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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렸던 프롤로그는 퇴고 전 이지만 그렇게 많이 바뀐 것은 없기에 바로 2화 올리겠습니다.


병원의 밤은 활발하다. 무슨 사고라도 날세라 환하게 빛나는 조명들. 음료수 캔을 손에 쥔 환자들의 웃음소리. 간병인들끼리의 한숨과 하소연. 바로 옆에 위치한 장례식장의 울음소리까지. 수많은 감정들의 홍수였고, 언제나 그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숨이 막히는 약품냄새와 틈만 나면 병원복도를 코팅하는 락스 냄새보다 더더욱.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취한 조문객과 담배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간병인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탔다.

오늘은 좀 늦었네.”

야간조명에 의지하여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엄마는 말했다. 말없이 간병인용 침대에 앉아 가방을 벗었다. 어두운 조명 탓인지 어제보다 더욱 초췌해 보였다. 나름 통통한 편이었던 그녀는 간데없이 피골이 상접해 말린 나무뿌리 같았다. 서글서글하고 웃는 상이었던 얼굴은 고통의 무게만큼 깊은 골이 패여 있었다.

손님이 좀 있어서.”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허리를 숙였다. 다시 복부에 통증이 오는 모양이었다. 손을 내밀자 그녀의 마른 손이 내 손을 붙잡았다. 핏기가 가셔 하얗게 될 때까지 내 손을 붙잡은 후에야 엄마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는 맺혀 흐르는 땀방울. 갈라져 부르튼 입술과 흘리는 눈물.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보고 있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옆에 있어주는 것 뿐 이었다.

역시 가게는 잠시 닫고 계속 여기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리자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마에서 눈가 목 등을 닦아낸 수건을 대충 뭉쳐 가방 안에 던져 넣었다. 엄마는 몸이 끝에 가까워질수록 두려워하고 있었다. 애초에 겁이 많고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붙잡아두지 않았다.

고맙지만 괜찮아.”

엄마는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울었다. 밖으로 터트리지 않고 안으로 삼키는 울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눈이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 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손목을 잡힌 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짐짓 그런 내가 못마땅한 듯 작게 한숨을 쉬고 잡아당겨 나를 품에 안았다.

그녀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둡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힘들어하는 내가 당신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고 곧 오게 될 그 날 까지, 자식과 최대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매일같이 쏟아내는 하혈을 보며 느껴지는 공포에,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 가련한 여자를 보며 나는 함께 울고 싶어졌다.

시한부 선고를 들었던 날. 나는 그를 데리고 병원에 왔다. 엄마는 연거푸 이어진 수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숙이고는 이내 병실을 나가버렸다. 따라 나가지 않았다. 그가 궁금해 했기에 데려왔고, 감당은 그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다시 만나 가진 술자리에서는 드물게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엄마는 조금 얼굴을 붉힌 채 나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는 건강했을 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누군가의 부고를 들었을 때 했던 농담이었다.

엄마 없어도 잘 살 수 있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쓴웃음을 지으며 제사상에 당신이 좋아하는 과자는 꼭 올려달라거나, 술은 별로 즐기지 않으니 커피나 식혜로 해주었으면 좋겠다하는 시시한 농담이 오갔다.

약기운 때문인지 그녀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윤기가 없어진 지 오래인 머리카락을 몇 번이고 쓸어내리다 몸을 일으켰다.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에는 음식냄새가 났다. 이시간이면 당직을 서는 간호사들이 야식을 먹고는 했다. 휴게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에 짜증이 나면서도, 잘 웃던 그가 보고 싶어졌다.

병원을 나서자 어느새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발이 거세 언제나 붐볐던 흡연장에 인적이 없었다. 머리와 어깨에 쌓이는 눈이 왜인지 모르게 무거워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미 새벽 두시였다. 내일은 할 일이 많았다. 원두도 발주를 넣어야하고, 브라우니 반죽도 재워둬야 했다. 크리스마스용 컵홀더 때문에 업자와의 약속도 잡혀 있고. 새로운 파트타이머 면접도. 그리고 또……. 몸 위로 눈이 쌓였다. 외로이 빛나는 가로등과 셔터를 내린 작은 슈퍼, 벌거벗은 채 서있는 은행나무처럼. 그것들과 같이 나는 하얗게 변해갔다.


  • 홍차매니아 2018.07.31 15:12
    프렘...이?
  • PORSCHE 2018.07.31 15:18
    문체가 참 세련되었구나 배우고 싶은 필력이다!
  • 반딧불 2018.07.31 18:58
    와 진짜 다른건 모르겠고 이말밖에 안나오네
    필력 실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