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단편
2008.12.09 23:10

<칼> 2쪽

조회 수 7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칼


  2쪽.

  

  2008년 11월 24일 오전 9시 43분.


  스산하다 못해 내 목을 벨 듯이 부는 아침 바람에 나는 거북이처럼 목을 최대한 감추고 있었다. 면접자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나와 같은 꼴을 한 수십 명의 대기자들을 볼 수 있었다. 면접관에게 예의와 단정함을 보여줄 면접자들의 양복은 날이 서있었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베일 것 같아 보일 정도다. 나는 시선을 거두었다. 내 옷매무새를 정갈히 한다.


  예상 질문을 모아 프린트한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내든다. 기도라도 올리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중얼 답을 해본다.


  “271번, 272번, 273번 들어오세요.”


  감춰뒀던 목이 쑥 빠진다. 271번은 내 번호였다. 일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고개를 들자 한 아가씨가 두리번거리며 서있는 게 보였다. 아가씨는 어느새 대기실로 들어와 서류철을 들고서 번호를 불러대고 있었다.


  “271번, 272번, 273번!”


  한 번 더 호명되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도 같이 일어났다. 우리 둘은 우리 번호를 호명한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아가씨가 명찰을 확인하는 듯싶더니 대기자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동그란 입을 크게 연다.


  “273번?”


  다들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아무도 일어나거나 손을 들지는 않았다. 수많은 눈들이 깜빡깜빡 대낮의 별처럼 빛났다. 아가씨는 273번을 몇 번 더 호명하다가 결국 274번을 부른다. 274번은 호명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훤칠한 키에 스포츠머리, 윤곽이 뚜렷해 잘생긴 외모의 나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나는 뒷덜미를 스치는 한기를 느꼈다.


  우리 세 명은 아가씨를 조금 따라가다 열어준 문으로 들어갔다. 271번, 272번, 274번순으로. 방안에 5명의 현직 회사원이 긴 탁자에 앉아 있었다. 두 명은 우리 셋을 돌아가며 노려봤다. 다른 세 명은 도톰하게 정리된 서류를 넘겨보는 중이다. 저 종이에는 아마도 면접자들의 정보가 담겨있다. 한 면접관이 서류를 보다가 눈만 치켜떠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곧장 서류 한 장을 더 넘겼다.


  옛날에 보았던 무협 소설이 생각난다. 내공을 쌓아 기를 발하면 말이나 동작 없이 기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연약한 나뭇잎이라도 기를 담아 던지면 바위도 가를 수가 있지 않았나. 면접 내내 면접관이 발하는 기는 내 몸을 짓눌렀다. 내가 면접관의 질문에 답할 때, 사각사각, 면접관의 손에서 넘어가는 종이 소리는 나를 갈랐다. 면접관들은 면접자들 모두를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 우리를 죽일 셈이다.


  면접관이 274번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보다 어려 보였던 274번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일이 초가 흘렀을까, 술술 대답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여유로움과 웃음기가 서려있었다. ROTC 출신의 리더십, 우수한 대학 및 영어 성적, 손가락으로는 모두 세기 힘든 자격증 수 그리고 발전하는 젊음. 그는 29세였고 나와 동갑이었다. 살갗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이야기에 마무리를 짓고 있다.


  “저는 이 회사의 발전에 기여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면접관의 등 뒤로 창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나는 몸을 움츠렸다.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주먹은 수갑이라도 채워진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몇 개의 질문을 더 받았다.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폐쇄된 방에 다섯 명의 면접관과 함께 갇힌 기분이 들었다. 방과 바깥의 세상은 뿌옇고 하얀 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새하얀 심문실에 갇힌 꼴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라도 면접관의 질문에 답했지만 하얀 벽은 소리를 잡아먹었다. 내가 하는 말이 내 귀에 닿지 않았다. 언젠가 봤던 인터넷 기사가 떠오른다. 외국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한 기사였다. 인간은 하얀 색으로만 페인트칠 된 방에 오랜 시간 갇혀있을 경우 미치게 된다.


  면접이 끝나고 문을 나서는 순간, 마치 입 한 번 뻥긋거리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하얀 방 속에서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불현듯 임철우의 소설 ‘붉은 방‘이 떠올랐다. 그곳은 한국의 어두운 과거가 남산 아래 붉게 지어낸 방. 그곳은 방의 주인이 원하는 답 이외에는 신음과 비명으로만 가득 찼었단다. 답을 말하기 전까지 웬만해서 나갈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곳을 겪어보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니까. 그저 온통 붉은색으로 페인트칠 되어있고, 철제 탁자와 주인만이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그리고 각종 고문 도구들과 죄인의 머리를 푹 눌러 담글 욕조가 비치되어있는 방을 상상할 뿐이다.


  나도 한 편의 소설을 남겨둘까? 제목은 하얀 방으로 언젠가 임철우의 소설과 나란히 엮여 조금쯤 유명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좁디좁은 나의 어두운 방에서 모니터 빛에 충혈 된 눈을 부비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키보드 옆에 두는 것은 자그마한 사치다.


  ……273번은 도망쳤다. 273번이 된 그 혹은 그녀는 두려워한 것이다. 하얀 방의 존재를 말이다. 답을 내지 못하면 패배자가, 아니,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단축 번호를 꾹 누른다. 고개를 들며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쓸데없이 밝은 햇빛이 눈을 찌른다. 신호가 길게 느껴졌다. 끊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신호음이 멈춘다.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를 가래침처럼 내뱉었다.


  “어, 나야. 방금 면접 끝났다. 혹시 일 하는데 방해한 건 아니지?”


  이 친구는 얼굴을 본지 일주일 정도 지났다. 나보고 면접 준비를 잘 하라면서 술을 사준 것이 지난주 일이었다. 그 날 사내자식 단 둘이서 술집을 찾았다. 술집은 노란색 간접조명을 주로 사용해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곳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을 때서야 나는 이 친구가 정직원으로 채용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날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났다. 친구는 우물우물 말을 않다가 내가 묻자 간신히 말을 꺼냈다. 8개월간의 인턴 기간을 거쳐 정직원으로 채용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했지만 내가 계속해서 축하한다고 하자 헤벌쭉 웃어보였다. 그 웃음이 기억에 밟힌다. 274번이 생각났다.


  ……274번은 공작원이 틀림없다. 하얀 방에서 그만이 웃고 있었다. 면접관도 옅지만 분명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느꼈던 면접관의 잡아먹을 듯 한 분위기도 274번 앞에서만큼은 약해졌다. 274번의 말이 정답인가? 그의 말은 오로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치욕스런 거짓말들로 이루어져있을 뿐이다.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라면 나도 연습해왔다. 그의 훤칠한 키와 깔끔한 인상이 한몫 하고 있겠지. 그만의 웃음은 기분 나쁘다……


  내가 소설을 써내기만 한다면 잘 팔릴 것이다. 눈앞에 그려진다. 사람들은 내 책에 열광한다. 세상의 잔인한 이치를, 삶의 끝에 가서 결국은 대부분의 희생자와 일부의 승리자만을 뱉어내는 세상의 그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승리자를 위한 희생양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아직은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도 물론 많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멀리에 보이는 버스정류장 옆 가판대에 가서 신문을 펴들면 자살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보사회인 지금은 인터넷에 자살률만 검색 해봐도 현실을 직시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니 처음에는 갸우뚱하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내 소설에 열광할 것이다. 단 몇 퍼센트의 승리자들은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상관없다. 대다수는 희생자니까.


  책이 많이 팔리고 내가 성공하게 되면, 어느 날 나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나간다. 두 대의 카메라가 각각 나의 풀 피겨 샷(Full figure shot), 웨스트 샷(Waist shot)을 맡는다. 인터뷰가 진행되다가 MC는 사전에 약속된 질문 한 가지를 내게 던진다.


  “여보세요?”


  텔레비전 전원을 내리듯 친구의 목소리에 상상은 꺼져버린다. 휴대폰을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꼭 친구가 텔레비전 속에서 말하고 나는 듣는 입장 같았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지금 못 나와?”


  “미안, 지금은 조금 바빠서 그래. 조금만 기다려주면 곧 점심시간이니까 회사 사람들이랑 밥 먹고 나갈게. 사실 그게 점심시간 되면 바로 너랑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오늘 점심은 회사 사람들이 다 같이 먹는다고 해서 말야. 아니면 오늘은 너도 피곤하고 기다리려면 배고플 텐데, 다음에 볼까?”


  친구는 회사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빠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주도한 자리인 것 같았다. 그런 식사 자리라는 것이 그에게 단순히 영양분을 집단적으로 섭취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나도 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인맥이 중요하다. 정직원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친구에게는 특히나 더 중요하겠지.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마침 점심 생각도 없었고 다른 들를 때가 있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따뜻한 코코아를 하나 사들고 친구의 회사 근처 편의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이 뻑뻑하다. 긴장이 풀리며 피로감이 몰려온 탓이다. 평소 같으면 늘어지게 잘 시간에 일어나 아침까지 챙겨먹고 나왔으니 피로할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