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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업자가 팜플릿을 정리하며 말했다. 나는 그저 웃으며 그가 벗어둔 재킷을 건넸다. 그를 배웅한 후 몸을 돌리자 테이블 위에 컵홀더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짙은 남색 바탕에 눈 결정 모양이 크고 작게 그려져 있고, 가지만 남은 하얀 나무들과 산타가 서있었다. 기타 크리스마스 용 제품처럼 화려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마치 눈이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듯 한 손에는 선물을 들고, 이쪽에는 등을 보이고 있었다.

홀더를 가방에 넣고 업자와의 미팅 때 마시다 남은 커피를 입에 댔다. 평소보다 온도를 낮게 만든 커피는 은은한 단맛이 났다. 항상 전원이 켜져 있는 커피머신의 모터 소리. 오븐에서는 커피와 함께 기본으로 나가는 수제쿠키가 버터 향을 내며 구워지고 있다. 제빙기에서는 물소리와 가끔 얼음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카페의 내부는 언제나 쾌적한 온도가 유지 되었다. 근 십 년 동안 나는 이 장소에서 머물렀다.

포스기 앞에 두었던 거울을 들었다. 업자가 피곤해 보인다고 했던 말은 굉장히 예의를 차린 말이었다. 큰 뿔테 안경으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눈 밑이 검었다. 눈 뜨기가 힘들어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인상을 쓰고 있었다. 작년에 새로 샀던 와이셔츠가 살이 많이 빠져 품이 남아 헐렁했다. 애초에 립밤 같은 것은 그 느낌을 좋아하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입술이 갈라져 피가 조금 맺혔다. 거울 속에는 나와 함께 엄마가 비추어졌다.

카페 한쪽 구석에 혼자만 앉을 수 있는 자리는 계속 비워져 있었다. 애초에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4인 테이블 여러 개에 둘러싸인 그곳은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저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는 했다. 인상을 쓰고 한숨을 내쉬다 펜을 끼적이고, 머리를 헝클어트리다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 일이 일단락되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커피를 마시며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했다.

시계 바늘이 여섯시를 가리켰다. 손님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드문드문 공부하는 학생들만 남아있었다. 예전이었다면 그의 친구들이 하나하나 찾아올 시간이었다. 나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농담을 건넸었다. 각자 직장에서의 애로사항을 피로하고 욕지거리를 했다. 직업의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키 작고 말라 연약해 보이는 외견과는 다르게 현장에서 전기배선관련 일을 하는 이. 가만히 앉아 말없이 커피만 마시던 양식조리사. 거구에 성격도 거칠어 다소 무서운 인상을 한 사진가까지.

나는 주방 뒤에 앉아 그때를 떠올렸다. 그는 웃으며 떠들다 아홉시가 넘어 손님들이 빠져나가면 나에게 술을 청하였다. 한숨을 쉬며 생 초콜릿을 만들 때 쓰는 럼과 얼음 컵, 섞어먹을 음료를 내놓았었다. 그의 친구들은 양주 한 병을 다 비우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집에 갈 때까지 이렇게 주방 뒤에서 책이나 읽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였다.

그가 떠난 후 그의 친구들이 간혹 찾아온 적은 있었다. 그러나 나와의 대화가 어지간히 불편한 모양이었다. 장례식 이후 그들끼리 모여 이곳에 온 적도 있었으나, 평소와는 다르게 묵묵히 잔을 채우고 비우는 것을 반복할 뿐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다.

돈 좀 못 벌면 어때. 내 친구들 봐라. 빼어나게 잘난 놈이 있나. 매일매일 개처럼 일하고, 그만둘까 고민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고. 술을 마셔서 울분을 풀지 않으면 그날 밤은 잠도 못 자는데.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 거야. 인정받지 못하는 건 우리 탓이 아니라니까!”

그가 그의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했던 날이면 늘 같은 말을 했다. 과음으로 인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그. 그런 그를 떠올리자 왠지 나와 닮아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문학을 읽기 힘들어진 이유가 현실과의 괴리라면, 그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학의 환상 속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자격지심과 자괴감. 신경 쓰지 않는 척하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안정적이지 않은 삶이 그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손님이 가방을 챙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감시간 까지는 네 시간 정도 남아있었지만, 이때부터는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가족단위로 찾아오는 몇몇 단골 말고는 손님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가게 앞 작은 벤치에 앉아 담배를 꺼냈다. 애주가에 애연가였던 그와 친구들이 오지 않은 이후로 재떨이를 교체한지 오래되었었으나, 꽁초의 양은 늘어나지 않았다. 담배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올려다본 겨울하늘이 탁했다.

 

집에 돌아와 바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그의 장례식 꿈이었다. 사람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에게 독한 년이라 했다. 종이 그릇에 담긴 육개장 국물을 떠먹고 질긴 고사리 줄기를 씹으며 나를 곁눈질 했다. 영정사진 앞에서 멍하니 있자니 조문객들의 눈총이 심해졌다. 사진 안의 그는 내가 무심코 웃고 싶어질 만큼 단정한 모습이었다. 평소의 그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믿기 힘들 정도로. 평소에 알고 지냈던 스님이 그 앞에 앉아 불경을 외우는 것을 옆에서 그저 듣고 있자니, 피워지는 향의 연기가 너무 매워 눈물이 나왔다. 조문객들이 하나 둘 떠나고 혼자 남아 그의 사진을 마주했다. 그는 평소와는 다른 무뚝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벨소리에 흠칫 놀라 몸을 일으켰다. 새벽에 갑작스레 온 전화에 불안해졌다. 애초에 이 시간에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이가 없었다. 주저하는 사이에 끊겨버린 핸드폰 액정위로 다섯 건의 부재중 전화. 다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조금 주저하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엄마가 지인들에게 부탁하여 장례에 필요한 일절을 준비 해놓은 것이 그 이유였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관계자가 서류를 내보였을 때의 기분이 묘했다. 엄마의 장례식은 그의 그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마치 무슨 행사처럼 아주머니들이 모여 웃고 떠들었다. 그런 그들을 흘겨보며, 영정사진과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이들이 마냥 밉지 않았다.

그만 아파도 되잖아.”

그녀와 가장 친했던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조문객들의 위로를 받으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한사코 퇴원을 거부했었다. 적막한 병실 안에서 쓸쓸히 끝을 맞이한 것은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또한 작은 원룸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갈 자신이 없는 나의 이기심이기도 했다. 뒤늦게 오는 죄책감이 가슴을 옭아매어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오랜 병원 생활동안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있었던 모양이었다.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오기 시작하자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음식을 준비해주던 장례식 관계자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떴다. 적막해진 이곳이 조금 무서워져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며칠 동안의 날씨와는 다르게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푸르렀다. 제공받은 상복이 얇아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했다. 출근 시간대라 지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이어폰을 낀 채 앞만 보며 한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자 조문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리만치 담배생각은 나지 않았다. 버릇처럼 들고 나온 담배 갑을 만지작거리며 입김만 내뿜다 다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영정사진의 엄마가 환하게 웃었다. 한 모금 마시자 몸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영정사진 뒤로 장식된 흰 꽃 들이 거슬렸다. 실오라기처럼 떠올라 허공을 메우는 향 연기. 옆 칸 장례식에서 작게 들려오는 울음소리. 관계자가 무언가 설거지 하는 물소리. 아주머니들이 부조와 함께 두고 간 향수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잔을 더 따랐다.

그만 아파도 되잖아.”

병원 침대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던 그녀와 영정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어느 쪽이 나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네들의 말을 따라해 보았다. 적어도 이제 엄마는 울지 않았다. 잇몸이 보일정도로 웃는 그녀를 본 것이 얼마만일까. 비워진 잔을 채웠다. 기분이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만 같았다. 벽에 등을 기댔다. 등에 닿은 벽이 차가웠다.

엄마를 보내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하지만 남을 애도하기에 삼일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다들 각자의 길을 가기에도 바빴다. 마지막 남은 반나절은 아무도 없이 홀로 자리를 지켜야했지만 괜찮았다. 슬픔이 있던 자리에는 크고 작은 후회들만이 가슴에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연락 안하니.”

엄마의 말에 읽던 책에서 눈을 돌렸다. 내가 표정으로 묻자 그녀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네 아빠. 한번 보고 싶은데. 부탁할거도 있고.”

나는 고민하는 척 핸드폰을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해봐야 그녀의 몸에 악영향만 끼칠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둘이 만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었다. 글에만 얽매여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그를 조금 원망하고 있었기에. 그를 이곳에 데려왔던 것은 그저 그가 원해서였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요즘 바쁜가 봐.”

그 말에 엄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빠야지. 그럼.”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는 그를 항상 걱정했다. 법적으로, 실제로도 남이 되어버린 그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랐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그를 어째서 원망하지 않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애초에 이유를 듣는다 해도 이해할 수도, 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엄마가 가면 너랑 아빠랑 둘 만 남잖아.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네.”

엄마는 웃었다. 가벼운 한숨을 내쉬듯 처연히 웃는 그녀를 보다 대답하지 않고 책으로 시선을 향했다. 이미 둘 만 남았고, 곧 혼자가 될 마음의 준비는 마친지 오래였다.

 

  • 반딧불 2018.07.31 19:06
    작은 행동들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는걸 묻어낸 느낌이 정말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