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패러디
2006.01.12 01:20

[카오스] Seven Gate - Shadow walker

조회 수 2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br]




고요했다.

천지를 가득 메우는 눈 사이로 장엄하고도 푸르른 풍경이 펼쳐졌다. 한없이 높고도 쓸쓸한 하늘, 백은의 산맥이 한 사내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소리없이 한 방울, 한 방울 내리는 눈을 감싸쥐었다. 차가운 감각이 느껴져야 했지만, 오랜 수련으로 인해 단련된 몸은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난... 정말 잘한 것인가?"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십오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느껴지는 감회가 별다르지는 않았다. 무언가 다를 줄 알았는데... 기쁠 줄 알았는데. 한도 끝도 없이 내리는 눈발이 그의 마음을 차갑게 적셨다.

뜨거운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 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다네."

사내가 마을로 들어서자 마자 한 노인이 웃으면서 그를 맞아주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희미한 불빛이 밤의 안개와 섞여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사내는 아무 말도 없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땅딸막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콜록콜록 거리며 목 언저리를 긁적였다. 멀건 콧물이 새어나왔다.

" 쿨룩... 날이 좀 춥군. 안으로 들어가겠나?"

" 그러지요."

" 미끄러질 수 있으니까 발 밑을 조심하게나."

그들은 한참을 걸었다. 이 팔로아 산맥의 겨울은 대륙 전체에서도 가장 춥기로 소문이 났다. 노인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그를 보고 의아한 듯한 모습이었다. 오줌을 누면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날씨에 겨우 검은색 경장 한 벌을 걸친 사내가 겨울바람을 버티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끼이익.

마을 외곽 언저리에 오자 불빛이 보였다. 상당히 커 보이는 주택이었다. 노인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주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기운이 벽난로에서 풍겼다. 노인은 벽난로 옆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사내에게 자리를 권했다.

" 거기 앉게."

사내는 가죽 소파에 비스듬히 앉았다. 내려앉은 검은 머리는 그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렵게 만들었다. 단지 가끔씩 번뜩이는 안광이 그의 감정을 대변할 뿐이었다. 노인은 준비해둔 차를 꺼내서 마셨다.

후루룩.

" 음, 맛이 좋군. 자네는 로톤의 홍차를 아는가? 맛과 향이 보통 홍차와는 비교도 안돼! 비싸긴 하지만 사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

" 비싼 홍차죠. 보통 사람은 평생을 가도 마실 수 없는..."

" 껄껄! 겨우 이까짓 걸 가지고?"

노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에게 있어서 로톤의 홍차는 정말 별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몰려드는 재물은 이젠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노인은 웃으면서 사내의 표정을 살폈지만, 평생동안 사람 보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던 그 조차 사내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노인은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 자네가 내 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로톤의 홍차가 아니라 성 한 채도 줄 수 있겠지. 부유함을 즐긴다면 그게 현명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사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처음으로 노인은 사내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냉소와 모멸감.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시도는 해 보았지만 애초부터 글렀던 일이었다.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음... 자네는 기어코 나를 죽이고 말겠다는 거군."

" 당신이 내 어머니를 엄동설한에 밖으로 내쳐서 죽였을 때부터 예정되었던 일이었소."

" 후후! 당신이군...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당신이라니."

" 피차 마찬가지 아니오?"

" 큭큭... 그렇지. 하나 이것만은 알아둬라. 그녀는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유일한 사랑이라는 것을. 그때의 그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 어떻게 믿을 수 있소..."

" 나, 자객왕(刺客王) 쉐도우 워커 래퍼드의 이름을 걸고."


노인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는 전 대륙의 자객들의 신, 최고의 자객으로 불리는 쉐도우 워커였다. 래퍼드란 이름은 쉐도우 워커 가문의 가주가 대대로 물려받는 것이었다. 설령 스콜지 킹 베나자르라도 죽일 수 있다고 알려진 최강의 아사신(assasin)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자객왕의 이름을 걸었다면 결코 거짓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사내는 차갑게 비웃었다.



" 후후후! 당신의 맹세는 이십 년 전 그 때 깨졌습니다. 당신은 어린 저에게 말했습니다..."

" ......"

" 영원히, 우리 가족은, 계속될 거라고..."

" 어쩌겠다는 거냐."

" 저는 당신의 맹세를 지키겠습니다. 살아서는 당신의 얼굴조차 보기 싫지만... 저승에 계신 어머니가 당신을 보고싶어 하시겠지요. 그쪽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오늘부터는 제가 래퍼드입니다."

" 큭... 모순이군. 네 녀석도 죽어야 성립되는 것이 아니냐?"

" ......"

" ... 설마...!!"



노인은 경악했다.

지금껏 감정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상의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던 노인의 기세가 일순간 흐트러졌다. 사내의 손에 감춰져 있던 장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생각하기 전에 검이 튀어나갔다.

파슉.

빛보다 빠른 검기가 흐르듯이 노인의 가슴을 꿰뚫었다.
노인은 눈을 부릅뜨고 속에서 올라오는 검은 피를 억지로 삼켰다. 사내는 무표정하게 장검에 힘을 주었다. 더욱 세게 가슴에 틀어박혔다. 검날이 등을 뚫고 나왔다.

주르르르륵...

그는 이제 곧 죽을 것이다.

아무리 아사신으로 단련된 몸이라고 해도 치명적인 사혈에 검을 맞았으니 살 방도는 없다. 노인은 죽음을 예감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살아온 생애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갔다.

문득 공중에서 사내와 노인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이나 그 상태로 있었다. 누구도 지금 그들의 감정을 잴 수가 없었다. 문득 노인의 입에서 미세한, 그러나 또렷한 말이 흘러나왔다.




" 오늘부터는, 네가 래퍼드다."


"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크큭... 건방진 놈. 그리고... 무모한 놈..."




말이 끝나자 노인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사내는 노인의 시신을 내려다 보았다. 그 모습에서 사내는 자신의 숙명을 예감했다. 이것이 어둠의 장사치들의 운명인 것이다. 결코 편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사내 또한 저 시신처럼 죽을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스으으윽...

노인이 죽자 저택 사방에서 음습한 기운과 함께 검은 그림자들이 올라왔다.
사내, 래퍼드는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노인의 생전에 가장 신임하던 친위대였던 흑살단이었다. 검은 그림자 중 한 명이 걸어나와서 말했다.


" 우리는 대대로 쉐도우 워커 가문의 가주를 보조하는 자.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 흑살단장. 나를 죽이고 싶진 않나?"

" 죽이고 싶습니다."

" 후후, 솔직하군."

" 나의 의지가 조직의 신념을 초월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들 흑살단의 운명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당신이 죽을 때 날아드는 검 중에는 나의 것도 있음을."

" 네 손으로 죽여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거군... 알았다. 재밌는 여흥이 될 것 같군."

"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 이 자의 시체를 치워라.
그리고 본거지를 옮긴다... 목표지는 스콜지의 수도, 네크로폴리안이다."

래퍼드의 눈에서 기이한 안광이 번뜩였다. 그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우는 소리는 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