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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길다란 파이크와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사람 덩어리들은 대오를 이루어 적군을 밀어붙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방진과 방진 사이에선 할버드와 양손검으로 무장한 정예병들이 취약한 부위를 보강했으며 넘어올려는 적의 병사들은 대열에 파고들기가 무섭게 매섭게 대려치는 할버드의 도끼날에 운명을 달리하곤 했다.

길다란 창대와 갑옷의 대열 옆으로는 방패로 무장한 군단병들의 싸움이었다.

기동성과 유연성이 뛰어난 그들은 측면돌파를 시도했는데 이는 적들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파이크를 든 병사들처럼 그들도 방패와 방패로 서로를 밀고 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치열하게 창검으로 맞붙는 대열의 바로 뒤편에는 싸움터로 뛰어들기를 기다리는 활력 넘치는 예비대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사이로 경보병들이 투창이나 투석을 적군에게 날려보내며 힘을 보태었다.

좀더 뒤편에선 쇠뇌를 든 궁노수들이 31조로 돌아가며 사격과 장전을 반복하며 화살을 날려보냈고 그보다 뒤편에선 커다란 장궁으로 무장한 남방출신 이민족 용병들이 쇠뇌보다 더욱 먼거리로 활을 날렸다.

훨씬 뒤쪽인 후방에선 캐터펄트와 발리스타등 거대한 전쟁기계들이 덜컹 거리는 흉흉한 소리와 함께 불붙은 기름가마니나 바위, 큰 화살을 날랐다.

지휘장교의 구령에 맞춰 공성병기들이 용트림 할때마다 묵직한 바위와 불덩이들이 파멸을 실어 전장의 하늘을 수놓았다.

이들의 지휘관인 유스티나는 공성병기의 대열 약간 뒤에서 화려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위에 서서 전장을 지켜보고있었다.

이 전차는 약 200년전 마르퀴우스 가문이 제국의 서쪽 변방인 이렐리아와 히스타시아를 분봉받고 후작위를 받았을 때 황제와 원로원으로부터 하사받은 여러 가지 예식품목중 하나다.

지난 세월동안 관리가 잘되어 물결이 굽이치는 황금장식은 처음받았을 때와 다름이 없이 윤이 났다.

원로원이 원병 요청에 의한 전쟁때나 이민족 정벌 때 조상들이 타고다니며 마르퀴오스 가문의 위엄을 뽐내었다.

그리고 이제 이렐리아와 히스타시아의 새 영주, 새 총독이 된 젊고 당찬 여인이 선조들이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전차에 올라서서 원로원의 명령을 받는 군대를 상대로 전쟁을 지휘한다.

돼지같은 원로원 의원놈들은 하는 일도 없이 탐욕스럽고 지방 영주, 장군과 군단장을 비롯한 고위장교 그리고 가장 영예로운 지방관이어야할 총독에게도 무리한 요구를 하기 일쑤다.

그녀의 선조들 또한 원로원들의 농간 속에 죽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선조는 급격히 발전하는 마르퀴우스 가문의 총독령을 시기한 원로원들에 의해 명예로운 자살 권고를 받았고 죽었다.

세 번째 총독인 그녀의 증조할머니는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무리한 원정을 기획하다 전사했고 그 뒤를 이어야할 할머니 또한 후퇴를 지휘하던중 전사했다고 한다.

네 번째 총독인 어머니는 복수를 꿈꾸기 위해 총독령을 개편하고 쳬계화 하며 군사를 양성에 몰두하던중 암살당했다.

이제 마르퀴우스 가문의 현 주인이자 일렐리아, 히스타시아 두 지방의 다섯번째 총독이 된 유스티나가 전쟁터에 몸을 던졌다.

그녀의 두 눈은 복수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두 주먹은 그들의 한을 담아 단단히 쥐고 있었다.

어머니가 살해당한 그날 이후로 새 총독으로 임명된 후 영지를 장악하고 군대를 장악하고 영지를 부유하게 했으며 북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의 야만족들을 굴복시키고 포섭했고 협박하여 휘하에 끌어들였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 몸을 떨다가 겨우 의지를 쥐고 일어서니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총독령의 반란분자, 원로원 의원, 야만족, 다른 지역의 영주나 귀족도 그녀의 죽음을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도 두 다리로 굳건히 서 있다.

그녀의 적들은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 패배할 것이다.

 

보고합니다! 트레비누스 남작이 우익쪽 적 기병대를 패퇴시켰습니다. 현재 추격중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온 연락장교는 말에서 내리지 않고 예 또한 갖추지 못한채 전황을 보고했다.

장교의 갑옷과 투구와 장구류에는 적군 것으로 보이는 피가 가득 묻혀있었다.

좌우간에 보고사항은 전황이 그녀에게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지를 강요했다.

승리를 원한다면 말이다.

때가 되었다.

 

친위대와 사르마티아 족을 준비시켜라. 그리고 넌 내 말을 데려와.”

 

몸을 돌려 참모진과 종자에게 각각 지시사항을 내린다.

그들의 경례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그녀는 전차에서 내려나와 진형 뒤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양옆에 도열한 호위병들이 따라붙으며 그녀를 보호했다.

오늘따라 호위병들의 할버드가 유난히 번뜩였다.

그렇게 생각을 흘려보내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잘 정비된 병장구의 대열이 늘어져 있는 그곳에는 전에 없던 기병대가 도열해 있었다.

그 기병대는 제국 어디에서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말은 물론이고 기수까지 몸 구석구석 갑옷으로 감싸여 있었다.

그 기세는 단순히 굳건하다던가 위풍당당하다는 말로 표현할 것이 아니었다.

전설 속의 청동전사 나 드래곤의 이빨에서 태어났다는 용아병 스파르토이가 여기에 견줄 수 나 있을까.

마치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들의 위세는 거대한 성벽도 도도히 무너트릴 듯이 준엄했고 엄준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종자가 그녀의 말을 끌며 다가왔다.

 

말을 대령했습니다. 총독각하.”

 

종자가 끌고 온 말 역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선조들이 치루었던 전쟁장면을 음각으로 담아 호사스러워 보이는 그 마갑(馬鉀)은 단순히 보기에도 남다른 위엄이 서려있었다.

커다란 체구에 어찌보면 거만하다고 표현할만한 말의 자태에 그런 갑옷을 더하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마나 다름 없었다.

그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유스티나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마갑을 벗겨내라. 펠릭스(Felix)는 마구만 걸친 체 태어난 그대로 달릴 것이다.”

그러면 너무 위험합니다.”

내 말이 같잖은가?”

 

그녀의 종자의 눈은 염려와 불안감에 일순간 흔들렸다.

올해 16번째 생일을 맞이한 소녀는 그러나 그러한 의혹은 한순간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확신을 머리에 새겼다.

 

알겠습니다.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순간 유스티나는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다.

, 그러고보니 올해 16세니까 어른이 다됬군.

 

너도 성인이구나. 라우렌시아. 이번 전투가 끝나고 로마가 함락되면 기사 작위를 내려주겠다. 서임식을 갖자.”

 

그 말에 소녀의 얼굴에 한가득 웃음이 퍼진다.

지시를 내린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갑은 해체되었다.

일순간 유스티나의 애마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황금색 털은 온몸을 뒤엎고 있었다.

길죽한 다리에 곳게 뻗은 목, 머리는 그야말로 말들가운데 왕이라 할만했다.

3년전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유목민인 사르마티아 족을 제압하면서 그들은 유스티나에게 모든 유목민들의 왕인 칸의 칭호와 함께 그들 사이에서 명마 중에 명마로 전해지는 이 황금색 말을 바쳤다.

그들이 타는 아할-테케(Akhal-teke) 라는 종의 말인데, 사흘밤낮을 물도 마시지 않고 사막을 횡단할 수 있다.

유스티나는 만족한 듯 미소를 띄우며 말에 올랐다.

그리고는 눈앞에 도열한 말과 기수가 모두 갑옷을 입은 기병대를 한번 씩 돌아보았다.

입은 갑옷 형식에 따라 그들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말이나 기수나 할 거 없이 판금으로 만들어져 햇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이 나는 전형적인 라티움식 갑옷에 머리에 붉은색 긴 볕을 달은 투구를 쓴 자들과 작은 직사각형 철판 조각을 가죽끈으로 연결한 비늘갑옷을 입은 무리로 나뉘었다.

하나는 다년간 유스티나가 공을 들여 양성한 근위대였고 다른 하나는 사르마티아 족 기병대이다.

지난 새월동안 야만족들과 싸우면서 가장 힘든 싸움은 서북쪽 유목민들과의 싸움이었는데, 그들은 말을 타며 활을 쏘는 대신 긴 창과 철퇴를 들고 말까지 갑옷으로 무장하여 아무런 거리낌없이 돌진해 병사들을 짖밟곤 했다.

특히 여기 있는 사르마티아 족은 가장 힘든 상대였다.

특별히 조직한 경기병대로 전황파악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그들의 약탈 방식을 모방해 후방에 자리잡은 유목민 부락을 급습하는 식으로 제압하지 않았다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당시 말까지 중무장해 돌격하는 전법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녀는 원정이 끝나자 마자 같은형식의 기병대를 양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노력의 결과를 알수 있을 것이다.

 

진군 나팔을 불고 북을 쳐라.”

, 임페라토르(Imperator:총 사령관).”

 

기병장교에게 지시를 내렸다.

군례를 올린 그 장교는 깃발을 들었다.

낮고 묵직한 나팔소리가 울려퍼지고 뒤이어 북을 담당한 병사가 북채로 북을 두둘겼다.

둥둥 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병들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곁에서 호위병이 큼지막한 글레이브를 건내자 그것을 받아들인 유스티나는 병사들 앞에서 무기를 들어올렸다.

 

와아아아아아-!”

 

곧이어 말을 달리기 시작하자 거대한 인마의 무리들이 그녀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전장터의 함성에 새로운 말발굽소리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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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좌익을 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보고가 올라온지 한참이 지났다.

교전 중 몹시 급박함.’

이를 끝으로 더 이상 소식은 없었다.

사실 구지 보고까지 받을 필요는 없었다.

좌측 저 멀리서 좌익의 전차대와 기병대를 맡은 두루수스의 깃발이 멀어져가는 것이 보였으니까.

드루수스가 패퇴했다고 가정한다면 좌익이 노출된다.

그러면 아측 좌익 기병대를 패퇴시킨 적군의 기병대가 들이닥치거나 적의 예비대가 난입하면 중군이 위험해진다.

측면의 노출은 언제거나 패배의 공식이 되기 마련이다.

300년전 카르트-하다쉬트와 전쟁할 때 하밀카르와 한-바알 부자로 이어지는 적의 명장들이 라티움의 군대를 상대로 승승장구 했을 때는 좌익, 우익 중 한곳이나 아니면 양쪽 다 무너져서 적군에게 우회와 포위를 허락했을 때 뿐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후 라티움의 장군들은 언제나 측면방어에 신경질적으로 관심을 두었다.

이때문이지 경험이 없는 지휘관인 경우 단지 측면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전황이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철수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레가투스(legatus : 군단장) 라비에누스에게 전하라. 3 제대의 6군단은 좌익으로 기동하여 측면을 보호하라. 특히 적 기병대 혹은 전차의 공격이 예상되니 이에 유의할 것.”

. 집정관님.”

 

지시를 받은 참모장교의 지휘하에 신호기가 휘날리고 북이 울려퍼졌다.

전방 투입을 기다리고 있었던 예비대 가운데 비교적 후방에 자리잡은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군단이 움직이며 그 자리를 매웠다.

이 모든 것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중앙의 진용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진용을 갖추었다.

라티움 방위를 담당하는 원로원 및 황실 직할군단들은 하나같이 훈련이 잘 되있는 정예군이었다.

이민족의 침입도 막아냈고 지방 제후의 반란도 진압한 적도 있어 경험도 풍부했다.

기껏해야 유목민 나부랭이들이나 싸움 서쪽 변방 촌놈들이 함부로 대적할만한 군대가 아니다.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마르퀴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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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언젠가.

  • SKEN 2014.05.22 21:28

    다음편은 언젠가..먼 훗날..그리고 영원히..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