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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8.09.30 01:27

Inner CORE -단편- '그곳에서.'

조회 수 3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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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남자가 입고 있던 제복 자켓 어깨에 ‘USS 위치타라고 적힌 마크가 붙어있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어. 대부분 어두운 우주 심연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들이었지. 가끔 행성만한 거대한 생명체가 떠돌아다니기도 했어. 끝없는 배고픔으로 행성이나 소행성을 갉아먹는 것들이지. 전함 한척이 우연히 그 생명체의 길을 가로막은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전함이 그렇게 파이처럼 씹어 먹힐 수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지.”

 

남자는 잠깐 동안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며 왜 자신을 가둬두는지 물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자 앞에 있던 자는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빠져 나왔습니까?”

내가 어떻게 빠져나왔냐고? 단순히 운이었어.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운이라는 것은 믿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운이 따르기 직전까지 나는 마지막으로 탈출 포드를 조작했고 말이야. 그런데 그 빌어먹을 것은 불량임에 틀림없었어. 함선에 남겨진 사람은 나와 일등항해사 제임스, 요리사겸 배선담당 조 뿐이었어. 사실 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조를 믿고 있었거든? 하지만 배선담당이라고 불량 탈출포드를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더라. 제임스는 멍청하지 않았어. 그저 경험이 없을 뿐이었지만 우리가 볼땐 별반 차이 없는게 문제였지.”

 

남자는 쉴세 없이 떠들었지만 주변에 있던 누구도 남자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는 들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혼자서 마음 것 떠들 수 있는 유형이었다.

 

세 명이서 순양함을 움직일 수 는 없었어. 그마저도 핵융합 코어가 멈추어서 비상전력으로 표류 중이었으니까. 비상전력이 없어지면 이제 이 쇳덩어리는 얼어붙은 관 짝이 되겠지.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함장실로 올라가서 근엄하게 앉은 다음 죽음을 맞이하겠노라고 다짐했는데, 거긴 정말 푹신해 보이는 쇼파가 있었거든! 앉아본 적은 없지만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남자는 자신이 입고 있었던 제복 재킷을 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죽기 전까지 어디론가 교신이라도 시도해 보자고 생각했어. 그래서 상황실로 달려갔지. 제임스는 따라왔지만 조는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며 휴게실로 가는 것 같았어. 모든 통신 채널을 다 열어놓고 죽어라 구조신호를 보냈는데, 그런 암흑천지에서 누가 있을 리 없잖아?”

오디슬론들이 어떻게 당신들을 데려온 거지?”

 

다른 이가 그에게 물었다. 그가 피식 웃었다. 담배 한 대 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지만 거절당하자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예비 전력이 5%남아서 제임스랑 같이 휴게소에 들어갔어. 술이라도 마시면 덜 추울까 싶어서. 조는 진탕 마시고 골아 떨어졌더군. 너무 많이 마셔서 죽었나 싶었는데 그냥 놔두기로 했어. 제임스와 건배하고 한 모금 삼키는데 잔을 내려놓고 보니 주변에 그 기계들이 서있더라고. 난 정말 놀라 자빠질 뻔 했어. 그 다섯 명. 아니 다섯 개? 아무튼 그것들이 아무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서있었거든.”

함선 내로 신체 도약하게 되면 중력 파장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남자는 허! 하고 탄식하다가 대답했다.

 

나도 장교라서 그건 알아. 그런데 그것들은 내가 잔을 들어서 마실 때 까지도 없었는데, 잔을 내려놓으니까 갑자기 옆에 서있었어. 그런 잔상이나 중력 파장이나 진동, 섬광 그딴 것 하나도 없이! 난 제임스를 쳐다보고 제임스도 날 쳐다봤어. 그러다가 술을 쳐다봤지. 이건 환각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제임스는 그걸 행동하기로 했나봐. 일어서더니 그것들 중에 하나를 밀치려 했거든. 그런데!”

 

남자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지당하고 말을 이어가라고 강요받았다.

 

알았어. 알았다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어. 제임스가 그걸 밀치려하자 그게 제임스 손을 덮썩 잡더니 그 눈깔인지 머리에 달린 빨간 불 세 개를 두 번 회전시키면서 보더라고. 그러다가 당신들을 구조하러 왔습니다. 이 개체는 당신들을 안전한 위치로 이동시킬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야. 우리는 당신들 누구냐고 물어봤는데 뭐 자신들은 이 은하계 언어로 오디슬론이라네?”

그들이 당신들을 어디로 이동시켰습니까?”

 

남자 앞에서 심문하던 자가 물었다. 남자는 혀를 쯧 차며 대답했다.

 

이제 막 얘기할 참이었다고. 그런데 다 얘기해주면 풀어 줄 거지?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건 너무하잖아?”

일단 얘기 하십시오.”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었으나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얘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이어나갔다.

 

별 수 없네. 오디슬론인지 뭔지 하는 그것들이 우리 주위로 둘러서서 그 눈깔 세 개를 막 회전시키기 시작했어. 얼굴 전체가 그 눈깔 세 개 말고는 없던데 개틀링건처럼 막 천천히 돌리더라고. 그런데 조는 그냥 내버려두더라.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지. 죽었다더라고 멍청한 놈! 술을 얼마나 퍼마셨으면, 뭐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해. 아무튼 그 놈들이 계속 눈깔을 돌리는 걸 보고 있으니까 내가 있는 곳이 휴게실이 아니더라. 언제 그렇게 이동했는지 모르겠어. 술 때문일까? 그냥 온통 회색뿐인 공간이었는데. 빛은 들어오더라고. 그런데 조명은 보이지 않았어. 그것들 중에 하나만 남아서 나랑 제임스한테 곧 있으면 당신들과 같은 생명체들이 올 거라고 말했어. 그러고 눈 한번 깜빡였는데 없어졌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가 안되더라고. 그리고 정신을 잃었어. 깨어나 보니까 여기 이렇게 묶여있네.”

당신은 묶여있지 않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남자는 무슨 말이냐며 되물었지만 같은 대답밖에 들을 수 없었다. 남자는 혼란스러움이 커져 분노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그럼 난 왜 움직일 수 없냐고! 이봐 폴라리안! 당신들이 날 어떻게 했으니까 못 움직이는 것 아니야?”

당신은 식물인간입니다.”

 

그를 심문하던 인간 남자가 일어서서 말했다. 그리고 홀로그램을 띄워 보여주었다. 홀로그램 속에는 아무런 구속 장치도 없이 머리에 기계 장치를 붙인 채 눈감고 누워있는 남자가 보였다. 이태까지 얘기를 들려주던 남자의 모습이었다.

 

이런 제기랄! 뭐야! 내가? 왜 저렇게 되어있지? 그런데 난 볼 수 도 있고 말도 할 수 있어? 야이 놈들아! 이게 무슨 장난질이야?”

너는 저체온증에 산소부족으로 사망 직전이었다. 같이 있던 제임스라는 인간은 다행히 살아남았다. 그 인간은 오디슬론이 온도 조절을 할 줄 몰랐다고 증언했다.”

 

남자는 절규하고 분노하다가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더 이상 방안에서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머리에 연결된 장치를 떼어내자 조용히 눈감고 있는 남자만 보일 뿐이었다. 방안에 제임스라는 인간 남성이 들어와 경례를 붙였다.

 

그를 데려가겠습니다.”

고마웠네. 자네는 용케도 살아남았군. 그를 편안한 곳에 데려다 주게.”

 

여러 사람이 들어와서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를 끌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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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오디슬론이 생존자를 구조했으나, 자신들 함선으로 옮긴 후 인간에 맞게 온도조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계이기 때문에 그 부분까지 조절해야 할 필요성을 몰랐던 것이죠. 산소도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증언자는 저체온증과 저산소증으로 뇌사하였습니다. 다행히 구조대가 응급처치를 했으나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 오디슬론은 외부 은하계에서 온 기계종족입니다. 가끔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서 수수께끼이지만 해를 끼치진 않습니다. 릴리안이나 인간이 그들과 거래하며 수준높은 기술력이나 장비같은 것을 얻기도 합니다.


  • 반딧불 2018.09.30 10:22
    일단 두가지가 새로 등장했습니다
    처음 대사에서 나온 우주의 괴생명체와 오디슬론이라는 새로운 종족인데요
    사실 우주 괴생명체는 여태껏 잘 언급되지 않았던 말이지만 우주 심해의 공포라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아닐까요. 연관지어서 어떤 기술력과 어떤 지능을 가진 종족이 등장할지 가늠이 안되게 만듬니다.
    이번화를 통해서 의도하신지 안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우주의 배경을 통해 우주의 무한한 의문의 영역을 표현하셨다기 보다
    세트에서 세트로 이동하는 틀안을 표현하셨는데,
    이번화를 통해서 아주 단편적이지만 앞으로의 이너코어가 진행할 방향에 대해서 제시가 잘 되어있는것 같습니다
    우주가 가진 극한의 상상력, 미지의 세계. 이런 느낌들을 좋아했는데 그 느낌이 너무도 좋습니다.
    마치 여태까지의 이너코어는 정한듯이 보여줬지만! 지금부터는 예상외 상상력을 보여줄께!
    라고 준비자세를 취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항상 기대가 됩니다
    굉장히 흡족한 단편이었습니다
  • PORSCHE 2018.09.30 10:55
    막연한 두려움을 표현한걸 잘 집어 주셨네요.
    네. 저 심연은 본편에는 나오지 않으나 같은 세계관이긴해서 적어뒀습니다.
    오디슬론은 다른 은하에서 온 미지의 기계종족입니다. 은하를 넘나드는 종족이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죠. 차후에 설정도 올리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SKEN 2018.10.02 01:42
    이너코어다! 하고 읽으려다 단편임을 알고 외전격의 내용이 담겨있어서
    본편의 내용을 기대하다 다소 아쉬워했지만
    그것도 잠시 완전 몰입해서 읽었네요.
    본편의 1인칭을 벗어나 3인칭에서 표현되는 이너코어도 다른 듯한 면이 있어서 더 재밌네요.
    더불어 스위치 복서도 아니고 1인칭과 3인칭을 모두 잘쓰는 당신은 도덕책..
    단순한 심문 느낌의 문답에서 이리 이야기를 잘 풀어낸다는게 너무 좋습니다.
    묘사나 작가의 설명이 아닌 대화 속에 많은 정보,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서 나오는게 특히 맘에 듭니다.
    오디슬론이란 새로운 종족의 등장,
    폴라리안의 뇌사 상태의 인간을 대화가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
    두 가지 모두가 쉽게 생각해낼 수 없는 범주의 것이기에 그 창의성에 감탄하며 읽을때의 신선함을 즐겼습니다.
    오디슬론의 등장도 그 장면을 묘사하거나 표현한게 아니라 그 장면을 목격한 인물이 이야기 하는건데도
    그려지고 떠오를정도로 좋고 그 갑작스러운 등장을 말함으로 그들의 월등한 기술의 일면을 보여주는것이 기가막히네요.
    이번 단편은 이너코어의 세계관이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드넓은 우주라는걸 다시금 인식 시켜주면서
    이너코어의 넓은 배경 속에서는 본편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런 이야기들도 펼쳐지고 있다 라는걸
    독자들이 알게끔 하는것이 특히 좋은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후에 본편은 본편대로 기다리게 만들면서
    이번과 같은 단편의 우주 속에서 펼쳐진 또 다른 이야기를 보고 싶게끔 만드네요.
    그러니 본편과 단편 모두 더 자주 올려주세요!
  • PORSCHE 2018.10.02 02:01
    미지의 우주와 오버테크놀러지에 대한 두려움을 잘 읽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사건과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두 종족에 대해서 약간 드러내고자 했는데 잘 표현된 것 같네요.
    이런 단편도 가끔 써봐야겠네요.
    늘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