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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2 01:16

[카오스] Seven Gate - Black D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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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크라라라라락

기괴한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둡고 음습한 계곡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나타났다. 곧 그곳에서 푸확하고 핏덩이 몇 조각이 터져나갔다. 잘린 지 얼마 되지 않은듯 온기가 새어나왔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마치 암흑처럼 검은 흉갑을 입은 한 흑기사였다. 머리를 빗어넘겨서 젊어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두덩이 움푹 패여있고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 엔클레임 평원에서, 분명히 말했었다."

흑기사가 말했다.

그의 손에는 하나의 거대한 대검이 들려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잡고 있었지만,그것이야말로 적에게는 악몽이면서 착용자에게도 하나의 저주인 전설의 마검(魔劍)이었다. 흑기사는 싸늘한 시선으로 전면을 내려다 보았다. 흑마(黑馬) 에륑겔도 주인을 따라 무시무시한 투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계곡의 위로, 어둠이 걷히면서 햇빛이 비쳤다. 새벽이 끝나고 아침이 오는 것이다. 그러자 계곡 안의 참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센티넬의 드루이드들의 시신이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었고, 브레스를 뿜던 페어리 드래곤은 십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몸이 산산조각 난 채 죽어있었다. 혹자는 바로 이것이 지옥도(地獄圖)라고 감히 단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억... 허억...

피로 덮인 대지 위에 한 자루 장검을 의지삼아 간신히 서 있는 백색 갑옷의 기사가 있었다. 그의 온 몸은 피로 적셔져 있었고 한 팔이 잘려나가 버렸다. 어떻게 보든 절망적인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기사는 분노에 차서 외쳤다.


" 개자식, 브록켄! 왕국을 배신한, 타락기사 따위가 더 할 말이 있단 것이냐!"


멸망한 아케로니아 왕국의 대기사(隊驥士) 바슈가 오른팔이 잘려나가서 비어있는 어깨죽지를 움켜잡고 비통하게 외쳤다. 바슈는 그 특유의 왕국검법을 써서 브록켄의 마검에 저항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고작해야 백여 합 만에 팔이 잘려버린 것이다.

그는 마검의 위력에 치를 떨었다. 분명히 엔클레임 평원전에서는 맞붙어서 싸울 만 했었는데, 일 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이토록 강해진 것이다. 브록켄은 여전히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브록켄의 창백한 얼굴엔 미동조차도 없었다.

" 뭐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내 앞을 막으면 그것이 누구일지라도 베어버린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 경고를 무시한 바슈, 너의 책임이다."

" 누구라도 베어버린다고? 그것이 시에나 공주님이라고 할지라도 말인가?"

" 물론이다. 그녀는 나의 옛 사랑일 뿐, 지금 나의 이상은 스콜지에 있다."

" 크으... 으으윽!!"

바슈는 원통한 얼굴로 브록켄을 노려보았다. 왼손에 쥐어져 있는 장검을 받침대 삼아서 겨우겨우 일어났다. 하지만 역시 비참한 꼴임에는 틀림없었다. 숨이 점차 가빠왔다.


그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도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분명히 그와 브록켄은 2년 전만 해도 함께 최고의 기사가 되자는 꿈을 이야기하던 순수하고 강한 의지의 동료였건만.

바지지지지지직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검은 번개가 검면에 튀었다. 그 빛에 브록켄의 창백하지만 잘 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번개는 점차 강해져서 종래에는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의 위력을 내재했다. 바슈는 힘겹게 검을 들어서 브록켄의 마검과 마주하였다. 그가 물었다.

" 그건 못 보던 기술이군. 뭐지?"

" 예전에 바슈, 너와 싸울 때는 데스칼리버의 전력을 다하지 않았단 뜻이다."

" ......!!"

" 나는 이걸로 스콜지 킹(Scourge King) 베나자르 3세에게 인정받았다... 그가 말하기를 지금껏 데스칼리버를 사용한 자는 많았으나, 데스칼리버의 진정한 위력을 끌어낸 자는 역사 이래 나밖에 없을 거라고 하더군."

" 동정이었던가!"

" 아니, 그건 아니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최근이니까."

브록켄은 단언하듯 말했다.

" 잘 가라... 바슈. 나의 친우여."


우오오오오!

마검이 울었다. 번개가 마치 악마의 얼굴같은 형상을 띠었다. 하늘에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브록켄의 전신이 검은 영기로 둘러싸여 어마어마한 마나를 방출했다. 그 잠재력에 바슈는 그만 기가 질려 버렸다. 브록켄의 검법에 밀려서 제대로 기운을 모을 새는 없었지만 최고의 필살기인 소울 블레이드를 사용한다고 해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검은 번개는 마침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브록켄을 둘러쌌다. 데스칼리버가 적의 피를 바라고 있었다. 브록켄의 눈이 빛나는 순간, 그 파괴의 기운이 노도와 같이 광폭하게 터져나왔다.


우오오오오 -

콰르르르르릉!

죽음의 뇌영이 대지를 휩쓸었다. 번개와 바람이 뒤섞여서 하늘의 먹구름을 꿰뚫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던 아리아논 대계곡의 절반이 부서져 나갔다. 모든 것을 태우고 찢고 소멸시켜버리는 검은 번개가 광풍처럼 몰아쳤다. 마치 천지창조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장엄하며 두렵기만 한 광경이었다.

바슈는 이를 악물며 생의 마지막을 담은 검의 정수를 펼쳐내었다. 그 또한 한때 왕국 최강의 기사 중 하나였다. 모든 것을 잘라버리는 아르곤 블레이드가 수백 갈래로 떨쳐나왔다. 하나하나가 강철도 베어버릴 거력(巨力)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데스칼리버의 위력을 당해내기는 역부족인지 자꾸만 밀렸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 아다스 폐하!'

그의 왕.
왕국 모두의 왕.

모두가 포기했을 때에도 나서서 용기를 주었던 왕. 그가 인정한 최고의 왕의 모습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아다스가 왕국의 기사들 앞에서 지어보였던 환한 미소가 보였다. 바슈는 덩달아 웃었다. 먼저 가버리게 되는 것이지만, 그를 모셨다는 기억이 그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리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바슈는 마지막 일검을 휘둘렀다.

콰과광!








" ... 끝났나."

에륑겔이 지쳤는지 숨을 헐떡거렸다. 브록켄은 전에 보지 못했던 안쓰러운 표정으로 에륑겔의 갈기를 어루만졌다. 그 누구도 브록켄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녀석만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옆에 있어주었다.

원래 계곡이었지만 그의 필살기에 모조리 날아가 버리고 평평한 대지가 되어버렸다. 브록켄은 표정없이 자신이 이루어낸 어마어마한 일을 쓱 쳐다보고는 데스칼리버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피를 원하는 진동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언젠가는 마검에 자아가 먹혀버릴지도 모르리라. 그러기 전에...

찌릿.

" 으윽."

머리가 아파왔다. 에륑겔이 걱정스러운 듯 히힝거렸다. 브록켄은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내저어 보이고는 숨을 골랐다.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또 다시 고통이 시작되었다. 스콜지의 일진, 고통의 여왕 아카샤가 배신이 절대 불가하다는 의미로 자신의 뇌에 박아넣은 뇌충(腦蟲)은 그가 스콜지에 대한 충성에서 크게 벗어나는 생각을 했을 때 발작을 해대서 브록켄에게 큰 두통을 주었다. 아마도 다른 종족의 스콜지 영웅들도 아카샤의 뇌충에 지배당하고 있으리라.


브록켄은 분노해서 주먹을 꽉 쥐었다가 슥 풀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아직은... 안돼. 내가 스콜지 킹이 될 때 까지는... 안 그런가? 브록켄 백작."