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조회 수 10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전역을 하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작심 삼일도 못 가는 병약한 기대감은 현실이라는 무덤 속으로 스스러져 갈 뿐이었다. 품었어야 할 것은 작고 여린 기대감이 아니라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와 계획이었다. 기대감 속에서 이상화된 현실을 그렸고, 그런 허황된 현실에서나 맞을 법한 내 설계는 딱딱하기만 한 현실에 맞지 않아 버려졌다. 그렇게 두달. 꼬박 두달을 내다 버렸다. 군대를 갔다 오기 전과 다름 없는 모습. 이런 상태로 복학을 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나는 또 한번, 궁지에 몰릴 것이란 때 이른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졸업은 해야겠지...

바로 몇년 전, '대학 따위 안가도 돼! 요즘은 능력이 있으면 학벌따위는 상관 없어!' 라고 부르짖던 젊은 고등학생은 이미 수년전에 내 안에서 목을 매달았음을 깨달았다.

-그래, 어차피 전부 내 후배들이니까, 조용히 살면 아무런 탈도 없겠지.

하지만 머지 않아 난 알게 되었다. 인생이란 그야말로 깨달음의 연속이라고. 그리고 그 깨달음은 항상 한발씩 느리게 다가온다는 것을.

세상엔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꽤 많다. 조용히 글을 쓰고 싶은 작가,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싶은 화가, 조용히 음악을 듣고 싶은 음악가, 조용히 자고 싶은 휴일을 맞은 사람들, 애기 울음소리 없이 조용히 자고 싶은 아이의 부모들. 또,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싶은 왕따라든가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그 외에도 많은 이유로 사람들은 때때로, 혹은 자주,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들 중에 몇명이나 자신들이 원하는데로 조용히 살고 있을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아주 극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억세게 운이 없는 내가 그 선택받은 극소수에 들리는 만무했다. 이것이 내가 전역 후 얻은 첫번째 깨달음일 것이다.

난 다짐을 했었다. 복학을 하게 되면 이번엔 조용히 학교를 다니다 졸업하자고. 괜한 C.C 따위를 하여 지난 1학년 때의 과오를 또다시 범하지 않으리라고. 졸업장만 받고 조용히 사라지자고. 그리고 3월, 복학을 한 나는 다짐했던대로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혼자서 조용히 수업을 들었었다. 한 일주일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일주일 후, 후배 한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조용한 일상이 비틀어져버린 것은.

- 선배, 점심 누구랑 드셔요?

어려서일까? 아니면 내가 군대를 갔다 와서 일까? 나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피부톤을 가진 한 여자후배가 다가와 살포시 웃으며 말을 건냈다. '혼자 먹어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너무도 불쌍한 한 남자의 표정이 그려졌다. 그렇다고 아무 대꾸도 않고 일어나서 자리를 피하기엔 이미 서로의 눈이 너무 오래 마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일행인듯 보이는 아이들의 무리 속에서 말이 삐죽 튀어나왔다.

- 다움아, 뭐해? 점심 먹으러 가자.

후배의 이름은 다움이었다. 아이들의 부름을 받은 다움이는 뒤를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알겠다고 소리쳤다. '휴' 하고 속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건, 안도의 한숨이었을까? 아니면 아쉬움의 한숨이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이도 내 한숨을 들었을까? 어느 사이, 다움이는 내 팔을 잡아 들고 있었다.

- 같이 점심 먹으러 가요.

그래? 그럴까? 그러자. 라는 변변찮은 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난 끌려갔다. 끌려가는 내 발치에 뭔가 툭 차인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 것은 일주일동안 내가 맨 뒷자리에서 조용히 쌓아오던 내 다짐이었을 것이다. 조용히 살다 졸업하겠다던 다짐말이다.


-----------------------------------------------------------------------------------

요즘 급 쌀쌀해진 날씨 덕에

감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듯 하네요.

본인도 요즘은 감기로 고생중이랍니다. 여러분 감기 조심하시구요-

즐거운 겨울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

부디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길 벌써부터 빌어보는 케이군이었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