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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둘러봐도 잿빛 뿐이다.

화산 지대에서나 보일법한 화강암이 넓게 펼쳐져있고 그 위를 용암과 타르가 강물처럼 흐르는 땅.

생명체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그 땅 위에 나는 서 있었다.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방아쇠를 당기면 사이버 펑크 틱 한 라이플에서 화학적인 불꽃이 번뜩이고, 수십발의 탄환이 전방으로 쏟아진다.

허나 갑각을 두른 공룡을 닮은 적은 가렵지도 않다는 듯 탄환비를 해치며 곧장 이쪽으로 달려든다.


"도, 도망쳐!"


4m는 넘음직한 육중하기 그지없는 동체가 코뿔소마냥 달려오자 탄을 쏘던 사람들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나 역시 몇년간의 경험으로 화약으로 쏘아낸 조그마한 탄환이 저 덩치큰 적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숙지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8.46mm에 달하는 이 두껍고 뭉특한 탄환으로는 관통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역시 잘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보다 한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으아아!! 컥."


미처 도망치지 못 한 사람 한명이 공룡처럼 생긴 적의 돌진에 부딪혀 저 멀리 날아간다.

치이기 전 까지 비명을 지르다 부딪힘과 동시에 숨이 막히며 날아간 기세를 보아하니 살아남기는 힘들어 보인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이런 모습에 익숙한 듯, 이를 악물고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살길을 찾는다.

이미 이 라인은 붕괴되었으니 더 이상 남아있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형씨, 집합지에서 보자구!"


얼마 전 부터 내게 괜히 친근하게 대하던 애꾸눈의 남성이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은 엄청난 속도로 멀어진다.

나도 나름 달리기에 자신이 있고 세계기록까진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달리기 실력은 있다고 자신했지만 그 남자는 우사인볼트도 혀를 내두를만한 스피드로 멀어졌다.

더 무서운건 저게 단거리만 가능한 게 아니라 꽤 멀리까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떻게하면 저렇게 달릴 수 있나 궁금하지만 지금은 우선 살아야 했다.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돌격해온 적은 내가 아닌 반대편으로 도망친 사람들에게 흥미가 있는지 쿵쿵대며 멀어졌다.

뜨거운 타르나 용암을 실수로라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제길..."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씹어뱉으며 유일한 생명줄인 무기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SMG를 끌어인듯이 붙잡고 정신없이 달렸다.


암흑력 142년의 여름.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우선적으로 올려봅니다.


사도는 잠들 수 없다. 1화 - 희망은 없어지지 않는다.




내 이름은 잊었다.

어째서인가 하면, 이 절망적인 세상에 떨어진지 만 20년이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니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이제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모국어로 친구들과 시시덕대며 놀러다니고 학업에 열중하고, 충실하게 지내왔던 삶으로부터 떨어진지 20년.

당시에 아마 이렇게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내용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런 삶을 잠시나마 동경했던 과거의 자신을 저주한지도 19년을 넘겼다.

건너온지 1주일만에 저주하기 시작했으니 아마 20년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후우..."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며 걷기도 하다가 빠른 걸음으로도 걷고 달려온 덕분에 숨이차서 헐떡이지는 않았다.

가벼운 심호흡으로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하고 적당히 걸터앉을 곳을 찾는다.

재집결지는 까마득한 절벽으로 둘러쌓인 분지였는데, 어느정도 후방으로 이동했으니 적이 침투해서 위를 점령하기 어렵고 뒤를 추격하는 적을 좁은 입구에서 받아치기 유리한 장소였다.

이전에도 몇번 집결지로서 사용되었는지 도망쳐오는 아군을 재편성하고 보급하기 위한 시설과 어지간한 적은 막아낼 수 있는 중기관총 진지가 세개나 편성되어 있었다.


정신없이 달리면서 흘린게 많았는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무거워서 버렸는지 내 장비는 꽤나 단촐했다.

주렁주렁 매달고 갔던 불량덩어리 막대 수류탄은 한개도 남지 않고 다 없어져 있었고, 조끼에 두개 달린 탄창 주머니중 하나가 구멍이 나서 탄창도 2개밖에 없었다.

8mm 탄환을 쓰는터라 25개들이 2개에 사용했던 탄창은 10여발쯤 남았으니 고작 60발만 들고 달렸었던 것이다.

구급낭도 어딘가에서 유실됐으니 조금만 운이 나빴다면 바로 저승에 갈 뻔 했다.


들고 있는 것도 없으니 이래저래 챙길것도 없었다.

거의 몸뚱이뿐인 상태로 보급을 담당하는 보급창으로 걸어가니 어디에서나 흔히 보이는 실랑이가 한창이다.


"우쒸.. 뒤에 상태 좋은 탄약박스도 있구만 왜 굳이 이런 너절한거만 주는거요?"

"불만이면 쓰지 말던가."

"아, 거참. 살자고 이러는데 자꾸 야박하게 굴기요? 거 좋은거 나눠씁시다."

"주는대로 쓸 것이지 말 참 많네. 다음!"

"에라이."


원하던 품질의 물건을 받지 못했는지 소총수가 연신 욕지기를 내뱉으며 멀어진다.

걸어가는 방향을 보아하니 식당으로 가는 듯 한데 저 무거운 탄약박스를 들고 식당에 가서 국물이라도 묻으면 어쩌려나 싶다.

하지만 그걸 신경쓰고 있을 겨를이 없으니 물건이 떨어지기 전에 배급받을 수 있도록 서둘러서 꼬리에 꼬리를 문 보급창 줄에 얼른 줄을 섰다.

누군가가 나보다 앞설 뻔 한것을 간발의 차로 들어서자 뒤에서 툭툭 어깨를 건드린다.

보통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시비가 걸리기 때문에 한번쯤 무시한다.

기가 약하거나 그냥 한번 찔러봤다면 여기서 멈출테지만, 상대방은 기분이 좀 많이 안좋았나보다.


"어이."


굳이 나를 부르기에 뒤를 돌아보니 웬 커다란 산적이 날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이며 군용으로 지급된 레더아머 곳곳으로 이 사람이 지나온 전장의 흔적이 보인다.

보급창 앞에서 시비가 붇으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사람이 재편성이 늦어서 받을거 다 받은 상태인데 한번 들른거라면 아무것도 받지 못한 나만 손해이기에 한발자국 물러나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쩝. 걍 서서 가슈."


내 행색을 위아래로 살펴보고는 입맛을 한번 다시고 자리를 비켜준다.

전신에 무수히 많은 흉터가 세겨지면서 이렇게 겨우겨우 살아돌아왔을 때 보급이 얼마나 절박한지 이해한다는 눈초리다.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줄을 다시 서자 뒤에서 말을 걸어온다.


"보아하니 꽤 여기저기서 구른 것 같은데, 얼마나 되셨소?"


슬그머니 내 이력을 물어오기에 뒤돌아보자 별 뜻은 없다는 듯 양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여준다.


"아니 뭐, 나도 이짓거리 한 지 근 15년이 넘어가니까 말이지. 고향에 두고 온 마누라도 있고 토끼같은 자식이며.."

"20년 넘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말을 꺼내기 시작한 남자에게 굳이 장단을 맞추면 쉴 시간도 생기지 않을게 분명하기에 정중하지만 딱 끊어지는 답변으로 말을 막는다.

상대방은 입맛만 한번 더 다시더니 이내 침묵을 유지했다.

사실 이 보급창 앞에 줄 선 사람 중 사연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모두가 침묵을 좋아했다.


암흑력, 즉 이 세계에 마물이 득세하고 용사가 나타나지 않으며 신탁이 사라진 날을 기점으로 하여 142년이 흘렀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때가 되어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신탁으로 뭇 사람들의 원성을 산 국교회는 세가 기울어 극소수만 믿고 있는 상황이 142년 이어졌다는 얘기다.

기득권이 득세 할 영토가 없어 마도학과 기술을 융합한 고효율의 공업이 발달하고 적은 자원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보기 위한 온갖 연구와 실험이 자행되었다.

그중에는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인체실험을 지원하기도 하는 듯 열세에 몰려 인성을 잃어버린 해괴한 일들이 모두 다 일어나는 상황이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판타지라면 비록 수능도 치르고 군대도 마치고 건너왔다해도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나는 1년도 안되서 이 세계에 희망을 잃었다.


단지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날것이고, 그 때 실컷 푹 자고싶다는 일념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주변에서 시체와 같다 하여 언데드의 일종인 Living Dead라는 명칭을 비꼬아 리베드(Liv + ead)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것을 어느세 이름 대신 사용한지 10몇년쯤 넘어가니 옛 이름은 기억의 자취조차 남기지 않고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모국어를 써 본 것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기에 그냥 리베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선택했다.

이름답지 않은 이름이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한참을 줄을 서서 배급을 받을 차례가 되자 이 깐깐한 보급관은 내 행색을 주욱 살피더니 조끼와 탄약 2개, 막대 수류탄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이게 말이 되는 보급이냐는 듯 서있자 뒤를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고, 돌아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에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보급 자체는 화폐를 사용한다는게 위험할정도로 인류는 위험에 처한 상황이다.

전 세계에 국가로서 기능하는 곳은 세곳밖에 없으며 그나마 두곳은 붙어있기라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군인으로서 활동하는 이 드레니카국은 마도사 중심의 국가로 만들어져 홀로 외딴곳에 지어진 마탐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여서 마법 기술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바다를 끼고있는 덕분에 2면 전선으로 겨우겨우 버티지만 총력전으로 들어선지 10년을 넘겨 경제가 피폐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죽기 싫어서 공장에 들어가 일을 했으며 돈 대신 배식표로 모든것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배식표를 써서 무기를 구매할 수도 있기는 했다.


공식적으로는 보급창은 규정치만 나눠주게 되어 있으니 배식표가 먹히질 않지만 식당 같은데 가면 암암리에 장비를 파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진것도 다 팔고 전장에 나갈수도 없으며 나갈 생각도 없는 사람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누군가 배식을 남기기만을 기다리다 도둑질을 하게 되는 물건이다.

마침, 눈 앞에 배식권을 훔치려는 조그마한 몸집의 소년이 보인다.

초범인지 전장에서 닳고 닳은 사람을 타겟으로 삼는 불운을 가진 소년이었다.

눈 앞에 있는 상대가 이미 훔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군용 대검의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조심조심 손을 뻗는 중이다.


‘불쌍하긴 하군...’


나의 감상은 거기까지였다.

붉은 머리카락을 적당히 날카로운 물건으로 아무렇게나 자른 그 소년이 슬그머니 남자의 주머니에 손을 대자마자 남자가 벌떡 일어나며 소년의 멱살을 낚아챘다.


“이 자식이 어디다 손을 대?!”

“치잇!”


군용 대검을 소년의 목에 가져다 댄 남자가 윽박지르듯 소리치자 소년은 혀를 차더니 두 눈을 꾹 감고는 턱을 들었다.

죽일테면 죽여보라는 도발에 대검을 든 남자의 이마에 핏대가 선다.


“어쭈,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멍청이 나셨네. 이 자식이 진짜 본떼를 봐야 정신을 차리려고!”

“해 보시던가. 어차피 이대로는 굶어 죽을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소년의 도발에 남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정말 사람 한명 쯤 죽일 수 있을법한 분위기가 되자 주변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어느 누구도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 하나 없이, 대검을 든 남자를 주시한다.

그 무언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남자는 소년을 끌고 밖으로 이동했다.


‘위험하군...’


소년이 당하는거야 자업자득이지만 피를 보는것은 좋지 않다.

대검을 갈무리조차 하지 않고 소년을 끌고 나가며 목에 붉은 실선이 생기던 말던 끌고 나가는 모습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부대 내에서 살인이라도 일어났다간 이후 비전투 손실을 막기 위해 활동의 제약이 많아질게 불보듯 뻔했다.


‘이 부대는 안되나...’


서둘러 조를 편성받아 대기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서 소년을 구해주지 않는가 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간섭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선택지가 늘어날 뿐인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위해

  • SKEN 2015.07.29 23:49

    굳 잡!

    이것으로 마일리지 카운트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