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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8.08.01 18:43

밥 짓는 냄새-프롤로그

조회 수 4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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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가 있는 시골에 기차역이 들어온 것은 최근 일이었다. 산과 논밭 사이에 세워진 2층짜리 건물은 주변의 농가와는 달랐다. 전면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모습이 밖에서도 보였고, 일찍 찾아오는 시골 밤의 등대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주변경관과는 너무나 다른 이 신식건물은 몇 십 년 만에 땅값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주었다. 부동산에는 사람들이 항상 북적였고, 근처 다방에도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역을 힐끔대는 농부가 늘어났다. 하지만 주민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자식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점이었다.

적적한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역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역이 얼마나 깨끗하고 신식인지, 서울까지는 얼마나 걸리고, 금액은 얼마나 나오는지 조곤조곤 설명하곤 하였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방학시즌이 되면 집집마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날 저녁에는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를 굽는 냄새와 연기가 논밭의 풀냄새와 엮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전화가 온 것은 평일 아침이었다. 텅 빈 모니터 화면만 노려보다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짓눌렀다. 전화로 하는 대화의 방향은 항상 일방적이었다. 팔순이 넘은 그의 귀는 전화기 너머의 내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내가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도 그래혹은 그렇구나로 끝나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언제나 하고자 하는 말을 조리 있게 전하고는 하였다. 낮지만 또렷하니 귓가에 스며드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 가끔 오는 그 전화가 싫지 않았다.

십여 분이 지나서야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몇 년째 내용이 바뀌지 않는 안부전화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하고 있는 일은 잘 되어가고 있는지. 더불어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언제고 시간이 나면 시골집에 한번 오라는 것 까지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외할아버지가 아니라 나였다. 평소였다면 다음에 가면 된다고 넘겨버리고, 금세 잊어버리고는 하였다. 그러나 공모전의 결과를 보고난 직후인지라 나는 도망치고 싶어졌다. 입술을 깨물고 키보드를 눌러 몇 문장 적어보긴 하였으나 이내 전부 지워버리고 피로해진 눈을 눌렀다.

주말이면 고등학교 동창들이 동네로 모이고는 했다. 지방에서 일하며 배정받은 숙소에 머물던 이들도 돌아왔다. 누군가 나서서 불러 모으지 않아도 마치 약속한 것처럼 늘 가는 삼겹살 집에 자리를 잡았다.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고기를 사이에 두고 술잔이 부딪혔다. 각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어 굳이 안부는 묻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미래와, 현실로 닥쳐온 이번 달의 카드 값, 같이 지냈던 과거의 추억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 그들 가운데서 집게와 가위를 들었다. 삼겹살이 타지 않는 데에만 신경을 쏟으며 손가락을 놀렸다. 현재 그들이 버는 연봉과 회사 이야기에 낮아지는 자존감을 붙잡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러워하는 쪽에 가까웠다. 현실과 타협해 꿈을 버리고 돈을 버는 자신들은 너무나 슬픈 인생이라며 나를 칭찬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불판을 내려다보았다. 낡은 삼겹살집은 환풍시설이 낙후되어 연기가 자꾸만 나에게로 향했다. 그 연기가 맵고 뜨거워 눈을 비볐다.

나이가 고교시절과 멀어져갈수록 술자리의 시간은 짧아졌다. 아쉬워하며 악수하고 끌어안는 무리들과 헤어져 발걸음을 옮기다 속이 답답하여 담배를 꺼내 물었다. 멍하니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다 산책로로 향했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언제나 걷던 길이었다. 거주지를 가로지르는 작은 강을 따라 20분을 걸으면 중랑천이 나왔다. 술자리가 일찍 마무리 되어서인지 운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천천히 걷는 내 옆으로 자전거를 탄 이와 조깅하는 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점점 작아지다 이내 사라지는 그들의 등을 보며 망연히 걸을 뿐이었다.

산책로의 옆쪽에는 소규모의 밭들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유치원생들이 고사리 손으로 가꾼 것으로 보이는 밭과 주말이면 가족단위로 놀러오는 주말농장을 지나쳤다. 조명을 켜고 종아리까지 덮은 잡초를 기계로 정리하는 인부들을 지나쳤다. 시끌벅적한 음악과 함께 체조를 하는 아줌마 무리를 지나쳤다. 한참을 걷다 해바라기 밭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었다. 낡은 트레이닝 복을 입은 노인이 자신과 같이 등이 굽은 해바라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며칠간 내린 비가 영향을 주었는지 꺾이고 부러진 것들이 많았다. 옆에서 본 노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50미터 정도 이어진 그 해바라기 밭에서 조용히 할 일을 하는 그 모습이 어릴 적 보았던 시골집에서의 외할아버지와 닮아 있었다. 노인은 떨어진 꽃을 주워 탄식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내뱉고 한손에 쥔 검은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옆 해바라기로 몸을 기울였다.

마침 다리가 아파오기도 한 참이라 근처 벤치에 앉았다.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로 밭을 매만지는 노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점멸하는 낡은 가로등 불빛이 노인과 해바라기를 무대 위의 배우처럼 비추었다. 노인이 바스락거리는 비닐봉투와 함께 그 불빛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것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나 보았던 느긋함이 부러웠다.

곧 서른이었다. 아직은 등단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도, 주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때 조바심이 일었다. 잇따른 낙선은 의심을 조금씩 키워나가고 있었다. 과연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 애초에 재능이 있기는 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고.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 지도 알지 못했다.

산책로는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간혹 있는 가로등도 길을 비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근처에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담배를 물고 휴대폰을 꺼냈다. 잠시 고민하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통화음이 채 세 번도 울리기 전에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큰하게 취한 술기운 때문인지 모른다. 누구나 살아가며 느끼는 삶에 대한 순간적인 불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도망치고 싶었다.

  • PORSCHE 2018.08.01 18:54
    역시 감정선이 잘 드러나는 특징이 부럽다. 현실적인 소재가 공감을 불러 일으켜서 몰입이 잘되네. 대화가 없는 혼자만의 독백형식의 소설도 괜찮구나. 잘읽었음!
  • 반딧불 2018.08.01 20:35
    아씨 먹먹해... ㅠㅠ
  • 홍차매니아 2018.08.02 05:56
    본격 순수문학 등장인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