가 방안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녀는 아주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니까.”


       


     

  • 도톨묵 2009.01.28 21:26
    힘내세요. 정 안 되면, 단편 정도는 완결 낸 다음에 연재하는 것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