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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9 21:57

[카오스] Seven Gate - Red Emperor's grin

조회 수 28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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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우오오오오 -

망자의 울음소리.
귀가 찢어지는 듯 하는 암흑의 파동이 대지를 울린다.
생명이 사멸해가는 대지에는 단 하나의 존재가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기이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보통의 성인남자와 유사한 체격, 그리고 온몸을 칭칭 둘러싼 검은 로브가 그것의 모습을 가리고 있었지만 로브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해골의 그것이었다. 해골의 눈에서 빛나는 푸른 안광이 시릴 듯 반짝였다.

해골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먹구름 사이로 조밀하게 비가 내렸다. 해골의 검은 로브를 축축하게 적시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들지 않았다.

액체가 흘러내린다.

무색투명한 빗물만이 아닌, 인간의 뇌수와 핏물이 섞여서 웅덩이를 이루었다. 곳곳에 쓰러진 오크의 사체가 사후경직으로 인해서 꿈틀거렸다. 해골은 걸음을 옮겼다.

덜그럭. 덜그럭.

해골은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인간을 죽이고 스콜지를 죽이고 나이트엘프를 죽인다. 하지만 해와 달이 수십만번 지는것을 보아오면서도 그의 과거를 기억해낼 수는 없었다.

그는 과거를 찾아서 떠도는 망령이었다. 해골의 소망, 그것은 기억이었다. 최후의 고통으로만 창세의 시가가 쓰여질 수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 또한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살해의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나 과거를 찾아서 떠돌아다니다가 지금에 이르러서 회의가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따악.

울리는 듯한 소리. 해골은 하늘로 튕겨져가는 검은 무언가를 보았다. 방금 그의 두개골을 때린 것이 돌멩이라는 사실 또한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저런 조그만 돌멩이로는, 그에 실린 미약한 힘으로는 그의 골체를 상하게 할 수가 없었다. 아다만티움으로 이루어진 마법의 골체를 부술 수 있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마법의 힘 뿐이었다. 해골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오크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의 온 몸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몸은 두려움으로 벌벌 떨면서도 억지로 도를 들고 서 있는 것을 해골은 알 수가 있었다. 오크소년의 도가 해골을 겨누었다. 파르스름한 도신이 달빛에 비쳐 하얗게 빛났다.

" 나는 도망치지 않아."

" ......"

" 그것이 전사의 명예이니까."

전사의 명예.

순간 해골은 그 말이 그의 마음 속 깊은 혈맥을 일깨우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봉인된 기억이 미친듯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의 손에 들린 혈검 티르빙이 기억을 공명했다.

그는 고대의 왕이었다. 모두의 숭앙을 받는 훌륭한 왕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말았다. 문명의 붕괴였다. 고대에는 거대한 하나의 대륙이었던 것이 지각의 변동과 축의 이동으로 인해 갈가리 땅이 나누어졌다. 창세의 고통이 그를 미치게 하였다. 인간의 고통이, 그의 사랑스러운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미칠듯이 왕의 마음을 헤집었다.

왕은 혈검 티르빙을 잡았다. 그리고 신을 향해 울부짖었다.

" 그대가 진정 전능한 신이라면 어찌하여 인간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는가? 인간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 티르빙에 걸고 외치겠다. 나 레오닉 프라니오드 3세는, 너 신의 존재를 부정하겠다!"

그리고 고대제국 최후의 성왕 레오닉 프라니오드 3세는 신의 저주를 받았다. 가공할 신성력이 그의 몸에 임하자 온 몸이 불타올랐다. 최강의 검사이자 마법사로 존경받던 제왕이었으나 신의 저주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왕을 위하여 모든 주술사가 희생했다. 그들의 모든 마나와 왕의 인간으로서의 형태를 포기한 후에야 신벌은 그만두어졌다. 그러나 주술사와 왕의 힘이 사라지자 제국은 멸망하게 되었다.

레오닉 프라니오드 3세는 인간임을 포기했다. 그는 단 한 자루 티르빙을 들고 천 년의 시간을 방황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볼품없는 검은 로브의 해골이 되었다. 레오닉 왕은 오크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 도가 떨리고 있군.]

오크 소년의 손목이 부숴질 듯이 흔들렸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겠지만 참고 있는 것이리라. 레오닉 왕은 그 소년을 바라보며 눈에 이채를 띄었다.

소년의 말이 그의 천년의 소망을 일깨워주었다. 그의 소명과 바램이 되살아난 지금에 더 이상의 살상은 무의미했다. 레오닉 왕은 물었다.

[ 복수하고 싶나?]

" 그렇다!"

오크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블레이드 클랜 족장의 아들이었다. 손에 들린 폭풍도는 아버지의 것이었지만, 클랜 최강의 도객이었던 아버지조차 저 해골과 맞서서 백 초를 버티지 못했다. 클랜의 모든 인원이 학살당했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적과 마주쳐서 싸우다 죽는 것이 블레이드 클랜의 자긍심이었다.

레오닉왕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요히 말했다.

[ 나한테서 나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가장 쉬운 복수의 방법이겠지.]












" ... 죽일 것이다."

적혈귀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센티넬의 기지 안에 누워 있었다. 창가로 햇빛이 비쳐들어왔다. 이십여년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적혈귀는 이를 악물었다.

" 당신 이외에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 맹세했다. 당신은 나의 원수였지만 그 이전에 최강의 무사로 존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졌다."

레오닉 왕은 적혈귀를 8년간 가르쳤다. 적혈귀는 레오닉의 빈틈이 보일 때마다 기습했지만 8년동안 레오닉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레오닉의 붉은 해골이 뒤틀리며 웃을 때마다 적혈귀는 죽도록 고문당했다.

적혈귀가 레오닉 왕에게서 가르침받은지 9년째 되던 날, 적혈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레오닉 왕을 공격했다. 그러나 레오닉 왕은 이백 초만에 적혈귀를 가볍게 패배시켰다. 도저히 뒤집을 수 없는 절대적인 실력차이가 그들 사이에 있었다. 적혈귀는 울었다. 복수는 불가능했다. 남은 것은 레오닉 왕을 그의 세계의 최강으로 인정하는 것 뿐이었다.

적혈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는 세상에 뛰쳐나왔다. 그리고 센티넬에 들어갔다. 수천 수만번을 싸우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 고금 최강의 센티넬의 도객이었다.

하지만 졌다. 브록켄 백작이 휘두르는 데스칼리버에 그의 폭풍도의 도기가 맥없이 스러지고 가슴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비록 래퍼드가 암습을 가해서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고 해도 진 것은 진 것이었다.

적혈귀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폭풍도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 푸르군."

20여년 전과는 달랐다. 비가 오지 않았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던 적혈귀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가야만 했다.

더 이상의 패배는 없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혹 원수라고 해도 상관없이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적혈귀에게는 되어 있었다. 레오닉 왕이 은거하고 있는 발렌시아 산맥으로 향하는 적혈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시종일관 그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레오닉은 현재 명목상으로는 스콜지의 최고 수뇌부 중 하나였다. 하지만 레오닉이 은거하고 있는 발렌시아 산맥 안으로는 베나자르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들어갈 담량을 지니지 못했다. 레오닉 왕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살기가 산맥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사흘 밤낮을 끊임없이 걸은 후에야 적혈귀는 발렌시아 산맥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혈귀는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이미 입구의 바위 위에 익숙한 붉은 해골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붉은 해골이 말했다.

" 역시 왔군."

" ......"

" 너는 세계가 변화하는 것을 아느냐?"

" 또 그 공상론을 듣고싶지는 않소. 내가 필요한 것은 더욱 강한 힘이지."

" 너와 나 또한 그 흐름 중의 하나이지. 우리 정명자가 원하는 것은 불멸이지만 그 또한 덧없다. 이 말의 뜻을 알게 될 때 너와 나는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가르침을 줄 수 없다는 거요?"

" 돌아가라."

레오닉 왕과 적혈귀의 눈이 마주쳤다. 한참이나 레오닉을 노려보던 적혈귀는 걸음을 다시 센티넬로 향했다. 붉은 해골은 조용히 바위에 앉아 있다가 적혈귀의 모습이 언덕 사이로 사라졌을 때 입을 열었다.

" 이걸로 너와 나 사이의 빚은 모두 청산된 것이다. 적혈귀..."

" 무슨 말을 그렇게 혼자 하고 있나, 레오닉."

" 크크크. 나 하나를 죽이러 세 명이나 왔으니 죽어도 할 말이 많지 않겠는가."

레오닉 왕의 뒤에는 세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 그들은 왜인지 착잡한 듯 레오닉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레오닉은 그런 그들을 보고 웃었다. 한 때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웠던 전우를 죽이러 왔다는 게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복면을 벗었다. 그 또한 해골이었다. 그러나 마법으로 인해 인광이 퍼져나오는 새하얀 해골이었다. 레오닉 왕은 계속해서 웃었다.

" 오블리."

또 한 명이 벗었다. 암울한 듯한 안색의 사내였다. 그러나 잘 보면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피부가 썩어 있었다.

" 뮤턴트."

마지막 사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복면을 벗었다. 그는 가면을 또 쓰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본다면 그것이 샤먼의 고유복장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늑대인간 시온..."

" 미안하네, 레오닉. 미안해..."

시온은 착잡한 눈빛이었다. 그의 눈에는 좌절감과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레오닉 왕은 과거의 전우가 그런 얼굴을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망설임을 끊어주기로 했다.

레오닉은 티르빙을 꺼내들었다.

" 저 아이도 내게 말했었지. 싸우다가 죽는 것은 전사의 명예라고."

" ......"

" 나는 그 명예를 잊고서 수천년간 방황했다. 왕으로써의 긍지도, 검사로서의 명예도 잊은 채.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그것으로써 만족한다."

레오닉과 시온은 마주보았다.

우우우우 -

그 순간, 날이 완전히 저물고 달이 떠올랐다. 시온의 얼굴에서 털이 삐져나왔다. 와드득거리며 뼈가 변형했다. 시온은 순식간에 집채만한 크기의 푸른 늑대로 변했다. 시온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 나 또한 지옥에 갈 것이다. 먼저 가있게, 레오닉.]

오블리의 양손에서 마나의 결집체인 새하얀 광구가 떠올랐다. 뮤턴트의 몸 주위에서 생명을 찢어버리는 기이한 기류가 솟아올랐다. 레오닉은 그 모습을 보며 티르빙을 고쳐잡았다.

' 이제 마지막이로군.'

그는 최강의 스콜지 영웅이었다. 1대 1에서는 베나자르조차도 그를 감당할 수 없었지만 세 명이나 되는 영웅을 상대로 이기는 것은 힘들었다. 더욱이 요즈음은 힘이 자꾸만 줄어들어서 그의 궁극기인 식스팬텀을 시전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다. 그는 죽음을 예감했다. 그의 과거가 자꾸만 떠올랐다.

레오닉은 웃었다.

' 오래 살았다... 나의 백성들이여. 그대들을 따라가겠노라.'

" 간다 - !"

레오닉이 돌진해갔다.




다섯 시간 후, 발렌시아 산맥에 별안간 어마어마한 섬광이 터져나왔다.

놀란 근처 주민들이 발렌시아 산맥을 보자, 산맥의 한 부분이 무너져 있었다.

가공할 격전이 있었는지 곳곳에는 검기로 인해 예리한 절단된 바위가 널려 있었고,

무언가에 의해 파인 듯한 사람크기의 구덩이가 여기저기에 패여있었다.

사람들은 신의 분노라고 부르며 이 날의 일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파괴의 한 구석에 누워 있는,

웃고 있는 붉은 해골의 얼굴을...






  • 미카엘 2006.04.15 23:24
    푸하하하.....라고 웃는건 잘못된 것이겟죠..
    1년전까지만 해도 카오스를 밥먹듯이 한저로써는 정말 재미있게
    읽고있..(푹..!)
  • 카이지아 2006.04.16 19:22
    오옷, 재밌게 읽어주신다니 ㅠㅅㅠ
    감사합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