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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오염이 급증해감에 따라 그 환경속에서 살고 있는 내 장기들도 오염문제가 심각해지는 것 같다. 이따금 위에서 산성비가 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 덕에 군데 군데 머리가 빠진 대머리 아저씨마냥 위에 구멍이 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요즘은 부실공사도 제법 오래간다더니, 내 몸도 꽤나 오래 간다. 픽하고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가 이대로 며칠만 쉬면 좋으련만, 드라마 속에 주인공들은 어찌 그렇게 픽픽 쓰러지는지. 하긴, 조연이면 조연이지 주인공은 내 주제에 무슨.

- 조연도 감지덕지일라나?

툭툭, 툭, 비 내리는 모양이 왜 저렇게 처량한지, 동백꽃이 지는 모습도 저보단 덜 처량하겠다. 텁텁했던 에어컨 바람을 끄고, 편의점 문을 열어둔다. 그리곤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향해 슬쩍 손을 내밀어 본다. 시원하다. 손바닥 위에 비를 몇방울 맞은 것 뿐인데, 이온음료라도 마시는 것처럼 온 몸 구석 구석 시원함이 퍼진다. 그대로 손을 오므려 빗방울을 모아보려고 애를 쓴다.

- 따라라 라라 라라, 날 좋아 한다고.

'요즘 포카리 cf 모델이 누구였지?' 를 생각하며 흥얼 거리고 있을 때였다. 문 앞을 떡하니 가로 막고 미친척 흥얼 거리고 있는 나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음을 느낀 것은.

- 어서오세요.

차분한 목소리로 방긋 웃으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도 이미 늦었다. 어쩌랴, 편의점 인생은 늘상 이런 저런 해프닝이 따르는 것임을 나는 안다. 최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것도 며칠 지나면 좋은 추억이 되리라 생각하며 넘어가 보려한다. ... ... damn it!! 잊혀질리 없잖아!! 단골 손님도 몇 있었다. 점장님한테 뭐라고 고자질 하는 손님이 있음 어쩌지? 아차! 감시카메라는? 점장이 내가 미쳤단 소릴 듣고 돌려보면 어쩌지? 공포 영화 중, 하이 앵글 각도에서 주인공을 빙글 빙글 돌려가며 찍는 것처럼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빙글 빙글 돌았다. 현기증이 남을 느끼곤 자리에 앉는다. 손님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편의점 고유의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을 깨볼 요량으로 카운터에 던저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든다. 순간, 핸드폰이 부르르르 떨림을 느꼈다.

- 젠장, 너도 내가 부끄럽니? 내가 만지는 게 소름 돋을 정도로 싫은게냐!

영한이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아주 짧고 간단 명료하게.

- 내 복귀 한다.

괜한 심술에 짖궂은 문자를 보낸다.

- 휴가 나오지말고 나라 지켜라.

답문이 없다. 정적을 깰 수 있던 유일한 문자가 간단하게 먹혀버렸다. '훗, 군바리가 무시해봤자지, 난 개의치 않아.' 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전화번호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검색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주 짧은 순간 내 인간 관계에 회의감을 느낀다. 내 핸드폰의 전화번호는 50명이 넘어간 적이 없다. 짧게는 한달, 길게는 반년쯤 한번씩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면서 연락이 뜸한 사람은 미련 없이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냥 놔두거나, 혹시 모르는데 그걸 왜 지우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개인의 사상 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가리긴 어렵다고 본다.

- 하지만 이건 좀 심하군.

저장된 번호수가 적어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그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도 쉽게 전화를 걸만한 사람을 뽑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 금방이라도 편의점을 뛰쳐나가 앞 차도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고 차분한 맘으로 전화번호부를 다시 한번 점검해본다. 잠시 후, 사람 들어오는 소리에 정적이 깨어진다. 만지고 있던 핸드폰을 닫아버리곤 가방 위에 던져둔다. 그리고 재빨리 일어나 최대한 상냥한 미소로 반긴다. 나를 구원해준 소중한 손님이다. 봉지 값은 받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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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빴다는 이유도 있지만,

왠지 쓰기에 앞서 갑자기 두려움이 느껴진다는 것은,
글쓰기란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글쓰기란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이제야 다음편을 올리게 되네요.

보잘 것 없는 제 글 속에서 저는 소소함을 느낀답니다.

이렇게 저렇게 소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시니컬케이군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 발뭉 2008.09.26 00:41
    보잘것 없다고 폄하하시기 보다는 정확하게 어떤점이 부족한 것인지 아시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 ^^
  • 도톨묵 2008.09.26 20:57
    여담입니다만 ID가 제법 낯익네요. 현재 DAUM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과 관계가 있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