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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08.12.09 23:11

<칼>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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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3쪽.

  2008년 11월 24일 월요일 오전 5시 31분.


  다섯 시 반에 맞춰둔 첫 번째 모닝콜에 맞춰 나는 새벽같이 일어난다. 그리고 면접 당일이라는 사실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비명을 질렀다.


  아침밥은 나름 신경 쓴 진수성찬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난 김에 신경 써본 것이다. 지름이 70센티미터 남짓 되는 접이식 식탁에 잡곡밥, 겉절이 김치, 소고기국, 두부조림, 계란 후라이를 빈틈없이 올려놓았다. 나는 양 손을 비비며 식탁 앞에 앉는다. 소고기국 향이 코를 자극한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밥과 계란 후라이를 제외하고는 셋 모두 사온 음식들이지만 차려놓고 보니 뿌듯하다. 식탁을 놓는 곳 정면에는 전신 거울이 놓여있다. 면접 준비를 하며 큰맘 먹고 구입한 것이다. 거울을 보며 마음속으로 어느 영화에서 나온 명대사를 읊조려 본다.


  아침을 준비하라. 마음껏 먹어둬라. 저녁은 지옥에서 먹는다!


  영 폼이 나질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나도 면접을 앞두고 있는 데도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탄탄한 근육을 갑옷처럼 두르고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적인 목소리를 지녔다. 내게는 그것이 없다. 나는 쳐진 눈 꼬리와 옅은 눈썹, 작은 입술에 통통한 볼 살 때문에 보톡스 맞은 불독처럼 생겼을 뿐이다. 한 쪽 팔을 들어 흔드니 삼두근이 있어야할 자리에 지방만 출렁인다. 면접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거울을 보면서 미간에 주름을 잡아본다.


  확실히 겨울이 다가오는지 얼굴이 뻣뻣해진 것이 느껴진다. 식충이마냥 밥을 해치우고 나서 로션을 찾아 바른다. 김재원과 안정환이, 몸은 몰라도 얼굴 하나는 잘생긴 둘이, 텔레비전 광고에서 튀어나와 내게 말하는 듯하다.


  피부가 장난이 아닌데?


  로션을 바르는 동안 손바닥에는 우둘투둘한 내 피부가 느껴진다. 정말 장난이 아니다. 사춘기가 지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여드름 따위의 피부병이라니 불공평하다. 깨끗한 피부가 좋은 인상을 줄 것은 뻔할 뻔자다. 이런 타고난 피부를 지닌 나는 취업도 하지 말고 굶어 죽으라는 소리다. 관리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백수는 돈이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는 대학교를 다녔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들었지만 속은 개운치 못했다. 취업 전선에서 나는 낙오자였으니까.


  전신 거울 앞에서 양복을 갖춰 입고 구두를 신는다. 발을 몇 번 구르고 묵직한 철로 된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연청색의 문을 밀어 열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그래, 전쟁이다. 어깨에 힘주고 손잡이를 돌리고 나아가면 전장이다.


  끼이이이이익!


  무언가 문틈에 걸려서 끌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바깥으로 나와 문을 닫고 무엇인지 확인했다. 십 센티미터 길이의 검은색 막대기 같았다. 굵기는 손으로 감싸 쥐기에 조금 얇아 보였다. 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면접에 늦지 않을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우선 양 무릎을 굽혀 막대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바닥에 끌리며 흠집이 많이 나긴 했지만 먼지가 쌓여있지는 않았다. 그것을 주워들어 이리저리 살폈다. 순간 눈앞이 번쩍한다. 막대기 사이로 내용물이 햇빛을 반사시켰다. 칼날이었다. 엄지로 힘을 주어 밀었더니 반대편으로 칼날이 올라왔다. 손잡이와 일자가 되도록 칼날을 더욱 밀어 올리자 어엿한 한 자루의 칼이 탄생한다. 전쟁터에 나서는 나에게 하늘이 준 선물 같았다. 나는 사방을 향해 찌르는 시늉을 해보았다. 표독스러운 적을 찔러 죽일 작은 칼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적은 누구인가.


 


  2008년 11월 17일 월요일 오후 5시 40분.


  서걱, 소름이 끼치는 칼부림 소리와 함께 처참한 비명 소리가 자취방을 가득 메운다. 적이 등 뒤에서 내게 칼침을 놓은 것이다. 컴퓨터 화면에 내가 속한 팀의 패배를 알리는 붉은색 메시지가 떴다. 나는 거칠게 마우스를 놀려 게임을 꺼버린다.


  컴퓨터 키보드 앞에는 두꺼운 책이 놓여있다. 하늘색 표지에 하얀색으로 큼지막하게 책 이름이 쓰여 있다. 해커스토익 READING. 취업에는 필수라는 토익(TOIEC) 점수를 올리기 위해 사둔 책이었다. 나는 책 모서리를 엄지와 검지로 쥐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엄지를 천천히 놓으면서 첫 장부터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한다. 처음 몇 장은 인터넷 강의를 보고 필기를 빼곡히 적어두었다. 붉은색 볼펜으로 별표도 군데군데 되어 있었다. 스무 장정도 넘어가자 필기양이 점점 적어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그리고 쪽수의 삼분의 일이 넘어간 뒤로, 인쇄된 내용 이외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깨끗한 새 페이지들만이 팔락였다. 이윽고 마지막 장이 넘어가며 책이 덮어진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기분 전환 겸 게임을 한다는 것이 기분을 더 망쳐놓고 말았다. 다른 기분 전환거리가 필요했다. 나는 마우스를 다시 잡았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실행시킨다. 즐겨찾기에서 네이버로 들어가 ‘오늘자 베스트 웹툰 보기‘를 클릭했다. 그래, 이것만 보고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새 익스플로러 창이 뜨는 찰나의 시간에 조바심이나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창밖에는 두 집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약간의 틈이 있어 그 사이로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해가 간신히 보였다. 거대한 벽 틈으로 붉은 눈동자가 나를 몰래 감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눈곱을 떼어내는 척 시선을 회피한다. 떼어낸 눈곱은 손가락끼리 부딪쳐 털어냈다.


  웹툰의 제목은 골방환상곡이었다. 늑대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워니‘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이었다. 워니는 실실 웃으면서 컴퓨터를 했다. 한 컷, 한 컷 지나갈 때마다 워니의 등에는 붉은색 덩어리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덩어리들에는 각각 이름이 있었다. 과제, 중간고사, 기말고사, 토익, 토플, 취업 등이다. 워니는 덩어리들이 자신을 뒤덮을 만큼 잔뜩 짊어진 다음에야 그것을 알아차렸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워니는 붉은 덩어리들을 등에 업고 땀을 폭포수 같이 흘리면서도 게임을 한다. 끄트머리에는 작가의 말이 쓰여 있었다.


  불안하지 않으면 논다. ……불안해하면서도 논다.


  나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동시에 들썩인 내 어깨가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싹해졌다. 얼른 등 뒤를 확인했다. 이상한 것은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현관문 앞에 놓인 슬리퍼와 운동화 두 켤레와 쓰레기봉투뿐이다. 다시 화면을 보았다가 슬그머니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확인한다. 역시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어깨에 묵직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휴대폰을 급하게 집어 든다.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뜨릴 뻔했지만 저글링 하듯 양 손을 놀려 공중에서 잡아냈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저녁에 술을 사주기로 한 친구였다. 친구는 일주일 후면 있을 면접에 너무 긴장하지 말라며 술을 사준다고 며칠에 이야기했었다.




  2007년 12월 25일 화요일 오전 2시 17분.


  나는 대학교 앞 술집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불꽃처럼 붉은 조명 위로 보이즈투맨의 Let it snow가 경쾌하게 날뛰는 술집이었다. 벽의 한 면은 이름 있는 맥주 양조회사들의 빈병들이 특별히 밝은 노란 조명 아래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시끌벅적 했고, 자신들의 테이블을 또 다른 장식장으로라도 만들 것처럼 빈병들을 쌓아갔다. 우리들도 다르지 않았다. 몽환적이고 들뜬 기분이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 귓가에 대고 소리치듯 말했다.


  “야, 너 졸업하면 뭐 할 거야?”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친구에게 신경질을 냈다.


  “대학원에 가는 것도 아니고 취직해야지. 당연한 걸 물어?”


  입을 씻기라도 하듯 나는 술을 한 잔 들이켰다. 그런데 친구는 입 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콧방귀 소리를 내면서 한 쪽 눈은 나를 깔보듯 일그러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 녀석은 알아주는 기업에서 인턴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나는 대번에 눈이 뒤집혔다.


  “이 새끼가 지금 넌 뭐 됐다고 재? 아직 아무것도 아닌 새끼가!”


  나는 손을 뻗어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제대로 쥐어지지 않았다. 고쳐 쥐려는 순간 녀석은 불꽃처럼 이리저리 일렁이며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더욱 열이 받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주먹을 내질렀다. 그만하라는 소리가 먼 곳의 메아리처럼 귓전을 울린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난 한 대도 제대로 때리지 못했다. 이윽고 진정 불꽃과 같이 일그러진 녀석의 모습은 이제 인간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너 이 자식 조금만 기다려. 나도 한다면……!”


  속이 울렁였다. 말을 끝맺을 수가 없다. ‘해’라는 단 한 음절이면 완성될 말이 도무지 끝나질 않는다. 토할 것 같은데 가슴께에서 울렁임이 막혔다. 토해야할 것들이 모두다 가슴팍에, 심장에 몰려버린 것 같았다. 심장에서 뻗어나가는 혈관이 모두 막혀 터질 것처럼 느껴졌다. 일순 심해지는 고통에 몸을 잔뜩 굽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누군가 강하게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입이 강제적으로 벌어졌다. 나는 내가 살아생전 마신 술을 다 합쳐놓은 것 같은 양의 끝도 없는 토악질을 해댔다. 심장에 막혀있던 것들이 모두 게워지는 것 같았다. 구멍이라도 났는지 시원스레 말이다.


  정신이 얼핏 들었을 때, 나는 인턴 녀석에게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었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하나뿐인 가로등에 골목길은 어두웠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마치 내가 우는 소리 같아 짜증이 났다. 내가 정신이 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 녀석은 간간히 뭐라 지껄이고 있었다.


  “누구는 놀고먹으면서 인턴 된 줄 알아? 그래, 내가 너 좀 비웃었다. 매일 놀고먹고 있는 게 누군데 나한테 주먹질이냐 정말. 미친 새끼. 니 말 그대로 응? 너처럼 놀고먹으면서 성공해대면 그거야 말로 천하에 죽일 놈 아니야?”


  정신은 차렸어도 내 몸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특히 친구가 욕설을 내뱉을 때면 더욱 크게 흔들렸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사는 자취방까지 볼멘소리를 들으며 가야했다.




  2008년 11월 24일 월요일 오후 9시 53분.


  하얀 방안에서 나는 칼끝을 마주하고 몇 분 동안이나 누워있었다. 칼끝은 반짝였다. 이 방 안에 떠있는 유일한 별처럼 보였다. 그 속에 이때까지 살아온 이십 구년이란 세월이 원망스럽게 맺혀있었다.


  나는 양 팔을 살짝 굽혔다. 칼끝이 약간 내려왔다. 별빛이 바르르 떨렸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별똥별이 되어 내 심장에 질 테지. 별똥별은 표독스러운 적을 향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길이 7센티미터의 칼날이 살과 뼈를 뚫고 심장에 닿을 수 있을까……. 칼날이 한없이 무디고, 짧고, 굵어보였다. 나는, 굽혔던 팔을 다시 편다. 별빛이 멀어진다. 별과 나 사이에 어둠이 드러나 아득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먹먹함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별빛은 산란되어 더욱 밝게 빛나 보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